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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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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간

  시각과 문화

  2003년 겨울, 통권 제 3 호


  발행 : 김현준, 기획 : 장삼식, 편집 : 박희숙
  발행일 : 2004년 1월 1일  발행처 : 사단법인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권두언
  시각장애인과 문자생활/이경재

  문화칼럼
  나도 그들의 음악을 느끼고 싶다./이성호

  가슴으로 읽는 시
  우리는/정민희

  넓은 창
  북한 이해의 두 열쇠--공산주의와 유교/최성재
  국익(國益), 불안, 성장강박증/박상규

  클래식 산책
  멘델스존의 무언가와 이탈리아를 감상하며/곽진숙
  Pops English
  John Lennon의  Imagine/김창연
  계간 영화읽기
  웃음과 따스함이 살아 있는 영화/배인주
  함께 읽는 책
  더 나은 삶을 위한 싸움/신남희

  함께 나누는 짧은 이야기
  남김의 미학/김칠봉

  문화원에 바란다
  더불어 누리는 나눔의 장/김봉민

  회원 활동기
  낙안읍성과 선암사를 보고나니/김진호
  불심이 남긴 문화유산을 찾아서/김현숙
  니콜 키드만 주연의 디 아더즈(The Others)를 보고/강구용

  문화원 소식


  사단법인   대 구 시 각 장 애 인 문 화 원


  권두언

시각장애인과 문자생활

                                     이  경  재(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이사, 시각장애인)

1~3급의 중증시각장애인이 되면 첫째, 일반적인 문자를 사용할 수 없게되고 둘째, 자유로운
이동이 어렵게 되며 셋째, 주위환경에 대한 상호작용이 곤란하게 된다. 언급한 세 가지의 활
동은 인간생활의 기본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이 세
가지를 복원하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으니 그 삶이 보통사람들에 비하여 열등할 수밖에 없
게 되는 것이다. 자유로운 이동과 주위환경에 대한 상호작용은  각자의 처지나 사고에 따라
복원 시기가 다소 늦어져도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자사용 기회의
상실은 자신과 타인간의 의사 소통 및 정보교환, 정보접근을 차단하게 되므로 그 어떠한 기
능의 상실보다도 치명적인 손실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고대로부터 시각장애인들과 그들의
교육자들은 상실된 일반문자 사용능력을 복원시키고자 갖가지의 아이디어를 동원했다. 문자
의 모형을 시각 대신 손으로 만져서 구별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각종 방법으로 양각하였으
며, 또 모형을 단순화하여 제공하는 방식이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 그리고 대나무 등에 음각
하는 방법도 사용하였다. 이러한 방법들은, 시각장애인 스스로가 문자를 쓸 수 없었으며, 제
작비용이 고가이었고, 무엇보다도 촉각으로는 일반문자를 능률적으로 읽기가 어렵다는 단점
이 해결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 해결책으로 일반문자의 모형에 상관없이 점의 조합을 응
용한 63개의 점형을 문자에 대입시켜 부호화 한 것이 오늘날 시각장애인들의 문자로 자리잡
게 된 점자라는 것이다.
점자는 시각장애인의 문자로 자리잡기는 했지만 시각장애인 중 극소수만이 사용하고있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점자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자로  자리잡은 지 100년  이상 경과했지만  
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지 못하고 극소수만 사용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인이 있다고 본다. 첫째, 중도실명자들은 시력  상실의 충격 때문에 자신의 신체 기능  중
그 어떤 기능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않고 있어 촉각에 의한 문자생활이 가능할 것이라는 사
실에 대하여 믿음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지도자들도 점자가 일반문자 모형과  전혀
다른 체계로 되어있기 때문에,  중도실명자들이 점자를 익혀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점자 학습에 필요한 다양한 기법들이 개발
되지 않고 있으며 특히 점자 학습 지도자나 중도실명자들이  점자를 익히려는 노력을 끈기
있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대부분의 중도실명자(약시)들은 일반문자 활용에 대한 미련
을 버리지 못하고 듣기위주의 생활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문
자의 중요성을 재인식하여 문자생활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라고 할 수 있을 점자를  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이 익혀 문맹자 신세에서 해방되어 일상생활에서 겪게 될 열등함을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열망한다.

