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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가을호 (통권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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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시각과 문화
2013년 가을호 (통권 33호)
사단법인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차례

권두칼럼
청맹을 면하는 길은 한자 공부뿐 _ 이석규

Pops English
What a wonderful world - Eva Cassidy _ 김창연

명시와 명문
勸學文(권학문)  이석규 역

서평
플루타르크 영웅전 _ 이석규 편집

우리가 답사한 유적

여주를 다녀와서  _ 이진우
답사 사행시

장애인의 장애극복기
나의 지식과 경험을 장애인들의 권익을 위해 _ 조성민

생활단상
흔들리지 않는 촛불이 어디 있으랴 _ 강구연

문화원 소식



권두칼럼
청맹을 면하는 길은 한자 공부뿐

  이석규(본원 운영위원)

  
한자를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과 교육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오랫동안 대립해 왔다. 한자를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가 오랫동안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었던 결과로 한자어가 국어 낱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므로 정상적인 어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한자 교육은 당연하다는 논거에서 출발한 것으로, 극소수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고, 한자 교육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한글만으로도 의사 소통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자 말고도 해야 할 교육이 많은데 어렵고 힘든 남의 문자 교육에 장구한 시간과 많은 노력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는 논거에서 출발한 것으로,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전자는 사실에 입각한 주장이며 후자는 현실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전자는 현실을 인정한 주장이고 후자는 현실을 부정한 주장이다. 전자는 이성적인 주장이며 후자는 감정적인 주장이다. 전자는 자성적인 주장이고 후자는 자기적(自欺的)인 주장이다. 전자는 선도하는 언설이고 후자는 오도하는 언설이다. 전자는 내실 지향적이며 후자는 외식 조장적이다.
  친목 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일이나 연예인의 인기 순위를 가리는 일 등은 종다수로 결정하는 것이 타당할지 모르나, 한자를 교육할 것이냐 하지 말 것이냐와 같은 학문적인 문제는 여론이나 취향이나 정치적인 논리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정부(正否)와 당부(當否)를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 여론에 따라 경솔하게 결정한 정책으로 한자 교육을 폐지한 결과로 어문 생활에 초래한 부정적인 영향은 한 마디로 문화 수준 저하라고 할 수 있는바, 그 몇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말을 이미지로만 받아들인다: 단어를 의미로 이해할 수 없으므로 이미지로만 이해한다. 예컨대, ‘보험(保險)’이라고 하면, ‘위험에서 보호해 줌’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고, 매월 얼마씩 불입했다가 몇 년 후에 거액을 찾거나, 사고가 났을 경우에 목돈을 받는다는 이미지가 전부이다. 또, ‘방송(放送)’이라고 하면, ‘석방’과 같은 의미의 말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리모컨을 조작하면 음악이 들린다든지 일기도가 보인다든지 유명 연예인의 얼굴이 나온다든지 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이런 것은 방송의 의미가 아니고 방송과 관련된 이미지일 뿐인데, 이것을 의미라고 생각하고, 누가 ‘방송’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설명은 하지 못하면서도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거나 불쾌함을 느낄 것이다.
  둘째, 단어의 의미를 일부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단어의 의미를 일부만 짐작하고는 그것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다시 더 알려고 들지 않는다. 예컨대, ‘다양하다’라고 하면, ‘모양이 여러 가지이다’라고는 도무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많다’라는 뜻밖에 생각할 수 없고, ‘대통령(大統領)’이라고 하면, ‘크다’는 ‘대(大)’의 뜻만 생각하고 ‘통령’은 ‘대’의 의미를 강조해 주는 무의미한 장식에 불과하다. ‘어휘’라고 하면, ‘말’이라는 ‘어(語)’의 뜻만 알면 되는, 단어보다 좀더 고급스러운 말 정도로만 생각한다. ‘김여사’의 ‘여사(女史)’라고 하면, ‘여자’라는 ‘여(女)’의 뜻밖에 생각할 수 없고, ‘미국 유학’의 ‘유학’이라고 하면, ‘배운다’라는 ‘학(學)’의 뜻밖에 생각할 수 없고, ‘자취(自炊)’라고 하면, ‘스스로’라는 ‘자(自)’의 뜻밖에 생각할 수 없고, ‘철자(綴字)’라고 하면, ‘글자’라는 ‘자(字)’의 뜻밖에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이런 글자의 뜻도 묻거나 찾아보아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쓰는 대로 따라 쓰다 보니 우연히 맞은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공부하지 않고 남들 따라 짐작해서 쓰다 보니 전혀 엉뚱한 뜻으로 잘못 쓰는 말도 무수하다.
  셋째, 독서를 하지 못한다: 한자를 모르니 한자 어휘가 부족하고, 한자어가 부족하면 고유어도 동시에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한자어도 부족하고 고유어도 부족하니 문법 이해도 따라서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한자어도 부족하고 고유어도 부족하고 문법도 부족하니 독해력이 없을 수밖에 없고 독해력이 없으니 독서를 하지 못하는 것은, 영어 어휘도 부족하고 영어 문법도 부족해서 영어 원서를 읽지 못하는 것과 같다. 독서를 하지 못하므로 지식을 주로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영상 매체를 통해서 습득할 수밖에 없다. 영상 매체에만 의존하여 습득한 지식이 정확할 리 없다. 책을 읽지 못하므로 그 시간을 영화 등 영상물 관람에만 사용하게 된다. 책도 읽지 못하는 수준에서 영상물을 보니 제대로 이해가 될 리가 없다.
  넷째, 양서가 나올 수 없다: 전국의 학생과 교사가 시청하는 EBS 교재 중에는 도저히 책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철자법, 띄어쓰기, 문법, 어휘가 엉망인 책이 많다. 인터넷으로 열람할 수 있는 무수한 사전이 있지만 이들 사전에서 몇 항목만 보면 하나같이 오류가 너무 많아서 다시 더 볼 마음이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출판되는 모든 책들이 이렇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 국민이 글을 읽으면서 의미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고, 의미를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은 의미 이해에 필수 불가결한 한자를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쓰고, 역시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읽는 책이 결코 책다운 책이 될 수 없음은 필지의 귀결이다.
  다섯째, 교육의 비용 대비 효율이 낮다: 말을 모르니 스스로 학습을 할 수가 없고, 스스로 학습을 할 수 없으니 늘 듣던 말만 들을 수 있고, 늘 쓰던 말 만 쓸 수 있어서 항상 누구의 설명을 들어야 하므로 평생 수강자 신세를 면치 못한다. 예컨대,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을 비롯하여 교사 임용 고시 등 모든 시험의 응시자들이 학교에서 배운 과목을 출제 범위로 하는 시험인데도 자학 자습 능력, 즉 독해력이 없어서 강사가 해 놓은 강의를 귀가 닳도록 반복해서 듣고서야 겨우 문제를 풀 수 있다.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공부를 하니 공부가 즐거운 오락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형벌이고 중노동이어서 시험에 합격만 하기만하면, 장기수가 감방 생활을 끔찍하게 생각하듯이 공부를 지긋지긋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합격 통지서를 받는 그날이 공부와 영원히 결별하는 날이 된다.
  여섯째,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말의 의미를 학습할 수 없으니 당연히 발음도 학습할 수 없어서 초등 학교 교사도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의 교과서를 제대로 낭독할 수 없고, 고등 교육을 받은 부모도 초등 학생인 자녀의 잘못된 발음을 바로잡아 줄 수 없다. 수많은 대학생과 대졸생에게 낭독을 시켜 보았지만 한두 줄짜리 평이한 문장을 의미에 맞게 자연스럽게 읽어 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한 단어를 두 단어로 끊어 읽거나 두 단어를 한 단어로 붙여 읽고,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잘라 읽거나 두 문장을 한 문장으로 붙여 읽기 일쑤다. 그러고도 그렇게 읽는 것이 바로 읽는 것인지 잘못 읽는 것인지 전혀 모르고 그저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한 자 한 자 소리를 이어가지만 머리에 발음 규칙이 없으니 듣는 사람도 읽는 사람 못지않게 괴롭고 답답하다. 초․중․고등 학교 때 장단음이며 띄어 읽기에 대해서 배우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한두 사람이 그렇다고 하면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지만 다 그러니 그것을 묻는 사람이 도리어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다. 한국 사람의 발음 지도자는 오로지 아나운서나 기자 등 방송인뿐이다. 고등 교육을 받고도 발음법을 모르는 것은 발음법을 전혀 모르는 이들 방송인의 발음을 날 때부터 듣고 자란 사람들이 다시 방송인도 되고 교사도 되어서 무의식중에 시청자와 학생을 오도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곱째, 고유어도 보존이 어려워진다: 다수를 차지하는 한자어를 학습하지 못하니 소수를 차지하는 고유어 역시 학습하지 못하여 그 의미가 급속도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예컨대, 형제자매의 아들을 ‘조카’라고 해야 하는데, 형제자매의 딸, 즉 질녀까지 조카라고 한다. 촌수도 관계없고 성별도 상관없이 종질과 종질녀, 재종질과 재종질녀, 생질과 생질녀, 이질과 이질녀, 처질과 처질녀 등등 자기보다 한 항렬 아래의 모든 남녀를 뭉뚱그려서 조카라고 부르고 성별을 구별할 필요가 있을 때는 ‘남자조카’, ‘여자조카’라고 한다. 이는 마치 ‘고모’, ‘고모부’를 그저 ‘고모’라는 한 호칭으로 부르다가 성별을 구별할 필요가 있을 때는 ‘여자 고모’, ‘남자 고모’라고 하거나, ‘이모’, ‘이모부’를 그저 ‘이모’라는 한 호칭으로 부르다가 성별을 구별할 필요가 있을 때는 ‘여자 이모’, ‘남자 이모’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친족 호칭은 듣자마자 성별이 연상되어야 하는데, 이 조카라는 말은 화자에게 확인해 보지 않으면 끝내 그 사람이 말한 친족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르는 수가 허다하다.
  여덟째, 시비 판단력이 약화된다: 의미의 정오를 확인할 방법을 알지 못하므로 어떤 사람이 말을 크게 오용하거나 어법에 맞지 않는 신어를 만들어서 퍼뜨리더라도 무비판적으로 따라 쓰게 된다. 예컨대, 어떤 한 사람이 ‘예비 선거’를 ‘경선’이라고 하면 전국민이 그것이 맞는 말인지 틀리는 말인지 생각도 해 보지 않고 따라 쓰고, 또 어떤 사람이 학교의 조리사를 ‘급식 조리원’이라고 부르면 온 국민이 따라서 그렇게 부른다. 어느 날 갑자기 소방청이라는 기관 명칭을 ‘소방 방재청’이라고 고쳐 불러도 아무도 왜 관공서 명칭을 그렇게 말이 되지 않게 바꾸었느냐고 항의할 줄을 모른다. ‘공인 인증서’, ‘국민 참여 재판’, ‘방문 접수’ 같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교육을 받은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이상함을 느끼고 그들 말에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의미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초등 학생으로부터 대학 교수까지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자를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자어든지 고유어든지 이미지로만 언어를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홉째, 문법 파괴가 심화된다: 한자를 모르면 단어의 의미에 둔감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법적 요소의 의미에도 함께 둔감해져서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말을 태연히 하게 된다. 예를 들면, “댁에 컴퓨터 있습니까?”라고 해야 할 것을 “댁에 컴퓨터 계세요?”라고 한다든지 “커피 드릴까요?”라고 해야 할 것을 “커피 드려요?”라고 한다든지 “거스름돈입니다.”라고 해야 할 것을 “거스름돈이십니다.”라고 한다든지 “콜라 마실래, 사이다 마실래?”라고 해야 할 것을 “콜라? 사이다?”라고 한다든지 “소파에 좀 앉으세요.”라고 해야 할 것을 “소파에 좀 앉으실게요.”라고 하는 것 등이다. 학사, 석사, 박사, 기자, 아나운서, 교사, 교수, 작가들의 모국어 문법 이해도가 한국어 학습을 갓 시작한 외국인과 다르지 않다.
  열째, 외국어를 제대로 학습할 수 없다: 태어나서 다년간의 학교 교육을 받은 고학력자의 자국어의 단어, 문법, 발음에 대한 이해도가 이 정도이면 외국어 학습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 대다수 한국인들은 자기 말 공부는 하지 않고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외국어 공부를 하려고 애쓴다. 국어를 의미로 공부하지 않고 막연히 이미지로만 이해하니 외국어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KTX를 출발역에서 타면 기관사가 승객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기관사는 자신을 ‘기관사’라고 하지 않고 ‘기장’이라고 한다. 아마도 KTX는 지하철과 격이 다르므로 지하철 운전자, 즉 기관사와 같은 직함을 쓰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다고 호소했고 KORAIL에서는 그 호소를 받아들인 것 같다. 왜냐하면 한두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기관사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captain’이 ‘기장’, ‘선장’, ‘함장’ 등의 뜻으로 쓸 수 있어서 그렇게 확대해서 쓰는 것 같다. EBS에서 강의하는 교재 중에 TOEIC SPEAKING이라는 월간 교재가 있는데, 이 교재의 필자는 매호에 네댓 번씩은 ‘비행기나 열차의 기내 안내문’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 강사도 KTX 기관사가 자신을 ‘기장’이라고 소개하는 것에 조금도 거부감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은 개인적으로 영어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무수히 많은 기관에 출강도 하는 모양이다. 이러한 미국 미시시피 대학 출신이자 EBS의 영어 강사이지만 ‘기내’라는 극히 기본적인 단어의 의미를 몰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우리 나라이다. 즉, ‘기내’가 ‘비행기의 내부’뿐만 아니라, ‘고급스러운’ 교통 기관의 내부라는 뜻으로 두루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러한 사람이 전국민이 시청하는 방송국의 고정 강사가 될 수 있고, 여러 유명 기업체의 영어 강사로 초청받을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인의 머리에는 한국어가 없다는 단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한자를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말을 바로 하는 이와 글을 바로 쓰는 이가 많았으므로 말을 바로 하는 이들의 말을 자주 경청하면 능변가는 되지 못해도 품위 있는 화자는 될 수 있었고, 글을 바로 쓰는 이들의 글을 부지런히 읽으면 문장가는 되지 못해도 비문 양산자는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글을 바로 쓰는 이가 적고, 말을 바로 하는 이가 적기 때문이다. 말을 바로 하는 이와 글을 바로 쓰는 이가 적은 것은 한자 공부를 하는 이가 적기 때문이다. 한자 공부를 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은 본받을 사람이 적다는 말이다. 본받을 사람을 찾기 어려우니 지금 사람들은 예전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것을 자력으로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국어 능력이 극히 부족하면서 남을 가르치는 이가 많고, 국어 능력이 극히 부족하면서 책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서 잘못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어야 하고, 잘못 적은 글을 바로 독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실로 어느 분야든지 공부를 제대로 하려는 사람은 한자 공부를 하지 않을 수가 없고, 어느 분야든지 공부를 제대로 시키려는 사람은 한자 공부를 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이 길만이 문맹 지식인, 문맹 지도자가 되지 않고 문맹 지식인, 문맹 지도자를 양산하지 않는 길이다.


