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인문학 강좌 <중국고대 문명과 역사> 2강 춘추전국 시대와 제자백가 - 2013.11.14
둘째 강좌 중국 고대 문명과 역사 강사 : 허 증 (영남대 교수)
제2강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제1장 춘추전국 시대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 변화
* 하(夏)--> 은(殷)--> 서주(西周; B.C.1122 ~770)--> 동주(東周 ;B.C.770 ~ 221) => 춘추시대(770~403)+전국시대(403~221)
1] 정치적 변화
1) 주(서주)의 봉건제도의 붕괴에 따른 주왕실의 통제력의 상실 => 읍제국가(도시ㆍ성읍)---변화--> 영토국가(독립국가)
배경 : ① 제후 상호간의 군사적 충돌, ② 중원 제국(諸國)에 대한 이민족의 침입과 위협 가중
2) 주왕실의 통제력약화에 따른 정치적 구심력의 부재 --> 정치적 구조의 개편 단행 -> 대제후국 중심의 세력의 계열화
ⓐ 춘추오패 ( 春秋五覇 ; B.C.770 ~ 403) => ①齊-> 桓公 ②晉-> 文公 ③楚-> 莊王 ④吳->闔閭 ⑤越-> 句踐
ⓑ 전국칠웅 ( 戰國七雄 ; B.C.403 ~ 221) => 연(燕)ㆍ조(趙)ㆍ진(秦)ㆍ위(魏)ㆍ제(齊)ㆍ한(韓)ㆍ초(楚)
3) 시대적 성격 => 패자(覇者)의 ‘힘’에 의한 패권쟁탈시대
ⓐ 명분(名分) => ㉠존왕양이(尊王攘夷) -> ; ㉡계절존망(繼絶存亡) ->
ⓑ 실질(實質) => ㉠약육강식(弱肉强食) -> ; ㉡부국강병(富國强兵) ->
4) 이러한 정치적 변화는 정치조직과 지배원리의 근본적 변혁을 수반함
=> ⓐ봉건제도 (종법ㆍ예법; 지방분권적) ----변화---> ⓑ군현제도(관료제적 중앙집권화)
=> 제후들간의 정치적 대립 --> 군주(제후)의 공권력 독점에 의한 효율적 지배 필요 -> 채읍이 국도(國都)에 필적하는 발전
2] 경제적 변화
1) 철기문화의 보급 ; B.C 7C ~ 6C ; 서주(청동기) --> 춘추전국(철기), 철제농기구의 보급-> 심경가능-> 황무지 개간
2) 우경(牛耕)의 시작 ; B.C. 6C ; 심경(深耕) -> 생산력의 증대
3) 토목기술의 발달 -> 관개치수에 의한 황무지 개간 -> 농경지 확대
4) 1), 2), 3) 에 따른 농업생산력의 비약적인 증대 --> 수공업발달의 촉진 --> 관영수공업 발달 ; 광산->금속공업 발전
마, 견직 -> 염색공업 ; 건축 -> 토목, 목공, ; 칠기 ; 도기 ; 제염업
5) 4)에 따른 상업의 발달 -> 유통구조의 활발 -> 화폐경제의 발달 => 명도전, 포전, 의비전
6) 경제력 성장에 따른 납세의 세수 증가 -> 왕실재정의 주요항목 -> 상비군과 관료군 유지 -> 각기 제후국가의 발전
=> 대상인의 발달 --> 사유재산제의 발전 --> 士人層의 등장 * cf 여불위(呂不韋) -> 진(秦)제국의 재상(宰相)
3] 사회적 변화
1) 부국강병(영토확장)에 따른 일반‘民’의 역할 증대 --> 신분상승 -> ‘사인층’(士人層) 등장
