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인문학 강좌 <인문학적 소양과 학업성취도> 3강 고전읽기와 인성교육 - 2014.6.12
고전읽기와 인성교육
2014년 6월 12(목)
▣ 왜 읽고 써야 하는가?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러시아 소설을 읽어 본 사람은 안다. 처음 백 쪽 정도까지 읽어 나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라스꼴리니코프인지 라꼴리스코니프인지 아무리 반복해서 외워도 제대로 기억하기가 어렵다. 그 길고도 낯선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지쳐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생각하며 읽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도 알 수 없는 그 무거운 주제들이 주는 중압감은 또 얼마나 우리를 주눅 들게 하고 지치게 했던가. 그러나 처음 도입부를 지나 도도한 장강 같은 줄거리의 흐름에 완전히 몸을 담그게 되면, 그 때부터는 밤이 새도록 책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도 우리는 기억한다.
오늘의 영상 매체는 시각과 청각에 직접 호소하며 모든 것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기 때문에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영상 매체는 모든 것을 속전속결로 해결 해 주기 때문에 사람을 지루하게 하지 않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익숙한 아이들은 무엇을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 한다. 요즘 아이들은 눈과 머리와 몸을 긴장하게 하는 긴 글 읽기를 견디지 못 한다. 이들은 독서 대신 컴퓨터를 검색한다. 이들은 정보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권태로움을 해소하며, 검색으로 얻은 대부분 정보는 취사선택의 과정 없이 일회용으로 소비한 후 그냥 배설해 버린다.
많은 학자들이 영상 매체에 길들여지면 상상력이 고갈되고 창의력이 급격히 저하된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영상매체가 활자매체를 압도하는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그 역기능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전 작품을 인내하며 읽고, 명시를 음미하며 암송하는 행위 등 활자매체를 이용한 지적인 훈련을 통해 지고한 정신의 희열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독서와 글쓰기는 상상력과 사고력의 지적 근육을 강화시켜 준다. 한 편의 완결된 글을 써 본 사람은 글을 쓰는 행위가 왜 뼈를 깎는 아픔이고, 그 고통 끝에 나온 작품이 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취감을 주는지를 안다. 한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제기된 문제와 수많은 정반합(正反合)의 내적 투쟁을 벌이며, 치열하게 변증법적인 지양(止揚)의 과정을 거쳐 본 사람만이 찬란한 정신의 성숙에 이를 수 있다.
일본이 43년 만에 실시한 초중학생 학력평가에서 TV와 인터넷을 즐기는 학생의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결과를 발표한 것은 별로 놀랍지 않다. 중국이 왜 학생들에게 공자와 맹자를 암기하게 하고, 프랑스 지식인들이 왜 전국적인 초고속 인터넷을 반대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상상력과 직관력, 창의력을 가진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이런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책읽기와 글쓰기를 생활화 하는 것이다.
▣ 창조적 아웃사이더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때마다 동네 악동들 몇이서 뒷산 잡목 숲 속에 비밀 본부를 만들곤 했다. 적절한 장소를 물색한 후 톱과 낫으로 나무의 밑둥치를 잘라내고 풀을 베어 냈다. 나뭇가지와 풀을 엮어 지붕을 만들고 몇이서 앉을 수 있게 땅을 고른 다음 바닥에는 가마니를 깔았다. 엉성한 천장 틈새로 보이는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눈부셨으며, 산 아래 마을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느껴졌다. 비좁은 공간이지만 그 곳엔 부모님의 잔소리나 성가신 심부름도 없고 숙제도 없었다. 거기에 앉으면 온갖 즐겁고 기발한 생각들만 떠올랐다. 배가 고프면 참외나 수박을 서리해서 먹기도 했다. 그 곳은 일탈이 주는 짜릿한 즐거움과 아웃사이더의 관조적 여유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유토피아였다.
