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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가을호(통권38호)
  계간
  시각과 문화
  2018년 가을호 (통권 38호)
  사단법인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차례

  권두칼럼
  한자를 모르면 사고 장애자가 될 수밖에 없다 _ 이석규

  Pops English
  Changing Partners - Patti Page _ 김창연

  명시와 명문
  The Sermon on the Mount - 이석규 발췌

  서평
  맹자 _ 이석규 편집

  우리가 답사한 유적

  기행문
  전남 담양을 다녀와서 _ 조경호

  답사 사행시

  장애인의 장애 극복기
  해맑은 우리 아기의 웃음을 위해 _ 최주현

  생활 수필
  백설부 _ 김진섭

  문화원 소식


  권두칼럼
  한자를 모르면 사고 장애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석규(본원 운영위원)

  한자를 모르면 사고 장애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하면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펄펄 뛸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이런 사람은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이 언어 생활을 얼마나 이상하게 하고 있는지, 특히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의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생각과 말이 일치하지 않고 머리와 입이 따로 노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원인은 단 한 가지이니 그것은 한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날마다 듣고 입에 달고 사는 말을 지속적으로 잘못 쓰면서도 잘못 쓰는 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언어 장애이고 사고 장애이다. 아래에 제시하는 인용문에서 부적절하게 사용된 단어가 있음을 직감하는 사람은 언어 장애와 사고 장애가 없는 사람이고, 직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어 장애와 사고 장애가 중증인 사람이다.
  “지난해 5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학동역 인근으로 사무실을 임대해 이전했다.” 이 글의 필자는 ‘임대(賃貸)’를 ‘임금을 받고 빌려줌’의 의미로 사용하지 않고 ‘임금을 주고 빌림’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임대’를 정반대의 의미, 즉 ‘임차(賃借)’의 의미로 쓰고 있는데, 이렇게 ‘임차’라고 해야 할 것을 ‘임대’라고 하는 기사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경찰은 CCTV 영상 분석을 통해 용의자들이 타고 다니던 차량을 확인해 렌터카 업체에 차량을 대여하면서 남긴 주소지를 탐문해 이들을 검거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쓴 기자는 ‘차량을 빌리면서’라고 해야 할 것을 ‘차량을 대여하면서’라고 하고 있다. 즉, ‘대여(貸與)하다’를 ‘임차하다’의 뜻으로 쓰고 있다. 기자가 되기까지 글을 적지 않게 읽었을 것이고, 읽은 글 중에는 ‘대여하다’가 ‘빌리다’의 의미로 쓰인 것도 많았을 것이고, ‘빌려주다’라는 의미로 쓰인 것도 많았을 것인데, 어떻게 어느 쪽이 맞는지 확인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소속사 측은 “악성 루머의 최초 작성 및 유포자, 온라인 게시자, 악플러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증거 자료 수집을 끝마쳤고, 오늘 법무 법인을 통해 고소장을 접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접수(接受)’는 ‘받는다’는 뜻인데, 이 기사에서는 ‘낸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머리와 입이 따로 논 연예 기획사나 그 바보 같은 말을 그대로 받아 적은 기자나 동급의 백치이다. ‘접수’를 ‘받아들임’의 뜻으로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인용문에서처럼 대다수 한국인들이 ‘제출’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법무 지원단은 서울·대전 지방 변호사회 및 대한 변리사회 등 3개 기관 소속 변호사·변리사 중 실무 경력 10년 이상의 전문가 90명으로 구성되며, 올해는 중소기업 선착순 60개 사에 기술 보호 변호사·변리사 자문 비용을 1년간 무료로 지원합니다.” ‘자문(諮問)’이란 ‘의견을 물음’의 뜻인데, 교수, 변호사, 문인, 언론인 등 모든 지식인들이 인용문에서처럼 한결같이 ‘조언을 제공함’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용 단어의 의미조차 모르는 인사들이 사계(斯界)의 지식을 충분히 쌓아서 자문에 응하여 적절한 조언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태풍 ‘위투’가 강타한 사이판에 고립된 한국인 송환이 계속 진행되는 가운데, 주말 동안 580여 명이 귀국했거나 귀국길에 오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송환(送還)’은 ‘돌려보냄’의 뜻인데,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비롯한 많은 식자들이 ‘데려옴’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외국에 있는 우리 국민을 국내로 데려오는 것은 ‘쇄환(刷還)’이라고 하면 되는데, 한국인들은 정확한 말보다는 부정확하더라도 입에 익은 말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머리로는 데려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이나 글로는 돌려보낸다고 하고도 태연하다. 일본 사람들이나 중국 사람들이 이런 기사를 본다면 어떻게 한국 식자들의 지적 수준을 비웃지 않겠는가.
  “Don't drive too fast on sidestreets.(간선 도로에서 너무 빨리 운전하지 마세요.” 1980, 90년대에 가장 유명했던 영어 강사의 영어 회화 교재 중의 한 문장이다. 인체의 대동맥과 같이 크고 중요한 도로가 간선 도로인데, 이 사람은 골목길(sidestreet)을 ‘간선 도로’라고 하고 있다. 이 사람은 ‘간선 도로’의 ‘간선’을 ‘幹線’이 아닌 ‘間線’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간선 도로’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제대로 모르니 잘못 사용하는 국어 단어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도 이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고 그 사람이 전국의 대학과 방송사를 분주히 드나들며 영어 실력을 마음껏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은 국어 공부는 할 필요가 없고 영어 공부만 하면 된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자 우편을 받으신 선생님께 위원 위촉을 요청드리고자 하오니 수락 여부에 대해 금요일까지 회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7년 7월 하순에 국립 국어원에서 받은 공문 중의 한 구절이다. 나를 위원으로 위촉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국어원에서 그 요청대로 나를 위원으로 위촉하겠다는 공문에서 도리어 나에게 위촉을 요청한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다. 나는 위촉받을 사람이지 위촉할 사람이 아니다. 국립 국어원의 행정 직원과 시정의 무지렁이들의 국어 사용 능력이 다르지 않다. 이런 사람도 무지렁이라고 하면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I'd like to check out this book.(이 책을 대출하고 싶어요.)”, “Can I check out some reference books?(참고 도서를 대출할 수 있나요?” 910 출판사에서 나온 “영한영 사전”의 숙어 ‘check something out’의 예문이다. 이 숙어의 풀이에는 ‘대출하다’, ‘빌리다’로 되어 있다. 이 영어 사전을 고등 학생들이 편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전 편집자마저 ‘대출(貸出)하다’를 ‘빌리다’와 동의어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대출하다’와 같이 상용 단어의 의미를 잘못 알면서도 사전 편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한국이다.
  몇 년 전에 어느 병원에 치료받으러 갔었는데, 진료실 앞의 간호사들이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수납하고 오세요.”를 연발하고 있었다. ‘수납(收納)하다’는 ‘거두어들이다’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돈을 내러 온 사람들에게 도리어 돈을 받으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환자와 보호자들은 간호사들의 심중을 바로 파악했는지 ‘수납’을 ‘지불’과 동의어로 생각했는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전국의 점자 도서관이나 복지관에는 대체로 한두 명의 맹인 교정사가 있는데, 점역사들이 만든 파일을 수정하는 것이 이들 교정사의 주된 업무이다. 교정사 본인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교정사가 혼자 하는 수정 작업을 ‘교정(校正)’이라고 하고, 일반인 보조자가 원본을 읽어 주는 것을 듣고 맹인 교정사가 수정하는 것을 ‘맞교정’이라는 괴상한 용어로 부르고 있다. 점역·교정사 자격 검정 시험에서도 문제 중에 숨겨진 오류를 수험자가 찾아서 바로잡는 것을 ‘수정’이나 ‘정정’이라고 하지 않고 ‘교정’이라고 한다. 이는 도서 교정(校正)이나 척추 교정(矯正)의 ‘교정’이 동일한 용어라고 오해한 데에서 비롯된 어처구니없는 용어 오용인 것이다. 지금은 맹인 기관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한국인 전체가 도서 교정의 ‘교정’과 척추 교정의 ‘교정’을 별개의 용어가 아닌 동일 용어로 생각하고 있다. 전 국민이 맹인이 된 것이다.
  상기 인용문에서 볼드체로 표시된 단어들은 ‘교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다. 즉, ‘동(東)’을 ‘서(西)’라고 하고, ‘서’를 ‘동’이라고 하며, ‘섭취’를 ‘배설’이라고 하고 ‘배설’을 ‘섭취’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언어 장애며 사고 장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장을 쓴 사람들은 사무직원, 기자, 영어 강사, 사전 편찬자이다. 이 사람들을 언어 장애자이며 사고 장애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언어 장애자와 사고 장애자들은 결코 이들 몇몇 사람만이 아니다. 한국인 대다수가 언어 장애자이고 사고 장애자이다.
  이렇게 한국인 대다수가 언어 장애자와 사고 장애자가 된 것은 어릴 때부터 국어 공부, 특히 국어 단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한자어를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자어 공부를 하기 싫어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하지 않은 것이다. 학교가 있고 국어 교사가 있으나 국어 교사가 한자어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국어 교사가 한자어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은 그들도 한자어 공부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한자 능력 시험 기관 중의 하나인 대한 검정회의 표어에 ‘한자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한자를 모르면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한자는 세상을 보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상기 인용문에서 식자들이 상용 단어를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그들이 세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들이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것은 한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 중의 오용 단어들은 한자를 몰라서 잘못 사용하는 것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대다수 한자어의 의미를 잘 모르고 사용한다. 예컨대, 영어 전공의 ‘전공(專攻)’이나 내신 성적의 ‘내신(內申)’의 의미를 물으면 제대로 대답할 사람은 별로 없다. 모르고 사용해도 위의 예문에서처럼 무지가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무지가 드러나느냐 드러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깨달은 사람, 즉 본인의 국어 사용 능력이 부족함을 깨달은 사람은 늦었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 적기임을 자각하고, 자신에게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고력을 향상시키고 마음을 맑히는 활동, 곧 한자 공부를 즉시 시작할 일이다.