2) 혈연적ㆍ종족적 신분제(종족ㆍ씨족 집단)--전환-->「家」의 개인 중심의 능력본위제 :
「국왕-제후-가신-민」 ==> 「國--직접지배-->民」
3) 전술의 변화 : 전차전(戰車戰) --전환--> 보병전 ==> 국기기여도 증대 ==> 서인층의 신분상승 계기 --> 「士」계급등장
---> 「士人 시대」등장 => 정치ㆍ사회ㆍ문화의 주역으로 성장
4) 대토지소유제의 발달 --> 토지겸병 --> 토지사유제 발전을 기반으로 한 가부장제 사회의 계층분화
==> * 전국시대 4군자 : ①孟嘗君(맹상군), ②平原君(평원군), ③信陵君(신능군), ④春伸君(춘신군)
4] 제자백가(諸子百家)
1) 배경 : ① 士人層의 등장 : 변혁과 혼란의 시대 --극복--> 새로운 ‘治國濟民’의 방법이 요청됨 --> 지식과 학문을 갖춘
일군의 지식인들 ==> ‘士人’계급 등장 : 학식과 능력에 의한 신분상승의 모색 ( 종래는 소수귀족이 학식을 독점함)
②‘유사(遊士)사회’등장과 學團의 형성 => 일군의 士人層이 학문적 스승을 중심으로 학파를 형성 => ‘客卿’
2) 성격 : ①개인본위의 실력주의로서 왕성한 문화 창조의 의지로 연결 ②인간문명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고, 주술과 마력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초월적 의지에 대한 단호한 부정 ③스스로 인간 문명에 대한 주체로서 ‘인간의 발견’과 ‘인간
본위‘의 무신론적 태도를 견지함. ④사물에 대한 법칙과 성질에 대한 합리적 추구 ⑤인간ㆍ사회에 대한 본질적 이해
===> 현실세계의 약동하는 인간정신의 합리성의 표현 ===> 찬란한 문화의 불꽃을 피움 => ‘사상’과 ‘철학’을 추구
3) 諸子學派 => ① 儒家-> 仁義正名 ② 道家 -> 無爲自然, ③ 法家 -> 刑名參同, ④ 墨家->三表倫理 ⑤ 名家-> 名實相符 ⑥ 陰陽家-> 氣數論理 ⑦ 策略家 -> 合縱(蘇秦-對秦同盟)連橫(張儀-六國從秦) ⑧ 兵家-三十六計 ⑨ 楊家->自愛
ⓐ 儒家 => 孔子(B.C.551~479); 仁ㆍ禮 -> 從周(仁義)正名, 克己復禮, -> 신분적 위계질서의 추구 -> 봉건제도 / 孟子ㆍ荀子
ⓑ 道家 => 老子ㆍ莊子 ;우주만물의 생성근원과 生滅變化의 운동법칙 탐구와 역설의 논리를 탐구 => 齊物在宥, 小國寡民
ⓒ 法家 => 術+勢+法(商鞅)--계승ㆍ체계화->韓非子(이론)ㆍ李斯(실천)=>①舊貴族一掃 ②관료통제 ③濟民支配 ④君主權 절대화
ⓓ 墨家 => 墨翟--비판-->儒敎의 형식주의와 불평등사회 /①尙賢 ②尙同 ③節用; ④兼愛 ⑤交利 ⑥非攻; ⑦節葬 ⑧非樂⑨天志
제2장 제자백가의 주요 인물과 사상
1 孔子의 생애와 儒敎의 創始
1) 孔子(B.C.551-479)의 생애 => 宋의 몰락후예, 魯, 鄒邑(曲埠),尼丘山 -> 仲尼 ; 孔丘 ; 叔梁紇(父)---顔氏(母) 野合而生
生而知之子, 吾小也賤, 六藝에 達通 => 禮(예의)ㆍ樂(음악)ㆍ射(활쏘기)ㆍ御(수레 끌기)ㆍ書(글 쓰기)ㆍ數(수학)
『論語』=> 而志, 而立, 不惑, 知天命, 耳順, 不踰巨, ; 인과 예의 실천을 위해 天下周遊 58세 ~ 72세 ;
溫故知新, 克己復禮 弟子 => 3천->72人->孔子十哲
