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인문학 강좌 1강 시,어떻게 읽을 것인가? - 2013.11.28

본문 바로가기
자료실
> 열린마당 > 자료실
자료실

제2기 인문학 강좌 <문학이라는 희망> 1강 시,어떻게 읽을 것인가? - 2013.11.28

관리자 0 99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김상환


김현승 시 다시 읽기
- 현(玄), 혹은 동양적 사유와 미의식


1. 인간/靈性/고독

다형(茶兄) 김현승이 「현대시의 재음미-한국적인 주류를 위하여」(『현대문학』,1959.2)란 제하의 글을 발표한 지도 반세기가 넘는다. 그는 이 글에서“한국의 현대문학이 해외의 모방으로부터 성장해 나온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제는 우리의 것을 찾아야 할 때”라고 우리 문학에 대한 관심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명한다. 고독의 사상을 내면화하여 서정시의 미학과 깊이를 드러낸 그는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기념하여 최근 문학사상(2013년 4월호)에서는 김현승의 문학을 재조명하고 있다. 김인섭(「평양, 광주, 서울의 시인-김현승의 삶과 문학」), 송기한(「자연과 고독의 문제-김현승의 문학과 사상」), 이은규(「양심을 옹호하는 시인의 이름으로-김현승 시의 현재성」) 제씨의 평문이 그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를 고독이라는 극한으로 끌어올린 시인”(권영민,한국현대문학사),“휴머니즘을 통해 서정시와 모더니즘의 일치점을 모색한,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가능성” 이은규, 위의 글, p.54 참조.
(최동호,한국현대시사의 감각)이란 저간의 평가는 김현승 시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현재적 의미를 말해주기도 한다. 문제는 지성과 감성의 균형과 조화, 언어의 절대성과 정신적 기반에 주력해 온 그를 두고, 자칫 기독교 시인 일변도로 이해하는 데 있다. 「나의 文學白書」(김현승전집 2: 산문, 시인사, 1985)에서도 스스로 밝히고 있지만, 김현승이 추구한 시적 대상은 어떤 종교적 이념과 감수성 보다는 자신의“삶에서 가장 절실하고 가치 있는 문제”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기독교 역시 그런 생의 구경적(究竟的) 내지 미적 가치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신과 인간 사이에 가로 놓인 심연에 대한 체험을‘고독’이라 명명한다. 이 고독과 영성(靈性)은 김현승의 인간과 문학을 깊이 있고 새롭게 이해하는 주제어로 지목된다. 이 경우 영성이란 종교적인 측면도 측면이지만, 시의 가장 근원적인 경계로 여겨진다. 고독한 시간과 자아,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삶의 균열이나 고통에서 야기되며, 인간과 영성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고독은 세계에서 분리되어 내면적 생활에 자신의 모든 것을 집중시키는 상태” 참조. 모리스 블랑쇼, 문학의 공간(책세상, 1990) 제1장.  
를 말한다. 이런 내부와 몰입에서 비롯된 다형의 고독은 기독교의 태생적 수용과 영향 보다는, 시인의 기질과 성향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뿐 아니라, 그의 시에 빈번히 나타나는 검은 빛과 색의 이미지 또한 시인의 개성을 특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 글은 다형 김현승 시 일부(「가을의 기도」, 「무등차無等茶」, 「검은 빛」)에 나타난 동양적 사유와 미의식에 그 초점이 주어져 있다.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예술과 철학의 경계에 놓여 있는 김현승 문학 연구가 보다 새롭고,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면 한다.


2. 현(玄), 혹은 동양적 사유와 미의식

다형 김현승(1913~1975)은 1934년 동아일보에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란 시를 발표함으로써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작고하기까지 6권의 시집[김현승 시초(1957), 옹호자의 노래(1963), 견고한 고독(1968), 절대고독(1970), 김현승 전집(1974), 마지막 지상에서(1975)]을 간행한다. 전반적으로 절대자(神)에 대한 회의와 수용의 기독교적인 면모가 두드러져 보이지만, 언어와 표현, 어법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동양적, 특히 유가적(儒家的)인 전통 사상 “그의 시는 서구 기독교의 오랜 전통인 청결한 윤리의식, 그리고 한국의 지조와 절개를 중히 여기는 선비정신이 혼합돼 독특한 정신주의를 구현하고 있다.”(장석주, 「김현승」, 나는 문학이다)
과 미학적 측면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다 그의 시에는 검은 빛과 색의 이미지가 유달리 눈에 띈다. 동물(‘까마귀’) 이미지가 그 중 하나다. 다음 시편을 보자.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구비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가을의 기도」 전문

