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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차 역사문화기행/12회 하계문화캠프-강원홍천2018.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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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문화원에서는 제 156차 역사문화기행을 강원도홍천 용소계곡으로 1박2일 여름캠프를 떠납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문화원 053-257-5657 연락바랍니다.

▶주제 : 무궁화, 일편단심 나라꽃

▶날자 : 2018년 8월 11일(土)-12일(日)
▶지역 : 강원도 홍천군
        -무궁화수목원, 괘석리사사자석탑, 용소계곡, 물걸리사지, 척야산문화수목원 등
▶집결 : 남문시장 부근 대한내과앞
▶참가비 :


▶일정
▷첫째날
08:00 출발
08:10 두류네거리 국민은행 앞 경유
08:20 성서 홈플러스 횡단보도 앞 경유

11:30 무궁화수목원
12:20 이동

12:30 점심식사
13:30 이동

13:50 괘석리사사자석탑, 희망리삼층석탑, 홍천성당, 홍천미술관
15:00 이동

15:10 홍천 중앙시장(1,6일장)
15:40 이동

16:40 용소계곡 입구
      -버스 하차 후 짐 챙겨 숙소로 이동
17:00 숙소
      -개인별로 방 확인
      -용소계곡에서 물놀이 혹은 용소계곡 트레킹

18:20 저녁식사
19:30 별이 빛나는 밤에
▷둘째날
08:00 아침식사
09:00 주변산책 및 쉼
10:00 이동

10:30 척야산문화수목원
11:50 이동

12:00 점심식사13:00 도보이동

13:10 물걸리사지
14:00 이동

15:00 홍천 예술(주조장)
15:40 출발 및 이동

19:00 대구 도착


●무궁화수목원

국내 최초로 무궁화를 테마로 조성한 수목원으로서 2017년 7월 21일 공립수목원으로 정식등록 하였다. 무궁화를 보존하고 남궁 억 선생의 무궁화사랑을 기리기 위하여 조성된 수목원으로 한서남궁억광장, 무궁화 조형물, 무궁화 품종원, 무궁화 미로원 등 무궁화를 소재로 한 테마원 뿐만 아니라 16개의 주제원을 비롯한 무궁누리길(숲속산책로), 온실, 어린이놀이터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다.


▶무궁화

아욱과의 내한성(耐寒性) 낙엽관목. 꽃은 홑·반겹 등으로 아주 여러 가지이고, 꽃색깔도 흰색·분홍·빨강·보라 등 다양하며 무늬도 여러 가지로 화려한 꽃을 피운다. 꽃이 7월부터 10월까지 100여 일간 계속 피므로 무궁화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학명은 Hibiscus syriacus L.이다.


한반도에 무궁화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산해경 山海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기원전 8∼3세기 춘추전국시대에 저술된 지리서(地理書)라고 전하여 내려오는 문헌으로, 동진(東晉) 때 곽박(郭璞)이 그 때까지의 기록을 종합, 정리한 것이다. 이 책에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君子之國 有薰花草朝生暮死).”라는 기록이 있다.

군자국은 우리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며, 훈화초는 무궁화의 옛 이름이다. 이로 미루어 아주 예로부터 무궁화가 우리 나라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 효공왕이 문장가 최치원(崔致遠)에게 작성시켜 당나라에 보낸 국서(國書) 가운데 “근화향(槿花鄕:무궁화의 나라. 신라를 일컬음)은 겸양하고 자중하지만, 호시국(楛矢國)은 강폭함이 날로 더해간다.”고 한 것이 있다.

≪구당서 舊唐書≫ 199권 신라전(新羅傳) 737년(성덕왕 36) 기사에도 “신라가 보낸 국서에 그 나라를 일컬어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하였다.”고 한 것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신라시대 이미 우리 나라를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조선 세종 때 강희안(姜希顔)이 저술한 한국 최고의 화목에 관한 책인 ≪양화소록 養花小錄≫을 보면 “우리 나라에는 단군(檀君)이 개국할 때 무궁화[木槿花]가 비로소 나왔기 때문에 중국에서 우리 나라를 일컫되 반드시 ‘무궁화의 나라(槿域)’라 말하였으니, 무궁화는 예로부터 우리 나라의 봄을 장식하였음이 분명함을 알 수 있다.”라는 기록도 있다.