2) 孔子사상의 핵심과 계승
A)修己之學; 道德的 內在律 ; 仁 -> 주관파;德의 중시(自律的) =>曾子->子思->孟子「性善說」=>행동의 주관적 動機
①族的結合의 君臣관계->세습적 특권,先王之法, ②王道(仁政=公理)>覇道(强權),③孝강조, ④天->선천적 도덕성 긍정
B)治人之學 ; 道德的 外在律 ; 禮 ->객관파; 형벌,法, 국가통제력 중시 => 子游->子夏 => 荀子의 性惡說=>객관적 사회규범 중시
①尊賢使能(능력,후왕) ②王道(이상)<覇道(현실) ③忠-> 次善策 ④天의 권위 배제-> 질서ㆍ강제규범
3)孔子 없이는 중국문화가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 ⓐ‘文盲’(武力/强制) --전환(by 孔子)--> ⓑ‘文明’(仁ㆍ禮)
4) 述而不作 => 孔子는 述而不作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중국문화를 전승했지만 창작하지는 않았다는 뜻으로
공자가 전해오는 중국문화를 총체적으로 정리했음을 알 수 있다. => 五經 : 詩經ㆍ書經ㆍ易經ㆍ禮記ㆍ春秋
5) 孔子의 全人敎育 => 六藝 => ①禮ㆍ②樂ㆍ③射ㆍ④御ㆍ⑤書ㆍ⑥數(『周禮』,「大司徒」) ;
공자 시기 6가지 필수 과목 => 詩ㆍ書ㆍ易ㆍ禮ㆍ春秋ㆍ樂 (『史記』,「孔子世家」)
6) 공자의 復古改制 => 공자는 고대(周) 봉건사회를 이상적인 제도로 보고 현 제도를 개선하려했다 => 從周正名 -> 개혁가
7) 仁의 정치실현 => “ 그것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 ” 당위의 도덕을 설파 -> 사회적 책임감
=> “ 回也 其心 三月 不違仁 ” ; “ 克己復禮爲仁 ” ; “ 己所不欲 勿施於人 ”
8) 文質彬彬 => 文(禮)과 質(마음씨=仁)은 서로 같아야한다
2. 孟子 (B.C 371 - 288) => 儒家 학파의 亞聖
1] 출생 => 名은 가(軻), 字는 子輿(자여) 혹은 子車. 魯나라와 가까운 騶(추-산동성 哀州府 鄒縣)에서 출생 莊子와 동시대인
2] 교육 => 孟母三遷之敎와 斷機 => 3세 父와 死別, 賢母 仇氏에게서 孟母三遷之敎(교육환경)의 가르침 받고, 공자문하의 제자인 子思의 문인이 되어 학문을 배웠다. 그 후 귀향하여 ‘孟母斷機’의 격려를 받고 刻苦의 노력 끝에 大賢이 되었다.
3] 周遊天下 => 학업을 성취한 후, 주유천하의 길에 올라 37세에 -> 魏나라; 惠王은 그를 등용치 않음. 齊나라 -> 그를 客卿으로 우대하였으나 그의 理想을 안 받아들임, 宋 -> 魯 -> 薛 등의 나라를 전전함 -> 王道사상을 설파했으나, 동의를 얻지 못함.
마침 藤나라 文公은 비록 小國의 군주였으나 맹자의 왕도를 실천해보려고 했으나 일찍 죽어 그 뜻을 펴보지 못했다. 결국 맹자는 자신의 높은 이상과 포부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57세) 詩ㆍ書ㆍ儒學을 강론하면서 門人제자들과 더불어 『孟子』7篇을 저술하였다. 『맹자』는 『논어』와 비슷한 저술로서 자신의 實行錄이라기 보다 질의응답을 통한 論難攻擊 형식의 주로 맹자의 말씀을 기록한 어록집이다.
