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인문학 강좌 1강 중국문명의 탄생과 하·은·주 - 201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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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인문학 강좌 <중국고대 문명과 역사> 1강 중국문명의 탄생과 하·은·주 - 201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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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강좌   중국 고대 문명과 역사      강사 : 허 증 (영남대 교수)

                     제1강  중국문명의 탄생과 하ㆍ은ㆍ주 시대            

                                제1장 : 중국의 황하문명과 선사시대

     1] 黃河 문명의 탄생

1) B.C 3000년 / 조상 -> 原중국인(Proto-Chinese), 거주->黃河中流, 黃土地帶, 원시농경 -> 토기사용  
2) 1927년 베이징 서남쪽 약 50km 떨어진 저우커우뎬[周口店]의 동굴에서 베이징 원인[Homo erectus pekinensis]의  화석 발견.
   이것은 중국에 인간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시기가 35만 년 전. 중국문명의 요람은 黃河 강.
3) 黃河의 농경문화 발생의 조건 => ⓐ 토질 -> 通氣性,透水性,容水性 성분; 규산, 아르미나, 石灰 / ⓑ수질 -> 풍부한 수량
4) 기후 => 高溫濕潤, 南船北馬, 黃塵萬丈

    2] 황하문명 발생의 지리적 조건 => 黃土地帶 형성 -> 농경 가능 -> 취락형성 : ①仰韶文化 + ②龍山文化

1) 중국문명의 시작 => 신석기시대 황하유역과 화북평원의 황토지대 -> 식물성장의 호조건 ->  농경 시작  
   cf 신석기 시대 양자강 유역 : 고온 저습-> 삼림무성-> 농경의 불가능 => 춘추,전국시대 -> 철기문화의 보급-> 농경  
2) 황토지대 형성 : 서북방 사막 황사의 풍화 수백만 년간 퇴적 -> ①初生黃土 / 黃河의 범람 -> ②再生黃土
3) 황토의 분포 : 화북지방의 山西,陝西,甘肅,~ 화남지방 / 넓이;132.4만Km²두께;100m~ 평균20~30m
4) 황토의 농경 호조건 -> 透水性,容水性,通氣性,다량의 규산,아르미나,석회분(비료성분) 함유,-> 간편 석기로 경작 가능
  cf 이집트,메소포타미아 문명->大河下流의 델타 지역에 홍수기 상류지역의 비료성분의 퇴적->비옥한 현승대-> 식물성장
5) 황하문명의 발생 :홍수 위험이 덜한 지류의 扇狀地帶에서 농경 시작 -> 석기,목기 사용,신석기 초기농경->공동체취락 형성  

   3] 仰韶文化

1) 종전의 황하문명의 대표 :앙소문화 -> 채도문화 / 용산문화 -> 훅도문화 --오류-수정--> 중국 신석기문화의 다원성 주장
2) 앙소문화 발견 :스웨덴 지질학자 G. Anderson 1920년~21 河南省 澠池縣 仰韶村 부근 -> 채색토기,농구용 마제석기,일용품
3) 채색토기 : 붉은 색 흙색에 홍색,흑색,백색 紋樣 彩色 -> 火田耕作의 밭농사 -> 조[粟],수수, 배추 재배 => B.C.3000년경
4) 중국문명의 西方傳來說[西方起源說] =>1900년대 초, 프랑스의 렉펠 리가 주장 <-대립-> 이후 중국문명의 자생발전설->용산

