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인문학 강좌 3강 진·한 제국과 중국고대의 완성 - 2013.11.2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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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인문학 강좌 <중국고대 문명과 역사> 3강 진·한 제국과 중국고대의 완성 - 2013.11.2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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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절 司馬遷의 『史記』

1] 저자 => 司馬遷(145[135] - 90[87] B.C) : 字가 子長, 左馮翊 夏陽(陝西, 韓城縣) 사람.
2] 父 => 司馬談 : 태사령(천문ㆍ역법을 관리하고, 국가의 문서를 보관하는 직책) -> 封禪之禮 不參 -> 홧병 -> 遺言
3] 修學 => 父를 따라 수도 長安 茂陵 거주 10세 -> 古文 암송, 유가경전 공부,『秦紀』,『世本』,『戰國策』,『山海經』,     『楚漢春秋』,「諸子百家」文章 등을 일독.『史記』에 인용된 底本이 70여종에 이른다. => 多讀博學
4] 天下 여행의 見聞 확대 => 20세 전국여행 시작 -> 그 지역을 직접 답사 견문 -> 蜀 (四川 -> 奧地)까지 여행. 郎中
   (황제의 시종관) 지위 -> 지방 출장, 황제의 巡視를 수행함 -> 광동ㆍ복건ㆍ장성이북, 하서회랑을 제외한 전국을 踏査
   => 遷, 名山大川 유람 : 지형과 고적을 답사, 각 지방의 인정가 풍습 및 사회 상태를 견문 관찰함 -> 사료에 직접인용
5]『사기』집필 동기(「太史公自序」) => 父, 談의 遺言 => 천, 36세 무제 元封 元年(110 B.C) , 封禪之禮 --向--> 泰山
    父, 談의 不參 -> " 發憤且卒 " => 임종, 유언 => 『춘추』계승의 大著를 집필토록 당부함.
6] 38세 太史令 직위 => 국가의 공식문서를 열람, 사료 수집 준비, 5년여에 거친 「太初曆」집필 후, 太初 원년(104 B.C)      =>『시기』집필시작---> 도중, 「李陵之禍」:降將 이릉변호 -> 무제격노 -> 宮刑 -> '發憤之書' * 黥刑,劓刑,刖刑,宮刑,死刑
7] 發憤之書 --영향--> 史觀 성립 : 통치자(무제)들의 횡포(억압) + 혹리(법치)의 迎合, 피치자의 사정 등 민중입장 대변
8]「報任安書」(漢書 卷62)> 太始 4년(93 B.C) 53세 친구 任安(투옥)에게 보낸 위로 편지 => 천 자신의 痛憤 밝힘: 忍耐      -> 發憤之書 => " 所以隱忍苟活 陷糞土之中而不辭者 恨私心有所不盡 鄙沒世不采不表於後 " => 宮刑(恥辱)克服忍耐 ->
   太史令 任務 一念 =>  不遇한 處地(難關) 극복 사례 제시 => 文王, 孔子, 屈原, 左丘明, 孫子, 呂不韋, 韓非子
9]『사기』의 집필 기간 (20연년)간 => 태사령 직위(38세) 기초자료 수집 -> 李陵之禍(42세)의 곤궁 극복 -> 집필착수 ->     설계 구성(53세) -> 집필 완성 (58세) =>  이후도 천 자산과 유향ㆍ유흠 등 문인에 의해 계속 수정됨
10]『사기』의 명칭 => ① 간행 당시 -> 『太史公書』(「自序」) ② 위ㆍ진시대 -> 『史記』로 불림
11]『사기』의 시대 기술 범위 => 五帝(삼황오제) ~ 전한 무제 태초 년간 까지 대략 3천 년간의 역사를 기술
    ⓐ 한대 이전 => 기존 문헌인 시경, 성서, 좌전, 국어, 전국책, 진기 등 저본을 정리하여 비교적 간략하게 기술함.
