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인문학 강좌 2강 장자가 말하는 자유 - 201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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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인문학 강좌 <고전 속 희망읽기> 2강 장자가 말하는 자유 - 201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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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통해 본 자유

엄진성(영남대)

1.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 존재인가?

장자는 동양철학 최초로 개인의 자유와 영혼의 문제를 다룬 학자이다. 그가 여기에 관심을 가진 까닭은 그를 둘러싼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2. 장자 철학의 출현 배경과 목적

장자가 사회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있었던 시기에 활동한 학자이다. 당시 철기농기구의 생산과 소를 이용한 농사법의 도입은 수확량을 최대 30%까지 끌어올렸다. 그것은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 및 물질적으로는 풍요로 이어졌지만, 잦은 겸병전쟁은 백성들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만들었다.

∴물질적인 풍요는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지만 때론 영혼의 빈곤을 불러오기도 한다.

2.1 장자가 살고 있던 송나라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했는데 당시 송나라는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라였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부패했고 통치 집단 내부에서는 권력 투쟁이 치열해 같은 편끼리 서로 죽이는 일이 빈번했으며, 백성들의 생활은 불안했다. 왜냐하면 형인 척성을 공격하여 권력을 찬탈한 언이 공이란 칭호를 버리고 스스로 왕이되어  송강왕으로 즉위하였는데 그의 폭정은 하나라의 걸왕과 상나라 주왕에 견주만 하여 송나라의 걸와 걸송으로 불리었다.
2.1.1 언의 폭정은 다시 올바른 지식인들로 하여금 그를 포기하게 만들었고 결국 언의 주위에는 감언이설을 일삼는 간신배들만 존재하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명예와 부를 쫒았으며 결국 그것은 왕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고 마침내 스스로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3. 우리는 무엇에 구속되어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하는가?

3.1 명예와 부를 쫒는 행위는 결국 자신을 훼손시킨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자유를 담보로 한 매우 손해 보는 거래이기 때문이다. 장자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이다. 이 때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백이는 도의의 명예를 지켜 수양산 래에 숨어살다 굶어 죽었고, 도척은 이익을 탐내다 동릉산위에서 죽었다. 이 두 사람이 죽은 이유는 다르지만 그 생명을 없애고 본성을 손상시켰다는 점에서 똑같다.장자 「변무」오늘날 세속의 군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신체를 위험하게 하며 목숨을 버려서라도 다른 것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데 어찌 슬픈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장자 「양왕」


3.1.1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우리가 외부의 대상(명예, 권력, 부)를 쫒아갈수록 우리는 점차 우리의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을 쫒는 동안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러움을 상실하고 말기 때문이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어버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항상 얻으려고 하지 잃어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에 대해 항상 미련을 가진다. 그것은 결국 지금 나를 힘들게 할 뿐이다. 현실에 대한 불만, 과거에 대한 미련은 결국 자기 자신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미아로 만들고 만다.

∴잃어버림과 얻음은 낮과 밤과 같이 항상 함께하는 것이다.

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蘷憐蚿, 蚿憐蛇, 蛇憐風 風憐目, 目憐心 心憐蘷 기는 지네를 부러워하고 지네는 뱀을 부러워하고 뱀은 바람을 부러워하고 바람은 눈을 부러워하고 눈은 마음을 부러워하고 마음은 기를 부러워한다.
기는 장자「추수」편에 나오는 가장아름다운 동물로써 발이 하나 밖에 없다. 기는 발이 없기 때문에 지네를 몹시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뱀은 거추장스런 발이 없어도 잘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뱀은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도 멀리 갈 수 있는 바람을 부러워했다. 바람은 가만히 있어도 어디든 가는 눈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눈은 보지 않고도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마음을 부러워했다. 그래서 마음에게 묻기를 ‘마음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무엇인가?’이에 마음은 전설상의 동물인 기라고 했다.    

5. 삼과 사의 합은 칠이다. 사와 삼의 합을 얼마인가?

朝三慕四 朝四慕三 大同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나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나 합은 같다.

원숭이에게 도토리 먹이를 줄 때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는 조삼모사나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주는 조사모삼이나 결국 그 합을 일곱 개로 같다. 이것을 대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조삼이냐 조사냐를 따지며 기쁨과 분노를 교차하고 있을 뿐이다. 조삼이든 조사든 명실(名實)이 바뀐 것은 없다. 다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정이 차이, 즉 희·노만 달리 사용될 뿐이다. 이것은 또한 인간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옳다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본래 한 얼굴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사물의 개별성을 고집하여 헛되이 지력을 소모한다.

쓸모없는 것이 가장 쓸모 있는 것이다.

6. 無用之有用 쓸모없는 것이 오히려 쓸모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에 구속되고 있는가?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차이에 구속된다.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고 있는가? 눈, 코, 입, 귀는 본디 하나임을 잊는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쓸모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나를 기르는 것이다. 재목으로 쓸모없는 나무는 비록 쓸모는 없지만 쓸모가 없기 때문에 제 수명을 다할 수 있으니, 쓸모없음이 쓸모 있음으로 변한 것이다.

장자가 산 속을 여행하다 가지와 잎이 무성한 거목을 보았다 벌목꾼은 가지와 잎이 무성한 거목을 둘러보기만 할 뿐 베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물으니 그 나무는 쓸모없는 나무임을 알았다. 산을 내려와 옛 친구 집으로 간 ‘장자’는 친구로부터 거위를 대접받는다. 친구에게는 두 마리의 거위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잘 울고 다른 한 마리는 잘 울지 못했다. 이 때 거위는 잘 울지 못해서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죽게 된 것이다.  

∴ 유용함과 무용함 사이에 머물며 비슷하지만 같지 않고, 이미 유용하지만 무용하고, 이미 총명하면서도 또 어리석어야 한다.

7.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장자는 ‘자기가 없고(無己), 공이 없으며(無功), 이름이 없는 자(無名)이 살아라.’고 말한다.  
자기가 없다는 것은 주관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절대화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 여기지 않아서 모든 것을 물에 따라 자연에 맡길 수 있는 것이다.

공이 없다는 것은 송나라 사람처럼 알묘조장(揠苗助長)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순리를 거스르면서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장자는 인위로 자연을 파멸시키지 말라. 고의로 천성을 망치지 말라. 본래의 자연스러운 덕을 명성 때문에 희생시키지 말아야 한다.

흐르는 물에는 사람이 비치치 않고, 잔잔하게 가라앉은 물이라야 사람이 비치고 각지 각색의 사물도 비추어진다. 물이 요동치는 것은 물의 자체적 성격이 아닌 외부의 요인 때문이다.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는 파장을 만들지만 그것은 결코 물 자체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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