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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좌 <멜로드라마 분석을 통한 치유> 1강 멜로 드라마의 스토리텔링 문법 - 2012.12. 6
<호모 나랜스, 이야기는 나의 힘!!>

강사 : 김겸섭(대구대 교수)

서사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야기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공기를 마시듯 이야기를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인간을 ‘이야기하는 인간’ 즉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라고도 합니다. 인류 역사와 함께 다양한 변화를 겪으며 생겨난 수많은 이야기들에는 사람들의 욕망과 감정구조가 깃들여져 있지요. 거기에는 오랜 기억과 지혜가 녹아 있습니다. 특히 요즘 훌륭한 문화적 자산으로 재평가되고 있는 ‘문화콘텐츠’의 대부분은 옛날이야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태왕사신기>, <내사랑구미호>, <아랑사또>같은 드라마나 <전우치>, <미인도> 같은 영화는 모두 원형 이야기에서 소재를 얻었습니다. <바람의 나라>나 <블레이드앤소울> 같은 게임 역시 그렇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이야기는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매체로 그리고 오락과 재미의 원천으로 존재해왔습니다. 다만 이야기의 매체나 전달 방식의 변화만 있어왔을 뿐입니다. 과거 구전문화 시대에는 신화와 민담이, 문자문화 시대에는 소설이, 아날로그 시대에는 영화나 TV 드라마가 있었다면, 뉴미디어 시대에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총아로서 컴퓨터게임이 있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스토리가 게임의 필수적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토리는 플레이어들이 좀 더 흡입력 있게 게임을 즐기고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성공한 게임들은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문학 연구에서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설화’(說話)와 유사한 의미로 쓰입니다. 하지만 설화의 경우 특정한 시대 특정한 지역의 이야기로서 고정된 실체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면서 과거의 유산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띱니다. 하지만 ‘이야기’라는 개념은 일상 대화에서부터 ‘이야기문학’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되고 현재적으로도 유의미한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특히 테크놀로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만화, 게임 등을 ‘이야기 예술’의 범주에 포함시켜 이해할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옛날이야기로서의 설화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난한 역사 속에서의 모든 이야기 전통들을 총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사전적으로 이야기(story)는 ‘약간의 길이를 가진 의미 있는 의사소통의 수단’(‘야, 이야기 좀 하자!’)이기도 하면서, 나름의 문학성을 갖춘 ‘말로 된 이야기 문학’이기도 합니다.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볼 경우 이야기는 문자만큼의 지적ㆍ논리적 체계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인간의 삶 밑바탕에 축적된 깊은 층위의 욕망을 담고 있는 인류의 원초적이고도 유구한 의사 전달의 수단이 됩니다. 또한 문자문화가 널리 퍼지게 되면서 ‘말하기/듣기’보다는 ‘쓰기/읽기’가 더 중시되고 지식의 중요한 국면이 후자로 급격하게 옮겨왔지만, ‘이야기’란 문자가 없거나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던 시기에는 인류의 지식과 지혜를 보관하고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임종을 맞는 노인은 불타오르는 도서관’이라는 아프리카의 속담은 이를 잘 말해주죠. 뿐만 아니라 ‘이야기하는 행위’(storyㆍtelling)는 생생한 경험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이자 경험을 재구성하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어떤 문학적 형태나 구조라기보다는 하나의 ‘인식론적 범주’(epistemological category)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개인의 체험이 중요한데, 그것에 따라 이야기의 다양한 변주와 변형이 생동감 있게 이루어졌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오늘날 이런 의미의 이야기는 극히 일부 사회를 빼면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져버렸습니다. 문자를 통해 기록된 다양한 ‘지식’이 조직되고 체계화되면서 한 ‘개인’의 ‘기억’에 의존하고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그런 경험적 ‘이야기’의 가치는 급전직하로 추락하고 만 것이죠. 최근에는 ‘정보’라는 것이 이야기들을 대체하면서 이야기의 영속적인 의미는 더욱 탈색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야기는 그저 옛날이야기로 좁게 이해하게 되었으며 ‘설화’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고 있는 형편입니다. 소설 등의 ‘기록문학’과 대비되는 ‘구비(口碑)/구전(口傳) 문학’(oral literature)으로서 문학의 역사를 통틀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에 밀려 문학연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나마 문화산업의 원자재로서 의미를 부여받으며 새로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이야기 문학이 여타의 문학 장르들과 가장 다른 점은 ‘이야기’(story)와 ‘이야기꾼’(storyteller)이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야기 문학의 경우 ‘이야기’ 못지않게 ‘이야기꾼’과 그의 이야기 행위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사실 이야기문학으로서의 ‘설화’는 소설에 비해 ‘시점’의 미학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지만 ‘이야기꾼’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훨씬 생생하게 관여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행위’도 그 자체로서 예술적이고 때로는 연극적인 것이 되기도 합니다. 문학과 연극의 ‘사이’에 존재하는 예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는 컴퓨터게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의 이야기꾼, 즉 재담꾼은 문자를 소유하지 못한 다수 민중의 욕구와 능력을 집약시켜 보여주는 예술가이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컴퓨터게임으로도 유명한 <삼국지>도 원래는 이야기꾼에 의해 살이 붙여지고 풍성해진 다음 문자로 기록된 것입니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도 연암의 독창적인 소산이 아니라 운영과 같은 이야기꾼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작품화한 것이에요. 이야기꾼은 사실 문학적 범주에 속하는 인물이기보다는 연출자와 배우를 동시에 겸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기존에 존재하는 이야기들을 이야기 상황에 맞게 연출하여 대중들과 소통하는 연기자의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죠. 작가가 아니라 연행자(連行者)의 의미가 강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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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문화적 풍경은 ‘영상시대’라는 말로 잘 표현됩니다. 더욱이 여러분은 ‘디지털적 감성’에 익숙한 세대이기도 하죠. 대학의 경우 문학수업 시간에도 영화가 곁들여져야 수업이 되고 심지어 법이나 경영, 지리 시간에도 영화 상영은 필수 사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학의 위기’를 불러온 영상 시대의 담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설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물론 베스트셀러 작품들의 경향은 많이 변했겠지만 말이죠. 그런데 소설이라는 것은 이야기 문학의 상당부분을 대체하면서 생겨난 신흥 장르입니다. 서구의 경우만 하더라도 소설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데 고대 서사시나 중세 로망스라는 이야기 문학의 전통에서 근대 시민사회의 삶과 의식을 보여주는 장르로 떠오른 것이 바로 소설입니다. 루카치(G. Lukacs)가 말하듯 자본주의 시대의 현실과 시대정신과 관련된 문학 장르가 바로 소설인 것이죠.