    ⓑ 한대 이후 => 당대사는 황제의 각 지역의 순행을 수행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한 사마천의 순수 창작  
12]『사기』구성 => 5장르: 수례 '바퀴'에 비유 => 바퀴축 + 바퀴통 + 바퀴살 => 북극성과 28宿(수), 130권, 52만6천 餘字
  1)「本紀」12편 => 역대 최고 권력자(제왕)의 통치와 전기를 연월일 순으로 기술 -> 전체의 강령 -> 비퀴축  
     ①五帝本紀 ②夏本紀 ③殷本紀 ④周本紀 ⑤秦本紀 ⑥始皇本紀 ⑦項羽本紀 ⑧高祖本紀 ⑨呂后本紀 ⑩孝文本紀
     ⑪孝景本紀 ⑫孝武本紀 => * 예외 => 항우본기, 여후본기
  2)「世家」30편 => '世家' 대대(世世)로 秩祿(녹봉)을 받는 집이라는 뜻(『孟子』)으로 원칙적으로는 봉건제후의 통치        기록이지만, 일시적으로 크게 활동하였거나 대사상가의 전기도 일부 포함하고 있다. 각 제후국의 國別史 기록  
     * 예외 => ①「孔子世家」 -> '素王' '喪家之狗'  ②「陳涉世家」-> " 燕雀安知鴻鵠之志哉 " , " 王侯將相寧有種乎 "
  3)「列傳」70편 => 사마천 최초 설계, 재상, 장군, 사상가 등 사회 각 계층의 뛰어난 인물의 傳記. 列->모범,저명,典型
      ① 동일 유형의 사람들을 묶어서 기록 => 「중니제자열전」,「유림열전」,「혹리열전」,「순리열전」
      ② 중국 이외 변방 지역의 문물 기록 => 「흉노열전,「조선,「대완」,「남월」,「서남이」-> 지역사 연구사료
      ③ 정신과 물질의 대비 => 제1편 「伯夷열전」(정신)<--대비--> 제69편 =>「貨殖열전」(물질)
      ④ 제70편 => 「태사공자서」=> 사마천의 『사기』 저술 동기를 밝힘  
  4)「書」8편 => 典章(법제와 문물)제도와 천문ㆍ지리, 문화ㆍ경제 생활에 관한 기록. 반고의 『한서』이후 '志'로 바뀜
            => 한대의 제도 및 사회경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가료가 됨  
      ①禮書 -> 禮儀 ②樂書 -> 음악 ③律書 -> 음률, 兵書 ④歷書 -> 역법 ⑤天官書 -> 천문 ⑥封禪書->역대 제왕와
      각종 귀신에 대한 제사 ⑦河渠書 -> 고대 水利工事외灌漑治水  ⑧平準書 -> 경제정책, 물가조절
  5)「表」10편 => 제왕 연대표. 평범한 사건, 인물 포함 => 一目瞭然한 인물/사건 정리, 漢代 연표(6편) -> 당대사 치중.
      먼 시기는 소략하게, 가까운 시기는 상세하게 기술하고, 구체적인 요점을 추려서 간략히 전후관계를 정리함
13]『사기』의 집필 정신
     1) ' 究天人之際 ' =>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 =>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천인감응'의 관계로 봄.
     2) ' 通古今之變 ' => 오덕종시설(土木金火水)과 삼통설(亂世/升平世/太平世 => 張三世설)에 의한 역사발전을 설명
                          하고, 고금의 흥망성쇠를 규명
     3) ' 一家之言 ' => 유가, 도가, 법가, 음양가, 잡가 등의 「제자백가」에 속하지 않는 사마천의 역대 가문에 걸친                            史家 집안에 계승된 '一家'의 독창적인 사상 체계 => '官撰'이 아닌 '私撰'이다.  

                                    제3절 한무제의 서역 경영과 장건의 실크로드

1] 漢代 비단길(Silk Road)의 개통
   1) 漢代 동서교역은 주로 비단길을 통해 전개됨 => 전한무제 시기 서방원정(장건)과 후한시기 반초의 서방경략에서 비롯됨
   2) 장건의 1차 서방여행(B.C.139-126) => 월지국과의 동맹을 위해 使者로 파견됨 -> 도중 흉노에게 포로 -탈출-> 大宛(경유)->
      --도착--> 월지(月氏): 漢과의 군사동맹체결 실패 -> 장건은 10여년의 긴 여행에서 귀국(B.C 126) -> 무제에게 결과보고 :         이후 「장건의 여정」은 동서교역의 요로(간선도로)가 됨 -> '실크로드'
   3) 한무제의 서역경영 => 동서교섭사에서 동서교역을 촉진시킨 일대 전기를 마련함
    (1) 서역의 범위와 개념 => 서역은 한대 서쪽 지역의 여러 나라를 지칭함 : a) 협의 => 파미르고원의 동쪽 타림강 유역을 지칭
        b) 광의 => 파미르고원 서쪽 ~ 소아시아 방면 까지. 한대 소위 '서역 36국'은 협의의 서역으로 오아시스 도시국가를 지칭      (2) 河西四郡의 설치 (B.C. 121-119) => 전한 무제 때 제1차 서방진출 시기로서 실크로드의 길목을 확보
       ① 무제는 B.C 121년 곽거병에게 하서지방을 공략케 하여 흉노의 혼사왕이 항복하자 이곳에 무위군, 주천군 등 2군을                 설치하고, 그 후 B.C 111년 장액군과 돈황군 등 2군을 추가시켜 「하서 4군」으로 삼았다.