Pops English

  What a wonderful world - Eva Cassidy

김창연(본원 운영위원)

  I see trees that are green, red roses too
I watch them bloom for me and you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I hear babies crying
I watch them grow
They'll learn much more than I'll ever know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The colours of the rainbow, so pretty in the sky
Are also on the faces of people passing
by I see friends shaking hands, saying "How do you do?"
They're really saying "I love you"
  The colours of the rainbow, so pretty in the sky
Are also on the faces of people passing
by I see friends shaking hands, saying "How do you do?"
They're really saying "I love you"
  I see tees that are green, red roses too
I watch them bloom for me and you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푸른 나무들과 빨간 장미들이 보입니다.
당신과 저를 위해 활짝 피어있죠. 참 멋진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전 그들이 자라는 걸 지켜봅니다.
그 아이들은 제가 모르는 것까지도 모두 배우게 될 겁니다.
참 멋진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늘의 무지개 색깔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또한 아름답죠. “안녕하세요?” 하고 악수 하는 친구들, 그들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하지요.
하늘의 무지개 색깔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또한 아름답죠.
“안녕하세요?” 하고 악수하는 친구들, 그들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하지요.
푸른 나무들과 빨간 장미들이 보입니다.
당신과 저를 위해 활짝 피어있죠. 그리고 참 멋진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참 멋진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Eva Marie Cassidy

  1963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워싱턴 D.C. 지역의 밴드 이지 스트리트(Easy Street)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았고, 고등학교 시절 그룹 스톤헨지(Stonehenge)에서 노래를 불렀다. 1986년 고등학교 시절 친구 데이비드 루림(David Lourim)이 결성한 그룹 메소드 액터(Method Actor)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면서 음반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메소드 액터의 앨범 녹음을 했던 블랙 판드 스튜디오(Black Pond Studios)의 프로듀서 크리스 비온도(Chris Biondo)와 함께 다양한 장르의 팝 명곡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또한 워싱턴 D.C.의 펑크(funk) 밴드 익스피리언스 언리미티드(Experience Unlimited)의 1989년 앨범 “리빙 라지(Livin' Large)”(1989년 미국 빌보드 아르앤비 앨범차트 22위)에서 백업보컬을 맡기도 했다.
  1992년 미국의 고고(go-go) 뮤지션 척 브라운(Chuck Brown)과 듀엣으로 앨범 “디 아더 사이드(The Other Side)”를 출시했고, 미국의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노래를 재해석한 ‘갓 블레스 더 차일드(God Bless The Child)’, 미국의 배우 겸 가수 주디 갈런드(Judy Garland)의 노래를 재해석한 ‘오버 더 레인보우’와 같은 대표곡을 남겼다. 1994년 블루 노트 레코즈(Blue Note Records)와 계약을 맺고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의 재즈 그룹 피시즈 오브 어 드림(Pieces Of A Dream)과 함께 음반 및 공연 활동을 펼쳤다.
  1996년 1월 2일과 3일 양일간 워싱턴 D.C.의 클럽 블루스 앨리(Blues Alley)에서 공연을 가졌고, 그해 5월 본 실황을 생전의 유일한 솔로 앨범 “라이브 앳 블루스 앨리(Live At Blues Alley)”로 발표했다. 그러나 “라이브 앳 블루스 앨리”의 홍보 이벤트를 진행하는 동안 악성흑색종 진단을 받았고, 그해 11월 2일 미국 메릴랜드주 보위(Bowie)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1997년 첫 번째 유작앨범 “에바 바이 하트(Eva By Heart)”가 출시됐다.
  에바 캐시디는 팝, 재즈, 블루스, 포크, 컨트리, 가스펠 등 여러 장르의 명곡을 탁월하게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곡으로 ‘오버 더 레인보우’(1992), 미국의 재즈 가수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노래를 재해석한 ‘왓 어 원더풀 월드’(1996),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스팅(Sting)의 노래를 재해석한 ‘필즈 오브 골드’(1996) 등이 있다.

[English Humor]

유머
<A Boxing referee>
Father: You have been going to school for three years now and you can count only up to ten. What are you gonna be when you grow up?
Son: I am gonna be a boxing referee.

<권투 심판>
아버지: 3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겨우 10까지만 셀 수 있다니……. 너 커서 뭐 될래?
아들: 권투 심판 될 거예요.

<Why not cities in the country?>
A city man was visiting the country and was praising the cleanliness of the air.
"So healthy to breathe!" he exclaimed. "No pollution like the city."
"I don't understand why they don't build the cities in the country!" replied a local.

<왜 시골에 도시를 건설하지 않는가?>
어느 도시 사람이 시골을 찾아가서 시골 공기의 맑음을 칭찬하고 있었다.
“정말 숨쉬기에 좋군요.” 그가 감탄하며 소리쳤다. “도시와 같은 오염이 없으니.”
“시골에다 왜 도시를 건설하지 않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군요?” 그 지방 사람이 대꾸했다.


명시와 명문

勸學文(권학문)

이석규(본원 운영위원)

眞宗皇帝勸學(진종황제권학)

富家不用買良田(부가불용매양전): 집을 부하게 하려고 좋은 땅 살 필요 없으니
書中自有千鍾粟(서중자유천종속): 책 속에 천 종의 곡식이 있음이라
安居不用架高堂(안거불용가고당): 편히 살려고 큰 집 지을 필요 없으니
書中自有黃金屋(서중자유황금옥): 책 속에 황금 저택이 있음이라
出門莫恨無人隨(출문막한무인수): 집을 나설 때 수종 없음을 한탄하지 말지니
書中車馬多如簇(서중거마다여족): 책 속에 거마가 즐비하게 늘어섰음이라
娶妻莫恨無良媒(취처막한무량매): 장가들려는데 좋은 혼처 없음을 한탄하지 말지니
書中有女顔如玉(서중유녀안여옥): 책 속에 옥 같은 미녀가 숨었음이라
男兒欲遂平生志(남아욕수평생지): 남아가 평생의 뜻 이루고자 할진대
六經勤向窻前讀(육경근향창전독): 북창 가에서 부지런히 육경을 읽을지니라

仁宗皇帝勸學(인종황제권학)

朕觀無學人(짐관무학인): 짐이 배움 없는 사람을 보니
無物堪比倫(무물감비륜): 가히 비길 데가 없도다
若比於草木(약비어초목): 초목에 비유하면
草有靈芝木有椿(초유영지목유춘): 풀에는 영지가 있고 나무에는 참죽나무가 있느니라
若比於禽獸(약비어금수): 금수에 비유하면
禽有鸞鳳獸有麟(금유난봉수유린): 비금에는 난봉이 있고 주수에는 기린이 있느니라
若比於糞土(약비어분토): 분토에 비유하면
糞滋五穀土養民(분자오곡토양민): 분변은 오곡을 살찌우고 토양은 백성을 기르느니라
世閒無限物(세간무한물): 세상의 무수한 사물 중에
無比無學人(무비무학인): 배움 없는 사람과 비길 것은 없느니라

司馬溫公勸學歌(사마온공권학가)-司馬光(사마광)