  Pops English

  Changing Partners - Patti Page

  김창연(본원 운영위원)

  We were waltzing together
  to a dreamy melody
  When they called out "Change partners"
  And you waltzed away from me
  Now my arms feel so empty
  As I gaze around the floor
  And I'll keep on "Changing partners"
  Till I hold you once more
  
  Though we danced for one moment
  and too soon we had to part
  In that wonderful moment
  Something happened to my heart
  So I'll keep changing partners
  Till you're in my arms and then
  Oh! my darling
  I will never change partners again
  
  Though we danced for one moment
  and too soon we had to part
  In that wonderful moment
  Something happened to my heart
  So I'll keep changing partners
  Till you're in my arms and then
  Oh! my darling
  I will never change partners again
  
  우리는 꿈결 같은 멜로디에 맞추어
  왈츠를 추고 있었죠
  사람들이 "파트너를 바꾸어요"라고 말하고
  당신이 춤을 추며 내게서 떨어질 때
  난 마루를 둘러보며
  나의 품이 너무나 허전함을 느껴요
  그럼 난 계속해서 파트너를 바꿀 거예요
  당신을 다시 안을 때까지
  
  비록 우리가 잠시 춤을 추고
  또한 너무나 빨리 헤어져야 했지만
  그토록 경이로운 순간
  나의 마음속에선 무엇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난 계속해서 파트너를 바꿀 거예요
  당신이 다시 나의 품에 안길 때까지
  그러고 나서 오! 나의 사랑
  난 결코 파트너를 다시 바꾸지 않을 거예요
  
  비록 우리가 잠시 춤을 추고
  또한 너무나 빨리 헤어져야 했지만
  그토록 경이로운 순간
  나의 마음속에선 무엇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난 계속해서 파트너를 바꿀 거예요
  당신이 다시 나의 품에 안길 때까지
  그러고 나서 오! 나의 사랑
  난 결코 파트너를 다시 바꾸지 않을 거예요
  
  Patti Page
  1927년 미국 오클라호마 주 클레어모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클라라 앤 파울러(Clara Ann Fowler)로, 1946년 색소폰 연주자 잭 라엘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하였다. 미국의 유명 음반사인 머큐리 레코드와 1947년 계약하고 ‘Confess’, ‘So In Love’, ‘With My Eyes Open, I'm Dreaming’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였다.
  페이지의 대표곡인 ‘테네시 왈츠(Tennessee Waltz)’는 1956년에 테네시 주의 주가로 채택된 바 있고, 발표 당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며 총 1000만 장이 판매되었다. 이 밖에도 ‘Changing Partners’, ‘Mocking Bird Hill’ 등이 인기를 얻으며 ‘스탠더드 팝의 여왕’이라 불렸다. 골든 레코드는 19개, 플래티넘 레코드는 14개가 있으며 누적 판매고는 1억 장으로 집계되었다.
  NBC에서 ‘패티 페이지 쇼’, CBS에서 ‘뮤직 홀’, ABC에서 ‘빅 레코드’의 사회자로 활약하며 가수 최초로 방송 3사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으며 영화 ‘엘머 갠트리(Elmer Gantry)’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1991년에는 그래미 어워즈에서 전통 팝 가수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수년 간 지병에 시달리다가 노환으로 2013년 1월 1일 별세했다.
  한편 패티 페이지는 1963년 첫 내한 공연을 시작으로 1979년과 1980년에 방한한 바 있으며 국내 가수인 패티 김(본명 김혜자)이 자신의 예명으로 사용할 만큼 동경하는 멘토로 알려져 있다.

  [English Humor]
  A man takes his wife to the stock show. They start heading down the alley that houses all the bulls.
  The sign on the first bull's stall states: “This bull mated 50 times last year.” The wife turns to her husband and says, “He mated 50 times in a year, isn't that nice!”
  They proceed to the next bull and his sign stated: “This bull mated 65 times last year.” The wife turns to her husband and says, “This one mated 65 times last year. That is over 5 times a month. You could learn from this one!”
  They proceeded to the last bull and his sign said: “This bull mated 365 times last year.” The wife's mouth drops open and says, “WOW! He mated 365 times last year. That is ONCE A DAY! You could really learn from this one.”
  The fed up man turns to his wife and says, “Go up and ask if he had the same cow every day.”

  어떤 남자가 아내를 가축 전시회에 데리고 갔다. 그들은 황소들이 전시된 곳을 먼저 둘러보기 시작했다.
  첫째 황소 전시장 팻말에 ‘이 황소는 작년에 50회 교미하였음.’이라고  씌어 있었다. 아내가 남편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이 황소는 1년에 교미를 50회나 한대요. 대단하네요!”
  부부는 다음 황소를 구경하였는데, 그 팻말에는 ‘이 황소는 작년에 65회 교미하였음.’이라고 씌어 있었다. 아내가 남편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이 소는 작년에 교미를 65회나 했대요. 그러면 한 달에 5번 이상이 되네요. 당신은 이 소에게서 좀 배워요!”
  부부는 마지막 황소를 둘러보았는데, 그 팻말에는 ‘이 황소는 작년에 365회 교미하였음.’이라고 씌어 있었다. 아내의 입이 떡 벌어졌다. “와! 이 소는 작년에 365회나 했대요. 그렇다면 매일 한 번씩이네요! 당신은 정말 이 소한테서 좀 배워야 해요.”
  질려버린 남편이 아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디 이 황소가 매일 같은 암소와 했는지 가서 물어봐요.”

  명시와 명문

  The Sermon on the Mount

  이석규(본원 운영위원) 발췌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Blessed are they that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shall inherit the earth. Blessed are they which do hunger and thirst after righteousness: for they shall be filled.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shall obtain mercy.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the children of God. Blessed are they which are persecuted for righteousness' sake: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 Ye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that is set on an hill cannot be hid. Neither do men light a candle, and put it under a bushel, but on a candlestick; and it giveth light unto all that are in the house. Let your light so shine before men, that they may see your good works, and glorify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 Ye have heard that it was said by them of old time,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 But I say unto you, That whosoever looketh on a woman to lust after her hath committed adultery with her already in his heart. And if thy right eye offend thee, pluck it out, and cast it from thee: for it is profitable for thee that one of thy members should perish, and not that thy whole body should be cast into hell. And if thy right hand offend thee, cut it off, and cast it from thee: for it is profitable for thee that one of thy members should perish, and not that thy whole body should be cast into hell. It hath been said, Whosoever shall put away his wife, let him give her a writing of divorcement: But I say unto you, That whosoever shall put away his wife, saving for the cause of fornication, causeth her to commit adultery: and whosoever shall marry her that is divorced committeth adultery. … Ye have heard that it hath been said, 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 But I say unto you, That ye resist not evil: but whosoever shall smite thee on thy right cheek, turn to him the other also. And if any man will sue thee at the law, and take away thy coat, let him have thy cloak also. And whosoever shall compel thee to go a mile, go with him twain. Give to him that asketh thee, and from him that would borrow of thee turn not thou away. Ye have heard that it hath been said,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nd hate thine enemy. But I say unto you, Love your enemies, bless them that curse you, do good to them that hate you, and pray for them which despitefully use you, and persecute you; That ye may be the children of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for he maketh his sun to rise on the evil and on the good, and sendeth rain on the just and on the unjust. For if ye love them which love you, what reward have ye? do not even the publicans the same? And if ye salute your brethren only, what do ye more than others? do not even the publicans so? …
  Take heed that ye do not your alms before men, to be seen of them: otherwise ye have no reward of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Therefore when thou doest thine alms, do not sound a trumpet before thee, as the hypocrites do in the synagogues and in the streets, that they may have glory of men. Verily I say unto you, They have their reward. But when thou doest alms, let not thy left hand know what thy right hand doeth: That thine alms may be in secret: and thy Father which seeth in secret himself shall reward thee openly. And when thou prayest, thou shalt not be as the hypocrites are: for they love to pray standing in the synagogues and in the corners of the streets, that they may be seen of men. Verily I say unto you, They have their reward. But thou, when thou prayest, enter into thy closet, and when thou hast shut thy door, pray to thy Father which is in secret; and thy Father which seeth in secret shall reward thee openly. But when ye pray, use not vain repetitions, as the heathen do: for they think that they shall be heard for their much speaking. Be not ye therefore like unto them: for your Father knoweth what things ye have need of, before ye ask him. … Lay not up for yourselves treasures upon earth, where moth and rust doth corrupt, and where thieves break through and steal: But lay up for yourselves treasures in heaven, where neither moth nor rust doth corrupt, and where thieves do not break through nor steal: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will your heart be also. … Therefore I say unto you, Take no thought for your life, what ye shall eat, or what ye shall drink; nor yet for your body, what ye shall put on. Is not the life more than meat, and the body than raiment? Behold the fowls of the air: for they sow not, neither do they reap, nor gather into barns; yet your heavenly Father feedeth them. Are ye not much better than they? Which of you by taking thought can add one cubit unto his stature? And why take ye thought for raiment? Consider the lilies of the field, how they grow; they toil not, neither do they spin: And yet I say unto you, That even Solomon in all his glory was not arrayed like one of these. Wherefore, if God so clothe the grass of the field, which to day is, and to morrow is cast into the oven, shall he not much more clothe you, O ye of little faith? Therefore take no thought, saying, What shall we eat? or, What shall we drink? or, Wherewithal shall we be clothed? (For after all these things do the Gentiles seek:) for your heavenly Father knoweth that ye have need of all these things. But seek ye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shall be added unto you. Take therefore no thought for the morrow: for the morrow shall take thought for the things of itself. Sufficient unto the day is the evil thereof.
  Judge not, that ye be not judged. For with what judgment ye judge, ye shall be judged: and with what measure ye mete, it shall be measured to you again.And why beholdest thou the mote that is in thy brother's eye, but considerest not the beam that is in thine own eye? Or how wilt thou say to thy brother, Let me pull out the mote out of thine eye; and, behold, a beam is in thine own eye? Thou hypocrite, first cast out the beam out of thine own eye; and then shalt thou see clearly to cast out the mote out of thy brother's eye. … Therefore all things whatsoever ye would that men should do to you, do ye even so to them: for this is the law and the prophets. Enter ye in at the strait gate: for wide is the gate, and broad is the way, that leadeth to destruction, and many there be which go in thereat: Because strait is the gate, and narrow is the way, which leadeth unto life, and few there be that find it. Beware of false prophets, which come to you in sheep's clothing, but inwardly they are ravening wolves. Ye shall know them by their fruits. Do men gather grapes of thorns, or figs of thistles? Even so every good tree bringeth forth good fruit; but a corrupt tree bringeth forth evil fruit. A good tree cannot bring forth evil fruit, neither can a corrupt tree bring forth good fruit. Every tree that bringeth not forth good fruit is hewn down, and cast into the fire. Wherefore by their fruits ye shall know them. Not every one that saith unto me, Lord, Lord, shall enter into the kingdom of heaven; but he that doeth the will of my Father which is in heaven. Many will say to me in that day, Lord, Lord, have we not prophesied in thy name? and in thy name have cast out devils? and in thy name done many wonderful works? And then will I profess unto them, I never knew you: depart from me, ye that work iniquity. Therefore whosoever heareth these sayings of mine, and doeth them, I will liken him unto a wise man, which built his house upon a rock: And the rain descended, and the floods came, and the winds blew, and beat upon that house; and it fell not: for it was founded upon a rock. And every one that heareth these sayings of mine, and doeth them not, shall be likened unto a foolish man, which built his house upon the sand: And the rain descended, and the floods came, and the winds blew, and beat upon that house; and it fell: and great was the fall of it.