일본의 ≪왜기 倭記≫에는 “무궁화는 조선의 대표적 꽃으로서 무려 2,100여년 전 지나(支那)에서도 인정된 문헌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전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적·의학적으로 진중한 대우를 받았다. 일본의 벚꽃, 영국의 장미와 같이 국화로 되어 있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왕실화가 배꽃[梨花]으로 정해져 무궁화는 점차로 세력을 잃고 조선민족으로부터 소원해졌던 것이다. 20세기의 문명이 조선에 들어옴에 유지들은 민족사상의 고취와 국민정신의 통일진작에 노력하여, 붓과 말로 천자만홍의 모든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로되 무궁화는 여름과 가을에 걸쳐 3, 4개월을 연속해 핀다고 하여, 그 고결함과 위인적 자용(偉人的姿容)을 찬미하였다. 따라서, 무궁화강산 운운은 자존된 조선의 별칭인데……”라는 기록이 있어, 우리 민족과 무궁화의 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1935년 10월 21일 ≪동아일보≫ 학예란에 ‘조선의 국화 무궁화의 내력’이라는 제목 아래 “아마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조선에도 개화풍이 불어오게 되고 서양인의 출입이 빈번해지자 당시의 선각자 윤치호(尹致昊) 등의 발의로 양악대를 비롯하여 애국가를 창작할 때 애국가의 뒤풀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들어가면서 무궁화는 조선의 국화가 되었다.

안창호(安昌浩) 등이 맹렬히 민족주의를 고취할 때 연단에 설 때마다, 가두에서 부르짖을 때마다 주먹으로 책상을 치고 발을 구르면서 무궁화동산을 절규함에, 여기에 자극을 받은 민중은 귀에 젖고 입에 익어서 무궁화를 인식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후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말은 우리 한민족의 가슴 속에 조국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뜻으로 남게 되었다.

무궁화의 원산지는 학명으로 미루어 시리아라고 해석되었다. 그러나 원산지가 시리아라는 데 대하여 점차 의문이 제기되고 최근 인도·중국·한국 지방이 원산지라는 설이 유력하다.

무궁화는 아욱목 아욱과 무궁화속 식물로 200여 종이 있다. 세계적인 분포는 동아군(東亞群)·하와이군·북미군·중남미군·남아군(南亞群)·이도군·아프리카군의 7개 지역으로 나누고 있는데, 무궁화는 동아군에 속하는 식물이다.

무궁화의 명칭은 여러 가지이며 중국에서는 목근(木槿)·순영(舜英)·순화(舜華)·훈화초(薰華草)·조개모락화(朝開暮落花)·번리초(藩籬草) 등으로 쓰였으나 무궁화로 쓰인 적은 전혀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한자로 무궁화(無窮花·無宮花·舞宮花) 등으로 쓰였으며, 근래에는 무궁화(無窮花)로만 쓰이고 있다.

이 세 종류의 한자표기는 예로부터 쓰여오던 순 우리말에 한자음을 따서 사용해 오다가 뜻이 좋은 무궁화(無窮花)로 통일되어 쓰이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무궁화라는 말도 원래의 이름이 아니고 무궁화와 유사한 음의 단어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김정상(金正祥)의 논문 <무궁화보 無窮花譜>에서 1923년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 비자리에서는 노인들이 무궁화를 ‘무우게’라 부르고 있다고 보고하면서, 무궁화라는 꽃 이름은 ‘무우게’에서 변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이양하(李敭河)는 그의 수필에서 호남지방 출신인 그의 친구가 어렸을 때부터 무궁화를 많이 보아 왔으나 그것이 무궁화라는 것은 전혀 몰랐고 ‘무강’나무로만 알아 왔음을 기록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무궁화는 오래 전부터 우리 나라 고유의 다른 이름이 있었으며, 이것이 한자 무궁화(無窮花)로 기록되어 온 것을 강력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일본에서는 ‘무쿠게(牟久計)’로 부르고 있는데, 무궁화가 우리 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전해진 이름인 것 같다. 무쿠게라는 한자가 오직 음만을 표시하고 별로 뜻이 없는 것으로 보아 더욱 그렇게 여겨진다.  - 네이버 지식백과



●괘석리사사자삼층석탑, 희망리삼층석탑, 홍천성당, 홍천미술관


◈괘석리삼층석탑(보물 제540호)