기도문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에)는 ~(하)게 하소서”라는 통사 구조의 반복과 그로 인한 안정감이 우선 돋보인다. 이러한 시의 구성과 배치는 각 연의 지배소dominants인 기도와 사랑, 고독(‘호올로’)에 집중되어 있다. 문제는 서정적 주체인‘나/내’가 처해 있는 마음의 진정성과 현실을 특정 종교와 결부시켜 해석의 여지를 제한하는 것이다. 1연의 경우, 시인이 꿈꾸는 가을의 기도와 소망은 낙엽이 지는 때와, 그 때를 온전히 기다리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겸허한 모국어”로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마음에 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자 순명(順命)이다. 이런 기다림의 시간과 정서는 우리의 과거 전통으로 보아 매우 귀하고 아름다운 덕목에 속한다. 하여 내면의 가치와 미덕을‘나’는 모국어mother language로 가득 채우고자 한다. 기도는 바로 그런 어머니의 마음이자 언어이며, 대지모(大地母)의 오랜 신앙이기도 하다. 2연에서 보면, 기도의 주체인 숨은 화자는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한 사람(“오직 한 사람”)을 택하여 그에게 가장 아름답고 비옥한 시간과 열매를 기원한다. 중요한 것은,‘비옥한 땅’이‘검은 색’과 관련되어 있는 점이다. 참조. 이승훈 편저, 문학상징사전, 고려원, 1995, pp.78~80.
소멸이나 죽음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근원으로서 수장(收藏)의 의미를 갖는다. 검은 색은 방위로는 북(北), 오행으로는 수기(水氣)에 해당한다. 하여 이는 만물의 수장(收藏) 작용을 한다. 가을의 잎이 떨어지는 것은 서양의 문화 상징처럼 죽음이나 소멸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근원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주의 변화를 오행(五行)의 변화라고 하는 것은 ‘물(水)’의 변화를 의미하며, 이는 현묘유심(玄妙幽深)하여 청초한 봄, 화려한 여름, 장엄한 가을과 엄숙한 겨울을 만들어내며, 응고성과 자율성, 중화성(中和性)을 지녀 만물을 생성하는 기본 존재이며 우주의 본체다. 참조. 한동석, 우주 변화의 원리, 대원출판, 2002, pp.72~73.  
검은 색의 이미지는 마지막 연의‘까마귀’에 특징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까마귀가 위치한 곳은“영혼(이) 구비치는 바다”를 지나,“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위’다. 흔히 서구에서 까마귀의 빛과 소리는“세계가 생성되기 이전 암흑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감” 이승훈, 같은 책, 같은 쪽.    
과 통하지만, 이 시의 경우는 모든 지점과 장소를 지나(또는, 초월해)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가 닿을 수 없는 우주수(宇宙樹)로서의 나무, 그것도‘마른’나무에 주목해 보면, 마를‘건(乾)’은 하늘‘건(乾)’과 통한다. 하여 마른 나무의 수직적/천상 이미지는 나뭇가지의 수평적/지상 이미지와 접점을 이루어,‘나무’의 영원성과‘가지’의 순간성을 유기적으로 통합한 것이 된다. 이는 곧‘영원과 순간의 동시성’이 김현승 시에 내포된 고독의 궁극 참조. 송기한, 앞의 글, p.51.
이거나, 영성을 의미한다. 영성과 고독을 표상하는 검은 색은 흰색과의 대비(백합 vs 까마귀)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결국 이 시는 윤리적/실존적 자아의 절실하고 내밀한 경험의 국면을‘까마귀’ 까마귀에 대한 개인적 의미와 상징으로, “그의 고향 광주에서의 까마귀 체험은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가 여러 새들 중에서도 까마귀를 좋아하게 된 것은 어릴 적 고향에서부터였다. 그의 집은 고향 광주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양림동(楊林洞)이었는데,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 아침마다 울창한 대숲을 떠나 무등산으로 날아가곤 했다. 자신의 집 공중 위를 날아갈 때는 깃을 치는 소리들이 또렷이 들렸고, 저녁이 되어 돌아올 때도 시인의 집 공중 위를 통과하여 대숲으로 날아갔다. 이따금 집 뜰 앞에 있는 오동나무 빈 가지에 소리없이 고요히 열매처럼 달려 있는 두어 마리의 까마귀 (......) 말년에 이르러, 그가 서울에서 새로운 집을 짓는다면 한강 이남에다가 남향인 자리에 짓고, 자신의 고향이 있는 남쪽으로 울고 가는 갈까마귀 소리라도 들으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할 정도로 어린 시절의 까마귀는 근원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참조. 김인섭, 앞의 글, p.27.
라는 구체적인 이미지와 사물을 통해 획득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무등차無等茶」의 경우는 어떤가?
            