  문화 포커스

나도 그들의 음악을 느끼고 싶다.

          이   성   호(문화신문 [안] 편집장)

이미자가 부른 '봄날은 간다'를 듣다가 내친 김에 슈베르트가  만든 우중충한 독일의 초겨
울 같은 음악도 들었다. 지나간 사랑을 담담하게 읊조리는 이미자와 고독에 푹 절은 슈베르
트, 이 두 음악에서 표현방법에 대한 지나친 강박이나 거부감을  없애고 나면 꽤 비슷한 감
정의 배설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봄, 가을 농한기 때면 쿵짝거리는 뽕짝메들리에  맞춰 이
른바 '관광버스 춤'을 추는 아줌마, 아저씨들을 시골마을 어느 집 마당에서든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의 단순하면서도 격렬한 몸동작과 시끌벅적함을 함께 하노라면 취향여부와 상
관없이 그 신명과 흥겨움에  자연스레 어깨를 들썩이게 된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그렇게도
밝고 경쾌한 음악이 눅눅하고 어두운 지하 카바레로 내려가고 나서는 끈적끈적해지고  어쩐
지 껄끄러워졌다는 것이다. (80년대, 에릭 클랩톤의  '원더풀 투나잇'이 나이트 클럽의 블루
스타임에 작업용 음악으로 아주 훌륭하게 활용되었던  걸 보면 아이러니하다.) 80년대에 20
대를 견뎌 온 세대 일부에게 음악은 민족과 계급이어야 했다. 서양 클래식이 나락음악은 스
스로 검열하고 단속해야 하는 부르조아나 미제와 다름 아니었고 끊임없이  정치적 올바름을
자타로 강요받고 증명해야만  했었다. 우리  음악도 사물과  농악이 전부였으니 존  보냄의
드과 제프 벡의 기타를 좋아했던 사람도 눈치보며 골방 안팎으로 자물쇠를 채우고 심한 궁
핍을 겪어야만 했었다. 느낌을 이성과 논리로  대체하려고 시도했지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나 문화 콘텐츠의 악성 빈혈에 비틀거리던 시절이었다.
시절이 많이 바뀌었다. 원하는 음악은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정치
적 올바름이라는 압박에서도 많이 자유로워져서 나만 좋다면 모든 게 정당성을 갖는 시절이
찾아 왔다. 하지만 상업적 가치 기준에 갇힌 대중 음악은 TV만 켜면 똑같은 리듬의 댄스음
악만 반복하고 있다. 가요 프로그램 하나 보는데도 출연가수들(?)들의 벙긋거림을 측은지심
과 인내심으로 견뎌야만 한다. 이제 댄스음악에 물린 소비자들은  까다롭고  다양한 입맛에
맞는 음악을 찾다 인디밴드와 클럽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는 듯 하다. 갖가지 개성의 밴드들
이 넘쳐나고 다양한 공연들이 도시 여기저기서 펼쳐지고 있지만  음악이 지하에 갇혀 끈적
거리며 느끼해진 것처럼, 이성과 논리가 느낌을 몰아내려다 심한 결핍에 시달린 것처럼,  댄
스음악이 돈에 갇혀 비굴해 진 것처럼 앞선 실패와 좌절이 또 다시 반복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다. 형편없는 음악에 우선하는 '인디'라는 웃기는 논리가 있고 불량스런
날라리함이 자유와 저항으로 포장되고 인디정신(?)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악보가 있
다. 내가 그들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번잡한 도심을 헤매고, 어둡고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 대중음악은 시절에 맞게 발아하
고 성장하고  또 재구성된다. 또한  대중음악의 가장 큰 미덕은 자연스러운  접근성에 있을
것이다.  이제 인디밴드도 좁고 어두운 클럽에서 스스로 거리로 나와  밝은 태양  아래에서
표백되고 단련되어야 한다. 기다리지 말아라. 이미 많은 걸 가지고 확보하고 있는 이들의 양
보나 매니아들의 동정을 바라지도 말아라. 인류 역사상 스스로 자기의 기득권을 양보한  집
단은 없었고, 구차한 모습은  비참해 지기만 할 것이다. 대중에게 직접 찾아가 소통의 문을
두드려라. 작은 감동(혹은 불쾌함)일지라도 길모퉁이나 버스정류장에서 그대들의  음악에서
조우하고 싶다. 제발 나에게 찾아와 다오! 뽕짝과  서양 클래식에서 조차도 비슷한  감상을
갖는 내가 그대들의 음악을 느낄 수 있도록......