養子不敎父之過(양자불교부지과): 아들을 기르면서 가르치지 않음은 아비의 잘못이요
訓導不嚴師之惰(훈도불엄사지타): 훈도하면서 엄하지 않음은 스승의 게으름이니라
父敎師嚴兩無外(부교사엄양무외): 아비의 교훈과 스승의 엄계가 한가지로 벗어남이 없으되
學問無成子之罪(학문무성자지죄): 학문의 성취가 없음은 아들의 허물이니라
煖衣飽食居人倫(난의포식거인륜):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고 사람들 틈에 살면서
視我笑談如土塊(시아소담여토괴): 나 같은 이를 보고 비웃는다면 버러지 같은 자니라
攀高不及下品流(반고불급하품류): 높이 오르려다 오르지 못함은 하품의 사람이니
稍遇賢才無與對(초우현재무여대): 불초자가 현재를 만나면 상대할 수가 없느니라
勉後生力求誨(면후생력구회): 후생들이여 힘써 가르침을 구하라
投明師莫自昧(투명사막자매): 명철한 스승에게 배워 우매해지지 말라
一朝雲路果然登(일조운로과연등): 일조에 운로에 오르면
姓名亞等呼先輩(성명아등호선배): 성명은 후배라도 호칭은 선배가 되리라
室中若未結親姻(실중약미결친인): 집안에서 혼인을 하지 못했다면
自有佳人求匹配(자유가인구필배): 가인이 몸소 배필을 구하리라
勉旃汝等各早修(면전여등각조수): 그대들은 각자 일찍 수학에 힘써서
莫待老來徒自悔(막대노래도자회): 노래에 헛되이 후회하지 않게 하라

柳屯田勸學文(유둔전권학문)-柳永(유영)

父母養其子而不敎是不愛其子也(부모양기자이불교시불애기자야):
부모가 자식을 기르면서 가르치지 않으면 이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음이요
雖敎而不嚴是亦不愛其子也(수교이불엄시역불애기자야):
가르치되 엄하지 않으면 이 또한 자식을 사랑하지 않음이라.
父母敎而不學是子不愛其身也(부모교이불학시자불애기신야):
부모가 가르치는데도 배우지 않으면 이는 자식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이요
雖學而不勤是亦不愛其身也(수학이불근시역불애기신야):
배우되 부지런하지 않으면 이 또한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이라
是故養子必敎敎則必嚴嚴則必勤勤則必成(시고양자필교교즉필엄엄즉필근근즉필성):  
이러므로 자식을 기르면 반드시 가르칠 것이요 가르치려면 반드시 엄히 할 것이요 엄히 하면 반드시 부지런해질 것이요 부지런하면 반드시 성취하리라
學則庶人之子爲公卿不學則公卿之子爲庶人(학즉서인지자위공경불학즉공경지자위서인):
배우면 서인의 자식이라도 공경이 될 것이요 배우지 않으면 공경의 자식이라도 서인이 되리라

王荊公勸學文(왕형공권학문)-王安石(왕안석)

讀書不破費(독서불파비): 독서에는 비용이 들지 않고
讀書萬倍利(독서만배리): 독서에는 만 배의 이익이 나느니라
書顯官人才(서현관인재): 글은 관인의 재주를 드러내고
書添君子智(서첨군자지): 글은 군자의 지혜를 더하느니라
有卽起書樓(유즉기서루): 있으면 서재를 지을 것이요
無卽致書櫃(무즉치서궤): 없으면 책궤라도 갖출지니라
窻前看古書(창전간고서): 창가에서 고서를 읽고
燈下尋書義(등하심서의): 등하에서 글 뜻을 캐라
貧者因書富(빈자인서부): 빈자는 글로 인하여 부하게 되고
富者因書貴(부자인서귀): 부자는 글로 인하여 귀하게 되리라
愚者得書賢(우자득서현): 우자는 글로 인하여 현철해지고
賢者因書利(현자인서리): 현자는 글로 인하여 행복해지리라
只見讀書榮(지견독서영): 글을 읽어서 영귀해지는 것은 보았어도
不見讀書墜(불견독서추): 글을 읽어서 영락하는 것은 보지 못했노라
賣金買書讀(매금매서독): 금을 팔아 책을 사 읽을지니
讀書買金易(독서매금이): 글 읽어 금 사기는 쉬움이니라
好書卒難逢(호서졸난봉): 좋은 책은 졸연히 만나기 어렵고
好書眞難致(호서진난치): 좋은 책은 참으로 얻기 어려우니라
奉勸讀書人(봉권독서인): 글 읽는 이에게 삼가 권하노니
好書在心記(호서재심기): 좋은 글은 마음에 새겨 둘지니라

白樂天勸學文(백낙천권학문)-白居易(백거이)

有田不耕倉廩虛(유전불경창름허): 땅이 있어도 경작하지 않으면 곡간이 비고
有書不敎子孫愚(유서불교자손우): 책이 있어도 가르치지 않으면 자손이 어리석어지느니라
倉廩虛兮歲月乏(창름허혜세월핍): 곡간이 비면 생활이 궁핍해지고
子孫愚兮禮義疎(자손우혜예의소): 자손이 어리석으면 예의에 어두워지느니라
若惟不耕與不敎(약유불경여불교): 경작도 아니하고 교육도 아니함은
是乃父兄之過歟(시내부형지과여): 부형의 잘못이니라

朱文公勸學文(주문공권학문)-朱熹(주희)

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물위금일불학이유내일): 오늘 배우지 않아도 내일이 있다고 하지 말라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물위금년불학이유내년): 올해 배우지 않아도 내년이 있다고 하지 말라
日月逝矣歲不我延(일월서의세불아연): 일월은 가고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는도다
嗚呼老矣是誰之愆(오호노의시수지건): 오호라 늙었구나, 이 누구의 허물인고

符讀書城南(부독서성남)-韓愈(한유)

木之就規矩(목지취규구): 나무가 둥글어지고 모짐은
在梓匠輪輿(재재장륜여): 목수와 장색에게 달렸고
人之能爲人(인지능위인): 사람이 사람 되는 것은
由腹有詩書(유복유시서): 뱃속의 시서에 달린 것이니라
詩書勤乃有(시서근내유): 시서는 부지런하면 가지게 되고
不勤腸空虛(불근장공허): 부지런하지 않으면 속이 비느니라
欲知學之力(욕지학지력): 배움의 힘을 알고 싶으냐
賢愚同一初(현우동일초): 현우가 처음은 같으나
由其不能學(유기불능학): 배우지 못한 고로
所入遂異閭(소입수이려): 들어가는 문이 마침내는 달라지느니라
兩家各生子(양가각생자): 두 집에서 각각 아들을 낳으니
提孩巧相如(제해교상여): 어릴 때는 재주가 서로 같고
少長聚嬉戲(소장취희희): 조금 자라서 모여 놀 때도
不殊同隊魚(불수동대어): 한 떼의 고기와 같더니
年至十二三(연지십이삼): 나이 열두세 살이 되매
頭角稍相疎(두각초상소): 두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二十漸乖張(이십점괴장): 스물에는 점점 더 벌어지니
淸溝映汚渠(청구영오거): 맑은 냇물이 더러운 도랑물을 비추는 듯하고
三十骨骼成(삼십골격성): 서른에 골격이 완성되니
乃一龍一豬(내일룡일저): 하나는 용, 하나는 돼지처럼 되느니라
飛黃騰踏去(비황등답거): 비황은 높이 비상하여
不能顧蟾蜍(불능고섬여): 두꺼비는 돌아보지도 않느니라
一爲馬前卒(일위마전졸): 하나는 말구종이 되어
鞭背生蟲蛆(편배생충저): 채찍 맞은 등에는 구더기가 생기고
一爲公與相(일위공여상): 하나는 공경이 되어서
潭潭府中居(담담부중거): 깊은 부중에 사느니라
問之何因爾(문지하인이): 묻노니 어인 까닭이냐?
學與不學歟(학여불학여): 배우고 배우지 않은 탓이니라
金璧雖重寶(금벽수중보): 황금이나 벽옥이 귀한 보배이나
費用難貯儲(비용난저저): 쓰고 나면 간직하기 어렵고
學問藏之身(학문장지신): 학문은 몸에 간직하니
身在則有餘(신재즉유여): 살아 있는 동안은 남아 있느니라
君子與小人(군자여소인): 군자 되고 소인 됨이
不繫父母且(불계부모저): 부모에 달린 것이 아니니라
不見公與相(불견공여상): 보지 못했느냐, 삼공과 재상이
起身自犁鋤(기신자려서): 범인중에서 나온 것을
不見三公後(불견삼공후): 보지 못했느냐, 삼공의 후손들이
寒饑出無驢(한기출무려): 떨며 주리고 나귀도 없이 다니는 것을
文章豈不貴(문장기불귀): 문장이 어찌 귀하지 않으냐
經訓乃葘畲(경훈내치여): 경서는 전답과 같으니라
潢潦無根源(황료무근원): 자국물은 근원이 없나니
朝滿夕已除(조만석이제): 아침에 고였다가 저녁에는 잦아지느니라
人不通古今(인불통고금): 사람이 고금에 통달하지 못하면
馬牛而襟裾(마우이금거): 마소에게 옷 입힌 것 같으니
行身陷不義(행신함불의): 스스로 불의에 빠지고도
況望多名譽(황망다명예): 더욱이 많은 명예를 바라느니라
時秋積雨霽(시추적우제): 때는 가을이라 장마 개고
新涼入郊墟(신량입교허): 서늘한 기운이 교외에서 불어오니
燈火稍可親(등화초가친): 점점 등불 가까이할 만하고
簡編可卷舒(간편가권서): 서책 펼칠 만하게 되었으니
豈不旦夕念(기불단석념): 어찌 조석으로 생각하지 않겠느냐
爲爾惜居諸(위이석거제): 너를 생각하니 세월 가는 것이 안타깝구나
恩義有相奪(은의유상탈): 은의가 서로 어긋나나니
作詩勸躊躇(작시권주저): 시를 지어 주저하는 너를 권면하노라