    산상 수훈(山上垂訓)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치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 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서평

  맹자(孟子)

  이석규(본원 운영위원) 편집

  맹자(孟子)는 사서(四書) 중의 하나이다. 양혜왕에게 왕도 정치를 실시하라고 조언하는 양혜왕(梁惠王), 제자 공손추와 왕도정치에 대해서 논하는 공손추(公孫丑), 왕의 치국의 근본을  밝히고 있는 등문공(滕文公), 자신의 본성을 추구하라고 설파하는 이루(離婁), 천도(天道)와 부합하는 인도(人道)를 행할 것을 주장하는 만장(萬章), 인의(仁義)를 추구할 것을 주장하는 고자(告子), 백성이 국가의 근본임을 주장하는 진심(盡心)의 7편으로 되어 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맹자는 맹자의 저술임이 분명하지만, 자신의 저작물에 ‘맹자’라고 한 점 등을 들어 맹자의 자작(自作)이 아님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당나라의 한유(韓愈)는 맹자가 죽은 뒤 그의 문인들이 그 동안의 일을 기록한 것이라는 말도 하였다. 어쨌든 수미일관(首尾一貫)한 논조와 설득력 있는 논리의 전개, 박력 있는 문장은 맹자라는 인물의 경륜과 인품을 전해주기에 손색이 없다.
  맹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보완·확장하였다. 공자의 인(仁)에 의(義)를 덧붙여 인의를 강조했고, 왕도정치(王道政治)를 말했으며, 민의에 의한 정치적 혁명을 정당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에는 인간에 대한 적극적인 신뢰가 깔려 있다. 사람의 천성은 선하며, 이 착한 본성을 지키고 가다듬는 것이 도덕적 책무라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였다.
  후한의 조기(趙岐)는 맹자에 대한 본격적인 주석 작업을 통해 7편을 상하로 나누어 14편으로 만들었는데, 지금도 이 체재가 보편화되어 있다. 양혜왕은 상편 7장, 하편 16장, 공손추는 상편 9장, 하편 14장, 등문공은 상편 5장, 하편 10장, 이루는 상편 28장, 하편 33장, 만장은 상편 9장, 하편 9장, 고자는 상편 20장, 하편 16장, 진심은 상편 46장, 하편 38장으로 각각 나누어져 있다.
  송대에 이르러 주희(朱熹)는 조기가 훈고(訓詁)에 치중해서 맹자의 깊은 뜻을 간과했다고 비판하고, 성리학의 관점에서 맹자집주(孟子集註)를 지었다. 이 책은 조기의 고주(古註)에 대해 신주(新註)라고 한다. 주자학이 관학(官學)으로 채택된 원대 이래 공식적인 해석서로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에는 유학의 전래와 함께 맹자도 같이 유포되었지만, 고려 말까지는 육경 중심과 사장학적(詞章學的) 경향에 밀려 논어나 문선(文選) 등의 다른 경전에 비해 소홀히 취급되었다. 문장보다 인격을, 육경보다 사서를 교육의 중심으로 삼는 주자학이 도입되어 자리를 굳히면서 맹자는 지식인들의 필독서로 부상하였고, 주희의 주석서가 해석의 정통적 기준이 되었다.
  맹자 사상의 일관된 흐름은 성선설과 혁명론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자학이 활발한 논란을 거쳐 배타적 권위를 형성하는 17세기 말까지 성선설에만 치우쳐 있었다.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에서 비롯된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은 조선조 후반의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인간의 본성을 해명하는 입론(立論)의 근거를 주희의 주석에서만 구함으로써 200여 년 동안 해결을 보지 못했다.
  주희의 경전 해석과 그 바탕에 깔린 세계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윤휴(尹鑴)와 박세당(朴世堂)은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매도당하기도 하였다. 이익(李瀷)은 맹자질서(孟子疾書)에서 맹자가 양혜왕에게 이익을 앞세우지 말라고 한 것은 이익 추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과의 조화를 꾀하자는 데 그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주자학의 비현실적인 명분론과 의리론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맹자는 백가(百家)가 다투어 각기 다른 사상을 펼치던 전국시대에 의연하게 공자 사상을 옹호하고, 이를 한층 진전시켰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맹자 전편에 흐르고 있어서, 아성(亞聖)으로 추앙되고 있다.

  ◎우리가 답사한 유적

  (1) 정선 아우라지
  아우라지는 두 갈래 물이 한데 모여 어우러지는 나루라는 뜻이다. 전국에 이런 지명이 몇몇 있으나, 정선의 아우라지가 대표적이다.
정선 아우라지에서는 북쪽의 구절리에서 흘러오는 구절천과 남동쪽의 임계에서 흘러오는 골지천이 만난다. 구절천은 돌이 많아 거칠게 흐르고 골지천은 잔잔하다. 작은 내인 두 물줄기가 한데 어우러져 조양강, 오대천을 만들고 좀더 굵어진 물줄기는 서남쪽의 영월군으로 빠져나가 남한강의 상류를 이룬다. 여량 사람들은 구절천을 양수(陽水)로, 골지천을 음수(陰水)로 여기는데, 여름 장마 때 양수가 많으면 대홍수가 나고 음수가 많으면 장마가 그친다고 믿고 있다.
  보기에 물이 얕고 잔잔하지만, 나무 다리를 밟거나 나룻배를 타고 물 가운데로 나가면 속이 들여다뵐 만큼 맑고 깊숙하다. 강폭은 그리 넓지 않으나 강변 돌밭이 꽤 넓다. 장마 때는 물이 강변의 아우라지 횟집 있는 데까지 불어난다. 물이 줄어드는 겨울에는 어른 팔뚝만한 통나무를 얼기설기 매어 다리를 놓는데, 물이 불어나 다리가 떠내려가면 아우라지 뱃사공이 사람을 실어 나른다. 삿대를 저어가는 배가 아니라 강물 위에 매어놓은 줄을 당기는 배다. 이 나룻배는 아우라지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 수단이었으나, 정선선 철도가 개통되고, 42번 국도며 구절리와 여량리를 잇는 도로가 차례로 개설되면서 기능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도로로 우회하는 것보다는 나룻배나 나무 다리를 이용하는 게 더 가깝기 때문에 구절리와 여량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아직도 나룻배를 많이 타고 있다.

  (2) 운주사(사적 제312호)
  운주사에는 현재 석불 70구와 석탑 18기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동국여지승람에는 석불, 석탑 각 1000구씩 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까지는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된다. 현재 남아 있는 석불상은 10m의 거구에서부터 수십 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불상들이 흩어져 있다. 이들 불상은 대개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평면적이고 토속적인 얼굴 모양, 돌기둥 모양의 신체,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팔과 손, 어색하면서도 규칙적인 주름, 둔중한 조각 기법이 어느 불상에서나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고려 시대에 지방화된 석불 양식과 비슷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어서 흥미롭다. 아마도 석공들이 대거 동원되어 만든 고려석불인 듯하다. 석탑 18기도 여기저기에 서 있는데 원형탑, 원판형탑 같은 특이한 것도 있으며, 3층, 5층, 7층 등 층수도 다양한 편이다. 일반적인 사각형탑들은 너비가 좁고 높이가 고준하며, 옥개석이 평판이어서 고려석탑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연꽃 받침돌들이 더러 보이는 것 또한 고려 양식의 특징이다. 특히 이 석탑에서 눈에 띄는 것은 기단이나 탑신석의 면석에 X, ◇, lll 같은 기하학 무늬들이 돋을새김과 선새김 등으로 새겨져 있는 점이다. 이러한 기하학 무늬의 애용은 불상의 기학학적 주름과 더불어 이 운주사 유적의 가장 특징적인 양식으로 크게 주목된다.

  (3) 성산패총(사적 제240호)
  성산패총은 마산만에 면한 창원 평야의 중심부에 있는 높이 49m의 독립된 구릉 위에 있다. 1968년 부산 대학교에 의해 1차 발굴이 시도되었고, 1974년 2월부터 5월까지 재조사를 실시하였다. 패총이 분포하는 구릉의 정상부는 약 3만 5000㎡에 달하는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패총은 동·남서·북쪽의 3개 경사면에 흩어져 있다.
  패총의 10∼30cm의 표토층 밑에 두께 2∼3m의 두꺼운 패각층(貝殼層)이 형성되었으며, 그 속에서 김해식(金海式) 토기의 파편들이 발견되었는데, 하층에서는 주로 적갈색 토기, 상층에서는 회청색 경질(硬質) 토기와 신라 토기가 출토되었다. 석기로는 홈자귀와 반달형 석기, 골각기(骨角器)로는 화살촉, 바늘, 송곳, 빗, 칼자루 등과, 철제품으로는 손칼이 출토되었으며, 그밖에 구리 팔찌 1개가 발견되었다. 특이한 유물로는 삼각 집선 거치문대(三角集線鋸齒文帶)가 있는 원반형 유문 토기(有文土器) 제품의 출토를 들 수 있다. 이밖에 서남구의 발굴에서는 중국 한대(漢代)의 화폐인 오수전(五銖錢) 1개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김해 회현리 패총에서 나온 화천(貨泉)과 함께 초기 철기 시대 유적에 대한 연대 결정에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또, 패각층 밑의 생토면(生土面)에서는 철이 녹아 흐른 야철지(冶鐵址)가 두 군데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동래 패총에서 발굴된 같은 시기의 제철 유적과 함께 한국 고대 제철사(製鐵史) 관계자료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한편, 발굴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정상부 주위에 둘려 있는 얕은 할석 축석벽(割石築石壁)의 성터를 발견하였는데, 이 성벽 속에서 중국 당대(唐代)의 개원 통보(開元通寶) 1개가 채집된 것으로 보아, 이 성은 패총과는 시대를 달리한 삼국 시대 신라인이 쌓은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 같이 성산 패총에는 초기 철기 시대에서 삼국 시대에 걸친 유적이 겹쳐 있어서 학술적으로 더욱 주목된다.

  (4) 동국사
  1913년에 일본인 승려 우치다(內田)에 의해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동국사는 한국의 전통 사찰과는 다른 양식이다. 주요 건물은 대웅전, 요사채, 종각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8·15광복 뒤 김남곡 승려가 동국사로 사찰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대웅전은 요사채와 복도로 연결되어 있고, 팔작지붕 홑처마 형식의 일본 에도(江戶) 시대의 건축 양식이다. 건물 외벽에는 창문을 많이 달았고, 우리나라의 처마와 달리 처마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특징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은 모두 없어지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특히 동국사 대웅전은 2003년에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다.