아웃사이더는 내부자를 의미하는 인사이더와 구별되는 인간형으로, 국외자 또는 이단자를 뜻한다. 타의에 의해 어떤 집단에 동화되지 못하거나 배척되는 경우는 소극적, 수동적 아웃사이더이고, 소속 집단의 규칙이나 질서에서 스스로 벗어난 경우는 적극적, 능동적 아웃사이더이다. 악동들이 비밀 본부를 만든 것은 적극적 아웃사이더가 되기 위함이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콜린 윌슨은 그의 저서 ‘아웃사이더’에서 앙리 바르뷔스의 ‘지옥’, 카뮈의 ‘이방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에 나오는 작중 인물들과 니체, 반 고흐 같은 실제 인물들을 아웃사이더라는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이 아웃사이더들은 지루하고 불만족스러운 일상의 세계를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그들은 일상이 따분하게 되풀이되는 것은 고역이며 노예들에게나 알맞다고 느꼈다. 모든 위대한 시인이나 사상가들은 이 감정을 문학과 철학적 사색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아웃사이더들은 체제 안의 순응자인 인사이더들이 보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하려 하는 지배 질서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조롱했다. 능동적, 창조적 아웃사이더들은 인간성의 폭과 깊이를 넓혔고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이상향을 창조했다.
가정이란 과보호의 울타리, 한 치 틈도 없이 꽉 짜인 프로그램, 편향된 특정 이데올로기 안에 아이들을 가두어 두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린 시절에 객기와 일탈의 본능을 억압당하면 어른이 되었을 때 파괴적 아웃사이더로 변하기가 쉽다. 한 번 고삐가 풀리면 극단까지 가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회에 범람하는 맹목적인 증오심과 섬뜩한 눈빛의 아웃사이더들을 보라.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유연한 사람, 창조적 아웃사이더만이 자신과 주변을 객관화할 수 있다. 젊은 날의 폭 넓은 독서와 여행을 통한 생산적 일탈의 경험이 그래서 중요하다.
▣ 인문학 위기와 예체능교육
인문학의 위기와 예체능 과목 경시는 서로 닮은 점이 많다. 대학들이 주요 과목만을 비중 있게 반영하면서 예체능 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가 과거와는 엄청나게 달라지고 있다. 중간, 기말시험이 다가오면 예체능 과목을 꼭 잘 쳐야 하는가, 포기해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질문이 빗발친다. 대학으로 가는 과정에서 그 비중이 낮거나 미미하다면 안 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발상과 태도는 인문학의 위기와 너무 닮았다.
인문학 위기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근대로 들어선 이후 실용성을 최대의 가치로 삼으면서 인문학은 본격적으로 도외시되기 시작했다. 학문이 지나치게 순수 이론이나 관념에 치우칠 때 당장의 생산성을 중시하는 과학기술 시대의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기가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가 지배적인 환경에서는 학문이나 지식은 주어진 과제를 처리해 나가는 일종의 기술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목표를 달성하는데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는 학문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면 주어진 문제나 목표가 과연 옳은가하는 가치판단의 문제는 소홀하게 취급되거나 간과되기가 쉽다. 문제는 학문의 지나친 실용화와 기능화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측면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그 재앙적인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체능 과목의 경시도 마찬가지이다.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은 지식기반 사회에서 사활의 관건이 된다. 예술적 감각이 결여된 인간에게서 창의력을 기대할 수 없다. 학창시절 인문적 교양을 쌓고, 예체능 교육을 통해 풍부한 감성과 건강하고 건전한 몸과 마음을 만든 사람만이 나중에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오늘 우리 교육 현장에는 가슴 뭉클한 감동이나 창의력 배양 따위는 없고 암기와 모방과 등급만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학에 입학한 우리 학생들은 객관식 문제의 답을 골라내는 기능공적 실력은 초일류 수준이지만, 대학 문을 나설 때의 전문가적 실력은 형편없다.
학생들에게 예체능 과목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거나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시험에 관계없이 그 시간에는 그 과목을 즐길 수 있어야 하며, 시험을 칠 때는 시험 기간만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학교 또한 학생들이 마음껏 몰두하고 즐길 수 있는 수업모델과 평가방법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젊은 날 예체능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과 감상능력을 길러 놓지 않으면, 훗날 성인이 되어 꿈꾸던 바를 성취해도 삶은 공허하고 허망할 것이다.