  4] 龍山文化

1) 종래 ‘용산문화’=‘흑도문화’ 도식의 오류 -수정-> 그 외 다양한 문화가 혼재함 => 한 곳에 앙소문화+용산문화가 혼재
2) 용산문화의 발견 : 1930~31년, 중앙연구원 역사연구소에 의해 山東省 歷城縣 龍山鎭 城子涯에서 처음 발견    
3) 용산문화의 특징 : 앙소문화 보다 농경기술이 발달 ;①농기구 발전 -> 목재 호미,半月形 돌칼, 돌도끼(石斧) / ②土器 ->          灰色繩文 외 黑陶 다수 / ③住居 -> 竪穴式, 소형가옥 보급 -> 男女合葬 -> 一夫一妻제 일반화 / ③사회제도->사유재산제          -> 빈부격차 ; 농업생산력 증대-> 남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 母系-과도기->父系 / ④ 占卜 짐승 뼈로 점을 침
4) 「夷夏東西說」: 1935년,傅斯年(중앙연구원 역사언어연구소장) 제기 => a)앙소문화(하남성) --계승--> 夏王朝(西 華族)
  <--독자ㆍ병존--> b)용산문화(산동성) --계승--> 商(殷)王朝(東夷族) ; 商왕조의 시조 契의 탄생 -> ‘卵生說話’ 夷族특징

                               제2장 : 중국고대 전설시대와 夏ㆍ殷ㆍ周 고대왕조

   1] 三皇五帝와 夏禹의 治水故事 => 梯子假說(제자가설) => 근현대 상고사에 대한 비판 ; 의고학파 ; 최술, 고힐강
1) 三皇 : 『尙書』-> 燧人(火食), 伏犧(牧畜), 神農(農事) /『史記』-> 天皇, 人皇, 地皇 / <春秋運科構> -> 伏犧,女禍,神農
2) 五帝 : 『史記』卷1, 「五帝本紀」=> ①黃帝, ②顓頊, ③帝嚳, ④堯, ⑤舜  -> 禹 ; 夏王朝 開祖
3) ①燧人 -> 燧石(부싯돌)에서 최초로 불을 만듦 -> 火食이 가능해짐, 金屬器具를 만들어 생활의 도구로 사용  
   ②女媧 -> 蛇身人首로서 中媒人의 수호 女神, 혼인제도를 창시한 高媒의 神, 伏犧와 오누이(부인)관계
   ③伏犧 -> 蛇身人首로서 八卦 창안, 혼인법 제정, 어업과 목축 방법, 調味法 -> 犧牲(짐승) 料理法, 結繩記事 -> 意思傳達
   ④神農 -> 人身牛首로서 인류에게 農事짓는 法을 가르침. 약초->醫藥法, 저자(市場)-> 交易 -> 물물교환
4) 五帝 => 전국시대 말 陰陽五行說에 기초해 구성됨  
  ①黃帝 -> 동서남북의 中央神으로 黃色으로 상징, 中國開國 始祖, 중국문명의 창시자, 최초통일, 文物제도 創案의 최초군주
  ②顓頊 -> 북방의 神, 神과 人間界의 분화가 시작(天梯의 붕괴), 인류의 수난의 시작
  ③帝嚳 -> 중국고대 帝王의 시조를 등장시킨 神, : ex) 契 -> 商民族의 始祖 / 后稷 -> 周民族의 始祖
  ④堯 -禪讓->⑤舜 : 理想的인 太平時代로서 帝位계승의 典範  * 왕조교체(易姓革命->天命說): ⓐ禪讓->有德者 / ⓑ放伐->武力  
  => * 舜 임금의 孝行故事 -> 繼母의 박해에도 부모에게 순종 효행의 모범 -> 민심수습 -> 제위계승 => 治者의 조건으로서
       개인적인 능력보다는 ‘도덕적인 덕목’을 중시 => 지배자는 문화도덕의 體現者를 의미했다.  
5) 夏王朝의 開祖 -> 禹 임금 : 黃河의 治水故事 => 황하의 범람을 잘 다스린 禹의 灌漑治水 -> 농경에 탁월한 수완