  (5) 고모산성(姑母山城)
  1500여 년의 기나긴 역사 속에 검푸른 이끼와 넝쿨에 묻혀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진남교반(鎭南橋畔)을 말없이 굽어보고 있는 고모산성은 성밖의 수직으로 쌓아 침공에 대비하고 성 안쪽은 비스듬히 쌓아 군병이 오르내리기에 편리하게 하였으며 남북쪽으로 두 개의 통문을 낸 흔적이 뚜렷이 남았으나 성안의 건축물은 흔적조차 없고 농토로 사용되어 원형을 찾을 길이 없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소서행장의 주력부대를 성을 지키는 우리군사 한 명 없이도 만 하루동안 진격을 지연시킬 만큼 천혜의 지세를 이용하여 쌓은 철옹성이었으며 가은읍 출신 전국 도창의대장 운강 이강년 선생이 이끄는 의병이 왜병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고 6.25 동란 때에는 어룡산 진남교반 일대의 치열한 전투로 쌍방이 수많은 희생자를 내게 했던 민족 수난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천년 고성이다.

  (6) 덕천서원(德川書院,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89호)
  1576년(선조 9)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최영경, 하항 등 사림(士林)이 그가 강학하던 자리에 건립한 서원이며 조식 유적지 내에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2년(선조 35)에 중건되었다. 1609년(광해군1) 현판과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아 덕천(德川)이라는 이름으로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덕천서원은 강우유맥 남명학파의 본산이 되었으며 인조반정 등으로 정치적 풍파를 겪었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30년대에 다시 복원되었다. 유적지 경내에는 덕천서원과 함께 산천재(山天齋), 세심정(洗心亭), 조식묘 등이 있다.
  덕산 입구의 입덕문(入德門)을 지나면 수령이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서 있는 덕천서원에 이른다. 입구의 홍살문을 지나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맞배지붕을 올린 솟을삼문인 시정문(時靜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강당인 경의당(敬義堂)이 있고 그 앞쪽으로 동재와 서재가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이 공부하며 거처하던 곳이고 경의당은 서원의 각종 행사와 유생들의 회합 및 토론장소로 사용되던 곳으로 ‘德川書院’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서원의 중심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집으로 중앙에 대청이 있고 그 양쪽으로 툇마루와 난간이 달려있는 2개의 작은 방이 있다.
  경의당 뒤쪽의 신문(神門)을 지나면 사당인 숭덕사(崇德祠)가 나오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맞배집으로 중앙에는 조식의 위패, 오른쪽에는 그의 제자인 최영경(崔永慶)의 위패를 모셔 놓았다. 덕천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3월과 9월의 첫 정일(丁日)에 제사를 지내고 매년 양력 8월 18일에는 남명선생의 탄생을 기념하는 남명제가 열린다.

  (7) 낙안객사(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170호)
  『신증동국여지승람』 궁실조에 따르면 1450년(세종 32) 군수 이인(李茵)이 건립하였다고 하나, 1547년(명종 2) 부사 오성(吳誠)이 건립하였다고 전하기도 하여 확실한 창건 시기는 불분명하다.
  『승주문헌집(昇州文獻集)』에 있는 낙안객사의 상량문에 따르면, 1631년(인조 9)에 군수 정원필(鄭元弼), 1859년(철종 10)에는 이명칠(李明七)에 의해 중건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09년 이후 낙안 초등 학교 교실로 사용되어 내외부가 많이 변조된 것을 1983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밖에 『중간승평지(重刊昇平誌)』(1729년)와 『낙안읍지(樂安邑誌)』(1901년)에는 낙안읍성과 함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배치된 객사의 건물도가 보인다.
  객사는 좌향이 남향인 단층 一자형 평면으로서 앞뒤 마당을 둔 본관은 삼문과 일직선축을 이루며 배치된다. 본관 평면은 유실형(有室形)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인데, 중앙에 정당(正堂)과 좌우에 익사(翼舍)가 서로 연결된 정대칭 구성을 이룬다.
  기단은 축대를 앞마당보다 1단 높게 바른층으로 쌓아올리고, 양 측면과 후면은 같은 높이로 낮은 외벌대를 둠으로써 앞마당과 위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초석은 큰 자연석으로 덤벙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으며, 그 위로 주두(柱頭: 대접받침)를 얹어 창방(昌枋)을 걸었고 창방과 주심도리 사이에는 소로(小櫨)를 끼웠다.
  건물 정면과 측면의 주두에는 연화문 및 닭머리문양[鷄頭文]이 새겨진 2익공포를 두었는데, 내부에는 쇠서[牛舌]를 돌출시키거나 보아지를 달았다. 그러나 후면에는 외부로 쇠서 없이 곧게 잘랐고 내부로 보아지를 달았다.
  가구는 원형 대들보 위에 동자주(童子柱: 세로로 세운 짧은 기둥)를 놓고 종량(宗樑)을 얹은 다음 파련대공(波蓮臺工)으로 종도리를 받게 한 5량 가구이다. 익사의 툇마루에는 용 모양의 충량(衝樑)을 내진주(內陣柱) 위 장여 밑에 걸어 관아의 위엄을 보이고 있다.
  정당인 중앙 6칸은 궐패(闕牌)를 모시는 청마루를 형성하고, 양 익사 4칸은 온돌방 및 마루를 형성하는데 모두 전방과 측방으로 개방하나 배면은 벽으로 막아 폐쇄시킨 구조이다.
  정당의 궐패가 놓이는 내진과 외진 사이 가구에는 관아를 상징하는 홍살을 달고 있다. 익사와 정당의 연결부에는 고주를 세워 종량을 받게 하였고, 정당의 장여가 익사의 도리와 맞이음되도록 하여 지붕의 높이를 조절하였다.
  또한 정당의 맞배지붕은 익사의 팔작지붕보다 더 높게 하여 솟을지붕을 이룬다. 이 밖에 문간채는 정면 3칸 대문과 좌우 측면 1칸씩의 방이 배치되고 솟을지붕을 형성한다.

  (8) 어계생가(유형문화재 제159호)
  조선 전기의 문신 어계 조려(漁溪 趙旅: 1420∼1489) 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조려 선생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단종을 위해 벼슬을 버리고 영월에서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룬 뒤 왕의 얼을 동학사에 모셨다. 그 후 어계 선생은 이곳에서 낚시로 여생을 보냈으며 지금은 후손들의 재실로 사용하고 있다. 대문채·재실·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문채는 3칸으로 가운데 문을 높여 세운 솟을대문을 두었고 양쪽은 방으로 만들었다. 재실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집이다. 一자형 평면으로 부엌이 없이 가운데 2칸을 대청으로 하고, 양쪽은 툇마루를 둔 방을 1칸씩 만든 후 주변에는 담을 둘렀다. 사당은 3칸 一자형 평면에 맞배집이다. 비교적 장식이 섞인 모습을 보여주는 건물로 어계 선생과 부인에게 제를 올리는 곳이다. 대체로 건물의 구조·재료·형태들이 조선 후기 민가의 평범한 양식을 갖추어 간결하고 검소한 느낌을 주고 있다.

  (9) 대아 수목원
  자연 학습 교육, 학술 연구, 산림 사료 및 유전자의 보존 전시, 희귀 식물 자원 보존 등을 통해 종합적인 산림 휴양 공간과 문화 공간, 인간과 생물이 공존하는 자연 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1995년 5월 7일 개원하였다. 전체 면적은 150ha이며, 전라 북도 산림 환경 연구소에서 관리한다.
  시설은 크게 기능별 수목원, 천연림, 건축 시설, 편익 시설, 교육 시설로 구분된다. 기능별 수목원은 약용 수원·유실수원·활엽수원·침엽수원·밀원 수원(蜜源樹園)·관상 수원·수생 식물원·난대 식물원·난대 약용 수원·무궁화원·표본 수원·동백원·목련원 등 14개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면적은 27.5ha이며, 1,151종 29만 7000본이 식재되어 있다.
  천연림은 110ha이며, 층층나무·느티나무·참나무류·비목나무·산벚나무 등이 자란다. 건축 시설은 청사·관리사·온실·화장실·전망대·안내실·전시실·정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의시설로는 산책로·약수터·음료수대·주차장·벤치·간이 화장실 등이 있다. 그 밖에 교육 시설로 1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개의 숲속 교실을 운영하며, 산림 공익 및 환경 해설판, 수목 표찰 등이 설치되어 있다.
  금낭화 자생 군락지로 유명하며, 수목원 내에는 밀화부리·뻐꾸기·노랑턱멧새 등 86종의 조류와 멧돼지·고라니·너구리 등 10종의 수류(獸類)가 서식한다.

  (10) 궁남지(사적 제135호)
  궁남지는 백제 30대 무왕이 634년에 왕궁의 남쪽에 만든 정원의 못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무왕 35년(634)에 궁의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나 되는 곳에서 물을 끌어들여 못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가운데 방장 선산을 모방한 섬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조원사에 삼신산을 조성한 최초의 기록이다. 백제는 삼국 중에 가장 조원 기술이 뛰어나서 노자공이란 백제 사람을 612년 일본 황궁의 정원을 꾸며 일본 아스카 시대 정원사의 시조가 되기도 하였다. 현재 못 주위 면적은13,772평이며 1965년에 못을 복원하고 1971년에 섬 위의 누각과 다리를 건립하였다.

  (11) 홍천성당(등록문화재 제162호)
  송정 공소에서 홍천 본당으로 1923년 6월 승격되었으며, 초대 신부는 황정수 요셉 신부이다. 홍천 일대에 천주교가 전파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뮈텔 주교의 일기에 의하면 1900년경으로 추정된다. 1902년경에는 홍천군 화천면에 공소가 설립되었고 1923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처음 지어진 성당이 6·25전쟁으로 파괴되자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크로스비 신부가 8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53년 전쟁으로 파괴된 목조 교회 부분 복구를 시작했고 1954년 석조 교회 건축 시작해서 1955년에 새로운 성당과 사제관이 완공되었다. 1951년대 석조 성당의 전형을 나타내는 건물로 조형적 특성이 뛰어나 당시의 기술력과 관계자들의 재치와 기지를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기행문

  전남 담양을 다녀와서

조경호(본원 원장)