▣ 진정성의 위기와 독서
전쟁이 일어나면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는 십대들이 일본과 중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다는 설문조사가 나왔다. 가짜 명품 시계 사건도 있었다. 20대의 허영과 사치, 도를 넘은 명품 소비 추세에 관한 보고서도 나왔다. 이 모든 문제들은 서로 이질적인 것 같지만 뿌리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내면의 아름다움보다는 겉치레, 실력보다는 간판, 남과의 비교를 통한 상대적인 우월감과 행복감의 확인, 고통이 수반되는 명분이나 가치보다는 일시적인 쾌락과 안락의 추구,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내 가족만 무사하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극단적인 가족이기주의 등이 그 모든 것들을 자라나게 하는 공통의 토양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목격되는 진실성과 치열함의 결여는 당면한 안보나 경제 관련 현안보다 국가 장래를 위해 훨씬 더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테베를 휩쓸고 있는 역병은 선왕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자를 벌해야 없어진다는 신탁에 따라 살해자 수사가 진행된다.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사건의 전모를 짐작하고 오이디푸스가 더 이상 비밀을 캐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파멸을 뻔히 알면서도 이오카스테의 만류를 뿌리치고 출생의 비밀과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 한 자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멀게 한 후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방랑의 길을 떠난다. 인간 고뇌의 극한을 묘사하며 비극적 아름다움을 완성시킨 소포클레스의 대표작 ‘오이디푸스 왕’의 줄거리이다.
이 작품이 희랍 비극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고전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치밀한 구성과 원숙한 기법 때문이 아니다.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처참한 파멸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오이디푸스의 확고한 의지 때문이다. 그는 파멸이 분명하게 예견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적당한 타협을 거부하고 모든 것을 밝힘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비극적 주인공이 되었다. 이와 같은 인물의 창조가 이 작품을 불후의 고전으로 만든 것이다.
얄궂은 비극적 운명에 결연히 맞서는 오이디푸스의 고귀한 용기와 치열함을 읽으며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진정성의 위기와 적당주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어떤 것을 진지하게 끝까지 추구하지 않는다. 조금 진행하다 여의치 않으면 아무 생각 없이 포기해 버린다. 그러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로 간주되기도 한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총체적인 진실성의 위기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은 ‘읽고, 생각하며, 기록하기의 생활화’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독서와 사색보다 사람을 더 진실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 가상세계에 갇힌 아이들
컴퓨터 때문에 심각한 위기를 느낀다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이 컴퓨터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주변 어느 누구의 말도 귀에 들리지 않고, 그 어떤 충고의 말이나 꾸중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밥은 굶어도 괜찮지만 일정 시간 컴퓨터 앞에서 보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아이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무엇을 좋아하는 정도가 도를 넘어 그것이 만든 가상세계로 현실을 대체해 버리고 스스로 그 안에 갇히는 사람들을 일본어로 「오타쿠」라고 한다. 그들은 구체적인 삶의 현실은 뒤로 한 채 만화, 비디오게임, 아이돌 스타, 인형 모으기, TV보기 등과 같은 특정 생활에 병적으로 집착하며, 자신만의 가상세계에 몰두한다.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프랑스 기자 에티엔 바랄이 쓴 「오타쿠-가상세계의 아이들」은 컴퓨터 문제로 고민하는 우리 부모들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저자는「공부하라, 일하라, 소비하라」란 절대명령이 일본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표면적인 안락함에도 불구하고 냉혹한 경쟁에 직면해야 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어른들의 생산사회에 들어가는 대신 가상의 세계나 유년의 놀이문화에 남기를 택한다고 분석한다. 심리적 퇴화 또는 자폐 증상에 가까운 오타쿠는 일본 사회의 모순이 빚어낸 희생자이자 이탈자라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을 앞세우는 일본정신과 억압적인 학교 교육에 학대당한 젊은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생존방식이라는 것이다. 「현실보다 상상의 세계가 더 좋다. 나를 인정해 주지도 않는 사회의 규약들은 지켜서 무엇 하나.」라는 한 오타쿠의 외침은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저자는 「튀어나온 못은 두들겨야 한다.」라는 일본 속담을 상기시키며 「튀어나온 못」의 고뇌와 고통은 외면한 채 그냥 돌출부를 두드려 박아 넣으려는 피상적인 조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도 이제 책임 있는 지식인들이 나서서 차근차근 설명하며 아이들을 바깥 세계로 나오게 해야 한다. 인류 역사에서 디지털 세계가 새롭게 솟아오른 빙산이라면 그 빙산을 바치고 있는 밑둥치는 아날로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납득시켜야 한다. 아날로그적인 교양이 전제될 때, 디지털 영역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키고, 고전작품을 읽으며 인문적 교양을 쌓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컴퓨터 때문에 무조건 화를 내거나, 충분한 설명 없이 컴퓨터를 금지시키는 등의 조치는 문제 해결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그들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억압과 맹목적인 강요로 튀어나온 못을 임시방편으로 박아 넣으려고만 한다면, 아이들은 더욱 말문을 닫고 자기만의 폐쇄된 세계로 들어가 버리는 경향이 있다. 어른이 진실한 마음으로 먼저 가슴을 열어야 아이도 마음의 문을 열 것이다.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마음
최근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있는 울진 소광리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한 밤, 소음과 불빛이 차단된 심산유곡의 고요와 적막을 나직이 흔드는 솔바람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두시였다. 문을 열고 뜰에 나서니 크고 작은 별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어떤 불꽃놀이보다도 찬란한 태고의 신비를 품은 별빛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 거대한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을 구성하는 별들이 사과 알보다 굵게 보였다. 하늘을 가로질러 흐르는 젖빛 은하수도 볼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대자연이 주는 장엄한 신비와 경외감에 온몸 가득 전율을 느꼈다.