   2] 三皇五帝의 上古史의 실재성과 의미 => ‘梯子假說’ -> 上古로 소급할수록 後代에 累層的으로 造成됨
1) 근대사학의 上古史연구(疑古學派) --비판--> 전통유교의 尙古主義 사관 => 托古改制 ; 帝位계승의 정통성과 정당성의 근거  
   * 疑古學派의 경향 => ①『考信錄』(淸末 崔述) -> 고증학파 ; ②『古史辨』(1920 ~30년대 ; 顧頡剛) -> 古史辨派  
2) 상고주의 사관 : 상고시대를 聖人君主인 삼황오제에 의한 이상적인 통치시대로 규정하고 이를 무조건 崇仰할 것을 강요
  유교의 교조적 지배이념의 上古觀은 도덕정치관에 근거하여 군주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 이용됨--계속--> 淸末
3) 古傳承의 傳說時代 의미 =>역사적 사실여부는 중요치 않음 :인간세계에게 실재로 필요한 문물과 제도를 창시했다는 상징성  
                            : ①불의 사용(伏犧) ② 농경 시작(神農) ③ 혼인제도(女禍) ④ 제위 계승방식(堯舜故事)

     3] 夏王朝의 실재성과 유적발굴
1) 夏王朝의 건국과 禹의 治水故事 --> 중국최초의 국가 출현 의미 / 夏王朝 ;河南 以西夏族 <--> 商王朝 河南,山東 東夷族
2) 夏王朝 기록=>『尙書』『詩經』『史記』: 禹王(1代) ~ 桀王(14대) ( B.C.2050-1550) / 桀(夏末)=紂(商末) 類似架空 가능성
3) 『史記』권1 => 堯 임금의 도읍지-> 山西省 平陽 / 舜의 도읍지 -> 山西省 蒲坂 / 禹의 수도 山西省 安邑 근처
3) 夏王朝에 대한 考古學的 발굴을 통한 실재성 논증 : 1959~1964(9회),1972~1973(3회) 총 12차 발굴 작업
4) 河南省 偃師縣 二里頭 발굴 조사 => B.C.1900~1500년 추정 夏文化의 위치가 어딘가 ? -> 文字가 未發見 -> 실재성에 의문  
5) 商文化의 결정적 단서 -> 甲骨卜辭 <--대비--> 夏文化의 결정적 단서 => 文字, 王宮, 王臺 등 발견이 필수적

    4] 殷왕조의 역사와 문화
1) 중국최초의 역사시대 시작 => 甲骨文字 ; 하남성 안양현 소둔촌 殷墟 -> 8000 餘字 발굴 -> 3000 餘字 해독
   1899年 劉鶚(청대 고문학자)-寄宿-> 王懿榮(대관료)의 瘧疾(말라리아) 특효약 -> ‘龍骨’; 연구 -> 羅振玉, 王國維
2) 卜辭 -> 呪術의 수단 ; 神政政治 ->『尙書』,『禮記』 ; 殷王은 정치+종교의 主宰者 -> 국가의 중요대사(吉凶禍福)을 점침
    貞人 => 하늘에 점을 침 -> 神意 -> 王이 통치에 반영 / 王은 死後에도 조상신의 列位(열성조)에 올라 현세인간을 주재함
    => 天乙(湯王;1代) --> 盤庚(19代) 中興期 --> 辛(紂王;30代 -> 酒池肉林 )
3) 청동기문화 => ‘鼎’ ; 국가통치의 중추의 상징 / 戰時 -> 出兵 ; 步兵+전차부대 ->5천~ 1만5천, 청동기 兵器 사용  
4) 「형제상속」-과도기->「부자상속」(19대 盤庚 )  --> 계급의 발생 => ⓐ지배층 ;王族 -貴族 / ⓑ피지배층 ;서민-노예
5) 邑制國家 (= 都市國家 ) 고대발전 :①氏族社會 -> ②都市國家(殷代후기~春秋)-> ③領土國家(戰國)-> ④統一帝國(秦,漢)