가슴으로 읽는 시

  우리는

          정   민   희(구미 봉곡중학교 1학년)

우리는
서로에게
빛이 될 수 있는
조그만 촛불이요,

서로에게
의지가 될 수 있는
고요한 바다입니다

마음을 열어 보세요
들릴 거예요

영롱한
한줄기 희망의 노래가......



  넓은 창

  북한 이해의 두 열쇠--공산주의와 유교

          최  성  재(회원, 서울관악고등학교 교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
주의조국이다.' 이것은 1998년에 개정된 북한 헌법의 전문(前文) 중 첫 문장이다. 이로써 우
리는 수수께끼 투성이의 북한을  이해하는 두 열쇠를  얻을 수 있다.'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사회주의조국'에서 북한은 소련을 비롯한 동구의 공산주의가 사망한 지 약  10년 후에도 스
스로 공산국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주체'
라는 말이다. 이것은 다름 아니다. 북한이 겉으로는 공산주의 국가지만 속으로는 유교  국가
라는 말이다. 북한의 헌법 전문은 모두 15문장으로 되어 있는데, 김일성의 이름이 무려 17번
나온다. 한 나라의 헌법에 개인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도 해괴하기 짝이 없지만, 유교 국가의
왕조를 생각하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는 왕건이나  이성계와 동급인 태조대왕이기 때
문이다. 왕건과 이성계의 후손이 각기 500여년을 통치하면서 그  정통성은 오로지 이 두 현
인신(現人神)을 핏줄로 이어받은 데 있었다. 설령 왕을 허수아비로 만든 세도가가 나와도 백
성들의 마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태조의 분신 중에서 어벙한 자를 하나 골라서 왕으로 삼
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통성 시비로 통치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1,000년 동안
딱 한 번 왕씨 성에서 이씨 성으로 바뀌었을 뿐이지만, 500년이 지나도록 그 정통성에 마음
속으로 돌을 던진 선비가 많았던 것이다. 심지어 민주주의를 한다는 현재도 그런 생각을 가
진 사람이 수두룩하다. 이성계를 마땅치 않게 생각해야 지조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또
한 그것은 현대판 정통성의 핵심인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하지 않은 자의 정통성을 끈질기
게 헐뜯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망한 공산국가를 왜 고수하느냐, 그것을 해명하는 말이 바
로 '주체'이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다르다는 말이다.  '주체'를 북한의 헌법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제8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회제도는 근로인민대중이 모든 것의 주인으로 
           되고 있으며 사회의 모든 것이 근로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람 중  
           심의 사회제도이다.
주체는 한 마디로 '사람 중심'이란 말이다. 이것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유물
론적 공산주의의 대전제를 허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이 사람을 지배하지 않고 사람
이 물질을 지배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유물론적인 공산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사
라질 수밖에 없지만, 주체사상과 그를 토대로 하여 건립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사람
이 존재하는 한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위대한 국가를 세운 분이 누구냐,  그분이
바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분은  조선뿐만 아니라 장차 인류를
구원할 분이시다. 따라서 그분의 '사상과 영도'를 태양처럼 떠받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건 개인숭배가 아니냐? 독재가 아니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말이 헌법 전문(북한식으로 서문)의 여섯 번째 문장에 나온