「바위산 높고 높아 그 깊이를 알 수 없네/그 위에 높은 누각이 있어 하늘 끝에 닿았네/북두칠성으로 은하수 길어다 차를 달이는 밤/차 끊는 연기가 달의 계수나무를 감싸네」한국 선시 가운데 가장 유려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고려시대 진각 혜심 스님의 시다. 솔향기 가득한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와 밤의 적막을 깨는 산새 소리는 스님의 또 다른 선시를 떠올리게 했다.「바람은 쓸쓸하게 솔가지를 흔들고/물은 잔잔하게 돌부리를 적시네/다시금 저 하늘에는 새벽 달 지고/두견새 울음소리에 산빛 더욱 깊어가네」초여름 밤의 산속 냉기를 따뜻하게 덥혀주는 별빛과 달빛은 나그네로 하여금 밑도 끝도 없는 상념에 잠기게 했다.
2003년 8월 뉴욕을 비롯한 미국 7개 주와 캐나다 온타리오 등 북미 북동부 지역에 사상 초유의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그 엄청난 재난 속에서 뉴욕시민의 눈에 은하수가 보였다. 뉴욕 시민들은 그들이 평소 ‘별들의 지붕’ 아래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은 것이다. 그 대재난 속에서 많은 뉴욕시민들은 진정한 재난 중의 하나는 별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어 단어 재난(disaster)은 점성술과 관련이 있으며, ‘별(astro)'이 ’없는(dis)' 상태(그래서 어떤 불길함이 예견된 상태)에서 유래되었다. 머리 위 별의 존재를 잊고 살며, 대자연의 경이를 가슴으로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별 죄의식 없이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사고를 할 수 있고, 별 생각 없이 나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과 아픔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둔해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세월호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그 슬픔을 항상 기억하며 살 수는 없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란 말은 맞다. 그러나 ‘신이 인간에게 망각을 선물한 이유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라는 말을 꼭 기억해야 한다. 쉽게 활활 타오르다가 너무도 쉽게 꺼져버리는 성향을 가진 우리는 모든 것을 너무 철저하게 깡그리 잊어버리는, 대책 없는 망각을 경계해야 한다.
지방선거도 끝났다. 세월호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도 이쯤서 정리되는 것이 마땅하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확실한 안전망을 구축하는데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 돈, 경제, 정치, 생산성, 효율성 등은 우리 삶을 더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사회에는 인간의 생명과 가치보다는 돈과 권력, 생산성과 이윤 그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인간의 생명과 이웃의 삶을 경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수많은 참사가 계속 일어났다. 헛된 욕망과 이기심에 편법과 불법을 짓이겨 넣어 구워낸 벽돌로 끝없이 탐욕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신이 그 탑을 무너뜨리기 전에 스스로 그 탑을 허물어야 한다.
우리 모두 주기적으로 별빛, 달빛을 맞으며 자연의 섭리와 내 이웃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별빛, 달빛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음미하며, 청량한 솔바람으로 머리를 헹구어 보면 우리의 탐욕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윤동주의 ‘서시’를 머리와 가슴으로 다시 읽어보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할 줄 아는 심성을 회복하자. 그 섬세한 감성,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과 배려의 마음이 이 땅에 가득할 때, 윤리와 양심의 침몰은 중단될 것이다.
