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인문학 강좌 2강 춘추전국 시대와 제자백가 - 2013.11.1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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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인문학 강좌 <중국고대 문명과 역사> 2강 춘추전국 시대와 제자백가 - 2013.11.1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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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 춘전국시대의 人物과 故事

  1] 管鮑之交 => 管仲과 鮑叔牙의 友情 ;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두터운 사귐을 일컬음 -> 『史記』「管晏列傳」
    
    1) 죽마고우 => 춘추시대, 齊나라 사람, 관중-포숙아 ; 齊의 襄公의 폭정 -피난->  ⓐ 管仲 -事-> 公子 糾 -망명-> 魯 ;
       ⓑ 鮑叔牙 -事-> 糾의 이복동생 小白 -망명-> 莒(거)  ; 양공 -> 피살 -> 闕位 -> 국정혼란 -> 二 公子 급거 귀국 도중,
        管, 鮑는 각기 다른 주인을 섬김 -> 서로 政敵 관계  
    2) 포숙아의 추천 => 小白 -> 왕위 선점 -> 桓公 ; 공자 규 자결, 관중 -> 압송 ; 환공이 관중을 죽이려 하자 포숙아가 이를 말리며, “ 천하의 覇者가 되려면 夷吾(管仲) 외는 달리 인재가 없씁니다 ”라고 하며 관중을 적극 천거함
    3) 관중의 등용 => 救恤정책, 富國强兵 추진 -> 尊王攘夷 -> 葵丘會盟 + 周天子 -> 齊 桓公 春秋五覇의 첫 반열에 올림-> 霸業
    4) 관중의 포숙아에 대한 고마움 => ①장사 -> 利潤 騙取, 가난 인정 ; ②일의 실패 -> 궁지 ; 때의 有不利 ; ③三回出仕 -> 退出 -> 무능 탓을 안 함 -> 때의 이름 ; ④ 出戰 -> 도망 -> 비겁자 탓을 안 함 -> 老母 ; ⑤작은 절개 보다 천하 功名을 떨침에 가치를 둠을 알기 때문에 ; 管仲 => “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牙 ”
    5) 『管子』=> 고대경제사상 자료, 중국 경제사상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함. 재정, 금융, 화폐, 무역, 세제 등의 각종 경제제도 들을 제시 => 제 환공의 부국강병의 바탕이 됨 => 주요정책 : 농업의 보호 장려, 소금과 철, 금 등의 주요 산업의 생산관리, 세제와 병역의 정비, 인재등용 => “ 倉凜實而禮節, 衣食足而知榮辱 ”=> 실사구시의 실업중흥 => 유물론
    6) 관자에 대한 후대 평가 => ①孔子 -> 오랑케 토벌의 功을 치하 ; ②韓非子 -> 聖人(實用性) 지칭 ③ 孟子 -> 覇道의 장본인