서평

플루타르크 영웅전

이석규 편집

  플루타르크의 『영웅전』은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의 인물들의 삶과 행적을 다룬 전기 가운데 최고(最高)․최대(最大)의 작품이다. 이 책은 ‘최후의 그리스인’이라고 불릴 만큼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에 정통했던 플루타르크의 작품인 만큼, 고대 세계의 역사․문화․지리․인물 정보를 총 집합해 놓은 듯한 감마저 준다. 플루타르크의 지식과 학문적 배경을 보면, 『영웅전』이 담고 있는 철학과 역사 그리고 문화적 가치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순 우리나라 산(産) 제목이며, 원 제목은 그리스 어로 『비오이 파랄렐로이(Bioi Paralleloi)』, 즉 『비교열전』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편의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영웅전』이라는 제명을 쓰겠다.
  플루타르크는 그리스 카이로네이아에서 출생했는데, 이곳은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쯤 떨어져 있는 고대 세계의 교통 요충지였다. 카이로네이의 지리적 조건은 여러 역사적 사건이 이 곳에서 벌어지는 원인이 되었는데, 특히 기원전 338년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그리스 연합군을 격파한 ‘카이로네이아 전투’가 유명하다.
  플루타르크는 일찍부터 고향에서 멀지 않은 아테네로 가서, 플라톤이 아테네의 서쪽 교외에 개설한 학원, 즉 아카데메이아(Academy: 아카데미)에서 플라톤 철학을 공부했다. 당시 아카데메이아는 암모니오스가 이끌고 있었는데, 플루타르크가 그리스 철학의 여러 학파에 정통하면서도 플라톤 학파의 핵심을 유지한 것은 그의 강한 영향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플루타르크는 이 곳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 에피쿠로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을 지배한 각 학파들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자연 과학과 변론술 그리고 수학에 관한 폭넓은 지식을 얻은 것으로 추측된다. 아카데메이아는 그의 철학과 윤리학을 형성케 해 준 ‘사상의 보고’였던 셈이다.
  아테네를 떠난 플루타르크는 중국 각지를 여행했던 사마천처럼, 당시 또 다른 문화 중심지였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했고 자신의 조국인 그리스 곳곳을 여러 번에 걸쳐 여행했다. 그가 한 여행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이 로마 여행이었는데, 이 곳에서 황제는 물론 로마의 최상류층과 폭넓은 교유를 하였다. 더욱이 그는 로마의 상류층 인사들 중에서 그리스에서 누린 명성 못지않은 명성을 누렸다고 한다.
  플루타르크가 아카데메이아에서 배운 철학과 윤리학, 자연 과학과 변론술, 그가 여행한 이집트와 그리스 그리고 로마는 『영웅전』이 담고 있는 사상과 고대 세계의 역사․문화․지리․인물 정보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여행이 ‘걸작의 탄생’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지 새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플루타르크가 『영웅전』을 내놓기 이전 시대와 동시대에도, 고대 세계에는 전기가 존재했다. 그 작품들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자신과 친분 관계가 있는 인물의 전기, 둘째는 철학자들의 전기, 셋째는 황제들의 전기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작품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플루타르크가 시도한 ‘인물 비교’ 형식의 전기를 남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플루타르크만큼 각양각색의 인물을 다루지도 못했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플루타르크가 전기, 특히 ‘비교 열전’에 관한 한 독보적인 분야를 개척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영웅전』이 탄생할 수 있었던 플루타르크의 지식과 학문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와 인물을 두루 섭렵한 『영웅전』이 탄생할 수 있었던 시대와 역사적 배경에 대해 살펴보겠다.
02 플루타르크의 『영웅전』
독창적인 걸작의 탄생
정복자 로마를 정복한 그리스 문화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구성과 내용
  ‘한니발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로마는 지중해 세계의 명실상부한 패자로 등장하게 된다. 이제 카르타고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난 로마가 관심을 가지게 된 곳은 다름 아닌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이었다. 한때 고대 지중해와 아시아를 지배했던 그리스는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로마에 정복당한다. 그러나 ‘전쟁의 월계관’은 로마가 빼앗아 갔을지 몰라도 ‘문화의 월계관’은 여전히 그리스 차지였다. ‘정복자 로마’를 정복한 건 바로 그리스의 문화였기 때문이다.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 국가’였던 시절, 그리스는 ‘세계’였다. 로마인에게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그리스인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세계’란 곧 ‘그리스’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과연 로마는 어떤 정치 체제하에서 53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세계(그리스)를 정복할 수 있었는가?”라고 말했다. 아마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도 폴리비오스와 같은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생각한 ‘그리스 세계’는 그리스 본토와 그리스화한 지역까지 포함한, 즉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그리스 문명권’인 듯싶다.
  로마는 기원전 168년과 기원전 146년에 있었던 두 번의 전쟁을 통해 그리스 세계를 완전히 정복했다. 첫 번째 전쟁에서 로마는 마케도니아 왕 페르세우스를 격파하고, 그의 편에 서서 싸운 70여 개의 그리스 도시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약탈했다. 이때 로마가 ‘그리스 세계’를 정복한 대가로 얻은 최초의 전리품 중에 그리스 문화를 대표하는 최고의 지성인들이 있었다. 이들의 수효가 무려 10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들은 ‘위험 인물’로 간주되어 로마로 압송되었는데, 로마 내 유력자들의 집안에 맡겨져 인질 생활을 했다.
  이 1000여 명 중에는 앞에서 언급한 역사가 폴리비오스도 끼어 있었다. 그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계승자(양자)였던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에게 맡겨져 인질 생활을 했다. 그리스 문화는 이때부터 로마 지배 계급에게 전면 개방되었으며, 로마인들은 선진 문화에 완전히 매료당했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한니발 전쟁의 영웅으로도 유명했지만 그리스 문화에 매혹당한 최초의 로마인이라는 사실로도 유명하다. 더욱이 그의 딸 코르넬리아(그라쿠스 형제의 어머니)는 그리스 문화 매니아들이 모인 소위 ‘스키피오 서클’을 통해 로마에 그리스 문화를 널리 전파한 중심 인물이 되었다.
  두 번째 전쟁은 기원전 146년에 그리스 도시들이 다시 아카이아 동맹을 결성하여 로마에 대항하면서 일어났다. 반란을 주동한 도시들을 정복한 로마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예외적으로 자치권을 부여했지만, 그 외 모든 그리스 도시와 마케도니아는 로마 총독이 지배하는 속주로 합병해 버렸다. 2차 전쟁이 로마에 어떤 ‘문화적 충격과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최초의 문화 충격’이 휩쓸고 간 뒤였기 때문에 2차 ‘그리스 정복 전쟁’은 별다른 문화 충격을 주지 못한 듯하다.
  어쨌든 두 차례의 ‘정복 전쟁’을 통해 로마로 들어온 그리스의 문화와 지식인들은, 로마 사회의 교육․건축․음악․철학․역사, 심지어 종교에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카이사르의 어머니 아우렐리아와 함께 ‘로마 최고의 어머니상’이었던 코르넬리아가 자신의 아들 그라쿠스 형제에게 붙여 준 가정 교사 역시 그리스 출신의 학자들이었다. 당시 로마 지배 계급 중에서도 최고의 유력 가문인 스키피오와 그라쿠스 가문의 가정 교사로 그리스인을 채용할 정도였으니까 그리스인 가정 교사는 모든 로마인들이 꿈꾼 대상이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말일 것이다.
  그리스 문화에 특히 강한 충격을 받은 것은 로마의 종교였는데, 그 중에서도 로마의 국교가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아폴론 숭배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 신들은 로마 신들과 하나로 합쳐졌다. 즉, 신들의 왕 유피테르는 제우스와, 전쟁의 신 마르스는 아레스와, 바다의 신 넵투누스는 포세이돈과 동일시되었다. 심지어 필립 마티작은 『로마 공화정』에서 “기원전 1세기 중반 무렵에는 양국의 종교가 사실상 일치되어, 진정한 그레코-로만(로마에서 이루어진 그리스풍의 문화)이 이루어졌다.”라고 했다.
  그리스인 플루타르크는 로마가 ‘그리스 문화의 최초 충격’에 휩싸여 있던 때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서기 50년 전후에 태어나 120년경에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이 때는 로마가 ‘그리스 문화가 준 충격’에서 벗어난 뒤였다. 다시 말해서 로마 사회와 그리스 문화를 별개로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동화가 이루어지고 난 뒤였다. 플루타르크는 “패자조차 자신들과 동화시키는 로마인들의 생활방식이야말로 로마가 융성한 요인”이라고 했을 정도이니 지난 200여 년간 그리스 문화에 대한 로마인들의 열광과 심취 현상은 완전히 하나가 된 그리스-로마 문화를 형성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세계 제국 로마를 다스린 황제들을 기준으로 볼 때, 플루타르크의 시대는 네르바와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시대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들은 로마 제정기의 오현제의 첫째와 둘째 그리고 셋째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역사가들은 이 시대가 ‘제정 로마’ 500년 역사에 가장 훌륭하고 태평한 시기가 시작되는 때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로마 제국 쇠망사』를 쓴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이 오현제 시대를 인류가 가장 행복했고 제일 번영했던 시기라고까지 극찬했다.
  이 시기는 그리스 문화가 가장 위대한 힘을 발휘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리스어는 로마 지배 계층 사이에서는 ‘지성과 교양’의 상징이 된 지 오래였다. 이 시기 들어 그리스 문화, 특히 철학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는데, 논쟁의 중심이 그리스에서 완전히 로마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리스 철학에 대한 열광과 논의는 에픽테투스와 세네카가 주축이 되어 발전했는데, 훗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심취해 탐독했던 『담론』의 저자인 그리스(인)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자신의 철학을 로마에서 그리스어로 가르치고 있었다. 또 그의 제자인 로마의 정치가이자 역사가 아리아노스는 아티카의 수사학자와 역사가들에 대한 추적과 기록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네로 시대의 세네카는 금욕주의를 주장한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을 열심히 전파하고 다녔는데, 이 스토아 철학은 오현제 시대에 들어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서 활짝 꽃을 피우게 된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읽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여기에 실려 있는 글들은 주로 ‘역사’와 ‘신화(전설)’ 그리고 ‘문학’과 ‘철학’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어떤 사람들은 플루타르크가 역사가라기보다 철학자라고 한다. 즉, 『영웅전』에서 나타나고 있는 그의 관심은 역사에서 다루는 주제(정치나 국가의 변화나 발전)가 아니라 개개 인물들의 행동 윤리 쪽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주장이다. 『영웅전』은 역사서가 아니라 개개 인물들의 전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이 주장은 매우 높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플루타르크의 저술 역시 당시 로마를 지배하고 있던 철학, 특히 윤리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의 입장에서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매력은 역시 개개 인물들이 보여 주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세계의 ‘역사’와 ‘신화(전설)’이기 때문에 골치 아픈 철학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을까 한다.
  플루타르크는 ‘그리스 문화의 최초 충격’을 넘어 ‘그리스-로마’ 문화를 새롭게 창조한 세계 제국 로마의 울타리에서 산 인물이다. 이 시대에는 이미 그리스와 로마 문화는 별개가 아닌 그리스-로마 문화로 융합되어 있었다. 이것은 분명 플루타르크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에 대한 ‘비교 열전’을 쓸 때, 시대적․철학적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플루타르크의 시대에 로마와 그리스는 별개의 세계가 아닌 하나의 세계였다. 또 『영웅전』 곳곳에 배어 있는 플루타르크의 역사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보면, 그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지중해 세계 혹은 헬레니즘 세계의 역사와 동일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면, 플루타르크는 자신이 산 시대의 ‘세계관’을 『영웅전』에 제대로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구성과 내용을 볼 때,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지중해 세계와 헬레니즘 세계의 영웅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영웅전』에 실려 있는 인물들의 활동 무대를 보면, 지중해와 헬레니즘 세계, 즉 스페인에서부터 소아시아, 이집트, 페르시아, 심지어 인도에까지 걸쳐 있을 뿐 아니라 그들 지역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는 (그리스 반도와 이탈리아 반도가 아닌) 지중해와 헬레니즘 세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영웅전』을 읽다 보면 플루타르크가 틀림없이 이런 ‘세계관’을 지니고 글을 썼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인물을 ‘비교하는 방식’ 역시 그리스 세계를 이어 받은 제국이 로마이기 때문이지, 그리스 대표 인물 대 로마 대표 인물 식의 비교는 아니다. 아니면 비교의 극적 효과를 노리는 플루타르크 나름의 전략적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리스는 과거에 영화를 구가했고, 로마는 현재에 영화를 구가하고 있으니까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저술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려 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플루타르크가 『영웅전』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 중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는 것은 모두 50명이다. 그 50명 중 44명은 개별 전기와 함께 비교 전기가 있고, 나머지 4명은 개별 전기만 있다. 50명의 인물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출신별 분류
  1) 그리스의 영웅
  ① 아테네: 테세우스, 솔론, 테미스토클레스, 페리클레스, 알키비아데스, 아리스티데스, 키몬, 니키아스, 포키온, 데모스테네스.
  ② 스파르타: 리쿠르고스, 리산드로스, 아게실라오스, 아기스, 클레오메네스.
  ③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에우메네스, 디미트리오스.
  ④ 기타: 티몰레온(코린트), 펠로피다스(테베), 필로포이멘(아카이아), 피로스(에페이로스), 디온(시라쿠사), 아라토스(시키온), 아르타크세르크세스(페르시아).
  2) 로마의 영웅
  로물루스, 누마 폼필리우스, 포플리콜라, 카밀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코리올라누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르켈루스, 마르쿠스 카토, 플라미니누스, 카이우스 마리우스, 술라, 루쿨루스, 크라수스, 세르토리우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소 카토,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가이우스 그라쿠스, 키케로,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브루투스, 갈바, 오토.
  • 비교 전기
  테세우스와 로물루스, 리쿠르고스와 누마 폼필리우스, 솔론과 포플리콜라, 테미스토클레스와 카밀루스, 페리클레스와 파비우스 막시무스, 알키비아데스와 코리올라누스, 티몰레온과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펠로피다스와 마르켈루스, 필로포이멘과 플라미니누스, 피로스와 카이우스 마리우스, 리산드로스와 술라, 키몬과 루쿨루스, 니키아스와 크라수스, 세르토리우스와 에우메네스, 아게실라오스와 폼페이우스, 알렉산드로스와 율리우스 카이사르, 포키온과 소(小) 카토, 아기스와 클레오메네스 및 그라쿠스 형제, 데모스테네스와 키케로, 디미트리오스와 안토니우스, 디온과 브루투스.
  • 개별 전기
  아라토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갈바, 오토.
  • 현재 전해지고 있지 않는 전기
  1. 비교 전기: 에파미논다스와 스키피오.
  2. 단독 전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카이우스 황제, 비텔리우스(이상 로마), 헤라클레스, 헤시오도스, 핀다로스, 크라테스(이상 그리스).
  『영웅전』에 나오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플루타르크가 당시 지중해와 헬레니즘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던 신화나 전설 또는 역사 속 주인공들의 일생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웅전』에 소개되고 있는 인물의 대부분은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그리스와 로마에 관한 역사책을 뒤져 보면 나오는 소위 ‘위인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플루타르크의 시대에도 그리스와 로마의 지배 계급과 지식 사회에서 ‘위인’이라고 공감을 얻었던 인물들이었을 것이다. 플루타르크는 당대 그리스와 로마의 지배 계급과 지식 사회 내부에서 최상층 엘리트로 대접받은 사람이다. 『영웅전』에 자신의 학문에 대한 명예까지 담았을 플루타르크가 ‘인물 선택’을 대충 했을 리도 없었겠지만, 당대 그리스와 로마의 지배계급과 지식 사회도 ‘플루타르크가 고른 인물인데…….’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플루타르크가 자신의 학문과 명예까지 온전히 실었을 『영웅전』의 집필 철학은, 그리스 코린트의 군인 티몰레온에 관한 전기 첫머리에 나오는 ‘고백’에 잘 나타나 있다.
  “처음에 나(플루타르크)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 전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기를 계속 써 나가는 동안 어느 틈엔가 남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들 위인들이 가진 각각의 미덕은 내 인생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고, 내 인생을 어떻게 조절하고 고치고 만들어 나가야 하는가를 배우게 되었다. 진정으로 전기란 우리 일상 생활의 여러 관계들을 연구하고 기록하고 서술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위인들의 생애를 연구하면서, 나는 매일 그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처럼 느끼며, 차례로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대접하는 심정으로 그들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감동을 느끼고,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을 골라서 뽑아냈다. 미덕을 기르고 품성을 닦는 데는 위인들의 삶을 배우는 방법보다 더 좋은 건 없다.
  나는 위인들의 선량하고 귀중한 영향을 받아들이기 위해 역사를 연구하고 전기를 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사회에 묻혀 살면서 오염된 야비하고 천하고 사악한 인생에서 해방되고 싶은 것이다.)
  플루타르크는 미덕을 기르고 품성을 닦기 위해서는 ‘좋은’ 경우의 인간뿐만 아니라 ‘나쁜’ 경우의 인간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또 역사란 ‘좋은’ 방법과 ‘나쁜’ 방법, 선한 의도와 악한 의도가 뒤엉켜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영웅전』 속에 나타난 역사와 인간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플루타르크가 보여 준 ‘좋은’ 역사와 ‘나쁜’ 역사 그리고 ‘선한’ 인간과 ‘악한’ 인간의 행동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을 골라 뽑아내면’ 되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고전(古典)이란 단어 속에는 공존하기 힘든 두 가지 뜻이 동시에 담겨 있는 듯하다. 고전이란 단어 그대로 보면 옛날 책이다. 그런데 옛날 책은 고전이 결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고전이란 현재도 여전히 읽히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고전의 문자적 의미는 옛날 책이지만, 고전은 오늘날에도 읽히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결코 옛날 책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아니면 ‘과거의 책’이지만 현재도 여전히 읽히고 있는 ‘오늘의 책’이라고 해야 하든지……. 어쨌든 고전은 옛날 책이면서 ‘오늘의 책’이어야만 한다. 이렇게 본다면,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서양의 책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고전’에 올라 있던 책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플루타르크가 죽은 지 40여 년 후에 로마 황제가 된 (유명한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전쟁터에까지 『영웅전』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플루타르크와 거의 동시대 인물이었던 초기 기독교 철학자 아리스티데스는 사람들에게 『영웅전』을 읽도록 권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학문의 암흑기였던 중세를 거쳐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가 새롭게 부활한 르네상스 이후 유럽에서, 『영웅전』이 갖는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유감없이 드러났다. 『우신예찬』의 에라스무스는 『영웅전』을 성서를 제외하고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했으며, 17세기 프랑스 3대 (고전)작가 가운데 코르네이유와 라신은 자신들의 작품 소재를 『영웅전』에서 얻었다.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코리올라누스』,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모두 『영웅전』에서 작품 소재를 얻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 루소는 『영웅전』을 통해 ‘자유정신과 공화주의’를 배워 혁명의 정열을 불태운 반면 나폴레옹은 육군사관학교 시절 읽은 『영웅전』을 통해 ‘영웅 정신’을 배워 훗날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영웅전』을 읽은 위인들의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고, 너무 길게 하면 지루하니까 이쯤에서 그만 접도록 하자. 필자가 듣기만 해도 주눅이 확 드는(?) 인물들을 열거한 것은, 뭐 그들의 권위를 빌어 『영웅전』의 가치를 높여보고자 한 건 아니니까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다만 위의 예시들은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한 예일 뿐이다.
  『영웅전』에 실려 있는 50명은 그리스와 로마가 시작된 이래 기원전 시대가 끝나는 시기까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이끈 인물들이다. 즉 신화와 전설, 역사가 뒤엉켜 있던 시대부터 그리스의 찬란한 영광이 사라지고 로마의 찬란한 영광이 빛을 발하고 있던 때였다. 따라서 『영웅전』 속에는 그리스와 로마의 세계, 다시 말해서 지중해와 헬레니즘 세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거기에는 지중해와 헬레니즘 세계의 국가들(도시 국가․왕국․제국)과 함께 50명의 인물의 건국과 몰락, 성공과 실패, 희극과 비극, 영광과 좌절, 삶과 죽음 또한 온전히 담겨 있다.
  『영웅전』은 인간과 역사의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보고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고전은 옛날 책이면서 오늘의 책이다. 18세기 프랑스 혁명 사상가 루소는 분명 『영웅전』을 2세기의 책이 아닌 18세기 당대의 책으로 읽었을 것이다. 그는 『영웅전』에 실려 있는 ‘자유와 공화주의를 지키기 위한 아테네와 로마의 투쟁’을 보면서 18세기 당대의 문제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플루타르크가 『영웅전』에서 보여 주는 역사와 인간상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의 역사와 인간상이기도 하다. 『영웅전』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플루타르크의 ‘고백’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남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혹은 ‘한 인간과 역사를 비추고 있는 거울’을 보면서 『영웅전』을 읽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거울 속에 비친 한 인간과 역사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은 순전히 독자들의 소임이다.

