힘 빼고 사는법: 철학자들의 삶 - 김영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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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고 사는법: 철학자들의 삶 - 김영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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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고 산 철학자들

1. 산책
2. 여성


1. 철학자들은 산책을 통해 사색을 한다. 대다수의 철학자들은 자신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산책을 즐겼다. 고대에 탈레스는 기원전 7세기 이오니아 해안에 있는 밀레토스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별자리(작은 곰)도 관찰한 자연 철학의 창시자였다. 탈레스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딱 세 마디를 했다. ‘아직 때가 아니에요’, ‘이제는 때가 지났어요’,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585년 5월 28일에 일식을 예견하였다. 철학에 파묻혀 사는 사람은 옆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고사하고 그들이 사람인지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2. 소크라테스 역시 산책을 즐겼다. 그는 기원전 399년에 사형을 당했다. 하늘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다. 그는 그 이유로 신들을 부정하고 청년들을 타락시킨 이유로 유죄선고를 받는다. 탈레스가 자연을 산책하였다면, 소크라테스는 도시, 특히 시장을 산책한다. 산책길은 당시 아테네 도시 주변을 따라 산책하였다.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라는 대화편에서 이런 말을 주고 받는다.
소크라테스: 헤라 여신 곁이로군! 여긴 참 좋은 곳이네요. 플라타너스만해도 화려하게 우건진 잎에다 높게 뻗어 있고, 높게 자란 관목들과 그 그늘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게다가 꽃도 온통 좋은 향기로 가득하니 말예요. 그리고 이 플라타너스 아래로는 가장 시원한 물을 내는 사랑스러운 샘이 흐르고 있구요. 발로 느껴볼 수 있을 거예요. 게다가 입상과 조각상을 보니 이곳은 샘의 여신들과 아켈로스 강의 성진인 것 같구려. 이곳에서는 원하기만 하면 바람도 반가운 마음으로 달콤하게 불고 합창 속에서 여름철답게 사랑스러운 소리를 냅니다 그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절묘한 것은 부드러운 언덕에 나 있은 드넓은 풀밭이네요. 사지를 뻗고 누워 머리를 편안하게 쉴 수 있을 정도로 말예요. 한 마디로 말해, 사랑하는 파이드로스, 당신은 훌륭한 안내자 역할을 했습니다.

파이드로스: 훌륭한 어른이시오, 그런데 당신은 아주 이상해 보이십니다. 말씀하셨다시피 이곳저곳 안내를 받는 당신은 실제로는 이 지방사람이 아니라 이방인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도시 밖으로 나가본 적도 별로 없고 심지어는 성문 밖으로는 나가본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소크라테스: 오 사랑하는 친구요, 양해를 구합니다. 그야말로 나는 배움의 열정에 사로잡혀있습니다. 그런데 들이나 나무들은 내게 아무것도 가르쳐주려 하지 않아요. 하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의 산책은 시장에서 인간과 만나기 위한 매개이다. 그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산책을 했다. 그는 사유를 통해서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 사실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3.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의 사후에 아테네에 리케이론이라는 장소에 자신의 학파를 세운다. 이 학파는 페리파토스(Peripatos)라고 했다. 그것은 산책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제자들과 산책을 하면서 사색을 한다. 변화란 무엇인가? ‘장소’, ‘비어있는’, ‘시간’과 같은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는 변화를 말할 수 없다. 신을 제외한 모든 존재는 변화한다. 도대체 변화란 무엇인가? 우리가 변화를 만든 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을 탐색해야 한다. 그것만이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4. 디오게네스는 소크라테스의 무소유의 삶을 철저히 수행했다. 그의 스승인 안티스테네스는 지팡이와 외투 하나로 살았다. 기원후 3세기에는 기독교의 교부들 사이에서 외투란 3일 동안 밖에 두어도 도둑맞을 염려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지팡이는 산책을 하거나 고독을 즐길 때 사용하는 도구이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도구였다. 디오게네스가 안티스테네스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찾아갔으나, 디오게네스는 그의 지팡이로 맞았다.
“때리려면 때리시오. 그러나 나를 쫓아낼 만큼 단단한 나무는 없을 거요. 당신을 말씀을 들을 수 있기 전엔 가지 않을 것이오.”