원래 두촌면 괘석리에 있던 탑으로, 현재의 자리인 홍천 군청 안으로 옮겨 세웠다. 탑이 서 있던 원래의 위치는 일대가 절터였을 것이나, 지금은 밭으로 변하고 주변에는 기와조각들만이 흩어져 있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4마리의 돌사자가 있어 4사자탑(四獅子塔)이라 부르고 있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 안에 꽃무늬조각이 장식되어 있어, 고려시대의 특징이 잘 담겨져 있다. 위층 기단에는 각 모서리에 돌사자 1마리씩을 두어 넓적한 윗돌을 받치게 하였는데, 이 탑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 사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중앙의 바닥과 천장에는 연꽃받침대가 놓여 있어, 원래는 이곳에 불상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새겼고, 가파른 경사면 탓인지 얇고 밋밋하다. 네 귀퉁이는 살짝 젖혀져 뾰족하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네모난 노반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곳곳에 파손된 부분이 있고, 닳은 흔적이 보이나 대체로 본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기단에서 보이는 안상 조각수법과 돌사자, 연꽃받침 및 지붕돌의 3단 받침 등에서 고려시대의 양식을 물씬 풍기고 있다. 각 재료의 구성이 통일신라의 방법을 많이 따르고 있지만 고려시대 중기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홍천희망리삼층석탑(보물 제79호)
1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갖춘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3층석탑으로, 원래는 홍천초등학교 뒤에 있던 것을 현재의 군청으로 옮겨 놓았다. 보수를 하여 보존상태는 양호하나 이미 지붕돌은 깨어졌다. 널찍한 돌 2장이 놓여 있고 그 위로 기단과 탑신부가 있는 상태이다. 기단 가운뎃돌의 각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두었으며 가운데에도 기둥조각을 두었다. 기단을 마감하는 맨 윗돌은 윗면에 약간의 경사가 있다. 탑신부는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몸돌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3층의 몸돌이 없어져 위층으로 가면서 줄어드는 비율을 뚜렷하게 관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붕돌 밑에는 모두 4단씩의 받침을 새겼다. 지붕돌이 두껍지는 않지만, 네 귀퉁이 끝부분의 치켜올림이 적어서 날렵한 느낌은 없다.  각 부의 조각이 약화된 모습을 보여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홍천성당(등록문화재 제162호) : 강원 홍천군 홍천읍 희망리 106-1
송정공소에서 홍천 본당으로 1923년 6월 승격되었으며, 초대 신부는 황정수 요셉 신부이다. 홍천 일대에 천주교가 전파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뮈텔 주교의 일기에 의하면 1900년 경으로 추정된다. 1902년 경에는 홍천군 화천면에 공소가 설립되었고 1923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처음 지어진 성당이 한국전쟁으로 파괴되자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크로스비 신부가 8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53년 전쟁으로 파괴된 목조교회 부분 복구를 시작했고 1954년 석조교회 건축 시작해서 1955년에 새로운 성당과 사제관이 완공되었다. 1951년대 석조성당의 전형을 나타내는 건물로 조형적 특성이 뛰어나 당시의 기술력과 관계자들의 재치와 기지를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홍천중앙시장

홍천 중앙시장은 조선시대의 홍천 읍내장에서 기원한 전통시장으로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이 함께 열리고 있다. 홍천 중앙시장은 두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중앙시장에서는 감자떡, 메밀무침 등 먹을 것을 주로 팔고, 홍천시장에는 건어물과 수산물, 야채, 생활 잡화를 파는 곳이 많다.


●용소계곡

내촌면 광암리에서 발원하여 두촌면 괘석리를 거쳐 천현리에 이르는 10여km의 계곡으로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는 곳이다. 우거진 숲과 곳곳에 펼쳐지는 소와 너래바위들이 어우러져 비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내설악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봄에는 철쭉이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갈대와 어우러지고, 여름철에는 시원함을 주는 이 계곡에는 옛날 절터와 삼층석탑이 아직 남아 있으며, 이 삼층석탑을 옮기려 할 때 호랑이가 나타나는 바람에 옮기지 못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계곡은 가족단위의 등산이나 산림욕 코스로 적당하며 당일 산행으로 알맞은 곳이다.