소설의 등장과 더불어 근대 이후 모든 서사문학은 ‘기록문학’인 소설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그 결과 이야기 문학은 말 그대로 문헌이라는 뜻을 동시에 함축하는 ‘문학’(literature)이 아니거나 ‘구비문학’이라는 명칭으로 분류되면서 간신히 ‘문학’ 속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흔히 문학이란 고독한 밀실에서 전문적인 작가가 창작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이야기 문학이란 어떤 식으로 보아도 익명적인 데다 개성도 없어 문학이라는 ‘고상한’ 영역에 넣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미학적인 다양한 서술 테크닉이 없는 지극히 단순한 형태라는 점에서 원시적인 면까지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문자중심주의’적인 이러한 태도는 지극히 근대적인 산물을 중심으로 놓고 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결코 무식한 사람들의 단순하고 저급한 문학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방식과 조건에 맞춘 나름대로의 훌륭한 문학임을 인정하는 것이에요. 흔히 비판받곤 하는 옛날이야기, 즉 설화의 단순성은 구비적 전승 조건에 맞춘 결과이지 민중들의 생각이 단순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의 문학은 구술(口述)하기 편하게 조직되어 근대적인 저작권 개념 없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널리 퍼지면서 한 공동체의 공동 유산으로 전승되어 온 것입니다. 이들 설화는 공동체의 유산으로 수많은 사람에 의해 ‘반복 구연’되면서 전승되는데 설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아무리 반복 구연되어도 싫증나거나 소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좋은 노래는 아무리 부르고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오히려 반복 구연되면서 옛날이야기들은 생명을 계속 연장해왔습니다. 오늘날 새로움을 과시하는 ‘정보’라는 것이 한 번 읽는 것으로 소진되어버리고 금방 새로운 정보에 밀려나는 것과는 달리 이야기는 수백 수천 년을 두고 반복 구연되면서 생생하게 지속적으로 감동을 주어온 것이죠.

이러한 예로 우리는 중동 지역의 오래 된 문학인 <길가메시 이야기>라든가 인도의 <마하바라따>,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들 수가 있습니다. <길가메시 이야기>의 경우 구약 성경보다 더 오랜, 지금으로부터 거의 4~5천 년 전에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게임과 뗄 수 없는 북유럽 신화도 그런데요. 이러한 설화의 전통은 오래전부터 판타지 문학을 비롯하여 영화나 컴퓨터게임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고 게임의 시공간적 ‘세계관’에 훌륭한 자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친숙한 종교 경전인 불경이나 성경도 처음에는 ‘이야기’로 전승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들을 단순하고 감동이 없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죠?!