5. 17세 철학자 홉스는 ‘만인과 만인의 투쟁’을 주장했다. 그는 산책을 할 때, 펜대와 잉크병을 넣을 수 있는 지팡이를 고안했다. 외투 주머니에는 항상 수첩이 있었다. 루소 역시 1749년 10월에 산책을 하면서 잡지 책(메르퀴르 드 프랑스)을 읽고 있었다. 그 책에 다음과 같은 공고문이 있었다.
‘학문과 예술의 발전이 도덕의 부패에 기여해야 할 것인가 풍속의 순화에 기여해야 할 것인가?’ 루소는 이 질문을 읽고서 역사에 남는 철학자가 된다.
‘이 문장을 볼 때 나는 다른 우주를 경험하며 다른 사람이 된다.’

6. 칸트의 집안에 유일하게 놓여 있는 초상화가 루소였다. 그는 루소가 자신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고 한다. 철학사에서 칸트는 세계가 우리의 인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를 체험하는 방식은 우리의 인식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한다. 칸트는 쾨닉스베르크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으며, 항상 산책을 했다. 그를 보고 사람들은 시계를 맞추었다고 한다. 칸트는 하루에 단 한 번의 식사만 했고, 일정 시간에 산책을 했다. 그는 하얗게 머리분을 뿌린 가발을 쓰고 그 위에다 삼각모자를 쓰고는 산책을 했다. 그의 키는 1미터 59였다. 그는 입을 절대 열지 않았다. 산책할 때 밖의 공기는 류머티즘과 감기에 걸리게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이성은 신, 자유, 불멸에 관한 질문을 던질 수는 있으나, 그것에 관한 확실한 인식을 얻을 수는 없다. 인간이 자유롭다는 만큼이나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충분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은 짙은 안개와 빙산으로 가득 찬 파도치는 망망대해 위를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질서라고 작은 섬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다.’

7. 니체는 1887-1888년 프랑스의 남부 지역인 니스에서 매일 4시간의 산책을 했다. 매일 빠른 걸음으로 매일같이 똑같은 길을 간다. 멈춰 서서 바다를 바라보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하루하루가 너무너무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이보다 더 완전한 겨울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런 것은 보통 유럽에는 없는 겁니다.’
이 글을 쓸 때 니체의 나이는 43세였으며 환자였다. 거의 눈이 먼 상태로 대도시에서 차에 치일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는 격렬한 두통, 며칠 동안 겪는 열과 구토로 기진 맥진해 있었다. 그는 신선한 공기와 빠르게 걷는 것으로 이를 치료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요통도 너무 심해서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1887년 1월 그는 처음으로 난로 하나를 장만했다. 그는 시퍼래진 손가락으로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는 『짜라투스트라』 3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몹쓸 손님이 겨울이 내 집에 들어앉아 있다. 그와의 우정어린 악수로 내 손이 파랗다. 나는 이 몹쓸 손님을 존경하지만 그를 혼자 놔누고 싶다. 그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그리고 잘 도망치면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지.’
그는 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책을 했다. 그는 난로(불의 우상)의 숭배는 유약한 자들이 하는 것으로 치부했다.

‘동물은 병이 들면 자신의 동굴로 기어들어 간다. 철학자라는 동물도 그렇게 한다. 우정의 몸짓으로 내게 다가오는 사람은 좀처럼 없다. 지금 나는 혼자다. 완전히 혼자다. 이제까지 인간이 숭배하고 사랑했던 모든 것에 대해 처절한 지하세계의 싸움을 감행하면서-이를 내 말로 표현하자면 ’모든 가치의 전도라는 것이다. 어느 새 내 자신은 동굴과 같은 어떤 것이 되었다-밖으로 나가 찾아봐도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어떤 숨겨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시민들에게 ‘선에 대한 신념’을 심어주기를 원했다면, 니체는 ‘모든 가치의 전도와 신의 죽음’을 생각했다.    