2] 臥薪嘗膽 => 섭 위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홡는다. 夫差와 句踐이 복수를 위해 온갖 곤란을 참으며 견딤.『史記』「趙世家」
   1) ‘吳越之間’=> 不俱戴天之怨讐, 숙명의 라이벌 관계 : 夫差 <--대립--> 句踐
   2) 越  => 允常(父) ; 현상유지, 패배주의, 自重論 <--대립--> 句踐(子) ; 현실타파, 패업추구, 主戰論, 제위 계승
   3) 吳 => 伍子胥 -보좌-> 闔閭 즉위 ; 公子 光 -> 협객 專藷 고용 吳王 僚를 弑害 ; 丞相, 백비(楚), 孫武 천거 -> 兵法13篇
   4) 孫武 => 宮女 180명에게 兵法 試演 -> 寵姬 斬首 -> 一罰百戒 -> 軍律의 至嚴함을 제시 -> 軍士의 일사분란 한 통제
   5) 오왕 闔閭 -선공-> 월왕 句踐 ; 大敗, 負傷 -> 死去 ; 아들 夫差에게 복수를 유언 => 夫差의 臥薪, 유언암송 -> 復讎一念
   6) 구천 -> 範蠡의 簡을 不可納 -> 先攻 -> 吳 : 句踐大敗 -退走-> 會稽山(蘇興) ; 進退兩難, 범려 건의 -> 吳에 항복 요청
   7) 오자서 -진언-> 구천 살해, 부차 -> 뇌물수뢰 한 백비의 농간에 따라, 구천의 투항을 수용 -> 句踐의 起死回生
   8) 句踐의 嘗膽, => 復讎一念, 切齒腐心, 3년여 굴욕-> 還越 ; 嘗膽 -> 회계산의 치욕 상기 ; 은밀한 군사훈련 -> 捲土重來
   9) 오왕 부차 => 伍子胥의 경고(구천의 재침)를 무시 ; “ 내 눈을 빼어 東門에 걸어두라 吳의 패망을 보리라 ”-> 子壻 自決
  10) 구천의 치욕적인 항복 12년 째(B.C.482) 봄 -군사공격-> 夫差 杞에서 諸侯會盟 覇者 企圖 ; 吳越戰爭 7년,
      구천 -함락 -> 吳 姑蘇山 ; 부차 -> 치욕적 패배(肉袒膝行) ;  구천 => 지난 會稽山 恥辱의 雪辱
  11) 구천 -> 夫差에게 甬東(용동)의 餘生을 배려 => 夫差 ; “ 伍子胥를 대할 면목이 없다 ”-> 自決  
  12) 終戰, 文種과 範蠡 => 구천의 論功行賞 拒否한 범려 => “可共患難 不可同福 ”; “ 高鳥盡 良弓藏, 狡免死  良狗烹 ”  