   5] 周(西周 ; 1122년 ~ 770년 ; 鎬京定都 시기 ) 왕조의 역사와 문화
1) 易姓革命 => 天命說 ; 殷ㆍ周 왕조의 교제 -> 德治主義 ; 有德者 <--> 不德者
2) 封建制度 => ⓐ王 --- 分封(봉토) / 공납ㆍ軍役 --- ⓑ諸侯 ---- 采邑 -----ⓒ 家臣 (公ㆍ卿ㆍ大夫 ) -----ⓓ 民(耕作)  
   ; 봉토를 개개로 한 ⓐ王과 ⓑ諸侯사이의 절대 上命下服의 주종관계 / * cf,  Feudalism of the Europe
   ; ⓐ 宗法 => 자손의 분화를 막기 위해 本家와 分家 사이에 맺은 家父長制 씨족공동체의 협약 ; 姓  --分化--> 氏
     ⓑ『周禮』=> 周公旦 制定: 周代관직; 天官(궁중제관), 地官(지방행정,교육), 春官(祭祀), 夏官(軍政),秋官(사법),冬官(製作)
3) 井田制 => 『孟子』「藤文公上」 ; 900畝 -> 9등분 ; ⓐ公田 100畝 --분할--> 公家 / ⓑ私田 800畝 --분할-> 8家(民)
   * 『詩經』 小雅, 北山篇 => 普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 ==> 王土ㆍ王臣 사상 / * 井田制 -> 限田制 -> 均田制

        
                                    제3장. 唐虞ㆍ 夏ㆍ殷ㆍ周 왕조의 주요 인물과 활동

1] 帝堯 => 甲辰年(B.C.2355) 陶(산서성 平遙)와 后(산서성 太原)의 君后인 陶后氏가 帝堯가 되어 平陽(산서성 臨汾) 定都
  1) 萬世聖君 => 仁德卓越, 治世典範, 理想君主 :“ 允恭克讓, 克明俊德 ”『書經』「虞書-堯典」
  2) 曆法 제정 => 日月星辰의 운행관찰 羲氏, 和氏에게 命해 曆象을 맡게 함  ; 1年 -> 12月 ; 日行 -> 366日, 3년 마다 -> 閏年
  3) 黃河治水 => 즉위 61년 황하 대범람 -> 鯀(전욱의 후예, 崇의 君后)에 命하여 치수토록 함(未完) -> 舜 宰相 임명 치수완성
     3년 후인 즉위 72년 만에 舜에게 讓位 -> 禪讓 : * 평화적 정권 교체의 모범
  4) 禪讓의 先例 => 아들 丹朱(방탕생활)에게 경고 -> 바둑을 가리킴 (서진 박물지) ; 天下爲公, 大同(『禮記)  
  5)  箕山之節(志) => 許由의 왕위 거절 -> 箕山 隱居, 九州之長 거부 -> 潁水 洗耳 -> 巢父之牛

2] 帝舜 => 『書經』「虞書-舜典」: 虞(산서성 蒲州)人, 별칭 -> 有虞氏,
  1) 효행의 으뜸 => 孝子로서‘二十四孝’중 第一人; 幼年 -> 早失母, 家難, 繼母의 학대를 견디며 농사와 어업 종사하며 가족을       지극 정성으로 봉양 -> 德이 사방에 알려짐
  2) 순의 德行 => 歷山 耕作 -> 이웃이 밭두렁을 양보, 雷澤에서 낚시 -> 자리를 양보, 舜이 사는 곳 마다 사람이 모여 들어 2년       만에 고을이 되고 3년을 지나면 다시 도읍으로 발전함  
  3) 순의 出仕 => 명성이 높아지자 君后의 추천이 이어져 요임금 즉위 70년에 딸과 혼인주선, 72년에 순에게 國事를 섭정토록 함
  4) 攝政 치적 => 순의 치세 시작; ①四嶽巡行 : 동->泰山, 서->華山, 남->衡山, 북->恒山 ②君后의 參朝修禮 제도화 ③역법수정,       도량형의 표준화, ④五刑의 제도화 ; 墨, 劓, 剕, 宮, 大辟 ⑤군후 치적에 상벌 평가 ⑥政令 -> 태평성세 謳歌
  5) 禪讓登極 => 요임금 아들 丹朱 -> 不肖 ; 제위계승 불가 ; 순이 군후의 輿望에 따라 元后로 즉위, 蒲阪(山西 水濟縣) 定都  
  6) 중앙집권제 실시 => 帝權 伸張, 관제 개혁, 인재등용 -> 適材適所, 州->牧 행정제도, 군후의 參覲, 3년마다 지방 巡行, 9년        마다 黜陟 : 功績에 따라 관직의 승진과 강등을 추진  