▣ 생산적 반복 학습과 창의적 책읽기
대부분 학생들은 공부한 시간과 학습량에 비례하여 성적 향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공부를 해 본 사람은 안다. 어떤 과목은 아무리 반복하며 다져도 성적 향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부한 만큼 반드시 성과가 보장된다면 밤을 새워도 행복해 할 수험생이 많을 것이다. 교과서를 수없이 반복해서 읽고 문제집을 아무리 여러 권 풀어 보아도 기대하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때 수험생은 한없이 피곤하고 힘이 빠진다. 그로 인한 절망감과 무력감은 결국 모든 의욕을 상실하게 한다. 교과서를 읽고 문제집을 풀 때마다 조금이라도 발전할 수 있는 학습법은 없을까? 생산적인 책읽기란 과연 무엇인가? 책읽기와 글쓰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묘책은 없을까?
◇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이유
일반적으로 한 번 틀린 문제는 거듭 틀리기가 쉽고 처음에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단원은 두 번째 볼 때도 대충 넘어가기가 쉽다. 또한 처음 공부할 때 하기 싫은 단원은 계속해서 하기 싫은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따라서 성적 향상이 없거나 느린 과목에 대해서는 무턱대고 반복 할 것이 아니라 그 과목에 대한 자신의 학습 성향을 면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배운 내용을 복습할 때 스스로에게 다음 질문을 해보면 도움이 된다. 첫째, 이미 알고 있는 것 외에 달리 짚어보고 생각해 볼 내용은 없는가? 그 단원을 다양하게 적용한 응용문제와 다른 단원과 결합한 통합 문제를 풀어보면 자신의 부족한 점이나 취약점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둘째, 다시 보아도 왜 이 단원은 계속해서 하기가 싫은가? 하기 싫기 때문에 다른 것부터 보고 나중에 보겠다며 계속 미루지는 않았는가? 이런 경우는 만사를 제쳐놓고 이것부터 뿌리 뽑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무엇이든 한 번 정성 들여 이해하고 나면 다음부터는 훨씬 쉬워진다. 셋째, 어떤 특정 단원을 계속해서 틀리면 그 단원과 관련된 문제만 나오면 위축되고 평소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자신의 판단력과 능력을 신뢰하면서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을 확신이 설 때까지 풀어보며 강한 근성을 기른다. 이 때 어려운 문제보다는 쉬운 문제를 반복해서 풀어보는 것이 더 좋다.
◇ 생산적인 학습
교과서나 참고서를 공부할 때 중요 부분에 밑줄을 긋고, 수업 중에 듣는 보충 내용을 여백에 빽빽하게 적는 학생들이 많다. 복습할 때 쉽게 요점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에 무엇을 적거나 밑줄을 치며 표시하는 행위가 실제로는 심화학습을 방해하고 피상적인 복습에 머물게 할 위험성이 있다. 책에 많이 적고 다양한 표시를 해두면 다시 읽을 때 밑줄 친 내용이나 필기한 내용 이상을 생각하지 않게 되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진전시키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책에 아무 표시도 하지 않고 깨끗하게 비워두는 것이 좋은가?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을 상대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 보았다. 한 집단의 학생들에게는 동일 과목 교과서를 두 권씩 준비하게 했다. 한 권은 수업 중에 마음껏 적어 넣고 표시를 하게 했다. 그런 다음 복습을 할 때 처음에는 선생님의 설명을 적은 책으로 공부하고, 그 다음에는 아무 것도 적지 않은 책을 읽으며 앞서 적었던 내용을 상기하게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 다시 한 번 깨끗한 책을 읽으며 교과 내용을 다른 관점에서 다양하게 생각하며 질문을 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교과 내용과 관련된 문제를 풀게 했다. 문제풀이 후 확실히 모르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틀리게 된 과정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틀린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게 했다. 그런 다음 다시 한 번 교과서를 읽고 최종적으로 정리하게 했다. 실험에 참가한 대부분 학생들이 그 단원에 대해 완전학습이 이루어졌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영어 책으로 이 방법을 적용해 보면 그 효과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 권에는 모르는 단어의 뜻을 책에다 바로 적고, 다른 한 권은 아무 것도 적지 않고 깨끗하게 비워 두게 한다. 먼저 단어 뜻을 적어 놓은 책으로 공부한 후, 아무 것도 적지 않은 책을 다시 읽으며 단어의 뜻이 다 생각나는지 확인해 보게 한다. 국어나 사회 과목에서도 이 방법을 적용하면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수학이나 과학 과목에서 어떤 단원이 반복적으로 틀리는 경우, 그냥 문제를 많이 풀어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처음 접하는 자세로 그 단원의 기본 개념과 원리를 천천히 오래 생각하고 음미해야 한다.