●척야산문화수목원

척야산 일대 26만여㎡를 구국, 역사, 문화관광의 성지로 꾸며 많은 분들이 즐기실 수 있도록 10만주의 꽃을 식재해 사적공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90여분의 등산시간 동안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흡수할 수 있고, 산 정상에서는 유유히 흐르는 용호강을 내려다 볼 수도 있다. 4월에는 노란 개나리와 분홍빛 목련이, 5월에는 빨간 철쭉꽃이 만개하여 절경을 이룬다. 약수터 영천(零泉), 까막죽배기의 유래, 벼락바위의 유래 등 전설이 깃든 척야산 바위들과, 고구려시대의 광개토대왕비, 발해시대의 석등 및 요망대기 및 이순신장군과 안중근의사의 말씀 비석 등도 있다.


●물걸리사지(기념물 제47호)

이곳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으나, 통일신라시대의 홍양사가 있던 장소로 알려져 오고 있다. 출토 유물로는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 1점, 고려시대 철불파편 4점, 철쇄파편 2점, 암막새 4점, 수키와 조각 6점, 암키와 조각 6점, 청자 조각 4점, 토기 조각 5점, 조선시대 백자 조각 7점이 있다. 문화재로는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 대좌(보물 제543호), 대좌 및 광배(보물 제544호), 삼층석탑(보물 제545호)이 지정, 보존되어 있다.

◈홍천물걸리삼층석탑(보물 제545호) : 강원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88-1
물걸리 절터에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탑이다. 절터에 남아있는 많은 유물들로 보아 이전에는 이곳이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세운 모습이다. 위·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하나씩의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2층은 5단이나, 3층은 4단으로 줄어들었다. 경사면은 평평하고 얇으며, 모서리선이 뚜렷하여 끄트머리에서의 들림도 날카롭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지고 이를 받쳐주는 노반만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일반적인 통일신라의 탑이나, 기단 각 면의 가운데기둥이 하나로 줄어든 것이라든지, 3층에서의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 아래층과의 조화를 이뤄내지 못한 점 등으로 보아 시대가 조금 떨어지는 9세기 후반의 것으로 보인다.

◈홍천물걸리석조대좌(보물 제543호) : 강원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88-1
대승사에 있는 이 불대좌는 불상은 없어지고 광배와 대좌 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대좌는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의 구분이 뚜렷한데 현재 머리광배 부분은 없어졌으며, 안쪽에는 덩쿨무늬를,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표현하였다. 대좌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8각형 대좌로 상·중·하대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에는 향로와 새 모양의 조각이 있는 8각의 받침돌 위에 아래로 향한 연꽃이 새겨진 연화대석이 놓여 있다. 중대에는 8개의 각 면에 모서리 기둥을 새기고, 그 안쪽에 머리광배를 갖춘 보살입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을 이루고 있는 상대는 연화좌로 3중의 연꽃이 조각되었는데, 연꽃잎 안에 다시 꽃무늬를 장식하여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각 부의 조각이 매우 세련된 이 불대좌는 물걸리에 보존되어 있는 홍천 물걸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 홍천물걸리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등과 같은 절터에서 발견된 점과 조각수법 등에서 볼 때 다른 불상과 비슷한 시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홍천물걸리석조대좌및광배(보물 제544호) : 강원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88-1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의 대승사에 있는 것으로, 불상은 없고 광배와 대좌만 남아 있다. 완전한 배(舟) 모양의 광배는 가운데에 연꽃무늬와 덩쿨무늬가 새겨지고 가장자리에는 불꽃모양이 섬세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윗부분과 좌우 등 9곳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는데 각기 손모양을 달리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광배를 받치고 있는 대좌는 3단으로 구성된 8각 모양이다. 맨 아래에는 아래로 향한 연꽃무늬가 각 면에 새겨져 있고, 모서리에는 작은 귀꽃이 있다. 중간의 각 면에는 불상과 악귀를 쫓아준다는 신장상이 새겨져 있다. 대좌의 맨 윗부분은 연꽃이 활짝 핀 반원형 모양이고 연꽃 안에 작은 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화려함을 더해준다. 광배 및 대좌의 양식이 9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것들과 유사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홍천물걸리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 : 강원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88-1
대승사에는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외에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불대좌 및 광배 4기가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크게 솟아 있다. 약간 고개를 숙인 얼굴은 풍만하지만 턱이 뾰족하여 단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데 긴장감이나 탄력적인 모습이 사라진 채 다소 투박하고 무겁게 늘어진 모습이 역력하다. 옷주름은 어깨에서 두 팔을 거쳐 무릎에까지 나타나 있으나 평행선으로 되어 약간 형식적으로 처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손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손모양과는 반대로 되어있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는 8각 연화대좌로 상대·하대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중대에는 부처에게 공양을 드리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향로 등이 새겨져 있다. 8세기 불상에 비해 양감이 없는 평판적인 신체, 긴장감이 사라진 무겁고 해이한 옷주름 등으로 보아 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홍천물걸리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 강원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88-1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소재의 대승사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으로 얼굴은 마멸이 심해 세부표현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없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 것 같으며, 정수리 부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는 표현이 분명하지 않다. 옷은 양 어깨에 걸치고 있고, 가슴에는 띠모양의 매듭이 보인다. 어깨는 둥글지만 두껍고 투박하게 보이고, 상체는 8세기 불상에 비해 평판적이고 왜소한 편이어서 당당한 양감이 사라져버린 모습이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를 향하고 왼손은 배부분에 놓고 있는 모습이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는 상·중·하대로 구분된 8각형으로 하대에는 각 면마다 무늬가 있고, 향로와 상상의 새인 가릉빈가가 새겨져 있다. 중대석은 8각의 각 면에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고, 상대에는 활짝 핀 모양의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파손으로 인해 신체표현을 자세하게 알 수 없으나 장식성이 강조되는 9세기 중엽 이후의 전형적인 대좌 양식을 보여주고 작품이다.