       ② 하서지방은 중국과 서역을 잇는 오아시스의 다리이며, 고비사막 북쪽의 몽골고원의 유목민과 靑海지방의 羌族(티베트인)            을 이어주는 연결 기지였다. 하서지역은 동서교통로의 십자로와 같은 요충지이다.
       ③ 무제는 하서지방에 중국인 70만 명을 강제 이주시키고, 이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만리장성의 서쪽 끝을 敦煌에서 玉門關           까지 확장하였다. 그 결과 중앙아시아의 심장부인 타림분지 부근의 오아시스 농경지역의 여러 부족이 한의 지배하에 들어           왔다. 이후 이들 지역의 도시국가들은 동방과 서역의 교역로 상에 위치하게 되어 중요한 驛站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3) 무제의 제2차 장건 서역파견과 동서교역로 확대
        무제는 烏孫(일리河 부근민족)과의 동맹을 위해 2차로 장건을 서역에 파견 => 正使 장건은 여러 명 副使를 인솔 --파견-->
         大宛(대원), 康居(강거), 月氏(월지), 大夏 : 결과 => 오손을 하서지방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치군사적 목표는 실패함
         그러나 부사들이 파견된 각국과 점차 국교가 열리면서 중국은 수백 명의 사절단을 매년 10여회 ~ 5,6회 걸쳐 파견함  
    (4) 무제의 2차에 걸친 大宛 정벌 감행 => 寵姬 李氏의 오빠인 李廣利 장군을 총사령관에 임명하여 1차 원정(B.C.104) -> 실패         ; 2차 원정(B.C.102) -> 성공 => 결과 : 파미르고원서쪽 타림분지의 오아시스 여러 나라들을 漢에 복속시킴
    (5) 무제의 敦煌 경영과 서역교역의 확대
       ① 돈황에 酒泉都尉를 두고 屯田을 설치하고, 使者校尉를 두어 외국으로 나가는 사신에게 식량과 말먹이를 제공하였다.
       ② 동서교역로 곳곳에 망루와 정자를 설치하여 사신들의 안전을 도모했다.
       ③ 漢의 사절단(수 백명~ 백여명)은 파미르고원 서쪽으로 파견되고 서방의 사신들도 속속 한으로 들어옴. 수십 차례~ 5,6회
           먼 곳은 8~9년이 걸리고, 가까운 곳도 수년이 걸리는 먼 길이었다. (『史記』,「大宛列傳」)

2] 중국 비단의 서방 전래
   1) 한대 서방과의 교역에서 가장 중요한 수출품은 비단이었다. 비단은 한대 이전부터 이미 세르(Ser), 또는 세레스(Seres)란
      이름으로 서방세계에 널리 전해졌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의 귀족들은 '세르'가 무엇으로 만들어 졌으며, 이 아름다운 직물        을 만든 나라인 세리케(Serice)가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 이유는 비단이 중국인과 직접 거래되지 않고 중앙아시       아와 인도에서 페르시아인이 세운 파르티아 왕국과 사산조페르시아 왕국의 중계무역을 통해 그리스 로마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2) 로마 역사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중국인식 => 세레스인이 살고 있는 지역은 광대하고 인구가 많다. 주민은 宥和적이고 문명인        이며, 인접국과의 충돌을 피한다. 生絲, 毛皮, 鐵 등을 생산 한다.
   3) 유럽인들이 세레스의 실체를 분명히 인지하기 못한 이유 => 파르티아(安息國)의 중계무역으로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後漢書』에도 大秦國(로마)은 항상 漢제국에 사절을 파견하려 하였으나, 파르티아가 繪綵(회채; 화려한 비단)로서 大秦과        교역을 독점하기 위해 교통을 방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4) 漢代 이전 중국 비단 ---흉노, 대월지의 중계무역 --전래--> 서방세계 : 실크로드 개통 이후 : 한--직접교역--> 안식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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