4] 性善說 => 인간의 性情에 대한 맹자의 주요한 학설로서 荀子의 性惡說과 대비가 된다. => 인간의 선천적 도덕성을 긍정함 =>
유학의 정통론이 됨 성선설의 예로서 => 우물가로 기어가는 아기를 보면 누구나 測隱之心이 생긴다. 寡慾과 夜(晨)氣의 보존 5] 四端說 => 良心의 固守 天性 => 良知’ㆍ‘良能‘=> 良心 --발현--> 四端 : 惻隱ㆍ羞惡ㆍ辭讓ㆍ是非 之心의 확충 --완결-->
四德 : 仁ㆍ義ㆍ禮ㆍ智
6] 修養法 => 인간의 천성은 원래 善한데 세상에 惡이 발호하는 까닭은 본성이 욕심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본성을 善으로 되돌리려면 수양과 교양을 쌓아야 한다. 孟子는 “ 마음을 기르는 것(修養)은 寡慾 보다 적극적인 善을 행함을 말한다. ”하고 했으며, 또한 “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放心을 구하는 데 있다. ”고 했다.
7] 浩然之氣 => 본연의 善을 널리 빛나게 하는 것으로 修養法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특히 養氣를 강조했다. 養氣란 至大至剛直을 기르는 것으로서 스스로 이러한 본래의 氣를 널리 펴는 것을 浩然之氣라고 말한다. ==계승==> 主氣論, 陽明學
ⓐ志 -> 윤리적 의지(정신)<--관계--> ⓑ氣 -> 자연적 정기(육체) --> 助長排除, 스스로 널리(浩然) 氣를 확충 =>浩然之氣
8] 仁義之說 => 도덕의 근본으로서 공자는 仁을 설파한데 비해 맹자는 仁義를 역설했다. 墨子의 兼愛, 楊子의 自愛는 모두 仁을 바탕에 두고 있다. 맹자는 儒의 면목을 세우기 위해 仁만가지고 부족하며 法家의 說을 더하여 仁義를 주장하게 됨. 그는
“ 仁은 人心이고, 義는 사람의 길이라, 모두가 참기 어려운 바를 참아내는 것이 仁이며, 누구나 행하지 못하는 바를 몸소 행하는 바가 곧 義이다. 仁에 살고 義에 죽느니라 ” 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 王(양혜왕)이시여 어찌 利만을 말하시는가 仁義가 있지 않은가 ? ” 라고 설파하면서 仁(소극적 도덕)과 義(적극적 도덕)를 합쳐 表裏一體의 관계로 파악하였다.
9] 王道論 =>“ 힘으로써 仁을 꾸미는(假裝) 자는 覇者이고, 德으로서 仁을 행하는 자는 王者이다 ”라고 함으로서 정치에 있어 王道와 覇道를 구별하였다. => 德治主義 ; 齊의 桓公이나 晉의 文公의 霸業을 邪道이며 愚策이라고 힐난하며 비난하였다.
10] 恒産과 恒心 => “곡간이 차야 인심을 안다 ” => 물질적 기초가 없이는 이상적 도덕국가도 세울 수 없다는 뜻이다
11] 민본주의의 역성혁명론 => 동양적 민주주의 이론이다. 民意를 天意와 등치시키고 있다. 君臣관계에서도 임금이 백성을 犬馬 로 보면 백성은 임금을 國人(거리의 사람)으로 보고, 土芥같이 여기다면 寇讐(구수)로 간주할 것이다. “ 백성을 가장 중히여기고, 社稷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맨 나중이다 ” 王道를 숭상하고 覇道를 증오하며 임금의 德의 有無에 따른 역성혁명론을 주장하여 후에 명말청초의 대유학자인 황종희에게 계승되어 『明夷待方錄』을 저술토록 함으로써 君權견제론으로 까지 발전한다.