◎우리가 답사한 유적

  (1) 옥포대첩기념공원(경남 거제)
  넓이는 10만 9398㎡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 장군이 경상우수사 원균과 함께 옥포만에서 왜선 50여 척 중 26척을 격침한 옥포대첩을 기념하여 조성하였다. 옥포해전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첫 승첩으로 이후의 전황을 유리하게 전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1957년 6월 12일에 기념탑을 세웠으며, 1963년에는 옥포정을 완공하였다. 1973년에 옥포조선소가 들어서면서 기념탑과 옥포정을 아주동 탑곡마을로 이건하였다. 그러나 주변이 협소하여 1991년 12월부터 현 위치에 재건하기 시작하였다. 높이 30m의 기념탑과 참배단․옥포루․팔각정․전시관 등을 건립하여 1996년 6월에 개원하였다.
  전시관에는 옥포해전 당시의 해전도 등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옥포루는 전망대를 겸하고 있는 팔각 정자이다. 공원에서는 매년 6월 16일을 전후하여 약 3일간 옥포대첩기념제전이 열린다.

  (2) 명재윤증고택(충남 논산)
  윤증 선생 고택은 숙종 대에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는 조선시대 양반 가정의 표본이 되는 주택으로 안채는 ㄷ자형, 사랑채까지 포함된 구조는 ㅁ자형의 목조 와즙 단층건물로 대청, 누마루, 고방 등의 배치가 검소하고 품위가 있으며, 지붕틀의 특수한 형태는 창경궁의 연경당과 같고, 평면 배치, 구조적인 연결, 창호의 처리는 기능성과 다양성이 있다. 사랑채는 행랑채의 동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에 2칸통의 대청에 누마루가 꾸며져 있고 중앙의 2칸×2칸 규모에는 온돌방을 만들고 그 뒤에 고방과 또 다른 방이 연결되어 있다. 안채는 중앙에 전면 5칸, 측면 2칸이고 대청과 좌우에 1칸 규모의 고방이 있고 대청 서쪽에는 대청쪽으로 3분합의 열개문으로 되어있다.

  (3) 기림사(경북 경주)
  경주시 양북면 함월산 밑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로서 16동의 건물로 불국사 다음 가는 규모이다. 이 절은 신라 초기에 천축국의 사문 광유 성인이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처음에는 「임정사」라 불리다가 후에 원효 스님이 도량을 확장하면서 「기림사」로 개칭했는데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길이 없다. 기림사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고색 창연한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수령 500년 이상 된 큰 보리수와 목탑 터가 있는 옛날 사찰 지역과 현 주지 법일 스님이 5년 전 부임한 후 불사한 성보 박물관, 삼신각, 명부전, 관음전 등이 있는 지역이다. 신라 선덕 여왕 때 처음 지은 후 6차례나 다시 지어졌다는 현재의 대적광전은 배흘림 기둥의 다포식 단층맞배지붕의 건물로 단아함과 함께 웅장함을 보여준다. 기림사는 또 다섯 가지 맛을 내는 물로 유명하다. 「오종수」라고 불리는데 차를 끓여 마시면 맛이 으뜸이라는 감로수와 그냥 마셔도 마음이 편안하다는 화정수, 기골이 장대해진다는 장군수, 눈이 맑아진다는 명안수, 물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오탁수가 그것이다. 그러나 일제 시대에 장군이 태어날까 두려워 물길을 막아버렸다는 장군수를 제외하곤 다른 네 곳은 지금도 각기 다른 물맛을 내며 물을 뿜고 있다.