▶ 독해력 배양
수능시험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논리 공부를 하지 않으면 언어영역과 논술고사에서 고득점을 할 수 없다는 점이 지나치게 강조되었다. 그러다 보니 참고서와 문제집에는 논리적 오류를 찾아내는 문제가 많이 실리게 되었다. 그 때부터 독서와 논술을 지도하는 각종 학습지와 참고서는 분석적 책읽기를 부추겼다.
문학 작품을 접할 때 그 작품의 주제, 시대적 배경, 작품의 문학사적 의미 등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특히 시는 화자의 정서, 태도, 각 시어의 함축적 의미 등을 몸과 마음으로 직접 공감하며 감상해야 한다. 소설이든 시든 화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 상황에 깊이 공감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독서를 해야 한다. 수능과 논술시험에서 고득점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책을 읽어 독해력을 배양해야 한다. 주어진 글을 진정으로 공감하며, 온몸으로 감동을 느끼면서 읽는 습관으로 상상력과 직관력을 길러야 한다. 창의적인 사고력은 독서를 통해서 배양된다.
▶ 읽고 요약하는 훈련
비문학은 반드시 읽고 요약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글을 읽을 때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평소 글을 읽을 때 먼저 전체를 통독하고 그런 다음 문단별로 핵심 문장을 찾아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글의 전개방법, 문단 간의 관계, 접속어 등에 유의해야 한다. 언어 영역 고득점을 위해서는 읽고 요약하며 주제와 중심 내용을 찾는 훈련을 해야 한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느낌이나 견해보다는 자습서나 해설문의 내용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는 잘못된 학습방법이다. 자습서나 해설을 보기 전에 먼저 자신의 느낌이 어떤 지를 중시하는 습관을 가져야한다. 자신의 생각과 차이가 날 때는 그 이유를 따져보고 그래도 납득이 되지 않으면 선생님께 질문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다.
▶ 분석의 궁극적 목적은 종합
글 전체를 온몸으로 느끼며, 줄거리에 젖어드는 독서를 해야 예민한 언어감각이 개발된다. 그런 다음 여러 관점에서 분석하고 다시 통합하는 훈련을 해야 응용 가능한 논리력과 추리력 등을 기를 수 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없으면 외국어 영역은 물론이고 나아가 사회탐구, 과학탐구 문제 풀이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 많이 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균형 잡힌 다독과 정독을 통해 독해력과 탄탄한 어휘 실력을 얻을 수 있다. 참고서에 실린 문제를 분석하는 문제풀이 위주의 학습으로는 다양한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가 없다. 또한 책을 읽을 때는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많이 읽으면 언어와 논술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들이 동시에 좋아진다. 고3 수험생들도 무조건 문제를 많이 풀기 보다는 한 달에 한 권 정도는 고전 작품을 읽어보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기본에 충실하면 문제풀이 기술은 보다 쉽게,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다.
▶ 적절한 속도로 읽어야
글을 천천히 읽는다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빨리 읽는다고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빠른 읽기는 둘 다 문제가 있다. 글은 적절한 속도로 읽을 때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관계가 보다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그 글이 의도하는 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속독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정독을 강조하여 느리게 읽는 것도 문제가 된다. 글의 종류에 따라 적절하게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은 시행착오를 통해 배양된다.
▶ 사전을 활용하라
책을 읽을 때 늘 국어사전과 옥편을 곁에 두고 새로운 어휘를 만나면 즉시 찾아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글을 읽는 과정에서 독서를 중단하고 사전을 찾을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면 책읽기의 즐거움이 크게 줄어든다. 한 편을 다 읽고 난 뒤 기억해 둔 단어를 찾아보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영어사전을 활용하지 않으면 영어 실력이 향상되지 않듯이 국어사전을 활용하지 않으면 언어영역 고득점은 기대하기 어렵다.