반면 근대의 산물인 소설은 이야기에다 작가의 ‘개인적 가공’을 특히 두드러지게 한 것인데, 이 과정에서 이야기 자체의 흥미보다 그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이야기의 공동체적이고 구술적인 활력을 배제하고 작가의 개인성이 부각된 ‘개인적인 문체’로 다양한 ‘서술적 기교’를 부리는 것이죠. 작가는 작품 밖에 존재하고 독자와는 전혀 인격적 만남을 할 수 없으므로 작품 안에서 ‘시점’(視點)이나 ‘소설속의 화자’를 변주하면서 서술방법을 다양하게 만드는데 이는 이야기꾼의 개성과 예술적 역량을 대신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물론 이야기꾼이 소설가로 바뀌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다듬어지던 내용도 소설가의 밀실에서 ‘창작’되는 것으로 대치된 결과입니다. 아울러 이야기꾼이 이야기하면서 보여주었던 다양한 얼굴 표정, 동작, 어투의 변화 등을 대신하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합니다. “옛날의 이야기꾼은 ‘모험’을 서술했는데 오늘날의 소설가는 ‘서술’의 모험에 몰두하고 있다”는 어느 평론가의 지적은 이러한 사정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문학’보다 ‘문화’가, ‘소설’보다는 ‘서사’가 더 중시되면서 다시 예전의 이야기 관행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특히 컴퓨터게임을 비롯한 디지털 시대의 이야기 예술들은 이야기의 상호작용적 집단체험을 통해 작가와 독자 사이의 관계를 해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동창작, 공동수용의 옛 ‘서사’적 실천들을 복원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때의 ‘서사’란 결국 ‘이야기’나 마찬가지인데, 새삼스럽게 ‘소설’로 좁혀졌던 이야기의 대표성이 소설을 벗어나 문화일반-역사 서술, 광고, 만화, 영화, 게임 등-의 바탕이 되는 ‘서사(이야기)’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최첨단 기술로서 디지털 미디어가 갖는 특징을 반영하는 컴퓨터게임과 신화나 전설, 민담 같은 과거의 설화를 직접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이야기라도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의 차이에 따라 의미 발생의 과정이나 수용자에게 미치는 지각적 효과는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책과 영화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입니다. 더욱이 컴퓨터게임 <반지의 제왕>은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구경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는’ 직접적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더 강렬한 경험일 수 있습니다. 컴퓨터와 이야기라는 상반된 영역들이 만났을 때 나타나는 변화들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입니다.

반세기의 나이를 가진 디지털 게임은 설화(신화, 전설, 민담)나 만화, 문학, 영화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일단 모두 언급할 수는 없으니 신화만 예로 들어봅시다.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게임들을 볼까요? <에이지 오브 미솔로지>는 다양한 신들을 활용하여 대륙을 통일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갓오브워>는 그리스 신화를 대담하게 해석한 작품인데요. 신에 도전하기도 하고 그리스 신화의 괴물들과 싸움을 전개하기도 하는 등 일종의 액션게임입니다. 특히 마음씨 좋은 신들에게 새로운 마법이라도 얻으면 가슴이 뿌듯하기까지 합니다. <테오스온라인>은 쉽게 그리스 신화를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입니다. 신의 아들로서 타이탄과 맞서 싸우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매력은 다양한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신화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외에도 중동아시아나 인도 신화를 반영한 게임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실크로드온라인>이 있지요. 실크로드를 접하고 있는 여러 지역의 신화나 전설이 고스란히 옮겨져 있어요. <탄트라>는 삼주신(인브라흐마와 시바, 비슈누)을 섬기는 인간과 어둠의 세력 미라와 대결을 벌이는 게임입니다. 혼란에 빠진 신들의 세계를 침략한 미라를 퇴치하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인도문화의 흔적을 맛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에 소재나 세계관을 가장 단골로 제공하는 신화는 북유럽 신화겠죠? 이는 세계관, 종족이나 직업, 아이템 등 게임에 잘 맞는 요소들 때문일 겁니다.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 신화가 게임에서는 아직은 약체라는 점이에요.

롤랑 바르트도 말했듯이, 내러티브라는 것은 시대와 장소를 넘어 보편적인 것이고 인간의 현실 경험을 조직하는 매우 유효한 수단입니다. 그 안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원형적인 무의식이 살아 있고 그것은 다양한 상징적 형태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특히 디지털 콘텐츠와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은 요즈음 유구한 이야기 전통 속에서 그러한 새로운 문화들이 차지하는 위상과 의미를 다시 탐색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단순히 예전의 이야기가 다시 수용되고 있다는 소극적 차원을 벗어나 각각의 서사 예술들이 공유하는 기능과 특징들은 무엇이며 그들이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지점들은 어디인가를 입체적으로 분석할 때 컴퓨터게임을 필두로 한 디지털 내러티브의 독특함이 선명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화(다른 이야기)를 게임으로 구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구성하거나 게임에서만 가능한 상상력을 덧붙여 창조하고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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