(4) 영릉(경기도 여주)
  영릉(英陵)은 조선 4대 세종(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 심씨(1395~1446)의 무덤이다.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헌릉 서쪽 산줄기에 쌍실 무덤인 영릉을 만들었다. 동쪽 방은 왕후의 무덤으로 삼고, 서쪽 방은 왕이 살아 있을 때 미리 마련한 무덤으로 문종 즉위년(1450)에 왕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분에 서로 다른 방을 갖추고 있는 합장 무덤을 하고 있다.
  이 무덤은 『국조오례의』에 따라 조성한 것으로, 조선 전기 무덤 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세조 이후 명당이 아니라는 이유로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옮기지 못하다가 예종 1년(1469)에 여주로 옮겼다. 주변에는 12칸의 난간석을 둘렀다. 무덤을 옮길 때, 전에 있던 석물인 상석, 명등석, 망주석, 신도비들은 그 자리에 묻었으나 1973년에 발굴하여 세종대왕기념관에 보존하였으며, 훈민문․세종대왕동상․세종전 등은 1977년 영릉 정화 사업 때 세운 것이다.

  (5) 장안사(부산 기장)
  장안사(長安寺)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불광산(659m) 자락에 위치한 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梵魚寺)의 말사이다. 673년(신라 문무왕 13)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쌍계사라 부르다가 809년 장안사로 고쳐 불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탄 것을 1631년(인조 8) 의월 대사가 중창하고, 1638년 태의 대사가 중건하였다. 1654년(효종 5) 원정, 학능, 충묵이 대웅전을 중건하고, 1948년에는 각현이 대웅전과 부속 건물을 중수했으며 1987년 종각을 세우고 요사를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경내에 대웅전(부산기념물 37),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과 석가의 진신사리 7과를 모신 3층 석탑이 있다. 입구에는 5기의 부도가 있는데, 그 중에는 사람 모습의 부도탑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법당 앞에는 가지들이 엉켜 올라가는 형상을 한 높이 2.5m의 단풍나무가 서 있다.
  사찰 뒤쪽에는 원효대사가 수도중에 중국 중난산 운제사의 대웅전이 무너지는 것을 알고 소반을 던져 대웅전에 있던 1,000여 명의 중국 승려들을 구했다는 전설이 전하는 척판암이 있다.

  (6) 강화외성(인천 강화)
  2003년 10월 25일 사적 제452호로 지정되었다. 내성(內城)․중성․외성이 있었는데, 고려가 몽골의 제2차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축성한 것이다. 내성은 현재의 강화성으로 둘레가 3,874자(1,174m), 중성은 둘레가 5,381m로 1250년에 축조하였고, 현재 강화의 해안방조제 주변에 있는 외성은 중성을 수비하기 위하여 1233년부터 축조하기 시작하여 1235년 12월에 각 주현군(州懸軍)의 일품군(一品軍)을 징발하여 강화의 동쪽 해협을 따라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하였다. 크기는 약 37,070자(1만 1,232m)에 이르렀다.
  내성-중성과 마찬가지로 토성이며, 몽골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방위 시설이자 개경(開京)으로 천도한 정부가 39년간 육지로부터 보급 물자를 지원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1259년 몽골이 강화하는 조건으로 주자(周者)와 도고(陶高) 등을 보내어 와 외성은 내성과 함께 헐리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 규모를 축소하여 다시 축조하였으나 병자호란 때 파괴되고, 조선 후기에 보수가 계속되었다.

  (7) 미륵사지석탑(전북 익산)
  국보 제11호인 이 탑의 평면은 방형인데 현재 6층까지 남아 있으며, 높이가 14.24m이다. 반쯤 무너져버려서 한 쪽을 시멘트로 보강하여 반쪽 탑의 형태만 남아 있다. 탑의 건립연대는 600년경으로 추정되며, 한국 석탑 양식의 시원으로서 목탑이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의 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탑이다. 탑의 규모로 보더라도 한국 석탑 중 최대이다. 초층 탑신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구조에 중앙칸에는 사방에 문이 나있고 내부로 통하게 되어 있는데, 탑 내부 중앙에는 거대한 사각 석주가 서있다. 탑신 외면에는 엔타시스의 수법이 있는 사각 석주 위에 목조 건물의 창방, 평방을 설치하고, 그 위에 두공 형식의 받침돌이 옥개석을 받치고 있다. 2층 이상은 탑신이 얕아지고 각 부재의 구조도 간결하게 생략되며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줄어들었다. 이와 똑같은 석탑이 동쪽에 또 하나 있었으며, 두 석탑 사이에도 목탑이 있어 이 미륵사에는 원래 3개의 탑이 있었다.

기행문
여주를 다녀와서

이진우

  경북 영주는 가 보았지만, 여주는 나에게 처음 길.
  알람이 울리기 4분이나 전에 전날의 숙취에도 불구하고 평일 아침보다 더 편안하게 일어났다. 기대감 때문일까? 혼자 나서는 나를 보고 한마디 할 법하지만 이른 시간이라 잠들어 있는 아내에게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현관문을 나선다. 지하철도 나를 기다린 듯 정차해 있어서 지난달보다 일찍 관광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은 깜깜하고 아는 사람이 없는 듯해 머뭇거리기를 수 분. 금세 문화원 원장님과 여러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여주까지 가는 길이 큰 부담은 없었다. 여행은 기대감이 절반. 세종 대왕, 명성 황후를 뵈러 가는 길.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막국수에 전국 5대 막걸리, 그리고 고달사사지, 목아 박물관까지 문화 해설사의 설명,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함에 대한 기대로 내 마음이 설렌다.
  드디어 도착한 세종 대왕릉. 입구에서부터 역시 세계 문화 유산답다고 느껴졌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세종 대왕인데, 50 평생에 처음 찾아뵈니 기분이 이상했다. 명당의 조건과 미적 가치를 구비한 왕릉을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에 소나무들을 베어 내고 바닥에 박석을 깔아 보기 좋고 시원하게 정리하였다니 미술을 전공한 나의 입장에서는 더욱 아쉬운 대목이었다. 섣부른 근대화의 피해, 그에 대한 아쉬움으로 잠시 왕릉 앞에 서서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박석과 층층이 햇빛을 받고 섰을 아름다운 소나무 숲을 상상해 보았다. 역시 우리 옛 문화가 더 위대한 것 같다.
  왕릉 앞에 혼유석 두 개가 나란히 있어 합장묘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부부의 연을 중시하는 우리 조상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인간사에 대한 철학과 함께하는 공간 문화, 생전과 사후 세계 등을 생각하며 흡족하게 채워진 마음으로 고즈넉한 길을 따라 효종의 능으로 이동하였다. 효종과 인선 왕후의 무덤이다. 왕비의 무덤 앞으로 전맹 회원들이 무덤과 조각상을 가슴으로 안고 더 가까이에서 느끼는 것을 보고 나도 가만히 함께하여 만져 보는데 조각상이 금방이라도 나를 덮칠 듯하였다. 전공이 조각인 나로서는 남다른 감회가 있었다. 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능의 바닥을 높낮이가 다른 박석으로 한 것은 햇빛의 반사를 줄임으로써 눈부심을 감소시켜 능에 맞는 고요하고 숙연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고, 함부로 뛰어다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도 하니 우리 조상들의 깊은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잠들어 계신 분에 상관없이 세종 능의 인위적인 관리에 비해 찾는 이도 적고 조용했던 효종 능이 나에게는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였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고달사지로 향했다. 고달사는 통일 신라 또는 고려 시대의 절로 창건자는 미상이라고 한다. 내가 만난 고달사. 남겨진 우비석의 좌대의 크기에 놀랐고 그 위의 비석을 상상하니 이 절의 규모가 상상이 되었다. 비석 아래 거북이 석상의 얼굴을 만지니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느낌. 타임머신을 탄 듯 그 때 이 절에 온 조상들이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역사의 현장에 오면 언제나 경건하고 작아지는 나를 느끼게 된다. 내가 마치 그 시대의 석공이 되어 돌을 조각하고 있는 느낌을 받기도 하였다.
반주로 마신 막걸리가 발걸음을 느긋하게 한다. 이 공간 내가 알고 있는 조각과 전통 조각의 역사가 한 편의 영화처럼 지나간다.
  다시 버스를 타고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목아 박물관에 도착하니 현대 조각과 전통 조각이라는 거상을 만난 듯 그 기술과 예술혼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전통 목조각의 보존과 계승․발전을 위해 전통 문화에 기반을 둔 전문 사립 박물관이다. 미륵 삼존, 백의 관음, 자모 관음, 3층 석탑 등 각종 목제 불상 및 불경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방대한 작품들이 제 자리를 얻지 못하여 방치된 듯한 광경은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누군가 조각은 작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 원석에서 찾아내는 것이라고 했던가. 수집과 수증, 박물관에 쏟은 그의 열정이 대단하다. 생전에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다니 부러움과 질투도 생긴다. 공간과 바람을 거느린 조각상들의 향연. 언제 다시 한 번 다녀가고 싶은 곳이다.
  공간을 시각적으로 만들어 가는 작업을 하는 나에게 글이란 낯선 매체이다. 기행문 의뢰를 받고 망설였지만 쓰다 보니 어느새 이만큼.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이야기는 아름답게 읽히겠지. 부끄럽지만 이로써 자위를 삼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듣다 보니 내가 본 너무 많은 작품들 때문일까? 예술적 포만감에 혼곤히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다음 달 여행지인 울산에서 옹기를 만들고 있었다.

▣ 역사 기행 - 답사 사행시


  시제: 거제 옥포

  강구연
  거: 거짓과 억지로 뒤엉킨 곳에서 시작된 거위의 꿈
  제: 제 가슴 속 푸른 바다 위를 날고 싶어 하고
  옥: 옥구슬 족쇄 속 붉은 바위가 저를 끌어내려도
  포: 포말의 흰 밧줄이 저를 옭아매도 그래도 우주를 품고 비상하고 싶다 하네

  김동환
  거: 거대한 거북선
  제: 제일 좋은 거북선
  옥: 옥이야 금이야 거북선
  포: 포기한 사행시

  홍미라
  거: 거북선 작은 모형 앙증맞네
  제: 제법 만들었는데
  옥: 옥포 대첩 공원에서
  포: 포그락 부서져 버렸네

  시제: 주상 절리

  김창연
  주: 주거니 받거니 옛 친구와 술한잔을 나누니 안주는 불필요하고
  상: 상감마마 주안상이 안 부럽다
  절: 절로 가도
  리: 이 세상 다 같이 모여 즐겁게 살아 보자


  방지원
  주: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상: 상장이 주어지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고
  절: 절절한 사연을 안고 지내면서도 좌절하지 않으니
  리: 이 세상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시제: 여주 목아

  조해정
  여: 여고생 때 소풍 왔던 영릉은 그대로 있구나
  주: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그 때 그 시절 그립고도 그립네
  목: 목아 선생은 죽은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 넣는다는데
  아: 아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가 청춘의 꿈을 불사르고 싶구나.

  정희란
  여: 여러분에게 고백합니다
  주: 주마등 같은 시간 가운데 19년을 함께 하는 우리들이 제게는
  목: 목놓아 불러도 또 부르고 싶은 정다운 사람들이 되었음을
  아: 아름다운 인연으로 함께 한 소풍이 행복했다고 추억하고 싶습니다.