◇ 형광펜과 독서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을 때 형광펜으로 주요 내용에 밑줄을 친다. 다음에 다시 볼 때 전부 다 읽지 않고도 그 부분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형광펜을 이용하는 독서의 생산성에 대해 세계 여러 대학에서 연구와 토론을 했다. 형광펜은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독서에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놓으면 다음 읽을 때도 그 부분만 다시 보게 되어 처음 읽을 때 놓치게 된 주요 내용을 거듭 놓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형광펜으로 밑줄을 쳐 두면 다시 읽을 때 처음에 받았던 느낌이나 생각이 그대로 떠오르기가 쉽고 새로운 생각을 진전시키기가 어려운 경향이 있다. 따라서 문학 작품이나 시집은 아무 표시를 하지 않고 읽는 것이 직관력이나 상상력의 배양을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나 내용을 깊이 있게 음미하고 재해석하기보다는 주요 정보를 단순히 반복해서 암기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면 형광펜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시각적 효과를 살려 핵심 내용을 눈에 확 들어오게 표시해 두면 단순히 반복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형광펜을 활용하게 하는 사람이 많다. 시각적인 효과를 이용하여 무엇을 유형화하고 도식화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광펜이 모든 경우에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형광펜 사용은 획일적이고 조건반사적인 사고 습관을 형성하게 할 가능성이 높으며, 깊이 있는 독서보다는 피상적인 책읽기에 빠지게 할 위험성이 있다.
◇ 젊은날의 독서
어떤 즐거움이든 즐거움 자체가 비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즐거움 그 자체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즐거움 가운데는 지각 있는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지적 즐거움이 가장 만족스럽고 가장 지속적인 기쁨이라는 사실을 남보다 일찍 깨닫는 사람이 많은 것을 성취한다. 지적 즐거움을 위해 젊은 날 독서하는 습관을 몸에 배도록 노력해야 한다.
젊은 날의 독서란 저수지에 물을 가두는 것과 같다. 장마철에는 이 골 저 골에서 많은 물이 흘러 들어와 저수지를 가득 채워야 한다. 흙탕물이라도 상관없다. 세월과 더불어 정화되기 때문이다. 여름날에 가득 채워 놓으면, 가을이 되면 스스로 깨끗해져서 맑은 물이 된다. 이 때 수로를 따라 나오는 물은 여름날의 그 흙탕물이 아니다. 그 호수만이 가지는 독특한 향기와 깊이를 가지는 물이 된다. 젊은 날 많은 책을 읽어 두면 그 내용은 세월과 더불어 독특한 나의 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 때 나의 입이나 글을 통해 표현되는 내용은 나만의 개성과 깊이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된다.
◇ 논술 실력 향상을 위한 학습법
논술 실력을 기르기 위한 학습 방법은 구양수의 삼다(三多)로 압축할 수 있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말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논술은 암기하고 있는 지식을 단순하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논술은 우리의 삶 자체와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학생의 정신적 성장 과정을 반영한다.
논술을 생활화하기 위해서는 첫째, 학업에 열중하여 교과서적인 기본에 충실한다. 모든 논술 문제의 출발점은 교과 내용이다. 교과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 논술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둘째,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 독서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함으로써 깊이 있는 사고력과 창의력을 배양한다. 경험의 폭이 넓어질수록 논술이 요구하는 포괄적인 사고력은 성장한다. 경험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직접 체험뿐만 아니라. 간접체험도 필요하다. 간접 체험 중에는 독서가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고 사고력을 향상시켜 주기 때문에 가장 좋다. 셋째, 일기를 쓰자. 글은 직접 쓰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진보하는 길이다. 논술문을 자주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덜 부담스러우면서도 사고력과 문장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일기를 꼭 쓰도록 노력해 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히 쓰는 것이다. 넷째, 신문과 잡지를 읽어야 한다. 신문과 잡지를 읽음으로써 현실의 다양한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고, 다양한 현안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늘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게 된다. 다섯째, 자기 논리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검증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논술문은 객관성을 가져야 하는데, 객관성은 정당한 논거와 논증의 절차를 거쳐 확립된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에 일반적인 통념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사고 훈련, 잘못된 논리를 정당한 방향으로 끌어갈 수 있는 지적 훈련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