3] 禹王 =>  『書經』「虞書-大禹謨」; 『史記』「夏本紀」; 총명, 근면, 신용, 인자, 사리판단 적중, 백관의 모범
  1) 治水 功積 => 황하의 범람을 막고 九州 치세의 공로자. 司空 -> 百揆(宰相) -> 攝政 -> 君后의 신망 -> 元后 B.C. 2205年  
  2) 國號와 王號 시작 => 元后 禹 -> 夏后氏로 지칭, 安邑(山西省 夏州) ; 國號 -> 夏  -> 중국 왕조의 시초 ;
     王號 사용 =>‘帝’를 폐기하고 ‘王’으로 지칭, 이후 夏ㆍ殷ㆍ周 三代의 元后는 모두 ‘王’으로 지칭  -> 萬民의 至尊
  3) 貢法, 學制 => ① 貢法(租稅法) -> 家戶當 -> 50畝의 田地 -> 1할을 貢租 ② 車制 -> 관직의 직위에 따른 수례의 통제
     ③ 學制 => 東序 -> 대학 ; 小序 -> 小學 ; 校 -> 鄕學 -> 人才 養成과 登用
  4) 仁政과 왕위 세습 => 스스로 근검절약, 겸양 -> 백성과 동고동락 -. 태평성세 ; 罪人을 慰勞 -> 唐虞시대 예찬
     禹는 선례에 따라 益을 宰相으로 삼고 선양하려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隱遁함. 재위 27년에 死去 -> 아들 啓(총명)가 왕위를       계승 -> 왕의 세습제도 성립 -> ‘ 家天下 ’

4] 桀王(癸王)와 末喜 : 夏 왕조의 17대 임금, 暴君 => 夏의 멸망, 무력통치 의지 , 苛斂誅求, 有施氏 정벌 -> 貢女 妺嬉 얻음
   妺嬉의 만행 => 비단(絹) 쌓아놓고 찢기 -> 즐거움, 酒池肉林 -> 욕망에 탐닉, 殺戮(炮烙) 恣行 -> 湯에게 추방당함  

5] 湯王 -> 殷왕조의 창건자 --정복 타도(放伐)--> 하왕조 의 말왕 桀왕(癸)
1) 舜 임금의 5 重臣(중신 가운데 한 사람인 司徒 契(설)의  후예,  毫(하남성 歸德)이라는 작은 지방의 君后(족장) 출신
2) 仁政(어진 정치)를 베품 => 尹夷라는 名士를 초빙하여 善政을 베풀고 人心을 얻음
3) 7년 간의 큰 가뭄(大旱) => 田畓이 메말라, 백성이 飢餓의 참상을 보임 -> 祈雨祭도 아무 소용이 없음
    湯이 몸소 人身供養을 자청함. 스스로 沐浴齊戒하고  白木수례에 白馬를 끌고 山林 속으로 들어가 친히 하늘에 빔
    => 6가지 失政을 반성 : 정치의 절도, 백성의 고생, 궁궐의 호사, 처첩의 많음, 賄賂(뇌물), 讒言(참언) 등  
    이 6가지 邪惡중 단 한가지라고 있으면, 災禍를 내리도록 요청 -> 至誠感天 -> 하늘이 비를 내림 -> 萬物이 蘇生
4) 殷(商) 왕조 건국 => 尹伊(名士)의 獻策(헌책) + 君后의 推仰 --> 元后가 됨 --> 成湯으로 지칭, 국호 -> 商
5) 成湯의 善政 => 商王 成湯은 天子가돠어서도 功臣 尹伊의 上奏를 받아 民治(민치)에 전력함 -> 君后와 萬民이 悅服함
6) 날마다 스스로를 경계함 => “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 (참으로 날로 새로워지려면, 나날이 새롭게 함으로써 또한 날로
   새로워 질 것이다) 이 문구를 세숫대야 새김 => 湯王은 천하의 聖君이 됨,‘ 愼其獨’(中庸); “ 內明者敬, 外斷者義 ”(曺植)