가을은
술 보다
차 끓이기 좋은 시절

갈가마귀 울음에
산들 여위어 가고,

씀바귀 마른 잎에
바람이 지나는

남쪽 십일월의 긴긴 밤을

차 끓이며
끓이며
외로움도 향기인 양 마음에 젖는다
                                - 「무등차無等茶」 전문

평소 차(커피)를 즐겨 마시는 다형(茶兄)의 기호가 잘 반영되어 있는 이 시는‘차’와 ‘술’의 대비에 그 특징이 있다. 후자에 비해 전자는 고유한 향기와 마음을 본위로 한다. 그 결과 시인은“남쪽 십일월의 긴긴 밤”과 밤의 고독을 견뎌낼 수 있으며, 외로움을 향기로 발산한다. 이는 다른 시편 「가을의 향기」(“모든 육체는 가고 말아도/풍성한 향기의 이름으로 남는/傷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여/높고 깊은 하늘과 같은 것들이여.”)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향기는 아름답고, 높고, 깊은 것으로 영성을 환기한다. 그것은“갈가마귀 울음”과 “씀바귀 마른 잎”의 고독과 상처를 감싼다.‘갈가마귀’에서 예사소리에 속하는‘가’의‘ㄱ’은 된소리(‘까’) 보다 어둡고 깊고 고독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 고독과 관련해 갈가마귀의 검을“현(玄)은 그윽한 것으로, 고요하고 신묘한 것, 빛나는 것, (심지어는) 道와 마음” 참조. 우석영, 낱말의 우주, 궁리, 2011, p.697.
을 표상한다. 차의 향기는 더러 시인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천상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유현(幽玄)한 태도로 사물을 바라보는 게‘적(寂)’이라면, 이 시에는 그런 유현한 취(趣)와 아름다움이 나타나 있다. “동양의 미에는 유현(幽玄)이라는 특수한 취미가 있다. 유현한 취미는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의 모습 속에 나타나는 것을 느끼는 일을 말한다. 늪을 직시하지 않고 바람의 향기나 개구리 속에 나타나는 늪을 보는 게 유현이다. 바다를 나무의 틈새로 조금 내다보는 게 유현이다. 나무의 모습을 직접으로 보지 않고, 흙 위에 떨어진 그늘로 보는 게 유현이다.” 참조. 킴바라세이고金原省吾, 동양의 마음과 그림, 민병산 역, 새문사, 2007(11쇄), pp.158-159.
“갈가마귀 울음에/산들 여위어 가고,/씀바귀 마른 잎에/바람이 지나는”의 구절에서 보듯이, 시인은 순전히 (차의) 향기로써 대상을 미세하게 감지한다. 동양적 사유에서 무와 현이 충분히 연계되어 있다면(無=玄), 검은 빛의 고통과 고독, 그것의 무화(無化)는 이 시의 세계를 더욱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검은 빛의 시편 하나를 보기로 하자.
    
노래하지 않고,
노래할 것을 더 생각하는 빛.
눈을 뜨지 않고
눈을 고요히 감고 있는 빛.

꽃들의 이름을 일일이 묻지 않고
꽃마다 품안에 받아들이는 빛.

사랑하기보다 사랑을 간직하며, 허물을 묻지 않고
허물을 가리워 주는 빛.

모든 빛과 빛들이 반짝이다 지치면,
숨기어 편히 쉬게 하는 빛.