  2018년 9월 8일 담양 가는 날
  기대와 설렘 때문이었을까.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대한내과 앞에 7시 30분에 도착했는데, 벌써 나와서 기다리는 사람이 몇 있었다. 8시가 되어 일행과 버스에 올랐다. 8시 20분 홈플러스에서 일행을 마저 태우고 담양으로 출발했다.
  이현동 선생님의 여행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듣고 ‘담양 명옥’이라는 사행시 제목도 발표하고 음악을 들으며 잠시 명상에 잠긴 사이 어느새 담양 명옥헌에 도착했다.
  명옥헌은 조선 중기에 오희도라는 사람이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명옥헌을 지었다고 한다.
  건물 앞뒤에는 네모난 연못을 팠고 그 주위에 꽃나무를 심었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정자가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건물 오른쪽으로 돌아 개울을 타고 올라가니 ‘명옥헌 계축’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조그마한 바위도 있었다. 건물 뒤 연못 주위에는 배롱나무가 있고 오른편에는 소나무 군락이 있었다. 계곡 물을 받아 연못을 채우고 주변을 조성한 솜씨와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조상들의 소박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옥구슬 구르는 소리처럼 맑고 청아했는데, 명옥헌이라 이름지은 것은 분명 여기에 연유했으리라. 명옥헌 정자에서 바라본 연못가의 배롱나무와 담양 시가지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 아니었을까? 곱게 핀 연꽃과 배롱나무 불꽃들이 연못에 점점이 떠 있었다. 옥 같은 물소리를 뒤로하고 담양군 남면 지곡리로 향했다. 어제 내린 비로 한층 신선해진 공기를 마시며 식영정으로 올라갔다.
  펼쳐진 길 위로 테마 여행 주인공인 꽃무릇이 망울지어 있었다. 꽃대를 만져 보니 마늘종 같은 느낌이었다. 꽃말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했던가. 식영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조선 시대 건물이었다. 식영정에서 한숨 돌리고 점심 먹으러 창평 장터로 향했다.
  창평 국밥집에서 국밥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이희수씨가 낸 막걸리로 반주를 하고 나니 거나해졌다. 장터를 둘러보며 엿이며 옛날 과자를 사 먹으며 김선기 가옥으로 향했다. 김선기 가옥은 마을의 맨 위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안채, 사랑채, 사당 등으로 되어 있었다. 안채는 ㄷ자형 평면으로 왼쪽에서부터 부엌, 골방, 큰방, 대청 두 칸, 작은방 두 칸 순으로 배치되었고 전체적으로 총고가 낮고 고졸한 느낌이 들었다. 사랑채인 망인당은 팔작지붕이었다.
  고택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당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어 끌어안아 봤더니 손끝에 닿은 거친 껍질에서 장구한 세월을 견뎌 온 풍상이 느껴졌다. 허공으로 뻗은 구불구불한 가지는 승천하려는 용의 형상 같았다.  공허함을 가지고 황량한 절터에 오롯이 서 있는 고려 시대 삼층 석탑을 보러 갔다.
  가는 길목에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 외로이 있어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언곡사지는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백제 성왕 6년(528) 무렵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나 고증할 길이 없으며 절 이름 역시 각종 지리지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전해지는 내용을 인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현 봉안리 뒷산인 비봉산에 있었던 것을 1927년에 무정 초등학교로 옮겼다가 1995년 지금의 위치로 다시 원상 복구하였다고 한다. 거기서 담양 기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담빛 예술 창고로 갔다.
  창고 정면 양쪽 벽면에 대나무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고 연주 음악이 커피향과 어울려 은은히 흐르고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퀴즈도 맞히고 사행시도 발표하는 사이에 대구에 도착했다.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 했던가. 몸소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문화 기행이라는 책을 읽어서 행복한 날이었다. ‘담양 명옥’을 시제로 한 사행시 중에 마음에 드는 한 편이 있어 옮겨 본다.
  담: 담빛 창고 보물 창고
  양: 양지의 빛을 담은 곳
  명: 명곡 연주의 감동 물결
  옥: 옥소리가 아름다울까, 대나무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아름다울까

  ▣ 역사 기행 - 답사 사행시

  시제: 정선동해

김용국
  정: 정 따라 산 넘고 물 건너
  선: 선녀보다 아리따운 여인 따라 정선에서 하룻밤 회포 풀고
  동: 동해바다의 아름다운 경치를 뒤로하고
  해: 해변 길을 달려 무릉 계곡에서 막걸리 한잔에 이 여행의 대미를장식한다

김태옥
  정: 정선에서의 일박은
  선: 선물 같은 하루였네
  동: 동해의 용추 폭포는 막힌 속도 뚫어 주었네
  해: 해마다 여름 캠프는 빠지지 말아야지

이규준
  정: 정선, 말로만 듣던 정선을 이렇게 와서
  선: 선량하고 인심 좋은 사람들과
  동: 동해 두타산 쌍포 폭포 앞에서 한 장 박고
  해: 해롱해롱하도록 주식을 포식하고 시원한 바람을 가슴 가득 쐬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는가!

시제: 화순운주

김형엽
  화: 화사한 초가을에
  순: 순조롭게 문화 여행을 와서
  운: 운수 좋게도 좋은 분들과 맛난 점심을 먹고
  주: 주말의 재충전을 하고 갑니다.

설원형
  화: 화순에서 보낸 오늘 하루는
  순: 순조롭고 기분 좋은 역사 문화 기행으로
  운: 운영된 가운데
  주: 주말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함께해준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제: 창원성산

김태옥
  창: 창원의 고찰
  원: 원색으로 물들인 가을 산
  성: 성주사의 고요한 풍경 소리
  산: 산속의 아늑함이 엄마 품같이 포근해~

시제: 군산탁류

전재영
  군: 군것질할 과자가
  산: 산처럼
  탁: 탁자에 쌓여 있는데
  유: 유리창이 닫혀 있어 먹질 못했다. 쩝~

전은태
  군: 군산의
  산: 산과 물
  탁: 탁 트인 평야
  유: 유장한 음악 연주까지 최고입니다.

배순선
  군: 군산 역사 기행
  산: 산과 들에 아로새겨진 아픈 역사와
  탁: “탁류” 소설 속의
  유: 유창하고 맛깔스런 사투리를 연구해 보고 싶다.

시제: 문경가은

김태옥
  문: 문경이라 가은은
  경: 경치도 빼어나지만
  가: 가는 곳마다 선조들의 얼이
  은: 은은하게 묻어나네.

신기웅
  문: 문득 생각에 잠겨 본다
  경: 경숙이와 걷던 그 오솔길
  가: 가을 냄새 물씬 풍기던 그 곳
  은: 은행잎 흩날리던 그 길로 다시 가 보았으면

시제: 매화산청

김용국
  매: 매화향 흠뻑 머금은 꽃망울
  화: 화려하진 않지만 오랜 세월 견뎌 온 산청의 삼매
  산: 산청의 맑은 공기 속에서
  청: 청명한 봄날에 함께한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김정희
  매: 매화여
  화: 화사한 매화여
  산: 산천의 매화여
  청: 청아한 매화여 나는 너를 결국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구나.

이종향
  매: 매화로 유명하다는 산청엘 왔더니
  화: 화창한 날씨에 막걸리는 잘도 넘어가고
  산: 산청 딸기는 더욱 꿀맛이고
  청: 청초한 매화 빛깔은 뇌리를 오래도록 떠나지 않을 듯합니다.

시제: 우중순천

장경희
  우: 우짜까예?
  중: 중요한 사행시 짓지 못했었예
  순: 순천의 매력에 푹 빠져서
  천: 천상에서 노닐다가 방금 내려왔어예

김미진
  우: 우산 들고 남편 아들 손 잡고 룰루랄라 문화 탐방 가네 차에 몸을 싣고
  중: 중간 중간 간식도 먹고 해설도 들으며
  순: 순수한 우리 문화재 낙안 읍성 걸으니 내 마음 안온해지고
  천: 천천히 완상하며 송광사 물 흐르는 소리 들으니 이 비도 정말 좋네

시제: 의령 함안

이석규
  의: 의령에 와서 단 한 가지 소원은
  령: 영천에 가서도 단 한 가지 소원은
  함: 함안에 와서도 단 한 가지 소원은
  안: 안동에 가서도 단 한 가지 소원은 사행시로 상 한 번 받아 봤으면

시제: 완주 대아

전은태
  완: 완두콩 닮은 눈망울로
  주: 주인처럼 객을 맞이하는
  대: 대단한 검둥이
  아: 아마도 화암사를 지키는 부처인가보다

변성재
  완: 완전 매진 문화원 역사 기행
  주: 주저하지 마세요
  대: 대기자가 많으니 서두르세요
  아: 아깝지 않은 기행입니다.

시제: 백마 부여

배순선
  백: 백색 구름이 푸른 하늘에 두둥실
  마: 마치 해설사 이현동님 같습니다
  부: 부는 바람 따라
  여: 여기저기 다니며 해설하는 참 좋은 안내자입니다.

전재영
  백: 백방으로 소문난 무량사
  마: 마당에 선 그림 같은 소나무 한 그루
  부: 부여안고
  여: 여기 계신 분들의 만수 무강을 빕니다.

하은진
  백: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마: 마음이
  부: 부자 되는
  여: 여행이었다.

이석규
  백: 백천만겁난조우는 칙천무후의 신앙 고백이요
  마: 마이불린 열이불치는 조선 선비의 불변의 지조요
  부: 부창부수 여필종부는 동래 정씨의 남편 섬기는 신조요
  여: 여수장 우중문시는 천하무적 고구려 무인의 불굴의 기개라

시제: 홍천용소

배순선
  홍: 홍천을 기행 장소로 정한 이유
  천: 천상의 신선놀음 체험인가 보다
  용: 용이 승천한 계곡에서 들려오는
  소: 소리는 미묘한 자연의 화음이로다

김은철
  홍: 홍천에 와서 푸르름을 깊이 깊이 느꼈습니다
  천: 천지에 늘어선 수목 속에서 별 을 바라보며
  용: 용기 내어 자연을 사랑한다 외치며
  소: 소리 높여 자연을 찬양하리라

정경미
  홍: 홍천은 제가 좋아하는 선배의 고향입니다
  천: 천거를 흐르는 물소리에 뼛속까지 시원해집니다.
  용: 용꿈을 안고
  소: 소인은 홍천을 물러갑니다.

