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인문학 강좌 3강 의 시학 - 20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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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인문학 강좌 <문학이라는 희망> 3강 <듣다>의 시학 - 20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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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김상환

시와 감각 (2)

3.5.
아마 무너뜨릴 수 없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빈 듯 하면서도 공터는
늘 무엇인가로 가득차 있다
공터에 자는 바람, 붐비는 바람,
때때로 바람은
솜털에 싸인 풀씨들을 던져
공터에 꽃을 피운다
그들의 늙고 시듦에
공터는 말이 없다
있는 흙을 베풀어 주고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뿐,
밝은 날
공터를 지나가는 도마뱀
스쳐가는 새가 발자국을 남긴다 해도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들,
공터는 흔적을 지우고 있다
아마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최승호,「공터」전문

시는 관찰과 몰입의 다른 이름이다. 이 시는 ‘공터’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현상들을 예각적으로 포착하고, ‘공空’이 갖는 동양적인 사유와 의미를 특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들”에 대한 관찰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일회적이지 않다. 그것은 공터에 핀 꽃들의 “늙고 시듦”을 감지할 만큼 지속적이고 반복적이다. 공터의 가장 큰 속성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고요’다.(“아마 무너뜨릴 수 없는 고요가/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고요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베풀어 주고 그저 무심히 바라볼 뿐이어서, 이런 고요의 본질과 근원은 노자老子가 말하는 ‘도道’와 다르지 않다. 그런가하면, 시인의 감각과 통찰은 무엇보다 공터가 공터가 아니라는 데 있다. 바람과 솜털, 풀씨와 꽃, 흙과 도마뱀, 새의 발자국, 빗방울과 모래 등에서 보듯이, 공터는 그야말로 ‘빈 중심’이자, 텅 빈 충만함이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이 작은 공간에서 시인이 발견한 것은 “자연이 이루는 질서의 본질” 이혜원,『현대시 깊이 읽기』, 월인, 2002, p.44. 이외에도 최승호의「공터」에 대한 해석의 깊이와 시각은 이 책을 참고할 수 있다.  
이다.

3.6.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국화 옆에서」전문

시인은 국화꽃에서 하늘의 울림을 듣는다. 무서리와 함께 피어난 노오란 꽃잎은 그 울림에 응답함이다. 그 모습이 비록 가냘프더라도 한 송이의 꽃에는 하늘의 소리에 응답하는 국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 메아리가, 그 떨림이 작더라도 그 소리는 하늘의 소리, 근원의 소리와 다르지 않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늘의 부름을 받아 그 소리에 응답함이다. 그 응답이 삶이다. 박정근,『중국적 사유의 원형-주역과 중용을 중심으로』, 살림, 2005, p.87.
이러한 해석은 감각의 실재와 경험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충분히 경청할 필요가 있다. 동일성과 차이에서 파생되는 사물의 차원이라든가, 생명의 현상을 보기 위해 새도록 잠들지 않은 시인의 정서와 심리, 그리고 무엇보다 한 송이 꽃이 피어나는 데는 전全 우주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관계적 사유 또한 마찬가지다.  

3.7.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 위에 곱돌탕관에 약이 끊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복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육미탕(六味湯)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끊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만년(萬年) 옛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손으로 고이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옛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
-백석,「탕약」전문

우리 문학사에서 백석 만큼 유별나게 미각에 집착했던 작가는 드물다. 백석은 시각과 청각을 비롯한 다양한 감각들을 활용하면서도, 특히 음식을 통해 미각과 후각에 독특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눈이 오는 배경 묘사를 시작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감각적 즐거움을 서술하고 있는 이 시는, 말미에서 감각(미각)의 정신적 차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가하면,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에는 미각과 후각이 어우러져 있다. 약이 끊는 소리와 하얀 약사발에 담긴 까만 탕약은 청각과 시각을 자극하며, 다른 무엇보다 까만 탕약에는 만년 옛적이 들어 있다. 역사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 백석은 “아득하니 까만” 빛깔로 탕약을 묘사하고 있다. 탕약이 아득한 옛날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약을 내는 사람들도 옛사람들과 더불어 존재한다. 탕약의 화자는 자신의 감각을 시공을 초월해 음식 한편, 서양의 전통에서 요리 기술은 연금술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 경우 연금술은 물질 속에 감추어진 빛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소래섭, 앞의 책, pp.152~153을 참조. 인용시「탕약」에 대한 해설은 이 책에 의존함.
혹은 약물을 준비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것으로 확장시킨다. 이때 음식과 미각 경험은 정신적 차원으로 상승되기 마련이다. 하여 탕약에서 느끼는 감각적 경험은 “즐거웁기도” 한 차원을 넘어서, “고요하고 맑은” 마음의 영역에 도달하고 있다.