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여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계시고 
인민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치시였으며 숭고한 인덕정치로 인민들을 보살피시고 이
끄시여 온 사회를 일심단결된 하나의 대가정으로 전변시키시였다. 여기서 이해의 열쇠가
되는 말이 '대가정'이다. 자신의 편함은 전혀 돌보지 않고 잠도 주무시지 않고 인간을 위해
노심초사하시는 하느님처럼, 불쌍한 자식을 위해 자애로운'아버지'로서 한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라는 말이다. 국가 전체를 화목한 대가정으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바로 유교사상
의 핵심이다. 인민은 약하고 불쌍한 '자식'이고 국가는 '대가정'이고 김일성은 자애로운 '아
버지'란 말이다. 덕으로 한 나라를 한 가정처럼 다스린다는, 맹자의 저  왕도정치가 여기 그
대로 살아있다. 칼로 위협하여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패도정치(조선왕조와  일제, 나아가 미
제와 남조선)를 거꾸러뜨린 위대한 아버지 같은 왕(황제)이라는 말이다. 또한 이민위천(利民
爲天)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자본가와 지주가 아닌  인민을 위할 뿐 아니라 하늘도 섬긴다
고 함으로써 김일성은 하늘이 내려보낸 통치자임을 은연중에 나타냄으로써 스스로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무신론의 공산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하늘까지 동원한 셈이다.  결
국 주체라는 말은 가부장인 김일성이 한  나라의 전인민을 한 가족처럼 화목하게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북한은 저들 소원대로 영원불멸할까? 두 기둥,  공산주
의와 유교(가부장제의 중국 이데올로기)가 건재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이 둘 중 이미 하나
는 10년 전에 무너졌고 하나는 100년 전에 무너졌기 때문에 그  생명이 길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북한은 '강시' 국가 내지 '유령'  국가라 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오래오래 가려면
공산주의는 생산이 풍부하여 인민 전체가 골고루 배급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유교는 그 가
부장이 진정한 가부장으로서 역시 가족을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입혀 주어야 한다. 공산국가
가 무너진 까닭은 다름 아니다. 인민에게 배급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10년, 20년은 속
지만, 50년 100년은 속지 않는다. 중국의 공산주의가 형식적으로나마 아직도 건재한 것은 나
중에나마 시장경제를 과감히 받아들여 먹여 주고 입혀 주는  것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
면 왜 북한은 아직 무너지지 않는가? 오히려 한국을 '해방'시킬지도 모를까? 아니면 평화통
일되어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약간 변형되어 그 체제가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높을까? 한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는 유교 사상이다. 유교에서는 아버
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바꾸지 못한다. 조선시대에 최고의 욕은  '성을 갈 놈'이었다. 곧 아
버지를 바꿀 놈이라는 말이다. 이건 어미가 다른 남자와 사통하여 낳은 자식이라는 뜻이 내
포된 말이다. 아버지는 생명을 주신 분이기 때문에 술주정뱅이라도, 노름꾼이라도, 정신병자
라도, 무능력자라도, 폭군이라도 바꿀 수 없다.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전식구가 다 굶어  죽
어도 아버지는 살아야 한다. 아버지가 '뇌수'이기 때문이다. 팔다리가  없어도 살고 눈과 코
가 없어도 산다. 그러나 '뇌수'가 없으면 죽는다. '뇌수'가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
서 천재지변에 의해서, 제국주의자들의 경제봉쇄와  군사위협에 의해서 숱한 '자식'이  굶어
죽었다고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이다. 또한  아버지는 무오류는 아니지만 그  잘못은 자식이
