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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차 역사문화기행 충청북도 충주 / 2020년 03월 14일(土)
제171차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역사문화기행

▶연간주제 : 역사 속 큰 고을


▶날짜 : 2020년 3월 14일(土)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충렬사 및 단호사, 충주 제금당 및 청녕헌, 종댕이 길
▶집결 : 남문시장 부근 대한내과 앞
▶차량 : 45인승 최신형 버스
▶참가비 : 30,000원(점심포함)

▶일정
08:00 출발
08:10 두류네거리 국민은행 앞 경유
08:20 성서 홈플러스 횡단보도 앞 경유

10:30 임충민공충렬사
      -임경업 장군 이야기와 유물전시관(추련도) 및 충렬사비
11:10 이동

11:15 단호사
      - 보물로 지정된 단호사 철불
11:40 이동

12:00 점심식사
13:00 도보이동

13:10 충주 청녕헌 및 제금당
      - 충주 고을의 관아
14:00 이동

14:30 충주 종댕이길
      - 충주호를 보며 3.9km 종댕이길 걷기
16:30 출발 및 이동

19:00 대구 도착

●임충민공충렬사(사적 제189호)

충민공 임경업(1594∼1646)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숙종 23년(1679)에 사당을 세웠고, 1706년에 장군에게 충민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영조 3년(1727)에는 사당 이름을 충렬사라 했다. 임경업 장군은 선조 27년(1594) 충주에서 태어나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병자호란 때 백마산성과 의주성을 다시 쌓아 국방을 강화하는 등 나라에 이바지한 바가 컸다. 명나라를 숭상하던 장군은 인조 30년(1642) 명나라가 청나라에게 위협을 받게되자 명군과 협력해 청에 대항하고자 했으나 계획이 탄로나 청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청나라는 장군에게 여러 제의를 하면서 포섭하려 했으나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후 1646년 국내의 ‘심기원의 모반 사건’에 억울하게 연관되어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피살되었다. 현재 충렬사에는 장군이 사용했던 유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사당 앞 왼쪽에는 장군 부인의 곧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부인완산이씨 정렬비’가 있다.

◈충주충렬사비(유형문화재 제272호) : 충북 충주시 단월동 385-1
현재 충렬사 경내에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는데  비신 앞뒤 면에 총 1,420 여자가 새겨져 있다. 전면 상단에 좌행으로'어제달천충렬사비(御製達川忠烈祠碑)'라 전각하였는데 비제 다음 바로 본문을 쓰고 끝에 이 비문의 서자와 전자를  쓴사람을 밝히고 있다. 자헌대부 예조판서겸 직제학 이병모가 글을 쓰고 이조판서 윤동섬이 전자를 썼다.

◈임경업추련도(유형문화재 제300호) : 충북 충주시 단월동 385-1
추련도(秋蓮刀)는 임경업 장군의 보검으로 용천검과 추련도가 있었는데 용천검은 전쟁 시 직접 쓰던 검이었으나 6.25때 분실되었고 한다. 추련도가 남아 있는 단검이 유일한 유물로 평상시 보호용으로 애용한 보검으로 알려져 있으나 관련된 문헌은 남아있지 않다. 현재 충렬사 유물전시관에 전시하고 있으며 칼과 칼집 모두 양호한 상태이다. 도신은 철, 손잡이와 칼집은 목재, 목재를 고정시키는 장식은 황동과 동으로 되어 있다. 또한 칼 코 등을 얇은 철판으로 제작도어 있으며, 그 위에 주석·납으로 합금하여 도금하였다. 도신 좌우측면에 명문이 남아 있다. 보관함은 후대에 제작한 것이다. 추련도라는 칼의 이름은 이 검에 새겨진 싯귀에서 따온 것이다. 추련(秋蓮), 즉 가을 연꽃은 다른 연꽃이 피지 않을 때 의연하게 핀 꽃 즉 지조가 있는 대장부를 상징한다고 본다. 2005년 7월 15일부터 동년 9월 9일까지 보존처리를 실시하여 보존상태가 양호한 장시도이다. 이 추련도 양날에는 다음과 같은 검명시(劒銘詩) 28자가 새겨져 있다. “時呼 時來 否在來 一生一死 都在筵 平生 丈夫 報國心 三尺 秋蓮 磨十年” 시절이여 때는 다시 오지 않나니 한번 태어나고 한번 죽는 것이 모두 여기 있도다. 대장부 한평생 조국을 위한 마음뿐이니, 석자 추련검을 십년동안 갈고 갈았도다. 이 추련도는 임경업(林慶業, 1594∼1646) 장군이 애용하였다고 전해지는 보검으로 역사적, 기술사적으로 가치가 매우 큰 유품이며 보검의 상태 또한 양호하여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도신에는 명문이 있어 문화재로서 지정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충주단호사철조여래좌상(보물 제512호)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은 단호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철불좌상이다. 단호사는 창건연대를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때 중건하여 약사(藥寺)라 하였고, 1954년에 단호사로 이름을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가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머리 가운데에는 고려시대 불상에서 자주 보이는 반달 모양을 표현하였다. 긴 타원형의 얼굴에는 눈·코·입이 단아하게 묘사되었으며 두 귀는 길게 표현되고 목에는 3개의 주름이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다소 두꺼운 편이고 옷주름은 간략한 몇 개의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가슴에 묘사된 띠매듭은 고려말 조선초부터 나타나는 수평적인 처리에 근접하고 있다. 좁고 둥근 어깨와 평평한 가슴의 상체는 4각형의 각진 모습이다. 하체는 양 발을 무릎 위에 얹어 발바닥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며 무릎에 표현된 평행한 주름은 상당히 형식적이다. 얼굴부분의 세부 표현기법과 머리에 나타난 반달 모양 등은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으며, 여기에 도식적이고 특이한 옷주름 처리, 각진 상체 표현 등 지방색이 더해진 작품이다.