3.8.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 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전문

이별의 아픔이 아닌, 사랑하는 이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이 시는 눈 내리는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는 주막에 앉아 소주를 마시며 아름다운 나타샤를 떠올리고는 그녀와 함께 누구도 없는 산속에 들어가 살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1연에서 화자인 나는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눈이 내린다고 말한다. 이런 비과학적(또는, 시적) 진술에서 우리는 사랑으로 충만한 화자의 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2연에서는 조사의 활용을 통한 상황과 감정의 변화가 돋보인다. 즉 사랑과 눈雪, 그리고 취기가 더해져 나는 이내 흰 당나귀를 타고 깊은 산속 마가리에 사는 환상을 꿈꾼다. 3연에서 나는 계속해서 환상의 공간에 머물러 그녀의 음성(환청)을 듣게 된다. 나의 청원에 그녀는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거라고 화답한다. 마지막 4연에 와서 비로소 아름다운 나타샤가 나에게 사랑 고백을 한다. 1연에 비해 역전이 되고 있다. 이 경우 당나귀 울음 소리는 더 이상의 슬픔이 아니라,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하는 노래에 해당한다. ‘눈’, ‘흰 당나귀’, ‘나타샤’ 등의 말에서 풍기는 순수하고 감미로운, 동화적/환상적/이국적인 느낌 또한 이 시를 읽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3.9.
계절을 잊은 눈비가
땀구멍마다 들어찬다
몸 안에 잠자던 운석이 눈을 뜬다
목탁 구멍 같은 뼈마디 사이로
이승이 밀려 나간다
구름들의 뒤 통로에
짓다 만 집 한 채 스스로 불탄다
마지막 입술이 한참 동안 떨린다
나부끼는 재(災)
누군가 텅 빈 문을 열고
타다 남은 햇살을 주워 담는다
뜻 없이 불러본 이름들이 마음보다 길게 늘어서
지나온 이승에서 즐겁게 눈물겹다
보이는 것들은 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된다
부를 수 없는 것들이 어느덧 새 이름을 얻는다
계절이 빠르게 바뀐다
숨을 쉬니 한 세상이 저만치
다른 상처에 다 닿았다
-강정,「아픔」전문  

3.10.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불러 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 낼 수 없는
―문태준,「누가 울고 간다」전문

3.11.
달뜨지 않은 밤에 나는
심천 미루나무 숲속에
슬픈 짐승처럼 쭈그리고 앉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타는 음성을
듣는다

원무(圓舞)를 그리며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간증의 불꽃은 삼경을 지나
더욱 간절한 몸부림으로 떤다

나는 살을 쥐어뜯으며
본향을 생각하다, 꿈에만 출항하는
영혼의 뱃고동 소리에
시선이 멎다

어차피 모래알처럼 부서질
너와 나는 일어나 길을 헤매이다,
깊이도 모를 바다의 숲속에
닻을 내린다
-김상환,「영혼의 닻」전문

3.12.
집은 조용하고 세상은 조용했다./독자는 책이 되고 여름밤은//책의 살아있는 마음 같았다./집은 고요하고 세상은 조용했다.//말은 책이 없는 양 말하여지지만,/독자는 지면 위에 몸을 굽히고,//굽히고 싶어하고, 무엇보다도 책이/진리인 학자이고 싶어하고, 그에게/여름밤은 생각의 완전함 같기를,/집은 고요하고 고요할 수밖에.//고요함은 의미의 일부, 마음의 일부,/그것은 지면에 다가가 차오른 완전함.//그리고 세상은 조용했다. 조용한 세상의 진리,/그 안에 다른 의미가 없는, 그것은 바로//조용함이며, 바로 여름이며 밤이며,/독자가 몸 굽히고 그 자리에 책읽기이다.
-W․스티븐스,「집은 조용하고 세상은 조용했다」전문