지적할 수 없다. 법률보다 윤리가 앞서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무리 잘못해도 자식은  아버
지를 묵묵히 모셔야 한다. 그것이 효도이다. 아버지가 죽었으면 그의 분신인 그 아드님이 새
로운 가장이 된다. 새로운 아버지이다. 북한은 조선시대 못지 않게 유교사상에 철저하기  때
문에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국가의 원수가 되는 것에 대해 거의 반감이 없다. 또한 이
전의 가장이나 새 가장이나 잘못이 있을 수 없다. 있더라도 절대 말하면 안된다. 이런  사정
은 한국에서도 대동소이하다. 왜 3김씨가 그렇게 끈질겼을까? 그들이  고금에 다시 없는 위
인이라서 그럴까? 천만에! 우리 나라 국민에게는 아직도 무의식 속에 유교가 깊숙이 자리잡
고 있어서 그럴 뿐이다. 아버지인 3김은 왕으로 등극했다가  상왕으로 물러가지 않는 한 죽
으나 사나 아버지이다. (JP는 상왕이 아니므로 누가 뭐래도 정치를  계속한다.) 감옥에 가도
아버지고 가택연금을 당해도 아버지고 외국에 떠돌아 다녀도 아버지이다. 오히려 고난을 받
으면 자식들은 아버지를 더 한층 극진히 받들어 모신다.  이렇게 효성스러운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마음대로 정당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을 어떤 경우에도 계속 따라
가면 효성스러운 아들로서 또는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면 어여쁜 양아들로서 모두들  마음속
으로 박수를 치지만, 아버지가 이사를 가서(정당을  새로 만들어서) 집 단장을 새로  한다고
가출하는 자는 배신자요 변절자로서 의절을 당하는 법이다. 인간 대접을 못 받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에 DJ의 양아들로서 가계를 이어 받은 것은 유교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도 이
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DJ의 아들딸들이 바보스러울 정도로 충직한 노무현  후보를 적장자
로 95% 찬성한  것이 유교 전통사상에서  보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100%일 것이다. 나머지 5%는 원래 DJ의 아들딸이  아니었을 것이다. 둘째는 물리적 힘 곧
폭력이다. 중국에서는 은나라를 무너뜨린  주나라의 건국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도한 왕은
하늘이 징벌을 주어 내쫓고 새로운 왕을  내린다'는 역성혁명사상을 만들었다. 그래서 새로
운 왕조를 개창할 때는 이전의  왕조와 그 직전의 왕을 파렴치범으로  만든다. 실지로 그럴
수도 있고 날조되는 수도 있었다. 결국은 힘이었다. 무력을 가진 자가 거꾸러뜨리면  그만이
었다. 공산주의는 폭력에 의해 세워진 나라요 사회이다. 자본가와 지주를 죽이거나 알거지로
만들고 그 재산을 골고루 나눈다는 게 공산주의의 시작이다.  그 후에는 생산수단을 공유화
해서 다같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든다는 것이다. 역사상 폭력으로 공산국가를 세우는 데는 수
많은 나라가 성공했지만, 공산주의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골고루 잘  사는 데 성공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일단 공산국가가 성립이 되면, 새로운 지배층이 이전의  봉건국
가나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층보다 더 큰 권력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새 나라를 세운 후에
도 그 폭력을 그대로 갖고 있어야 그것으로 평등권을 배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들은 또 다른 폭력이나 그 폭력의 위협에 의하지 않고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권력은 '총
구'에서 나오고 '내 힘은 군력에 있다'. 공산국가에서 폭력은 곧 생명이다. 따라서 절대이건
포기하지 못한다. 더 큰 힘에 의해서 무너지지 않는 한 마지막 순간까지 군사력은 손아귀에
쥐고 놓지 않는다. 공산국가는 존립의 토대가 군대이기 때문에 항상 군대를 장악한 자가 최
고 권력자이다. 등소평이 죽기  직전에야 중앙군사위주석을 강택민에게  물려주고 강택민이
호금도에게 통치권은 물려주면서도 중앙군사위주석 자리는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은  그것이
최고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이다. 군대를 완전 장