●홍천 예술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는 ‘동몽’과 ‘만강에 비친 달’을 빚는 ‘전통주조 예술’의 양온소가 있다. 전통주란 넓은 의미에서 우리 농산물을 주원료로 빚은 술인데, 예술에서 말하는 전통적인 방식이란 쌀을 주원료로 하고 전통 누룩을 발효제로 옹기에서 발효한 것이다. 양온소라는 이름 또한 고려 시대 술을 빚는 관공서(양온서)에서 따온 것이다. 전통 누룩과 홍천에서 나는 찹쌀, 단호박으로 빚은 동몽은 알코올 도수 17%의 약주다. 같은 재료로 빚는 만강에 비친 달은 알코올 도수 10%의 탁주다. 두 술 모두 ‘맛있는 술’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참고자료)

●기미만세공원

1919년 4월 1일 일제탄압에 항거하여 만세운동을 하다 이곳에서 순직한 8열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1963년 관과 민이 합동하여 팔렬각을 건립하였으나 최근 팔렬각이 노후되고 초라하여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모든 선열들의 뜻을 기리고자 1990년 2월 28일에 기미만세공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군민의 성금과 독지가의 도움, 군비를 투자하여 5천7백여㎡의 부지에 기미만세상을 세우고 부대시설을 하는 등 공원을 조성하여 팔렬사를 비롯한 선현들의 애국충절의 높은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이룩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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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제171차 역사문화기행- 충청북도 충주시(충렬사,충주 제금당 및 청녕헌, 종댕이 길)2020년 03월14일(土)  
165  제170차 역사문화기행-경상남도 남해군(용문사, 가천 다랭이마을, 남해관음포이충무공유적)2019년12월14일(土)  
164  제169차 역사문화기행-전라남도 구례군(지리산 피아골 연곡사, 화엄사(구층암) 일원)2019년11월09일(土)  
163  제168차 역사문화기행-경상북도 봉화군(닭실마을, 청량산 청량사 )2019년10월12일(土)  
162  제167차 역사문화기행-경상북도 안동시(백운정, 의성김씨종택, 만휴정 등)2019년9월21일(土)  
161  제166차 역사문화기행-강원도 강릉시(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명주청학동소금강) 2019년 8월10일~11일1박2일(土)  
160  제165차 역사문화기행-전라북도 남원시(뱀사골,퇴수정) 2019년 7월 13일(土)  
159  제164차 역사문화기행-충청북도 단양군(단양적성, 도담삼봉및석문) 2019년 6월 8일(土)  
158  제163차 역사문화기행 - 경상북도 포항시(달전리 주상절리) 5월 11일(土)  
157  제162차 역사문화기행 -경기도 수원시 2019년04월13일(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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