6] 辛王 (紂王) => 은왕조 28대 末王으로서 폭군으로 불림 -> 폭군의 대명사 =>  桀紂暴政 ; 苛斂誅求 ; 酒池肉林
1) 집정 초기 => 평안한 민정을 폄 => 재치와 용력이 뛰어남, 名君으로 성장 가능성이 보임
2) 즉위 8년째, 有蘇氏(유소씨)를 정벌하고 ‘妲己’(유소씨는 부인을 朝貢)를 애첩으로 삼음
3) 달기의 횡포가 날로 심화 됨 => 잔인한 형벌(炮烙)을 즐김 ;거열형 / * 夏-> 桀王-妺喜 / 殷->紂王-妲己 / 西周->幽王-褒姒
4) 酒池肉林 => 궁정의 지나친 호사와 음락행위 자행 => 백성에 대한 苛斂誅求의 重課稅 -> 백성의 怨聲이 극에 달함
5) 庶兄 微者의 수 차례의 諫言 => 紂는 이를 듣지 않음 => 君后, 微者가 떠남
6) 叔父 比干 --> 사흘 간 곁에서 紂王을 타이름 -> 이에 紂王은 比干의 염통을 도려냄 -> ‘聖人 염통 7개 구멍’
7) 紂王은 결국 西伯 昌의 아들 發이 君后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牧野에서 맞아 싸웠으나 패하고 焚身 => 은왕조 멸망 BC 1122년  

  * 주왕실의 계보 : 古公亶父 -> 季歷 -> 西伯 昌(文王) -> 1) 武王 癸 -> 2) 成王 誦 -> 3) 康王 釗 -> 4) 昭王 暇
                     (太公)                               ① 周公 旦 -封-> 魯
                                                          ② 召公 奭 -封-> 晉  
                                                          ③ 叔辰 鐸 -封-> 曹  
                                                          ④ 康叔    -封-> 衛

7] 周文王(주문왕) => 주왕조의 통일국가 건설의 기초를 닦고, 모든 예법의 기초를 세움                                
1) 周后(주후) 昌 => 古公亶父의 손자. 殷을 정벌키 위한 사전 정보 수집 차 은의 국경 내 잠입했다 紂王에 잡혀 羑里감옥에          투옥(周易을 저술)되어 7년 간 유폐(幽閉)됨. 구출 => 西方君后의 반대 + 太師 呂尙(姜太公)의 계략 -> 妲己에게 賄賂
2) 문왕 --정벌--> 崇(은의 요충지) ; 백성을 위로하며 仁政(德行)을 베풀고, 人才의 등용,-> 周의 영토는 40여 제후국 확대
3) 정책 => 은왕조에 복종하며, 민심수습에 주력하며, 放伐(무력정벌)을 통한 제위 찬탈을 거부함 -> 겸양온순한 성품
4) 주왕조의 통일국가 성립의 기초를 닦음

8] 周武王(주무왕) => 周의 통일정복국가를 성립시킴
1) 紂王 20년 昌이 죽고 그의 아들 發이 周를 계승해 西伯이 됨 --> 呂尙(姜太公)을 太師로 國事를 처리케 함 => 부국강변
2) 武王(發)--방벌(정벌)타도--> 殷 紂王의 暴政(주지육림)+比干(숙부)시해 <== 發의 擧兵에 君后(800)의 합세; 軍勢 50만
3) 周軍 연합세력(呂尙이 총사령) <--牧野(河南省 淇州)전투--> 紂王 군대 80만 大軍 / 은의 백성이 周軍을 적극 환영, 위로
    戰勢가 기울자 패배를 자인인 紂王은 鹿臺)에 올라 寶玉과 龍袍를 두른 체 불을 지르고 焚身
4) 發은 紂가 죽자, 周武王이라 칭하고 도읍을 천도 ---> 鎬京(陝西省 西安) ; 종족 공신들에게 論功行賞을 통해 각지에
    分封 함 => 주의 봉건제도가 시행됨 ; ⓐ太師 呂尙 -封-> 齊(山東 靑州) / ⓑ王弟 周公 旦 -封->魯(山東 曲埠)
    ⓒ 召公 奭 -封-> 晉 (山西 太原) / 최초의 역성혁명으로서 왕조교체에 성공함