2. 여자와 철학자
       “여자는 모든 것이 다 수수께끼다”-니체-

1. 크산티페와 소크라테스
크산티페가 소크라테스의 머리 위에다가 요강을 부었다. 친구들이 이에 대해 화를 내자 소크라테스는 ‘크산티페가 천둥치듯 소리를 질러대면 비도 몰고 온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라며 유머스러하게 받아들였다.
한 번은 화가 난 크산티페가 아테네 광장 위에서 소크라테스의 외투를 벗겨버렸다. 옷을 벗기는 것은 소크라테스를 조롱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직업은 석공이고 세 명의 자식을 낳았다. 하지만 그는 일을 하지 않고 시장에 가서 철학만을 했다.
소크라테스는 결혼은 인생의 학교라고 표현했다. 거친 말과 조련사의 관계라고 한다.
‘조련사가 한번 그런 말을 길들이고 나면 다른 말들을 쉽게 다루게 되는 것처럼 내가 크산티페와 지내보면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데도 능수능란할 것이오.’ 

2.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필요에 맞게 한 여자를 발견했지만 여자를 충분히 잘 알았더라면 그 역시 여자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니체-

3. 플라톤은 [티마이오스]라는 책에서, 모든 영혼은 남자이며, 예비된 별을 갖고 있으며, 지구는 영혼에게 단지 능력을 보여주는 장소라고 한다. 현세에서 실패한 사람은 두 번째 태어날 때는 여자의 본성을 받게 되며, 여자로서도 성공하지 못하면 짐승으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여자의 영혼도 다시 남자로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여자 역시 동일한 교육을 받으면 남자와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 여자를 집에 가두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위배된다.

4. 아우구스티누스는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은 영혼 구원에 위협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고 교부가 되었다. 하지만 꿈 속에서 계속해서 예전의 영상들이 나타나서 자신을 괴롭힌다고 호소한다.  그는 354년, 알제리의 수크-아라스인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그는 20세가 못되어 당시 공부하고 있었던 카르타고에서 한 여자와 동거생활을 했으며 14년 동안 사귀었다. 일년 후에 아들 아데오다투스(신이 주신 사람)가 태어났다. 그는 어머니의 압력으로 프로리아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약혼했다. 하지만 신부는 결혼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는 플로리아를 그리워했다. “사람들은 내 잠자리의 동반자이자 내겐 특히 소중했던 그녀를 결혼의 장애물로 여겨 내 옆구리에서 떼어냈다. 베인 자국과 상처로 인해 이 마음에서는 생명의 피가 흘렀다.”
모니카가 평생 기다려온 기적이 일어났다. 386년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의 정원에서 ‘가져다 읽어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는 바울 서신을 가져다 아무데나 펼쳐 보았다. 거기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장 13-14절) 

그는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성적인 행동에 등급을 매겼다. 가장 하위 등급은 간통죄인, 창녀, 창녀를 찾는 사람, 그 위의 등급은 침실에서 정욕만을 추구하는 부부들, 그 위의 등급은 정욕 없이 자식을 낳으려는 진지한 소망으로 행해질 때에만 죄에서 자유롭다. 그 위의 등급은 자식이 있어서 부부 생활을 포기한 사람들이고, 최상위 등급은 성직자들의 독신생활이다.