그러나 붉음보다도 더 붉고
아픔보다도 더 아픈,
빛을 넘어 빛에 닿은 단 하나의 빛.
                                - 「검은 빛」 전문

시의 중심 이미지인 검은 빛은‘생각하는 빛’이다. 고요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빛의 정수(精髓)인 그것은, 사랑을 간직하고, 더 이상의 허물을 묻지 않으며, 빛과 빛들을 편히 쉬게 하는 빛이다. 그런 현(玄)은 빛을 넘어 빛에 닿은“단 하나의 빛”이다. 여기서 검은 색의 이미지와는 유다른 검은빛의 사유는, 독자로 하여금 보다 새로운 관심을 환기한다. 검은 빛은 지상적인 것의 비애를 온몸에 두르고 하늘로 비상하는 영혼의 새, 까마귀의 다른 이름이다. 그 검은 빛의 까마귀는“아픔보다도 더 아픈”유마힐(維摩詰)의 정신과 사랑, 보살핌의 마음으로 간주된다. 검은 빛으로 표상되는 동양적“미는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체와 물체가 만들어내는 그늘의 무늬, 명암에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그늘에 대하여, 고운기 옮김, 눌와, 2006(2쇄), p.51.
물체와 물체가 만들어내는 그늘의 미학에서 검은 현(玄)은, 빛과 어둠의 경계를 말하며, 빛과 어둠의 사이에 속한다.“존재의 배후에 깊은 표현 정지의 무를 보는 일, 그것은 형상을 깊이 포착하는 일” 킴바라세이고金原省吾, 앞의 책, p.39.
이며, 검은 빛의 에스프리다. 뿐 아니라,“김현승 시에서 심미적인 것이 거부와 배타의 물질성을 함축하는 견고한 물질” 참조. 김옥성, 현대시의 신비주의와 종교적 미학, 국학자료원, 2007, pp. 229-230.
이라면, 검은 빛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고 묻지도 않으며, 견고한 보석과 같은 것이다. 김현승 시의 지혜가 동양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가장 크고 없는 것이다.(“東洋의 智慧로 말하면/가장 큰 것은 없는 것이다.”, 「마음의 집」)


3. 김현승 시의 현재적 의미  

이상의 작품 분석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김현승 시에 나타난 특징적 성격은 서구 기독교 사상과 정서로만 찾아지는 게 아니다. 인간적이고 심미적 차원에서의 고독 “김현승 시에서 고독은 심미적 체험의 순간이면서 동시에 심미적 대상이다. 그것은 ‘신적인 것’에 대항하는 가장 ‘인간적인 것’이며 ‘심미적인 것’이다.” 김옥성, 앞의 책, p.274.    
이나 영성의 주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검은 빛과 색, 즉 현(玄)의 모티프나 이미지에는 한국이나 동아시아의 전통 내지 미의식 문학 작품이 도달하는 수준을 의미하는 동시에, 문학 작품이 추구하는 표준에 해당하는 ‘경계’는 동양적인 사유와 미의식의 특징(참조. 이상우, 동양미학론, 시공사, 1999, p.30)이며, 이 점에 대해선 고를 달리하여 차후 과제로 삼는다.
이 깊이 내재해 있다. 이는 곧 다형 시의 표층은 서구적/기독교적인 색채가 엿보이지만, 심층에 이르러서는 전통적인 의식이 깊이 내재해 있다. 한편, 미적인 측면과 관련해 색(色)은 매우 중요하게 취급된다. 그도 그럴 것이, 색은 그냥 색이 아니라 공(空)의 다른 명명이며,“세계의 영혼이자 뿌리” 만리오 브루자틴, 色-역사와 이론을 중심으로, 이수균 역, 1996, 미진사, p.31.  
인 때문이다. 김현승 시에 나타난 검은 색(빛)은 서구 문학의 상징에서처럼 어떤 죽음이나 소멸의 무(無) 개념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깊이를 드러내며, 사유의 근원과 일맥상통한다. 하여 우리가 익히 알고 것처럼 기독교 시인이기 이전에 그는,“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를 새로이 발견” 김현승, 「참여문학의 진의」, 김현승: 한국현대시인연구 10, 문학세계사, 1993, pp.279~280.  
한, 고독한 인간이자 시인이다. 윤리적 가치와 실존, 내면세계를 누구 보다 천착한 그에게 있어 고독과 영성은 문학적 내지 인간적 정점에 놓인다. 깊은 사유만이 생을 초월할 수 있다면, 다형 김현승 시의 의미는 집중과 성찰, 언어와 사유, 그것의 미적 조화에 있다. 이는 문학의 지금, 여기에 있어서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끝)

■ 참고문헌은 각주로 대신함.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