9] ‘共和’의 유래 => 周代 10대 厲王 실정 ; 鎬京 國人의 반란 -> 국외 축출, 제후의 공동(소공,주공) 국정 관리

10] 周代 12대 幽王의 실정과 西周 멸망 -> 애첩 褒姒의 폭정 -> 犬戎의 침입 -> 호경 -천도-> 낙양 ; 13대 平王 ; 東周시대    

11] 呂尙 (姜太公) => 周의 文ㆍ武王을 도와 주왕조 성립에 결정적 기여를 함
1) 渭水의 釣翁 => 은의 紂王 시기 虐政을 피해 渭水 북쪽에 곧은 낚시를 드리우며 세월을 낚고 있었다. -> 周文王이 국정에          대한 조언을 부탁 -> 문왕의 인재 발굴 + 노인우대 정책 => 國事 자문의 太師가 됨 -> 呂尙에게 太公望의 칭호를 하사함  
2) ‘覆水는 盆에 돌아 올 수 없다’(엎질러진 물) => 생황궁핍 -> 前妻 馬氏 떠났다가 되돌아 옴 -> 呂尙이 되받아 주지 않음
3) 주문왕의 정복정책을 도움, 羑里탈출을 도움 => '妲己賄賂'의 計略 故事
4) ‘師尙父’ -> 문왕의 아들 武王이 여상을 아버지처럼 섬김 ; 呂尙 --封--> 齊(臨淄에 定都)의 제후 => ‘齊東野人’

12] 伯夷와 叔齊 => 殷왕조에 絶義를 지킨 숭고한(고결한) 충신 => 首陽山의 고사리만 캐먹다 餓死 =>『史記』「列傳」1편
1) 西遼 令支縣 孤竹君의 子. 兄弟親愛-> 家道양보. 武王의 殷 出征 時 몸소 나아가 말고삐를 잡으며 정벌을 극구 만류.
2) ⓐ呂尙 : 主戰論 <--> ⓑ伯夷 : 自重論 => 出仕進退의 모범을 보임 / 言責-> 자신의 진언의 오류를 인정하고 首陽山에 은둔

13] 周公ㆍ召公 => 武王의 동생들로서 조카인 어린 成王을 잘 보필함  
1) 周武王(父)--제위계승--> 成王 13세 幼年 나이에 즉위, 周公 旦 -> 太宰로서 政事를 돌봄 + 召公 奭 -> 太保로서 幼王을  
   保育함. 太宰 周公은 亂賊을 토벌하고 平定하였으며. 禮樂을 정비하고 周易을 대성시킴. => 周왕조 800년의 國基를 다짐
2) 天下分治 => ⓐ西 ; 召公이 통치 <--구분 陝(하남성 陝州) 기준 분할 통치 --> ⓑ 東 ; 召公이 통치 ;
3) 周公의 勤勉 => 주공의 아들 伯禽 ---책봉--> 魯의 諸侯 => 政務訓戒;“목욕, 식사 중 3번이나 머리를 매고, 밥을 토함”
    => 천하의 人才, 賢者를 잃을까 “ 자신을 되돌아보고, 항상 겸손하라 ” -> “ 결코 나태하거나 교만하지 마라 “
4) 周公은 孔子의 理想的 인물 => 古來 七聖 중 1인,‘공자의 現夢’ -> 자신의 志氣衰弱을 경계. 成王 長成 -> ‘野人’떠남
5) 成康의 治 => 성왕 제위 37년 붕어, 아들 康王이 즉위 => 召公이 康王을 잘 보필 / 召公 --책봉--> 召(섬서 岐山 서남)諸侯
6) 召公의 明政 => 정무에 충실 -> 地方鄕邑 순행 -> 백성의 訟事 처리 => 公平판결 -> 名判官 칭송-> " 甘棠樹, 甘棠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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