  장애인의 장애 극복기

  해맑은 우리 아기의 웃음을 위해

  최주현(27세, 여, 뇌성마비 1급)

  나는 부모님을 알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시설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언제 무슨 원인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사지를 다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혼자서는 식사도 양치질도 세수도 할 수 없고 옷도 입을 수 없다. 누가 옆에서 늘 도와주어야만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다. 시설에 있을 때는 보모가 전적으로 도와주었고, 지금은 남편이 도와주고 있다. 다만 오른쪽 손가락을 조금 움직일 수가 있기 때문에 전동 휠체어 컨트롤러를 조작하여 집안에서 움직이거나 볼일을 보러 다닐 수는 있다. 그리고 입에 스틱을 물고 자판을 치고 키보드로 마우스 포인트를 맞추어 사용하는 정도이지만 컴퓨터도 조금은 다룰 수 있다. 언어 장애도 심하여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는 의사 소통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천천히 귀를 기울여 듣는다면 나의 말을 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과는 의사 소통을 하기가 곤란하다.
  언제 시설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초등 학교도 시설 내의 학교를 다녔다. 지적 장애와 신체 장애 둘 다를 가진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별로 없어 힘이 들고 외로웠다. 그리고 수학 시간에는 곱셈과 나눗셈은 가르쳐 주지 않고 덧셈과 뺄셈만 반복해서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지적 욕구와 호기심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나에게만 방과 후에 보충 수업을 해 주셨기 때문에 나는 일반 학교의 학생들과 똑같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살았던 시설은 산꼭대기에 있었기 때문에 외출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외출을 특별히 금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산밑으로 내려가는 데만 1시간 정도가 걸리는 어려운 길이었고, 외출을 하려면 여러 사람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으므로 단체로 하는 견학이나 나들이 때가 아니면 외출은 불가능했다. 가끔 외부에서 학생들이나 어른들이 봉사 활동을 와서 바깥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외부 세계를 동경하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나는 시설 선생님들에게 중학교에 보내 달라고 부탁도 하고 시위도 했더니 나를 중학교에 진학시켜 주었다.
  시설 내에는 중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근처의 특수 학교에 다녀야 했다. 시설에서 중학교에 진학한 학생은 나 뿐이었으므로 혼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2년 뒤 시설 내에도 중학부가 설치되었지만 나는 다니던 학교를 계속 다녔다. 중학교 1학년 때는 공부가 어려웠다. 초등 학교 때 선생님들이 나에게 과외 지도를 해 주기는 했지만 정규 교육 과정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한 결과 2학년 때부터는 별 어려움 없이 따라갈 수 있었다.
  우리 학교에는 지체 장애 학생과 뇌성 마비 학생을 비롯하여 여러 유형의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일반 학교에서와 똑같은 정규 과목을 알차게 공부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나는 몸이 자그마하고 예뻐서 친구들이나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귀여움을 받으며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시설 밖에 있는 중고등 학교를 다니면서 시설 밖의 세계를 조금씩 알 수 있었고, 시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강해졌다. 하지만 나는 시설을 나갈 수 있는 방법도 시설을 떠나 혼자서 살아갈 방법도 몰랐다.
  고등 학교를 졸업할 무렵, 내가 있던 시설 내에 자립 생활 체험 홈이 개설되자 자립 생활 체험 홈에 입주를 신청했다. 다행히 체험 홈 실습자로 선정되어 두 명의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나 말이 자립 생활 체험 홈이지 시설 내의 방 하나에다 ‘자립 생활 체험 홈’이라는 팻말을 붙인 것이 전부였다. 기거하는 방만 바뀌었을 뿐 자립 생활을 위한 교육이나 준비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밖에 나가서 혼자 살아가려면 여러 가지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내가 할 수도 없는 여러 가지 재활 훈련을 억지로 시키기도 했지만 나의 장애가 그 훈련을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는 이내 그만두고 말았다.
  지금 되돌아보면 당시 체험 홈에서 나에게 억지로 훈련시키려 했던 것들 중에서 현재 내가 자립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거의 없다. 시설 내에서는 중증장애인들이 생활하기에 편리하도록 여러 가지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므로 체험 홈에서 연습한 것들이 시설 내에서 생활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실제로 자립생활을 해야 하는 세상은 시설처럼 편의 시설이나 그 밖의 환경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시설에서 연습하고 훈련한 것이 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재활 훈련을 할 수 없게 되자 체험 홈에 살고 있으면서도 나의 생활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지만 장애가 심해서 일을 할 수도 없었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컴퓨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시설 내 자립 생활 체험 홈에서 2년을 살고 나서 나는 시설 밖에 새롭게 마련된 자립 생활 체험 홈으로 이주하여 3년 동안 살았다. 시설 밖 체험 홈에서 함께 거주했던 친구들은 시설 내 체험 홈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립 생활을 위한 재활 훈련을 반복해서 받아야 했지만 나는 대부분 외출을 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할 수도 없는 재활 훈련을 반복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다. 시설 밖 체험 홈에서는 밤에 늦게 다니지 말고 일찍 들어오라고 간섭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외출을 제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고등 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자주 외출을 했던 것이다.
  시설을 떠나고 싶은 열망을 가슴 속에서 키워가던 나는 체험 홈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차례 시설을 떠나 자립 생활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지만 시설 측에서는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시설 측에서는 중증 장애를 가진 몸으로 어떻게 시설을 떠나 혼자서 살아갈 수 있겠느냐, 아직 자립 생활을 하기에는 준비와 훈련이 부족하다는 말로 나의 요구를 거절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이유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시설을 떠나기 위해 시설 측과 옥신각신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내 앞으로 200만원의 후원금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그것이 나를 시설에서 내보내려 하지 않는 진정한 이유였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친척 하나 없는 내가 혼자 나가서 살아갈 수 있을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시설측은 나의 자립 생활을 허락해 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중학교 같은 반에서 만난 남자 친구와 속도위반을 해서 임신을 했고, 뱃속에 아기를 가져서 곧 결혼을 해야 하니 시설을 나가게 해 달라고 요구를 했다. 시설 측에서는 그제서야 순순히 나의 시설 퇴소를 허락해 주었다.
  25살 때 나는 임신 6개월의 몸으로 결혼을 하고, 그동안 살았던 시설을 떠나 대구로 왔다. 결혼 과정에서 시댁에서는 많은 반대를 했지만 남편과 나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지체 장애 1급인 남편은 사회 단체에서 근무하고 있었지만, 모아 놓은 돈도 없고 월급도 많지 않았으며, 나의 장애가 심해서 나 혼자서는 집안 살림을 제대로 꾸려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시댁에 들어가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결혼 초 임신을 하고 있던 몸이라 먹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가진 돈이 없어 고픈 배를 쓰다듬으며 많이 울었다. 임신 8개월이 되었을 때 시댁에서 그대로 아이를 낳게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시어머니는 시어머니 소유의 다른 집으로 우리를 분가시켜 주었다. 내가 시댁에서 분가하여 남편과 둘이 살기 시작하던 무렵 활동 보조 제도가 시범 운영되었는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활동 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가며 어렵지만 살림을 꾸려 갈 수 있었다. 처음 우리 집에 활동 보조를 오신 분은 자기 주장이 매우 강하신 분이어서 그런지 나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곤 했다. 내가 어떤 일을 이렇게 저렇게 처리해 달라고 이야기를 해도 나의 말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분은 자신에게도 나에 비해 경증이긴 하지만 장애를 가진 딸이 있어서 장애인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고 자신이 다 알아서 한다면서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처리했다. 우리 집에 활동 보조를 하러 오면서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우리 집에서 떠들고 놀다 가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내가 돌볼 수 없는 우리 아기를 돌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갓난아기를 앞에 두고 술을 마시고 아이 얼굴에 술 냄새를 내뿜기도 하였다. 나는 그래도 나를 도와주러 오신 분이라 생각해서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몇 차례 부탁도 해 보았지만 계속 참고 견디기에는 그분의 태도가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사람으로 보조인을 바꾸어 줄 것을 센터에 요청하기도 했다. 지금 오시는 분은 여러 가지로 잘 해 주시기 때문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시설에서 생활할 때는 만나는 사람도 주로 시설 거주자였기 때문에 별다른 차별을 받은 기억이 없다. 그러나 시설을 나와 가족과 함께 살아가다 보니 여러 가지 불편함과 어려움이 있고, 사람들의 낯선 시선을 만나게 된다.
  내가 몸이 작고 겉으로 보기에 나이가 어려 보이기 때문인지 혼자서 길을 가다보면 “얘, 꼬마야. 엄마는 어디 두고 혼자 가는 거니?”라며, 쉽게 말을 놓고 어린애 취급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굉장히 불쾌하고 화가 많이 난다.
  볼일을 보러 외출을 할 때는 주로 지하철이나 저상 버스를 이용한다. 지하철은 편리하기는 하지만 리프트를 타고 내리거나 1호선과 2호선을 갈아타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리프트 타는 것이 불안할 때가 많다. 저상 버스는 운행 횟수가 많지는 않지만 배차 시간을 잘 맞추게 되면 편안하게 탈 수가 있고, 우리 동네에는 새로 아파트를 신축하면서 인도가 잘 닦여져 있어 저상 버스를 타고 내리는 일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슈퍼마켓이 없기 때문에 장을 보기 위해서는 도심지에 있는 대형 마트까지 나가야 한다. 동네 슈퍼마켓에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경사로와 같은 것이 마련된다면 멀리까지 나가지 않아도 될 텐데 불편하고 아쉬울 때가 많다. 마트에 갈 때는 혼자 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기도 하는데, 혼자 마트에 볼일을 보러 갈 때는 내가 언어 장애가 있기 때문에 상인들이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기분이 상해서 물건을 사지 않고 나오곤 한다.
  한 번은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갔었는데 직원이 나에게 “이것 살 돈 있느냐?”고 대뜸 묻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화가 나서 그 매장에서 비싸게 보이는 물건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얼마냐고 물어본 다음에 “참 비싸네.”라고 말하고는 값이 싼 물건을 하나 사 가지고 나온 일이 있다. 하지만 내가 한 말을 그 사람이 제대로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다. 또 한 번은 집에서와 같은 차림으로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구경하고 있는데, 관리인인 듯한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여기는 돈을 주는 곳이 아니고, 줄 돈도 없으니 어서 그냥 나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나 화가 나고 마음이 상해서 남편과 함께 그 사람을 백화점 고객 센터에 고발을 해 버렸다.
  동사무소나 은행 같은 곳에 볼일을 보러 가게 되면 직원들이 나와 대화가 잘 되지 않아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직접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꼭 다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한다. 처음에는 나를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몹시 상하기도 했지만 그런 일로 계속 기분을 상할 수는 없었기에 요즈음은 다른 사람과 동행을 하고 있어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는 않는다.
  얼마 전에는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었는데,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난 일이 있었다. 직원을 호출하자 그 직원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으므로 계단으로 나를 들어 올려 주겠다고 했으나 나는 엘리베이터가 고쳐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그 직원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 직원은 나를 들어올려 주겠다는 자신의 호의를 내가 거절한 것에 무안했던지 엘리베이터를 몇 번 손으로 치고는 식당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행히 몇 분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고쳐져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이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없는 걸 문 앞에서 당황하고 있을 때 휠체어를 들어올리거나 몸을 안거나 업어서 올려 주겠다고 쉽게 말을 하지만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은 낯선 사람의 등에 업히거나 가슴에 안기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리고 전동 휠체어는 매우 무겁기 때문에 잘못 들어올리다가는 사고가 날 수도 있고, 무거운 휠체어를 들어올리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불안하게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도 내키지 않는 일이다. 더구나 나는 그날 치마를 입고 있었고,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고 싶었다.
  휠체어를 타고 길을 가다 보면 지나가는 할머니들이 쯧쯧하며 혀를 차는 소리를 듣는 일은 너무나 흔해서 요즈음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지만 한번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어느 할머니가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를 치료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자기와 함께 가자는 것이 아닌가. 나는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대답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나와 버렸다.
  얼마 전에는 휠체어를 타고 인도를 지나가다가 인도에 벌여 놓은 좌판을 들이받아 상인에게 손해를 끼친 일이 있었다. 나는 내가 실수를 하여 물건을 망가뜨렸다고 생각해서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손해를 변상해 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상인은 나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장애인이 무슨 돈이 있겠느냐고 그냥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분이 몹시 상해서 그 사람 앞으로 지갑을 던져 주고는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한 번은 남편과 함께 휴대폰을 사러 간 적이 있는데, 휴대폰 가게 점원이 나와 남편에게 부부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가져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주민등록증도 보여 주고 성인임을 밝혔지만 그 아저씨는 막무가내였다. 나는 화도 나고 어이도 없고 해서 그 가게를 나와 다른 가게로 들어가 마음에 드는 휴대폰을 구입했다. 새로 들어간 그 가게에서는 신속하게 일을 처리해 주었다. 부부 증명서 같은 말도 안 되는 서류는커녕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고서.
  한 번은 우리 아기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도심에 있는 대형 서점에 가서 육아에 관한 책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직원이 다가오더니 학생들이 필요한 책은 다른 곳에 있으니 그곳으로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직원에게 내가 집에 아기가 있어 육아에 관한 책을 찾아보러 왔다고 말하자 그 직원은 어떻게 아이한테 아기가 있느냐고 놀라며 황당해 하는 모습을 접하기도 하였다.
  거리에서 만나는 시민들의 낯선 시선들은 여전히 나의 마음을 힘들게 한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쳐 주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가고 있으면 어린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무슨 구경거리라도 만난 듯이 쳐다보곤 하는데, 사람들의 낯선 눈빛이 다가올 때마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두 달 정도만이라도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장애인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집중적인 홍보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에서는 장애인을 소개하는 프로가 많이 있지만 대부분이 장애인을 불쌍한 존재로, 동정이 필요한 존재로 그리고 있어 시민들에게 장애인의 삶을 제대로 알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에게는 마음의 상처만 더하고 있다. 진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실제 모습을,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의 온갖 장벽과 마주하면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 준다면 시민들의 인식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다.
  중증 장애를 가진 몸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다. 한동안 아기 분유 값이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 후원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은 따스한 마음으로 진정어린 도움을 주었지만, 몇 몇 분들은 장애인을 얕잡아 보고 몇 푼의 돈으로 생색을 내려고 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남편의 적은 수입으로 세 식구가 살아가기에는 많이 힘들고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일을 해서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뿌듯함이 있다. 남편의 월급은 주로 아기에게 필요한 것 위주로 지출을 하고, 최소한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래도 부족한 것은 시댁에서 조금 보조를 해 주지만 아직 고등 학교에 다니는 시동생이 있어 언제까지 보조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러나 아기가 튼튼하고 건강해서 잔병치레도 하지 않아 병원비가 들지 않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18개월 된 딸아이가 한 번씩 엄마 냄새를 찾아 품을 찾아들 때면 마음껏 안아 주지 못하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지금은 나보다는 다른 사람의 손에서 자라는 것이 그 아이에게 낫다는 생각으로 안아 보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있다. 때로는 말을 안 듣기도 하지만 무럭무럭 자라는 아기가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우리 아기의 건강하고 해맑은 웃음을 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생활 수필