3. 荀子 (B.C. 320 -221) => 儒家의 좌파로 평가 됨
1] 출생과 교육 => 名은 況, 字는 荀卿, 孫卿. 趙나라 출신, 맹자보다 50년후에 출생, 頭腦明晳, 사물에 銳敏. 儒學의 子夏派 학통을 이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子夏ㆍ子張ㆍ子游의 末流에 敵意를 표시. 曾子를 孝ㆍ禮義로서 칭찬했으나. 子思ㆍ孟子를 공자의 眞義를 왜곡했다고 비난하였다. 孔子(와 직결)ㆍ子弓만을 존숭. 百家 학문에 造詣가 깊었다. 순수한 학자적 인품소유
2] 경력 => 50세 -> 齊나라 襄王 시기 老師가 됨. 3차례 祭酒(최고학부 주재자)로 중용, 被참소 -> 昭襄王을 위해 儒道를 강론
趙나라로 귀향 孝成王을 위해 王者와 兵論을 進講 -> 不가납 ; -> 楚나라 申春君밑에서 蘭陵(산동성 택현) -> 趙 ;上卿 ->秦 -> 楚 ; 老衰하여 저작에 전염 ; 수 백편, 漢代 荀子 저술은 322편에 달함 -> 劉向의 정리(32편) -> 唐 楊倞 29편으로 축소
3] 맹자와 비교 => 순자 -> 연구에 치밀, 이론에 투철, 文辭에 해박한 一代 걸출한 인물로 평가됨. 일반적으로 荀子는 맹자
보다 학식은 깊었으나, 재능이 다소 부족했고, 맹자는 才氣는 있었으나 학식은 다소 떨어졌다. 儒家에서는 荀子가 학문의 깊이와 넓이를 더했으나, 性惡說 주장은 정통을 벗어난 일로서 “大醇小庇하다”(韓愈)고 평함. 그의 門下 -> 韓非子ㆍ李斯
4] 天論 => 당시로는 파격적 세계관. 昊天上帝, 天道, 天命은 본디 不在한고 보고, 있는 것은 다만 ‘自然’뿐이라고 봄.
祈雨祭를 지내면 비가 오는 까닭은, “ 기우제가 없이도 비가 온다 ” 고 말하며, “天行은 언제나 한결같으며, 堯를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桀 때문에 망할 수도 없다. 吉凶禍福의 원인은 추호도 없다. 자연을 정복 이용해한다 ”
=> ‘자연법칙’의 존중 => 과학적 사고
5] 性惡說 => “ 사람의 性은 악(욕망)하다. 그것이 善하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 “ 인간의 性은 본래 惡한 것인데 이에
인위적인 수식, 즉 ‘僞’를 더함으로써 善이 된다 ”고 주장하면서 ‘積僞’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6] 積僞論 => 순자의 積僞論은 하나의 수양법으로서 원래 惡한 사람의 性이라도 師法과 禮儀로써 僞를 쌓아 고치고 바로 잡아가면 聖賢의 영역에 도달하게 되어 천하도 태평스럽게 된다고 보았다.
7] 禮論 => 인위적인 유물주의 경향. 禮는 人道의 極으로서 정치적, 사회적, 논리적, 철학적으로 모든 의의를 포함.“ 禮는 法 의 근본이며 群類의 紀網이니 사람들은 이를 배워야 한다 ” 인간의 性情은 무분별하게 제멋대로 欲을 추구함 -> 그 대상인 物은 한정되어 있어, 欲과 物 사이에 다툼이 일어남 ---대안--> 禮義의 확립 ‘ 2가지 방법 => ⓐ 생산기술의 발달을 통한 物의
충분한 확보 ; ⓑ 貴賤ㆍ長幼ㆍ貧富ㆍ輕重에 따른 차별적 질서 확립. 禮 ; 性<=통일=>爲, 우주ㆍ자연의 道에 대응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요체는 禮에 있다고 봄 => 禮만능주의를 설파함
8] 인식론적 논리체계 => 그의 학문의 논리적 立論은 인식론을 기초로 다방면에 걸쳐 논의됨 => 심리학,논리학,윤리학,철학,
국가사회학. 사람의 인식과정 => 대상에 대한 知覺 -> 天官(五官) -> 마음(心) ; 知ㆍ情ㆍ意 3작용 분류하고 논리적 타당성 을 구명함. 우주 궁극원리를 파악하고자 함. 사회성립의 원인을 인류의 群居性, 性惡의 본질, 협동의 필요성과 분업 및
계급의 필연성을 역설했다.
9] 政論 => 국가의 성립의 요소 => 土地ㆍ人民ㆍ法制ㆍ主權者, 그 요소로서 天命을 부정함. 政體의 분류 => ⓐ王政 -> 禮治
ⓑ覇政 -> 信義 ⓒ亡政 -> 권모술수 : 德治主義를 왕정의 이상적인 정치로 보았다.