  장수연
  여: 여주에 왔다고
  주: 주어진 물막국수 한 그릇
  목: 목으로 육수 한 입 꿀꺽 삼켰더니
  아: 아 비빔막국수 먹을걸

  시제: 옹기 간절

  이진우
  옹: 옹기를 만들었네
  기: 기차게 만들었네
  간: 간절히 기도하니
  절: 절대로 깨지지 않기를

  허지선
  옹: 옹기 박물관에서 멋진 옹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기: 기술 있는 장인은 아니지만
  간: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 멋진 옹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절: 절실했던 내 마음처럼 내 옹기는 멋진 모양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김병관
  옹: 옹기 하나 사다가
  기: 기가 막힌 술을 담아 보자
  간: 간간히 벗님들 모셔다가
  절: 절시구 얼시구 놀아 보게

  박수현
  옹: 옹기처럼 반짝이는 모래,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기: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듯 넘실거리는 파도들, 우리들의 몸을
  간: 간질이듯 부드럽게 불어 오는 바람
  절: 절 이러한 모래, 바람, 파도와 어우러진 바다로 데려다주니 절로 신이 납니다

  시제: 인천 강화

  조해정
  인: 인의의 지사 어재연 병인․신미 양요에 목숨 바치고
  천: 천민들 대몽 항쟁에 목숨 바치고
  강: 강포한 세도 정치가들 가문에 목숨 바쳤다
  화: 화려 강산 보전하는 길은 세도가보다는 인의지사를 따르는 것뿐이리라

  이채빈
  인: 인색하기도 하구나, 강화의 바람아
  천: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와도 이렇게 더울 거니
  강: 강한 햇살에 파김치 된 내 몸에 생기를 좀 주고
  화: 화끈거리는 얼굴에 서늘한 기운 좀 보내 다오

  이정아
  인: 인간 세상에 태평이 어디 있느냐
  천: 천지간에 평화가 어디 있느냐
  강: 강구 연월이란 고금에 없었고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화: 화택을 속히 탈출하여 극락 왕생하라

  한영숙
  인: 인의의 정신으로 일신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고
  천: 천지를 뒤흔드는 포성 속에서
  강: 강토를 지키다가 산화하신 선열덕분에
  화: 화려한 금수 강산이 오늘까지 보존되었습니다

  박오희
  인: 인간에 보람된 일 참으로 많으나
  천: 천년의 희로애락 아로새겨진 자취 편답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있으랴
  강: 강하나 산곡을 많이 다니면서 선인의 정기 받아 후손에게 물려주세
  화: 화풍 불 때나 양풍 불 때나 부지런히 다니세

  조경호
  인: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만
  천: 천년 강화의 아픈 역사야 어찌 잊을쏘냐
  강: 강건한 나라 대한 민국 우리 손으로 만들어서
  화: 화적질한 놈들에게 꼭 대갚아 주자

  김창연
  인: 인문학 강좌가 한국 연구 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개최되는 거 다들 아시죠
  천: 천개까지는 아니지만 우리 시각 문화원이 선정된 것은 놀랍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강: 강화도의 역사 문화 기행 캠프를 와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나니
  화: 화기 애애한 여러분의 표정을 보니 매우 고맙고 반갑습니다

  시제: 익산 보석

  이기표
  익: 익산 땅 왕궁에 개로왕도 살았겠지
  산: 산이 보이지 않는 너른 들판 도미 처 예쁨 잴 때
  보: 보조개에 붉은 입술 백제 왕 넋을 놓으니
  석: 석공 눈 파인 통한 아내와 함께 강물 따라 씻었다네

  허경희
  익: 익히 좋은 줄 알았지만
  산: 산이 좋은 줄은 정말 몰랐네
  보: 보석도 참으로 아름답구나
  석: 석탑도 보석처럼 보이네

  김봉식
  익: 익산가는 길 왜 이리 장대같이 비가 많이오노
  산: 산과 들이 어두컴컴하고 까맣게 보이네
  보: 보석처럼 맑은날로 활짝 갰으면 좋겠네
  석: 석양에 물드는 노을을 보았으면 좋겠네

장애인의 장애극복기

나의 지식과 경험을 장애인들의 권익을 위해

조성민(21세, 남, 청각장애 2급)

  경북 영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1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세 살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을 앓았는데, 부모님들이 잘 몰라서 병원에 제때 데려가지 않고 방치하는 바람에 청각 장애를 갖게 되었다. 소리는 하나도 들을 수 없고 언어 장애도 있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주로 수화나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구화는 아주 간단한 말 말고는 잘 모르기 때문에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다.
  청각 장애는 원래 1급이 없고, 2급이 가장 중증이다. 청각 장애에 지체 장애나 정신 지체 등의 다른 장애가 중복하여 나타나는 경우에는 1급으로 판정되고 있다.
  취학 전까지는 고향에서 지내다가초등학교는 울산에 있는 특수 학교에 들어가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대구에도 청각 장애 학교가 있었지만 특수 학교에 대해 잘 몰랐던 부모님은 울산에 살고 계시던 외삼촌이 소개하는 대로 울산에 있는 특수 학교로 나를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울산의 특수 학교에서 초등 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의 중학부로 진학을 했지만 대학 진학을 하고 싶었던 나는 중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 대구에 있는 청각 장애 학교로 전학하여 그곳에서 고등 학교까지 마쳤다. 고등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대구 대학교 사회 복지학과에 진학하여 지금은 3학년에 다니고 있다. 초등 학교부터 고등 학교까지는 기숙사 생활을 했으나 지금은 대학과 고등 학교를 다니고 있는 동생들과 함께 경산에 있는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비포장 길에 차도 잘 다니지 않는 시골 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는 많지 않았다. 불교 기관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니기는 했지만 집에서 2, 3km나 떨어져 있어 유치원을 파하고 나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기는 어려웠다. 너무 어릴 때였기 때문에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유치원에서의 생활이 장애로 인해 특별히 어렵거나 힘이 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바로 밑의 여동생과 함께 다녔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의 말씀을 잘 듣는 아이였기 때문에 친구들과도 원만한 생활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초등 학교에 들어가서는 줄곧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부모님과 떨어져 낯선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니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보고 싶고 외로워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같은 장애를 가진 학생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특별히 장애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특수 학교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선생님들의 말씀도 잘 듣는 모범생으로 성장을 했다. 성적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우수했기에 언제나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청각 장애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수화를 정식으로 배울 수는 없었다. 선배들이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나도 수화를 배우고 싶었지만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으니 하는 수 없이 혼자서 터득해야만 했다. 선배들이 수화로 대화하는 것을 보면서 어깨너머로 배우기도 했고, 선배들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서 익혀야 했다. 수화를 모를 때는 친구들이나 선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힘들어 대화도 잘 하지 않고 지내다 보니 성격도 소극적으로 변해 가는 듯했으나 수화를 익히고 난 다음에는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다 보니 성격도 많이 변한 것 같다.
  다른 청각 장애 학교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정식으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어서도 수화를 잘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학생들 가운데서도 구화나 필담을 위주로 대화를 하고, 컴퓨터 자판을 이용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선호하다 보니 어려운 수화를 배우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더군다나 청각 장애 학교에는 수화를 모르는 선생님이 많아서 학생들과 대화를 하거나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칠 때에도 의사 소통에 어려움이 많은데, 청각 장애 학교의 교사를 임용할 때는 철저히 테스트하여 수화를 모르는 사람을 교사로 채용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청각 장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화를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고, 학생들도 수화를 배우는 데 열의가 없는데 선생님들마저 수화를 제대로 모른다면 어떻게 학생들이 충실하게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중·고등학교 때 일반 학생과 같은 교과목을 배웠지만 대다수 청각 장애 학생들이 의사 소통에 어려움이 있고, 선생님들의 강의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서 노트 필기나 교과서만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일반 학교 학생들에 비하면 학습 수준이 많이 뒤처져 있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애써 어려운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쉬운 내용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던 나는 학교에서의 수업 내용이나 진도에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다소 불만스러워하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여 일반 학교 비장애 학생들에 뒤처지지 않도록 힘썼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와 놀다가 친구가 나를 미는 바람에 팔을 다쳐 병원에 4개월 동안 입원한 적이 있었다. 4개월 동안 수업을 받지 못하고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람에 성적이 많이 떨어졌던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욕심에 중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 울산의 특수 학교를 떠나 대구의 청각 장애 학교로 전학을 했다. 대구로 전학을 하고 나서 아주 열심히 공부를 한 덕분에 부족했던 공부를 만회할 수 있었다.
  대구로 전학을 하고 나서 낯선 친구들과 서먹하기도 하고 라이벌 의식도 있어 처음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었으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적극적으로 친구들과 대하다 보니 그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졌고 학교 생활에도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울산의 특수 학교에 있을 때는 각종 경진 대회 등에 참가하여 실력을 발휘하고 싶었으나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았는데, 대구로 전학하고 난 다음에는 정보 검색 대회나 컴퓨터 관련 경진 대회 등에 학교 대표로 참가할 기회가 많아져 나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 무척 기뻤다. 학교에서 개최한 정보 검색 대회에서 2등상을 받기도 했고, 장애인 재활 협회에서 주최한 문서 작성 대회에 나가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내가 다른 학생들에 비해 공부를 잘하기도 했지만 선생님들이 나를 각종 대회에 적극 추천해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대학에 진학한 2006년은 내 생애 최고의 해였다. 영천에서는 청각 장애인으로서 내가 최초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나의 대학 진학을 축하해 주었고, 영천시 청각 장애인 협회에서는 나에게 직원으로 채용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농협에서는 장학금을 주었으며, 한국 장애인 단체 총연맹에서는 노트북 컴퓨터를 선물하기도 했다.
  나는 대학 진학과 함께 영천시 청각 장애인 협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무실 근무와 대학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힘겹기는 하지만 많은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 대학에 진학하여 비장애 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니 의사 소통에 어려움이 있고 필담을 나누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오해가 생기는 등 힘든 일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함께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은 장애인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사회 복지를 실천하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나의 실수를 잘 이해해 주었고, 나와의 의사 소통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주었다. 지금은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졌고, 비장애인과의 의사 소통 방식도 많이 터득하여 재미있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동아리 활동이나 사회적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청각 장애인 협회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청각 장애 학생들의 권익이나 청각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 청각 장애인과 다른 부류의 장애인과의 소통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청각 장애 학생 동아리인 ‘손누리’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 동아리에 들어갔을 때는 회장을 비롯한 선배들이 청각 장애인의 학습권 문제 등 학교 내에서 청각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하기보다는 술이나 마시고 놀러나 다니는 것을 보면서 ‘내가 선배가 되면 우리 선배들처럼 저렇게 행동하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다지곤 했다. 2학년이 되어 동아리에서 임원을 맡으면서부터는 청각 장애 학생들의 학습권 확보를 위해 동료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3학년이 되어 동아리 회장을 맡으면서부터는 학교 관계자와 만나 청각 장애 학생들이 학교 생활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 해소와 학습권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청각 장애 학생들의 수화 통역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자 학교 측에서는 수화 통역 센터에서 파견된 수화 통역사들을 청각 장애 학생들이 수강하는 강의실에 배치하여 강의 내용을 수화로 통역하도록 하고 있는데, 수화 통역 센터에서 파견된 수화 통역사들은 수화 통역 센터에서 급여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으로부터 이중적으로 수화 통역비를 지급받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수화 통역 센터에서 파견된 수화 통역사를 배치할 것이 아니라 학교 측에서 직접 수화 통역사를 채용하여 강의실에 배치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현재 청각 장애 학생들도 영어 회화에 많이 관심이 있는데 영어 수화(ASL)가 가능한 수화 통역사가 배치되지 않고 있어 영어 회화 수업을 전혀 들을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어 수화 통역 강좌를 개설하고 영어 수화 통역사를 배치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또한 청각 장애 학생들의 강의 시간에 교수님들의 강의내용을 필기할 수 있도록 전문 속기사를 강의실에 배치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며, 청각 장애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와 관련하여 국가 인권 위원회에 제소를 하기도 하였다. 우리들의 활동 덕분에 그동안 많은 청각 장애 학생들의 숙원이었던 속기사와 수화 통역사가 수업 시간마다 배치되고 있으며, 2009년부터는 영어 수화 과목이 개설되고, 통역도 가능해지게 되어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나는 사무실 근무와 동아리 활동에 열중하다 보니 학과 친구들과는 별로 사귀지 못했다. 가끔씩 학과 친구들과 문자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1학년 때 가까이 지내던 남자 동기들은 대부분 군대에 가 있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동기들을 만나도 수업만 듣고 나오기 바빠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잘 없다.
  처음 대학에 입학하여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할 때 내가 탄 버스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노선을 잘 알지 못해서 기사에게 글자를 써서 물은 적이 있는데, 버스 기사가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 주지 않고 무시하는 바람에 속이 상한 적이 몇 번 있는데, 요즘은 그 번호의 버스를 타지 않고 다른 번호를 주로 타기 때문에 불쾌한 일을 겪지는 않는다.
  자막이 나오지 않는 한국 영화는 배우들의 동작이나 표정을 통해 자기 나름의 느낌으로 감상을 하지만 배우들의 대사를 알아들을 수 없어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는 주로 자막이 나오는 외국 영화를 보는 편이다. 그리고 영화관에 가기보다는 컴퓨터로 자막 지원을 받아 집에서 감상하는 것을 더 선호하고 있다.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한국 영화에도 의무적으로 자막을 붙이도록 제도화된다면 청각 장애인들도 영화관의 넓은 스크린을 통해 영화의 웅장함을 비장애인들과 함께 감상할 수 있을 텐데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다.
  나는 대학을 다니고 있고 나름대로 지식도 많이 쌓았기 때문에 학교 생활이나 사회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차별을 받은 경험은 많지 않다. 그러나 청각 장애인 협회에서 일을 하다 보니 대화가 잘 통하지 않고, 지식도 부족하다 보니 비장애인들로부터 무시와 차별을 당하는 청각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특히 운전 면허 시험에서 청각 장애인들은 1종 보통 면허에 응시할 수가 없는데, 청각 장애인들이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면 많은 청각 장애인들이 트럭이나 승합자 등을 운전하면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각 장애인들의 실업 문제는 상당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4--6급의 청각 장애인들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1종 보통 운전 면허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려는 방침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2--3급의 중증 청각 장애인에게도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많은 청각 장애 학생들이 대학에서 특수 교육을 전공하고 있는데, 청각 장애인들이 청각 장애 학교에 교사로 진출하는 데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많아 교사로서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청각 장애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청각 장애 학생들의 학습을 위해서는 특수 교육을 전공하고 정식 자격을 갖춘 청각 장애 교사가 반드시 일정한 비율로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청각 장애 학교의 비장애 교사들 가운데 수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청각 장애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청각 장애 학생과 원활한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청각 장애 학생들을 상담하거나 지도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만일 청각 장애 교사가 일정한 비율로 배치된다면 청각 장애 학생의 학습 지도는 물론 생활 지도나 인성 지도와 관련해서 학생들과의 깊고 폭넓은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2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고 난 후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유학을 갈 생각이다. 공부가 끝나면 전공을 살려 청각 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계속 활동하고 싶다. 나는 현재 고급 수화 통역을 하기 위해 수화 통역사 고급반 강사를 하고 있는데,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 동료 청각 장애인들의 복지 증진과 권익 옹호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지식을 쌓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 수준의 수화가 아니라 고급 수준의 수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갈고 닦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더없는 보람이 되리라 생각한다.