  백설부(白雪賦)

  김진섭(수필가)

  말하기조차 어리석은 일이나, 도회인으로서 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눈을 즐겨하는 것은 비단 개와 어린이들뿐만이 아닐 것이요, 겨울에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일제히 고요한 환호성을 소리 높이 지르는 듯한 느낌이 난다.
  눈 오는 날에 나는 일찍이 무기력하고 우울한 통행인을 거리에서 보지 못하였으니, 부드러운 설편(雪片)이 생활에 지친 우리의 굳은 얼굴을 어루만지고 간지릴 때, 우리는 어찌된 연유(緣由)인지, 부지중(不知中) 온화하게 된 마음과 인간다운 색채를 띤 눈을 가지고 이웃 사람들에게 경쾌한 목례(目禮)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겨울을 사랑한다. 겨울의 모진 바람 속에 태고(太古)의 음향을 찾아 듣기를 나는 좋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어라 해도 겨울이 겨울다운 서정시(抒情詩)는 백설(白雪), 이것이 정숙히 읊조리는 것이니, 겨울이 익어 가면 최초의 강설(降雪)에 의해서 멀고 먼 동경의 나라는 비로소 도회에까지 고요히 고요히 들어오는 것인데, 눈이 와서 도회가 잠시 문명의 구각(舊殼)을 탈(脫)하고 현란한 백의(白衣)를 갈아입을 때, 눈과 같이 온 이 넓고 힘세고 성스러운 나라 때문에 도회는 문뜩 얼마나 조용해지고 자그마해지고 정숙해지는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이 때 집이란 집은 모두가 먼 꿈 속에 포근히 안기고 사람들 역시 희귀한 자연의 아들이 되어 모든 것은 일시에 원시 시대의 풍속을 탈환한 상태를 정(呈)한다.
  온 천하가 얼어붙어서 찬 돌과 같이도 딱딱한 겨울날의 한가운데, 대체 어디서부터 이 한없이 부드럽고 깨끗한 영혼은 아무 소리도 없이 한들한들 춤추며 내려오는 것인지, 비가 겨울이 되면 얼어서 눈으로 화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만일에 이 삭연(索然)한 삼동이 불행히도 백설을 가질 수 없다면, 우리의 적은 위안은 더욱이나 그 양을 줄이고야 말 것이니, 가령 우리가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추위를 참고 열고 싶지 않은 창을 가만히 밀고 밖을 한번 내다보면, 이것이 무어랴, 백설 애애(白雪皚皚)한 세계가 눈앞에 전개되어 있을 때, 그때 우리가 마음에 느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말할 수 없는 환희 속에 우리가 느끼는 감상은 물론, 우리가 간밤에 고운 눈이 이같이 내려서 쌓이는 것도 모르고 이 아름다운 밤을 헛되이 자버렸다는 것에 대한 후회의 정이요, 그래서 가령 우리는 어젯밤에 잘 적엔 인생의 무의미에 대해서 최후의 단안을 내린 바 있었다 하더라도, 적설(積雪)을 조망하는 이 순간에만은 생(生)의 고요한 유열(愉悅)과 가슴의 가벼운 경악을 아울러 맛볼지니, 소리없이 온 눈이 소리없이 곧 가버리지 않고 마치 그것은 하늘이 내리어주신 선물인거나 같이 순결하고 반가운 모양으로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또 순화(純化)시켜 주기 위해서 아직도 얼마 사이까지는 남아 있어 준다는 것은, 흡사 우리의 애인이 우리를 가만히 몰래 습격함으로 의해서 우리의 경탄과 우리의 열락(悅樂)을 더한층 고조하려는 그것과도 같다고나 할는지!
  우리의 온 밤을 행복스럽게 만들어주기는 하나, 아침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감미한 꿈과 같이 그렇게 민속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한 번 내린 눈은, 그러나 그다지 오랫동안은 남아 있어 주지는 않는다.
  이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슬픈 일이나 얼마나 단명(短命)하며 또 얼마나 없어지기 쉬운가! 그것은 말하자면 기적같이 와서는 행복같이 달아나 버리는 것이다.
  변연(便娟) 백설이 경쾌한 윤무(輪舞)를 가지고 공중에서 편편히 지상에 내려올 때, 이 순치(馴致)할 수 없는 고공(高空) 무용이 원거리에 뻗친 과감한 분란(紛亂)은 이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의 처연한 심사를 가지게까지 하는데, 대체 이들 흰 생명들은 이렇게 수많이 모여선 어디로 가려는 것인고? 이는 자유의 도취 속에 부유(浮遊)함을 말함인가? 혹은 그는 우리의 참여하기 어려운 열락(悅樂)에 탐닉하고 있음을 말함인가? 백설이여! 잠시 묻노니, 너는 지상의 누가 유혹했기에 이 곳에 내려오는 것이며, 그리고 또 너는 공중에서 무질서의 쾌락을 배운 뒤에, 이 곳에 와서 무엇을 시작하려는 것이냐?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요, 바람의 희생자인 백설이여! 과연 뉘라서 너희의 무정부주의를 통제할 수 있으랴! 너희들은 우리들 사람까지를 너희의 혼란 속에 휩쓸어 넣을 작정인 줄을 알 수 없으되 그리고 또 사실상 그 속에 혹은 기꺼이, 혹은 할 수 없이 휩쓸려 들어가는 자도 많이 있으리라마는 그러나 사람이 과연 그러한 혼탁한 와중(渦中)에서 능히 견딜 수 있으리라고 너희는 생각하느냐?  
  백설의 이 같은 난무(亂舞)는 물론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강설(降雪)의 상태가 정지되면, 눈은 지상에 쌓여 실로 놀랄 만한 통일체를 현출(現出)시키는 것이니, 이와 같은 완전한 질서, 이와 같은 화려한 장식을 우리는 백설이 아니면 어디서 또다시 발견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 주위에는 또한 하나의 신성한 정밀(靜謐)이 진좌(鎭座)하여,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을 엿듣도록 명령하는 것이니, 이때 모든 사람은 긴장한 마음을 가지고 백설의 계시(啓示)에 깊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보라! 우리가 절망 속에서 기다리고 동경하던 계시는 참으로 여기 우리 앞에 와서 있지는 않는가? 어제까지도 침울한 암흑 속에 잠겨 있던 모든 것이, 이제는 백설의 은총(恩寵)에 의하여 문뜩 빛나고 번쩍이고 약동하고 웃음치기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라붙은 풀 포기, 앙상한 나뭇가지들조차 풍만한 백화(百花)를 달고 있음은 물론이요, 괴벗은 전야(田野)는 성자의 영지(領地)가 되고, 공허한 정원은 아름다운 선물로 가득하다. 모든 것은 성화(聖化)되어 새롭고 정결하고 젊고 정숙한 가운데 소생되는데, 그 질서, 그 정밀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며 영원의 해조(諧調)에 대하여 말한다.
  이때 우리의 회의(懷疑)는 사라지고, 우리의 두 눈은 빛나며, 우리의 가슴은 말할 수 없는 무엇을 느끼면서, 위에서 온 축복을 향해서 오직 감사와 찬탄을 노래할 뿐이다.
  눈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덮어줌으로 의해서 하나같이 희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지만, 특히 그중에도 눈에 덮인 공원, 눈에 안긴 성사(城舍), 눈 밑에 누운 무너진 고적(古蹟), 눈 속에 높이 선 동상(銅像) 등을 봄은 일단으로 더 흥취의 깊은 곳이 있으니, 그것은 모두가 우울한 옛 시를 읽은 것과도 같이, 그 눈이 내리는 배후에는 알 수 없는 신비가 숨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공원에는 아마도 늙을 줄을 모르는 흰 사람들이 떼를 지어 뛰어다닐지도 모르는 것이고, 저 성사(城舍) 안 심원(深園)에는 이상한 향기를 가진 알라바스터의 꽃이 한 송이 눈 속에 외로이 피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며, 저 동상(銅像)은 아마도 이 모든 비밀을 저 혼자 알게 되는 것을 안타까이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어라 해도 참된 눈은 도회에 속할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산중 깊이 천인 만장(千仞萬丈)의 계곡에서 맹수를 잡는 자의 체험할 물건이 아니면 아니된다.
  생각하여 보라! 이 세상에 있는 눈으로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니, 가령 열대의 뜨거운 태양에 쪼임을 받는 저 킬리만자로의 눈, 멀고 먼 옛날부터 아직껏 녹지 않고 안타르크리스에 잔존(殘存)해 있다는 눈, 우랄과 알래스카의 고원에 보이는 적설(積雪), 또는 오자마자 순식간에 없어져 버린다는 상부 이탈리아의 눈 등. 이러한 여러 가지 종류의 눈을 보지 않고는 도저히 눈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 우리의 눈에 대한 체험은 그저 단순히 눈 오는 밤에 서울 거리를 술집이나 몇 집 들어가며 배회하는 정도에 국한되는 것이니, 생각하면 사실 나의 백설부(白雪賦)란 것도 근거 없고 싱겁기가 짝이 없다 할밖에 없다.