10] 학문의 불우한 매물과 함장 => 맹자보다 훨씬 시류를 앞서 간 탁견으로서 그의 합리주의 내지 지성주의 사상은 2천여 년
동안 非정통으로 간주되어 신비로운 베일에 가려 있었다. 특히 당대에 용납되지 않았던 파격적인 性惡論은 儒家 뿐만
아니라 일잔 학파로부터도 배척을 받고 경원시 되었다. 근대서구의 정치론과 관련해 재조명의 필요성이 있다.
4. 墨子 (추정;479-381)
1] 출생 => 출몰 연대가 불분명함. 名은 翟, 宋 혹은 魯나라 출신. * 墨守故事 => 宋大夫, 公輸盤, 楚王, 雲梯械 -> 非攻
2] 사회개혁 => 공자는 주나라 초기 전통적 제도ㆍ예악과 문물을 동경하여 합리화함. 이에 묵자는 회의를 품고 비판함.
부패한 귀족정치와 사회제도를 신랄히 비판. 또한 당시 패권쟁탈을 위한 攻伐兵亂에 대해서도 비판함.
3] 兼愛와 실천 => 別愛(利己)를 배척하고 兼愛(無差別愛)를 제창. 交利(相互愛)를 역설. 非戰論者로서 非攻(反戰)을 주장함.
4] 政論 => 정치에서 天子國君에게 情實을 폐지케 하고 賢臣重用(尙賢)을 통해 재능을 발휘토록 함. 和衷協同 -> 擧國一致
信賞必罰을 통해 官僚獨善을 배격함
5] 實利主義 추구 => 유가의 厚葬의 사치와 禮樂의 無用을 주장함 -> 非생산성을 비판. 節用(節約)ㆍ儉素, -추구-> 산업진흥
6] 天의 理論 => 天을 전지전능, 正義公平한 최고의 主宰者로 간주. “ 天은 正義를 바라고 不義를 미워한다”--공박-->
숙명론. 당시 시류에 잘 맞아 당시 이를 따르는 백성들이 많았다 고 알려짐 -> ‘孔墨之徒’
5. 法家思想의 성립과 발전
1) 법가사상은 전국중기에 실제 정치의 경험을 토대로 형성, a)申不害의 '術', b)愼到의 '勢' 그리고 c)商鞅 '法'을 종합한
것으로서 戰國末 韓非子에 의해 이론적인 완성을 보았다.
2) 법가의 최종 목표는 舊귀족세력의 일소, 엄격한 관료제, 철저한 齊民지배, 군주권의 절대화를 통한 강력한 집권국가의
확립이었고, 인간성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이 그 이론의 출발, 즉 이들은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도덕적 자기
규율의 가능성을 기대하지 않고, 권위와 형벌에 의한 복종과 강제가 사회질서의 기초라고 생각하였다.
3) 法治의 한계: 법에 대한 찬반의 의사 표시 금지, 법을 유일한 善으로 준수, 법과 상충되는 일체의 사회 도덕은 용납하지 않음, 즉 이것은 군주의 획일적인 지배의 강요이고 이것을 관철시키지 위해 愚民政策과 思想統一이 주장,
秦始皇과 李斯에 의해 효율성이 입증.
4) 韓非子: 법이란 군주에 의해 제정되고 관청을 통하여 널리 반포되는 성문법이고 신하가 규범으로 해야하는 것이고,
이를 반대하는 자는 반드시 벌을 주고 그것을 추진하는 자는 상을 내린다 => 信賞必罰, ‘心之的中’
6. 道家사상
※ 공자와 동시대의 사람이라는 老子에 의해 창시되어 戰國末 莊子(기원전 369년-286년)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 본다.