3] 楚의 애국시인 屈原(B.C. 340-278) => 「楚辭」(南方之詩經) ->「離騷」 => 전국 시대 중기
   1) 초 왕족의 후예, 고전교육, 초회왕의 左徒로서 국정 참여 => 회왕과 국사논의, 사신접대, 중요문건 초안 -> 왕의 신임
   2) 상관대부 근상(奸臣)의 굴원 음해 => 굴원을 放恣傲慢視, 회왕을 昏君 지칭 거짓 음해 -> 회왕이 굴원을 멀리함
   3) 초 회왕 => 근상과 간신배 농간 -> 張儀에게 속임을 당함 -> 고심 중, 굴원을 齊에 파견 -> 齊와 연맹을 통해 秦에 대항
   4) 秦王 => 張儀를 楚에 파견하여 楚齊聯盟을 무산시킴 ; 장의는 초회왕의 寵姬 정수(鄭袖)를 뇌물로 매수 ; 원래 회왕은
      장의를 죽이려 했으나 근상과 정수의 꼬임에 빠져 장의를 놓아 줌 ;  굴원이 귀국했을 때 장의는 이미 떠남  
   5) 굴원은 초 회왕에게 謀士 장의를 멀리하도록 진언함 -> 회왕은 우매 무능하여 이를 듣지 않음 -> 굴원은 울분을 사귐
      => 자신의 처지와 울분을 쏟아 부은 장편 서사시「離騷」를 지음 -> 자신의 자전적 작품  
   6) B.C 307年 秦昭王 즉위 => 초회왕에게 武關에서의 회담을 초청 => 회왕 대책을 고심 ; 이에 굴원 => 秦을 虎狼之國 간주,  
      몇 번의 굴욕과 속임수를 생각하고 회담 제의를 거부하도록 진언 ; 회왕의 아들 자란의 판단미숙에 이끌려 회왕은 秦의 국경
      武關에서 진왕에게 억류됨 -> 초, 회왕에게 영토포기 협박을 견다다 3년 후 死去 => 굴원 이 소식을 듣고 울분에 젖음      
      -> 당시 비통한 심정을 敍事詩「招魂」으로 노래함.“ 혼이어 돌아오라, 동쪽은 그대 맡길 곳 아니니... 그리운 강남으로 ”
   7) 초 경양왕 즉위 + 자란(奸臣) 재상 => 두 사람은 국가위기초래의 책임을 물어(陰害) 굴원을 湘南으로 추방시킴
   8) 굴원은 초에 충성과 성심을 다했으나, 무능한 군주와 간신 모사꾼들에 의해 배척과 배신을 당함 => 홀로 비통에 젖어 覓羅水를 거닐며 울분을 달랠 때, 한 어부가 그에게 “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닌가 어찌하여 이곳에 왔는가 ?  ”물으니, 굴원은 답하길, “ 온 세상이 혼탁할 때 나 홀로 맑았고, 뭇 사람들이 모두 술에 취해 있을 때 나 홀로 술에서 깨어나 있다가 추방당했습니다 ” ; 다시 어부가 “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聖人의 삶이 아닙니까 ? 세상이 혼탁할 때 어찌 그 흐름에 몸을 맡기지 않습니까 ? 모든 사람이 취해 있거든 당신도 술지게미를 배불리 먹고 밑술에 취해보지 않으셨습니까 ? 빛나는 보석을 가졌으면서도 어찌 쫓겨날 일을 만드셨습니까 ? ”하고 재차 묻자, 굴원은 정색을 하고 말하길, “얼굴을 씻은 다음에는 반드시 모자를 털고, 목욕을 한 다음에는 반드시 옷을 턴다고 합니다. 깨끗한 몸에 어찌 때를 묻히겠소? 그럴 바엔 차라리 흐르는 저 멱라수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뱃속에 장사를 드릴지언정 더운 세상에 몸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    ” 라고 대답했다. 이에 어부는 웃으며 뱃전을 두드리며 떠났다.
  9) 2년 뒤 초의 潁都가 진에게 점령당해 -> 초 경양왕도 강동으로 피신 => 굴원은 조국 초 부흥의 포부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실의와 좌절 속에서 비통과 울분을 안은 체, 마지막 서사시「懷沙之賦」를 읊으며, 멱나수에 몸을 던졌다. 이때가 62세.
10) 굴원이 세상을 떠난 날이 음력 5월5일이며, 후에 이 날을 기리기 위해 단오로 정하고, 단오절에는 粽子를 먹고 용선경기를
     하는 풍습이 생겨났다.* 粽子 => 찹쌀에 대추 따위를 넣어 댓잎이나 갈잎에 싸서 쪄 먹는 단옷날 음식
11) 굴원에 대한 평가 => 사마천 『史記』「屈原傳」; “ 충성했으나 버림을 받았고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았다 ”
     唐代 시인 李白은 굴원을 대시인으로 깊이 존경했다. => 중국 낭만주의 시풍의 창시자로 칭송됨  

4] 商鞅의 變法 => 秦 孝公 371년 낙후된 야만국가인 秦에 널리 인재를 구함 -> 상앙 발탁을 통해 부국강병을 실현함  
   1)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 대한 공평한 법집행을 통해 백성의 신뢰를 얻고 엄격한 법치질서를 확립
   2) 상앙은 좌서장으로서 법집행의 단호함을 보임 => “ 나무기둥을 남문에서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250량을 주겠다 ” 고
      약속하고 그대로 시행함 => 백성의 깊은 신뢰를 얻음 => 종전의 씨족사회의 정리가 아니라, 공평한 법집행을 통한 통치
   3) B.C. 356년 1차 신법 시행 => 태자의 위법 -> 배후 교사죄를 물어 태자의 스승인 공자 건과 공손가를 처벌 -> 劓刑, 黥刑
   4) B.C. 350년 2차 신법 시행 => 秦國 31개현설치 군현제 실시 ->통치효율성, 정전제 폐지와 황무지 개간 -> 생산성 증대
   5) 후임 왕 혜무왕의 원한을 사, 모반을 구실로 상앙은 거열형에 처해 짐  
   6) 법가사상의 계승 => 李斯, 韓非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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