◈충주단호사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69호) : 충북 충주시 단월동 455
단호사 대웅전 앞뜰에 자리한 석탑으로, 현재의 자리가 원래의 터로 보이며, 1층 기단 위에 탑신부가 놓여 있다.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는데, 일부가 약가 부서져 있다. 탑신부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1층 몸돌은 제법 높직하며, 4층 몸돌의 일부로 보이는 석재가 놓여 있어 5층탑이었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각 지붕돌은 두껍고 투박한 모습으로 경사면이 급하게 처리되었고, 밑면에는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충주 지방의 탑들이 대개 산 위에 놓여 있는 것에 비해, 이 탑은 평지에 서 있어 눈길을 끈다. 규모는 작으나 격식을 충실히 갖춘 안정감이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과 지붕돌의 모습 등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충주 청녕헌 및 제금당

◈충주청녕헌(유형문화재 제66호) : 충북 충주시 성내동 232-2
이 건물은 충주목 동헌으로, 당시 충주 목사가 이곳에서 집무를 보던 곳이다. 조선 고종 7년(1870) 화재로 타버린 것을 같은 해 조병로가 다시 세웠다고 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중원군 청사로 개조하여 사용하다가 1983년 군청 자리를 옮기면서 원형으로 복원하였다. 앞면 7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 오른쪽 끝 1칸은 마루방, 대청 왼쪽 2칸은 온돌방, 왼쪽 끝 1칸은 누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충주제금당(유형문화재 제67호) : 충북 충주시 성내동 232-2
조선 초기 관아건물로, 귀빈들을 맞이하던 영빈관으로도 사용했던 건물이다. 고종 7년(1870) 청녕헌과 함께 불에 타버린 것을 같은 해 충주목사 조병로가 다시 지었다. 그동안 중원군수 집무실로 사용하다가 1983년 원형을 살려 복원하였다.  앞면 7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새날개 모양으로 장식된 익공양식으로 지었다. 가운데 2칸은 대청, 오른쪽 2칸과 왼쪽 3칸은 온돌방과 마루방으로 꾸몄다.

◈충주축성사적비(유형문화재 제68호) : 충북 충주시 성내동 232-2
사적비는 어떤 사건이나 사업에 관련된 사실이나 자취를 기록한 비로, 이 비는 충주읍성을 수리·복원한 사실에 관해 적고 있다. 형태는 길쭉한 직사각형의 비몸 위에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비몸에는 성의 수리에 관한 내용들을 새겨 넣었다. 비문에는 조선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후 성과 군용기구 등을 수선하였고,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고종 6년(1869)에 전면적인 수리를 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종댕이길

종댕이길은 삼면이 호수에 둘러싸인 심항산(385m)을 휘도는 길이다. 종댕이(宗堂)라는 말은 인근 상종ㆍ하종 마을의 옛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충청도 사투리다. 심항산을 종댕이산이라고도 불렀다. 종댕이길은 3코스로 나뉘어 있는데 출발점은 모두 마즈막재다. 대부분 사람들이 마즈막재에서 출발해 심항산을 휘돌아 마즈막재로 돌아오는 1코스(7.3㎞)를 찾는데 느릿느릿 걸음으로 3시간이면 넉넉하다. 2코스(9.1㎞)는 심항산을 거쳐 충주댐물문화관, 3코스(6.1㎞)는 도로변 덱을 따라 충주댐물문화관까지 걷는 길이다. 코스에 구애받지 않고 심항산을 휘도는 호수길(3.8㎞)만 걸어도 좋은데 1시간 반 정도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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