1] 老子 : 名은 李耳, 字는 聃, 伯陽, 生沒年代 未詳, 楚의 古邑(河南省 歸德府 鹿邑縣)人, 공자보다 年長, 周의 守藏 職
1) 공자가 노자에게 예를 물으니, 노자 왈, “ 子의 驕氣와 多欲, 熊色과 陰志를 버려라. 할 말은 그 뿐이다 ”
공자 왈, “ 오늘에야 비로소 한 마리 큰 龍을 보았노라 ” => 노자사상 : 不羈奔放 天馬飛上, 志之難解
2) 언어의 한계와 보편 문제 => 『老子』「第一章」 ; “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
3) 無爲自然 => 인간의 일체의 욕망을 버리고 無爲의 원리를 체득하고 실천함으로써, 本性의 自然을 보존하고, 그 존재의 근원인 '道'와 合一할 수 있다는 것. 이 논리는 유가가 강조하는 仁義忠信孝悌의 도덕, 法家가 강조한 政令을 비롯한 일체의 인위적인 제도 및 문명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 => 존재의 역설논리 탐구 ; 仁義反對 ->“大道廢 有仁義 智慧出 有大僞” 18章
4) 小國寡民 =>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 => 반전론, 침략제국주의 반대 -> 무정부주의, 超권력주의
2] 列子:절대적인 숙명론 => 만물을 도의 지배하에 필연적인 순서에 따라 생성된 것으로 풀이하고, 따라서 생명도 정해져 있고 심지어 인사문제도 천명이라고 주장, 예를 들어 제환공과 포숙아, 관중의 고사에서 보여 지는 인간상을 숙명론적으로 해석. 物我一體를 하기 위해서는 無心을 학습(바닷가의 갈매기) 沒我說(낭떠러지와 폭포),
3] 莊子:'道'개념 확립, 도가사상 집대성 / 道 => 만물형성의 근원, 無形空虛, 無盡藏, 有爲無爲相互疏通, 逍遙遊篇 -> 絶對自由
4] 楊子:이름이 朱, 爲我主義, 利己主義, 無君論(지배자도 통치권도 거부하고 무정부주의적 입장 견지), 맹자의 공격
※ 養生論(후대의 神仙사상과 결합), 현실생활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처세와 인생철학, 군주의 지배술, 비생산적
7. 陰陽家
1) 우주생성과 萬物化生의 근본원리를 陰陽二氣의 변화로 설명하려는 이론과 그 학파
2) 鄒衍 => 그는 "天地開闢이래 五德(金ㆍ木ㆍ水ㆍ火ㆍ土 등 五行의 德)의 추이에 따라 다스려지니 저마다 마땅한 바를 얻게 되고 여기에 따라 길흉화복이 생긴다 " 라고 주장(『史記』「孟子荀卿列傳」)
3) 鄒衍이 죽은 후, 그의 제자 수 백명이 그의 학풍을 계승하여 秦漢시대에 매우 번성, 진시황의 명을 받고 童男童女 3천을 거느리고 不老草를 구하러 간 徐福 등이 그의 제자라고 할 수 있다.
8. 兵家
1) 孫子: 孫武의 吳王 闔閭의 寵姬斬首故事(『史記』),1972년 산동성 임기현 은작산에서 발굴된 漢武帝시기의 무덤에서
『孫子』와 같은 구성의『孫子兵法』과 함께 『孫臏兵法』30편이 발굴되었다. 龐涓, 知彼知己, 百戰百勝 ; 遠交近攻
2) 吳起:증자에게 사사, (처음에는 魯 그 다음에는 魏武侯, 후에 楚悼王을 섬김)
9. 기타
1) 名家: 詭辯, 莊子와 惠施의 문답 -> 인식의 주관성과 객관성의 대립 ; 公孫龍 => 白馬非馬論, 堅白論 -> 개념과 인식
莊子:물고기가 유유히 노니 아주 평화스럽구나
惠施:그대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가 평화스럽다는 것을 아는가
莊子:그대는 내가 아닌데 어찌 내가 물고기가 평화스럽다는 것을 어찌 모른다고 하오
惠施:내가 그대의 마음을 모르는 것처럼 그대 역시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가 餘裕롭고 평화스러운 것을 아는가
2) 縱橫家 => 蘇秦(合縱策=>六國이 힘을 합쳐 秦에 대항), 張儀(連橫策=>각 국이 강대한 秦과 동맹을 하여 자국의 안전을 보장)
3) 農家 => 許行 : 醫家 => 扁鵲 : 商家 => 范, 白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