생활 단상

흔들리지 않는 촛불이 어디 있으랴

경북여고 1학년 강구연

  사단법인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이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개설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문학강의 프로그램이 며칠 전 1년에 걸친 길고 긴 대장정을 무사히 끝냈다. 처음 인문학 강의의 일정표를 봤을 때 기간이 많이 길어서 내심 우려했던 부분이 없지 않아 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끝을 맺고 보니 더 좋은 주제로 많은 내용을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고 들었다.
  프로그램 시작부터 꾸준히 봉사를 다니며 들은 강의 내용은 고등학생인 나에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도움을 주었고, 앞으로 살면서 정말 유용한 내용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특히나 소설가라는 나의 장래희망과 인문학 강의는 서로 맞물리는 부분이 많아서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상세한 분석을 통해 아직 읽어보지 못한 문학에 대하여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고, 철학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견문을 넓히는 동시에 심도 깊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어 내면적으로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밖에 보통 때라면 쉽게 접하지 못할 주제들을 다룬다거나, 종종 생각이 나거나 떠오르더라도 대충 넘어가고 말았던 것들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니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강의 중 하나는 전설과 민담에 대한 부분이다. 전설과 민담의 유래나 그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하면 전설과 민담 등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등 보통 때라면 결코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내용을 배웠다. 교수님께 강의를 들은 대학생들이 만든 전설이나 민담에 대해 듣고 분석하며 전설과 민담을 만드는 공식에 대해서도 배우고 직접 응용해 보기도 했다.
  논리와 오류에 관한 강의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순서에 따라 추리하며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지닌 논리가 무엇이고 그 속에 숨은 오류가 무엇인지 찾는 과정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특히, 학교에서 토론 수업을 할 때 정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논리에 대한 강의는 또 듣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고, 내 눈길을 확 잡아끌었다.
  강의를 들으며 소설에 대한 소재를 얻기도 했다. 무심코 지나가는 말에서 실마리를 잡아내어서 메모를 하고 줄거리 구상을 하면서 강의를 더 집중해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많은 소재를 얻은 부분은 역사에 관련된 부분인데, ‘그걸 다른 식으로 해석하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하자 무궁무진한 소재가 떠올랐다. 앞으로 소설 창작이나 일상 생화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라는 말을 인문학 강의를 듣는 동안 뼈저리게 느꼈다. 강의 중에 언급되었던 내용을 학교나 다른 곳에서 듣게 되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조금 더 집중을 하게 되고 그 주제에 대해 좀 더 쉽고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욕심도 들었다. 인문학의 범위는 엄청나게 넓고 방대하다.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자라나며 알고 싶은 부분을 더 알아보고 더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에게나 어떠한 것을 결정하는 기준이 있고 가치관이 있다. 그것은 단시간 안에 형성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공부과 사색, 체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이번 인문학 강의 프로그램이 가치관과 기준을 조금 더 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다양하고 많은 주제에 대해 다른 분들과 대화도 나누고 머리도 맞대어 논의하면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바람 앞의 촛불은 언제 꺼질지 몰라 위태위태하지만, 위험한 중에도 빛과 열기를 발산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타들어간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짧다면 짧게 느껴질 수 있는 인생에서 가치관도 빨리 확립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며 허송세월해 버린다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나의 초는 아직 많이 남았지만 이미 타 버린 부분도 그리 짧다고만은 할 수 없다. 남은 부분을 좀 더 가치 있고 보람 있게 태우려면 많은 경험과 사색, 성찰을 통해 스스로 한 단계씩 성장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 강의를 들으며 이 목표에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다.

문화원 소식

  2013년 1월 24일 정기 총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풍성한 문화 활동을 다짐하는 자리였습니다.
  2013년 2월 7일 겨울 방학을 마치고 전재원 교수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인문학 강좌를 재개하였습니다.
  2013년 3월 9일 제105차 역사 문화 기행은 봄기운을 맞으며 경남 거제도의 맹종죽 테마 파크, 거제 해양 문화관, 옥포 대첩 기념 공원을 다녀왔습니다. 2013년 들어 처음으로 ‘박물관 체험이 있는 역사 문화 기행’이란 주제로 기행을 시작하였고 거제 해양 문화관에서 거북선 만들기 체험을 하였습니다.
  2013년 4월 10일 독서 장애인을 위한 낭독 봉사자 양성 과정인 제8기 도서 낭독 아카데미를 개강하였습니다.
  2013년 4월 13일 제106차 역사 문화 기행은 충남 논산의 윤증 고택, 관촉사, 백제 군사 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백제 군사 박물관에서 국궁 시위를 당기며 삼국이 항쟁했던 역사를 되돌아보는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
  2013년 5월 11일 제107차 역사 문화 기행은 경북 경주의 기림사, 읍천항 벽화 거리, 경주 주상 절리, 전통 명주 전시관을 다녀왔습니다. 누에고치에서 명주를 만드는 공정을 직접 만지면서 체험한 것이 신기함 그 자체였고 주상 절리의 바닷길을 상쾌하게 걸으며 5월의 햇살을 만끽한 하루였습니다.
  2013년 6월 8일 제108차 역사 문화 기행은 경기 여주의 세종 대왕릉, 고달사지, 목아 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때 이른 더위 속에서 세종의 영릉에서 현종의 영릉에 이르는 그늘 길을 걸으며 역사의 의미를 음미해 보는 하루였습니다.
  2013년 7월 5일 계명 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삼총사’를 관람하였습니다.
  2013년 7월 13일 제109차 역사 문화 기행은 울산시의 장안사, 외고산 옹기 마을, 서생포성, 간절곶을 다녀왔습니다.
  2013년 7월 25일 2012년 9월부터 시작된 제1기 인문학 강좌가 40강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 동안 대장정을 달려온 강사진과 수강생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2013년 7월 26일 중구 떼아뜨로에서 열린 연극 ‘바람난 삼대’를 관람하였습니다.
  2013년 8월 1일 제9기 문화아카데미가 이태호 박사의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필두로 10월 10일까지의 막을 올렸습니다.
  2013년 8월 15~16일 제110차 역사 문화 기행을 겸한 문화 캠프를 인천 강화도에 고려궁지, 강화 지석묘, 강화 역사 박물관, 평화 전망대, 전등사, 강화 소리 체험 박물관,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를 다녀왔습니다. 오랫동안 가 보고 싶은 강화도, 실로 유적의 보고였습니다! 달빛 아래 겨드랑 스치는 바람에 찜통 더위 간 곳 없고 별밤은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2013년 8월 29일 1년 동안 수행한 인문학 강좌가 우수 강좌로 선정되어 한국 연구 재단에서 사례 발표를 하였습니다. 우리 문화원이 문화원다운 문화원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단법인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주소 : (700-192) 대구시 중구 종로2가 33-1번지 2층
Tel : 053 - 257 - 5657
Fax : 053 - 257 - 5659
E-Mail : blindculture@hanmail.net
음성사서함 : 152 - 5657
홈페이지주소 : www.blindlove.org

후원계좌 :
  대구은행) 096-05-002769-1
  국민은행) 801301-01-345119
  예금주 - 사)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계간․시각과문화  

발행․2013년 10월 1일  
발행인․김현준
편집․김창연
교열․이석규
디자인․이유란
발행처․사단법인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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