악하고 있다는 말이다. 허수아비 주석을 임명하거나 자신이 겸임하려다가, 스포츠의  대영웅
이 은퇴하면서 그 배번을 영구  결번으로 만들 듯이, 주석이란 왕관을  영원히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에게, 영원한 아버지에게 바침으로써 효자의 칭송을 자자하게 들으면서 그는 실
권은 실권대로 다 장악했다. 하여튼 대단한 정치인이다. 모택동의 중국도 위장평화전술로 힘
을 저축하였다가 결국은 전쟁으로 장개석을 몰아내고 중국을 통일했고, 호지명의 유지를 이
어 받은 월맹도 위장 평화전술로 월남을 안심시킨 후에  결국은 전쟁으로 나라를 통일했다.
동구와 북한도 여러 나라의 공산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민족 세력과 연합했다가
결국은 힘으로 나라를 장악해 버렸다.  미국과 세계를 양분한 소련은  무지막지한 레이건이
막강한 경제력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군비경쟁을 가속화시키자, 도저히 더  못 버티고 총
한 방 못 쏘고 제  풀에 무너졌다. 전인민을 꼼짝 못하게  할 군사력(공산주의를 강제할 수
있는 폭력)이 있는 한, 아버지로서 고함 지를 권위(명분을 독점하는  성리학적 유교 사상)이
있는 한, 북한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방법은 하나다. 한미동맹으로 압도적인 군사력을 구
축하고 중국과 러시아마저 우리편으로 끌어들여 그들이 허튼 생각을 꿈속에서도 못하게  하
여 어쩔 수없이 총을 최루탄으로 바꾸고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게 곧 개혁하고 개방해서 배
부르고 등 따습게 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도록 해야 한다. 이  때는 전폭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공산국가는 폭력에 기초한 나라이고 유교국가는 아버지를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국가
이다. 공산주의와 유교가 교묘하게 결합된 유교공산국가인 북한을 유교적 민주주의관점에서
한 가족으로 생각하다가는, 아무리 못나도 끌어안을 형제자매로 생각하다가는, 미우나  고우
나 한 민족으로 생각하다가는, 무의식적으로 유교이념에 뼛속깊이 철저히 배겨 있어서 절대
로 두 아버지를 인정할 수 없는 북한에게 대한민국이 도리어 잘못을 빌고 그들이 하늘처럼
받드는 아버지를 새 아버지로 받들게 될 것이다. 공산주의와 유교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독선적이라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최후의 사상이기  때문에 함께 나라를 통치할 수가  없다.
정적은 언젠가는 거꾸러뜨리고 공산독재를 해야 한다.  공산주의가 유일무이한 진리이기 때
문이다. 유교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가 둘일 수는 없다. 어머니는 수백 명 있을 수 있고 자
식은 수천 명 있을 수 있어도 아버지는 언제나 한 분이다. 따라서 전통유교적 공산독재국가
인 북한에서 말하는 '민족공조'와 신유교적 민주국가인 한국에서 화답하는 '민족공조'는 그
뜻이 전혀 다르다. 우리는 말 그대로 오순도순 형제자매로 살자는 것이지만, 북한은  가출한
자식들이 무조건 돌아와서 당연히 무장해제부터 하고 대문 밖에서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고개를 늘어뜨리고 다소곳이  처분을 기다리라는 의미이다. 무엇보다
남쪽 의붓아비를 부인하고 친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말이다. 북쪽의 진짜 아버지는
절대 잘못이 없으니까,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는 바로 치도곤이다. 죽이든 살리든 집안  일이
니까 제삼자는 빠지고(자주 곧 미군철수), 그 후에도 가출한 자식이  잘못을 빌지 않으면(주
체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어쩔  수 없이 회초리를 들겠다고(민족
해방하겠다고 곧 남침하겠다고) 북한의 헌법과 노동당 규약에 명시되어 있다.
(헌법) 제9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
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노동당 규약) ...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
룩하여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 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