(원문) The House Was Quiet and the World Was Calm / Wallace Stevens

The house was quiet and the world was calm./The reader became the book; and summer night//Was like the conscious being of the book./The house was quiet and the world was calm.//The words were spoken as if there was no book,/Except that the reader leaned above the page,//Wanted to lean, wanted much most to be/The scholar to whom the book is true, to whom//The summer night is like a perfection of thought./The house was quiet because it had to be.//The quiet was part of the meaning, part of the mind:/The access of perfection to the page.//And the world was calm. The truth in a calm world,/In which there is no other meaning, itsel//Is calm, itself is summer and night, itself/Is the reader leaning late and reading there.

3.13.
▼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神)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서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을 한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두 눈으로 그 무엇인가를 보려고 애를 쓰지만 눈에 잡히는 것이란 속눈썹가에 매달려 떨리는 빛과 색채의 작은 덩어리들뿐이다. (알베르 까뮈,「티파사에서의 결혼」)

▼ 세상은 얼마나 황홀하고 감각적인가. 여름철 우리는 침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잠에서 깨어난다. 망사 커튼에 비치는 햇빛이 물질무늬를 만들어 내고, 빛을 받은 커튼은 바르르 떠는 듯 보인다. (다이앤 애커먼,『감각의 박물학』)

▼ 만약 한 사람의 지기를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로 물을 들이리라. 열흘에 한 빛깔씩 물들인다면, 50일만에 다섯가지 빛깔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를 따뜻한 봄볕에 쬐어 말린 뒤, 여린 아내를 시켜 백번 단련한 금침을 가지고서 내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여,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古玉으로 축을 만들어 아마득히 높은 산과 양양히 흘러가는 강물, 그 사이에다 이를 펼쳐 놓고 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있다가 날이 뉘엿해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이덕무,『耳目口心書』)

▼ 시인은 어린이의 상상력과 심리를 갖고 있는 인간이다. 시인이 세계로부터 받은 인상은 그가 어떤 위대한 이념에 사로잡혀 있는지에 상관없이 직접적이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세계를 묘사하지 않는다. 세계가 바로 그 자신이다. 나는 우리 인간들 모두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특별히 인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에 관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숙고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인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 예술과 학문의 영원한 테마다. 예술의 목적은 인간이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의연히 준비하게 하고, 인간이 죽음을 자신의 가장 깊숙한 내면에서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데 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封印된 時間-영화예술의 미학과 시학』)

4. 감각의 세계와 의미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예술을 예술답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 예술을 예술로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태도일까? 세계에 대해 갖게 되는 인간의 외경심과 성스러운 감정은 예술을 탄생시킨다. 예술은 인간이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얻은 세계의 감각과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일이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의 다리를 놓는 일이다. 예술은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연과 세계, 존재하는 것에 대해 명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다. 인간이 우주와 조응해 그것을 표현하는 행위로서 예술은 존재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이다. 김융희,『예술, 세계와의 주술적 소통』(책세상, 2000), pp.124~125 참조.
그 가운데 시는 주문呪文과도 같이 내면을 건드리는 힘 있는 말이다. 시는 생명의 요구이자 생활 세계의 표현이다. 막스 피카르트의 말처럼, 시가 더 깊고 어두운 하나의 생명을 내포한다면, 시의 감각과“이미지를 읽는다는 것은, 이미지를 읽는 자기를 읽고 자기 삶을 키우는 일” 문광훈, 앞의 책, p.237.  
에 다름아니다. 물질 이상의 무엇인가를 예술의 의미라고 부를 때, 그리고 그 의미가 우리 가슴에 심정적으로 전달되었을 때, 우리는 ‘감동적’이라고 말한다. 감각의 실재와 경험은 문학과 인간, 세계를 이해하는 요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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