5. 볼테르(프랑소아-마리)
“여자는 어디를 보나 남자보다 거칠지 않다. 육체는 도덕과 연결되어 있어 여자들로 하여금 중죄를 짓지 못하게 한다...이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바로 살인으로 인한 수 천 건의 사형 집행에서 여자 사형수는 4명도 채 안된다는 사실이다.” 볼테르는 여자가 더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1694년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때는 로코코 시대였다. 부인들은 넓은 페티코트 치마를 입었고 하얀 분을 바른 가발과 숨막일 듯 가슴이 패인 옷을 입고 다녔다.
볼테르의 아버지는 명망 있는 파리의 공증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문학과 여자만을 좋아하고 직업을 가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왕을 풍자한 글로 1년 동안 바스티유 감옥에서 보내기도 했다.
1733년 마르뀌제 에밀리 뒤 샤틀레를 알게 되었다. 볼테르보다 그녀는 12살이나 어렸다. 너무 못생겨서 에밀리의 아버지는 사내아이처럼 수학과 철학을 공부하게 했다. 하지만 15살이 되자 그녀는 기가 막인 미인이 되었다. 누구도 그녀를 구원하지 않았다. 누가 철학책을 읽은 여자와 결혼하고 싶겠는가? 그녀를 구원한 사람은 늙은 장교였다. 하지만 유부녀는 볼테르와 사랑에 빠진다. 세 사람은 우정의 관계가 된다. 볼테르 역시 건강 악화로 성욕이 사라지자, 에밀리는 다른 남자에게서 아기를 낳는다. 아기가 태어나고 며칠 있다가 에밀리는 죽었다. 볼테르와 그녀의 남편은 함께 장례식을 치렀다. 그는 자신의 반쪽을 잃어버렸다고 털어놓았다.
  볼테르는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바울의 말을 거부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순종하라.’ 자연은 남자와 여자에게 다른 신체 기관을 주었으며, 상호 간에 협조하도록 만들었다.


6. 루소: 1712년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루소는 16살에 바랑 남작부인(29살)이 엄마의 역할을 하다가, 연인의 역할도 하게 된다.
“처음으로 나는 여인의 품에 안겨있는 나를 보았다. 그것도 내가 흠모하는 여인의 품에, 행복을 느꼈던가? 아니다. 그저 쾌락을 즐길 뿐이었다. 나는 극복할 수 없는 어떤 슬픔이 그녀의 매력을 손상시키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마치 근친상간을 한 기분이었다.”
1837년 25세가 된 루소는 여행 중에 20살 연상의 라르나제 부인을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서 얻는 쾌락은 슬픔의 감정으로, 견디기 힘들도록 몰래 죄여오는 가슴으로 언제나 흐릿해졌다. ..반대로 라르나제 부인과 있으면서 내가 남자인 것과 행복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기쁘고 믿는 마음으로 나를 감각에 내맡겼다.”
1750년에 그는 책을 적어서 성공한다. 루소는 자신의 평생 배필인 하녀로 지낸 테레즈 르바스르를 만난다. 그녀는 9살 연하이며, 착한 여자였다. 그는 그녀에게 한달 가까이 시계보는 가르쳤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그녀의 정신은 자연상태 그대로다. 그녀의 정신에는 교육이 부여되지 않았다. 23년간의 동거 생활 후에 공식적인 자기 부인으로 받아들였다.
방에 들어서면 어떤 여자에게 더 호감을 느끼는가? 살림을 돌보는 여자인가? 시를 쓰는 여자인가?
“이 세상 남자들이 다 이성적이기만 하다면 배운 여자들은 모두 평생 처녀로 남을 것이다.”

7. 밀: 1806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3살에 그리스어, 산수, 역사를 배웠으며, 7살에는 국민 경제, 철학, 라틴어를 배웠다. 14살에 모든 교육을 다 받았다.
밀은 나중에 자기의 자서전에 고백하고 있다.
“아버지가 나에게 베푼 교육은 실천력을 키우기보다는 지식을 얻는 훈련이었다.”
밀은 유부녀인 해리엣 테일러를 24살에 알게 되었다. 20년간 우정을 나누었다. 해리엣의 남편이 죽은 후에 둘은 결혼할 수 있었다.
“나는 이와 같은 결혼식을 통해 이제껏 어떤 식으로도 획득했던 모든 권리를 무제한적으로 포기하고 이에 종결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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