국익(國益), 불안, 성장강박증

          박  상  규(만불신문 기자)

이라크에 있는 현지 교민 2명이 피습됐다는 소식이 긴급  타전됐다. 이라크에 남아 있는 교
민들의 안전이 덜컥 걱정됐다. 걱정은  이내 우리도 이제 테러의 목표물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데로 이어졌다. 우리 국민들의  걱정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번
피습 사건으로 인해 정부의 파병 결정이 미뤄지거나 재론될  여지는 없다고 단언했다. 오히
려 전투군과 재건군으로 구성된 혼성군이야말로 우리 군인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다는 입장
을 천명했다. 수많은 평화주의자들의 파병 반대 여론을 애써 무시해가면서까지 정부가 파병
을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 스스로가 내세우는 파병의 근거는 '국익'이다. 평화주의
자들의 파병 반대 입장의 맞은편에 서 있는 파병 찬성론자들의 입론 역시 '국익' 위에서 있
다. '국익'이란 명분만큼 큰 근거는 없을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명분 없다는 사실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오만함 모두를 수긍하는  국민들조차도, 이 '국익'이란 단어  앞에서 '평화'라는
오래된 염원을 포기한다. 그리고 우리의 안보현실과 경제적 현실을  들어 파병 찬성으로 기
운다. 대부분의 여론이 찬성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전투병 파병이냐, 비전투병 파병이냐'가 논의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정
부와 수구언론을 비롯한 파병 찬성론자들이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국익은 어떤 것일까. 그
들이 인식하는 우리의 안보현실과 경제현실을 짚어보면, 그들이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국
익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인식하는 안보현실과 경제현실은 대략  이렇다.
우리는 북핵 문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난마'로 존재하고 있는 한반도에 살고 있고, 그것
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꾸준히 주한미군 철수라는 압박카드에 위협당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대미 수출에 우리 경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고,  미국이 주도하는 초국적 금융자본에
허약한 펀더멘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들이 이라크 파병으로
기대하고 있는 국익의 실체는 안보적 측면에서의 불안 해소와 경제적 측면에서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대한 보장이다. 이라크 파병으로 미국에게 동맹국가로서의 신뢰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국익을 실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기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우
리의 국익 실현을 위해, 제국주의적 오만함으로 세계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미국에게 의
존하면 할수록, 우리의 국익은 오히려 위협받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국익은
진정한 국익이 될 수 없다. 타자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국익 또한 진정한 국익
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제나 불안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타자로부터 나의 안
정을 공격받을 수 있다는 인식으로부터 생성된다. 이러한 불안은 세계적인 수준에서 평화체
제가 구축될 때 비로소 사라질 수 있는 속성의 것이다. 우리의 불안은 또한 '경제성장이 언
제까지나 가능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직면할 때  생성되기도 한다. 무한대의 경제성장이 발
전이고 진보라고 생각하는 오늘날의 성장강박증은 불안의 또 다른 원천이다. 이들에게 있어
서 경제성장은 총생산과 총소비의 성장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산과 소비의 성장은 어
머니 지구의 파국을 전제로 한다. 어머니 지구의 파국은 곧 인류의 파국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장강박증은 경제성장이라는 허구적 수치를 향해 너도 나도 생산과 소비의 수레바퀴  속으
로 뛰어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증상이다.  이 증상의 종말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인류의
파국에 다름 아니다. 말하자면,  성장강박증은 우리를 파국으로  이끄는 절대절명의 병이다.
오늘날 우리모두는 이러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라크 파병의 명분인  '국익'이라는 것.
이 역시도 불안과 성장강박증을 숙주 삼아 기생하는 오래된  바이러스이다. 이 오래된 바이
러스의 퇴치를 위해서도 이라크 파병은 재고되어야 한다. 그럴 때, 배타적인 국익을 넘어 상
생하는 국익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생하는 국익. 그것은 물론 불안과 성장강박증의 치
유 후에 추구될 수 있는 관념이다.