  문화원 소식

  2017년 8월 12일~13일 제146차 역사 문화 기행은 강원도 정선의 고학규 가옥, 정선5일장, 아리랑극, 아우라지강, 백두 대간 약초 마을, 백두 대간 생태 수목원, 동해 무릉 계곡을 다녀왔습니다. 정선의 특산물 곤드레밥으로 식사를 하고 정선 아리랑극 관람 후 정선 5일장에서 시장 구경을 한 후 약초 나라 펜션에 도착하니 보이는 것은 산과 나무뿐이었습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모두들 하나가 되어 신명나게 게임을 즐겼습니다.
  8월 22일 대구 콘서트 하우스 그랜드홀에서 마티네 콘서트를 관람하였습니다.
  8월 23일 대구 문화 예술 회관 팔공홀에서 극단 한울림 20주년 기념 공연 <울돌목>을 관람하였습니다.
  8월 30일 아양 아트 센터 아양홀에서 Fun’s jazz ensemble의 <Jazz in Summer> 연주를 관람하였습니다.
  9월6일~11월29일 제14기 시각 장애인을 위한 도서 낭독 아카데미를 12주 과정으로 진행하였습니다.
  9월 7일 대구 콘서트 하우스 그랜드홀에서 대구 시립 교향악단의 디스커버리 시리즈 ‘뉴 사운드 오브 대구 2017’을 관람하였습니다.
  9월 9일 제147차 역사 문화 기행으로 전라남도 화순의 쌍봉사, 조광조 적려 유허지, 운주사를 다녀왔습니다. 신라 경문왕 때 철감 선사가 창건한 쌍봉사 대웅전은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3층 목조 팔작 지붕이었고, 철감 선사탑은 신라의 부도 중 가장 화려한 최대의 걸작품으로 화강암을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구름이 머문다는 운주사, 천불 천탑, 도대체 누가 이런 많은 불상과 탑을 만들었는지 신비로왔습니다.
  9월 14일~21일 이태호 박사의 장자의 사상과 생애를 주제로 한 인문학 강의가 있었습니다.
  9월 22일 대구 콘서트 하우스 그랜드홀에서 대구 시립 교향악단의 제437회 정기 연주회 ‘차이콥스키와 라벨’을 관람하였습니다.
  9월 23일 아양 아트 센터 아양홀에서 이병우 기타 솔로 콘서트 ‘우주 기타’를 관람하였습니다.
  10월 14일 제147차 역사 문화 기행으로 경남 창원의 불곡사, 성주사, 성산 패총, 무점 코스모스 길을 다녀오고, 밀양의 삼문동 구절초를 감상하였습니다. 야철지, 성산 패총에서 철기 시대의 단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남 저수지 옆 무점 마을 코스모스길은 황금 들녘을 바라보며 걷기에 더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10월 17일 대구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 콘체르탄테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관람하였습니다.
  10월 19일 김재현 선생의 플라톤의 ‘국가론’을 주제로 한 인문학 강의가 있었습니다.
  10월 20일 대구 콘서트 하우스 그랜드홀에서 대구 시립 교향악단의 제438회 정기 연주회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를 관람하였습니다.
  10월 26일 여병동 선생의 ‘나는 어느 지역 민요일까요?’라는 주제의 인문학 강의가 있었습니다.
  11월 2일~12월 7일 이태호 박사의 장자의 사상과 생애를 주제로 한 인문학 강의가 있었습니다.
  11월 10일 대구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 ‘능소화 하늘꽃’을 관람하였습니다.
  11월 11일 제149차 역사 문화 기행으로 전라북도 군산의 발산리 석등, 5층 석탑, 근대 역사 거리, 진포 해양 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군산에는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히로쓰 가옥 등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11월 23일 최금희 강사의 ‘삶은 축복이다’라는 주제의 인문학 강의가 있었습니다.
  12월 9일 제150차 역사 문화 기행으로 경북 문경의 이강년 생가지, 견훤 유적지, 가은장, 고모산성, 상주 용화사를 다녀왔습니다.
  2018년 1월 25일 문화원 정기 총회를 개최하였습니다.
  1월 26일 한울림 소극장에서 연극 ‘인연’을 관람하였습니다.
  2월 8일 아양 아트 센터 아양홀에서 동구동락(東區同樂) 2018 새해 열린 음악회를 관람하였습니다.
  3월 10일 제151차 역사 문화 기행으로 경상남도 산청의 산천재, 남사 예담촌, 단속사지를 다녀왔습니다. 선비의 고장으로 예로부터 품격 높은 고매(古梅)가 많은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3월 15일~4월 12일 ‘프롬의 사랑과 공자의 인(仁)을 통한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기’라는 주제의 이태호 박사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3월 20일 대구 오페라 하우스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관람하였습니다.
  4월 14일 제152차 역사 문화 기행으로 전라남도 순천의 낙안 읍성과 송광사를 다녀왔습니다.
  4월 19일~5월3일 최금희 강사의 ‘삶의 주체, 꿈을 세팅하라,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주제의 인문학 강의가 있었습니다.
  4월 25일 아양 아트홀에서 카이로스 댄스컴퍼니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관람하였습니다.
  5월 10일~5월17일 정철원 강사의 ‘인생 무대에서 연극하며 놀자’라는 주제의 인문학 강의가 있었습니다.
  5월 12일 제153차 역사 문화 기행으로 경상남도 의령의 정암루, 함안의 악양 둑방길, 마애사, 어계 고택을 다녀왔습니다. 악양 둑방길 아래 무논에는 농악대가 징을 울리며 꽹과리를 치며 나무 아래에 아낙네들이 모여 파전을 굽고 막걸리 한 사발로 행인의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6월 7일~7월5일 ‘민요와 시조창 배우기’라는 주제로 인문학 강의가 여병동 강사의 인문학 강의가 있었습니다.
  6월 9일 제154차 역사 문화 기행으로 전라북도 완주의 대아 수목원, 편백나무숲, 화암사를 다녀왔습니다. 숲의 효능을 체감하기 위해 편백나무숲에서 산림욕을 했습니다.
  6월 12일 아양 아트 센터 아양홀에서 CHOI 댄스컴퍼니 초청 ‘고월의 봄’을 감상하였습니다.
  7월 10일 한울림 소극장에서 장 주네의 연극 ‘하녀들’을 관람하였습니다.
  7월12일~7월26일 ‘나는 불완전한 내가 고맙다’, ‘내가 꿈꾸는 삶’, ‘시가 된 그림, 그림이 된 시’라는 주제로 강경희 강사의 인문학 강의가 있었습니다.
  7월 14일 제155차 역사 문화 기행으로 충청남도 부여의 무량사, 신동엽 문학관, 궁남지, 여흥 민씨 고가를 다녀왔습니다.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의 사소한 유품까지 빠짐없이 다 모아서 전시하고 있는 신동엽 문학관에서 작가의 부인의 남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7월 28일 대구 학생 문화 센터에서 극단 한울림의 뮤지컬 ‘2.28 그날 오후’를 관람하였습니다.
  8월11일~12일 156차 역사 문화 기행으로 강원도 홍천의 무궁화 수목원, 괘석리 4사자 석탑, 용소 계곡, 물걸리사지, 척야산 문화 수목원을 다녀왔습니다. 용소 계곡은 우거진 숲과 소와 너럭바위들이 어우러져 비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내설악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계곡이라는 격찬이 실감나는 곳이었습니다.
  8월 26일 수성 아트피아 용지홀에서 ‘커피소년’의 콘서트를 관람하였습니다.
  8월 31일 아양 아트 센터 아트홀에서 ‘성민제, 조윤성 듀오 콘서트를 관람하였습니다.

  본 문화원을 도와주신 분들 (2017. 4.~2018. 9.)
  (주)평화 발레오, (주)세양 기업, 분도 치과, 코오롱 떡집, 한길 로타리 클럽, 북성 신협, 대구 희망 신협, 대구 점자 도서관, 대구 시각 장애인 연합회, 대구 시각 장애인 복지관, 대구시 안마사 협회, 대구 시각 장애인 연합회 서구 지회, 대구 시각 장애인 연합회 동구 지회, 대구 시각 장애인 연합회 북구 지회, 대구 시각 장애인 연합회 중구 지회, 대구 시각 장애인 연합회 수성구 지회, (주)케이토토
  강경희, 강대성, 강선옥, 고수환, 권태옥, 권호종, 기미향, 김경화, 김경흠, 김대석, 김동억, 김명한, 김명희, 김미영, 김병구, 김수희, 김숙희, 김영대, 김영숙, 김영진, 김은철, 김인순, 김정두, 김재룡, 김진도, 김진섭, 김창연, 김칠봉, 김태영, 김태자, 김한숙, 김현기, 김현준, 도제헌, 마원민, 마인섭, 박기석, 박순정, 박영숙, 박오희, 박재형, 박정, 박현철, 박효정, 박희숙, 반용음, 배경애, 배순선, 배세달, 배칠봉, 백기종, 변기식, 성영헌, 손명란, 손일원, 손창호, 손춘수, 송해룡, 송미라, 송주영, 송준관, 신봉기, 신윤, 심경옥, 안승철, 양정용, 양진모, 여길화, 여병동, 윤일현, 윤정석, 윤준학, 이경숙, 이경재, 이근갑, 이길백, 이민영, 이삼승, 이석규, 이성율, 이성환, 이세연, 이수영, 이영수, 이우녕, 이위경, 이윤하, 이일우, 이재민, 이제상, 이종순, 이준호, 이진우, 이창훈, 이태성, 이태호, 이현동, 이현호, 이희수, 임성식, 임진수, 장경희, 전평준, 정갑태, 정덕기, 정연원, 정종규, 정철원, 정해관, 조경호, 조영우, 조해정, 최금희, 최동철, 최성재, 허지원, 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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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8년 10월 1일
발행인․김현준
제작․조경호
편집․김창연
교열․이석규
디자인․구경선
발행처․사단법인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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