  클래식 산책

멘델스존의 무언가와 이탈리아를 감상하며

          곽  진  숙(주부,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나레이터)

여러 계획과 다짐으로 시작되는 새해에 리듬으로 1월 첫 달이 하나의 생명의 힘으로 다가
오길 기대해 보며 구상합니다. 지난 가을 노랗고 붉었던 단풍, 그리고 겨울 침묵의 들판, 시
각을 통해 하늘과 땅의 조화로써 심성을 드높여 주며 오고가는 시간과 계절 속에서 자연이
음악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종실록을 보면 "악이라고 하는  것은 성인이 성정을
기르고 신과 인간을 화합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순하게 하고 음과 양을 고르는 도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비뚤어지기 쉬운 하이스피드 속도시대에  음악은 즐거움과 여유와 약이
됩니다. 충분히 이해되지 않더라도 우선 대체적 윤각만이라도 파악하고 감상하며, 즐기고 혜
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 단계인 이해하는 단계로 한발 나아가면 됩니다.
이번호에 소개하고 싶은 곡은 맨델스존의 작품 중  무언가와 교향곡 제4번 이탈리아입니다.
"무언가"란 가사가 없는 음악으로 어떤 사물과 기분을 표현하는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19
세기 낭만파음악의 창시자 중 한사람이며, 누구보다도 이상적 교육을 받았고 부유한 유대계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멘델스존은 행복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도 품위가  있고
명쾌합니다. 낭만적인 정신, 자유로운 서정미와 환상미를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맨
델스존은 수시로 이러한 곡을 만들었는데 6곡씩 8권을 만들었습니다. 소품이지만 너무나 시
정이 풍부하고 낭만적 정서와 깨끗한 인상을 느낍니다.

"작품62의5번 A단조"
"Venetian Gondora Song"
이곡의 처음 시작 부분을 개인적으로 참 좋아합니다. 반복해서 듣기를 즐깁니다. 조용히  낮
은 음으로 시작해 느리게 울려 나오는 피아노선율, 낭만적 멜로디, 흔들리는 별빛처럼  달밤
에 물위로 흘러가는 곤도라의 정취와 그 이상을 연상시키며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며 마음도
차분해집니다. 이 곡을 듣고나면 항상 순수한 질적 시간을 체험합니다. 어느 시간과  공간에
따라 같은 곡도 때론 평범하게 때론 신선한 자극의  놀라움으로 들립니다. 감상자의 정신작
용에 의해 음악화되어지고 시간과 공간의 심리상태에 따라 구체적 체험이 다릅니다.

"작품 62의6번 A장조"
"Spring Song"
이 곡은 고금의 명곡으로 알려져있고  우리 귀에 익숙한 맨델스존의  곡입니다. 4분의2박인
이 곡은 선율이 단순하지만 반주양식에서 충분히 풍부하게 그의 정서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봄의 환희를 매력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스럽고 설레입니다.

"작품38의 6번 A프랫장조"
"Duetto"
안단테 콘 몰토인 이 곡도  진정된  피아노선율과 전체적으로 속삭임같이 발랄하며 기지에
차 있으며 변화하며 진전됩니다.

교향곡 제4번 "이탈리아" A장조의 작품90
멘델스존은 38세의 짧은 생애 중 20세부터 3년간 영국, 이탈리아(로마와 나폴리), 스위스, 프
랑스 등지를 여행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로마에서 6개월간 머무는 동안에 사육제와 교황 그
레고리우스 16세의 취임식을 보고 감명을 받아  작곡한 것입니다. 제1악장에서 제4악장까지
연주시간은 약 28분이며, 제 1악장과 제4악장에 이탈리아색채를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곡에서는 옛 시대의 로맨스와 정서, 활기에 찬 무곡풍이  아름답고 우아하게 표현되고 있습
니다. 짧은 생애지만 음악사상 많은 흔적을 남겼던 멘델스존의  밝고 빛나는 음악에서 새해
에도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Pops English

  John Lennon의  Imagine

            김   창   연(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운영위원, 시각장애인)

Imagine  (By John Lennon)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one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n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노력하면 쉬워요.
우리 아래에 지옥도 없고
우리 위에는 하늘만이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살아간다고 상상해보세요.

'나라'라는 것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리 어렵지 않아요.
죽일 대상도 없고 목숨을 바칠 대상도 없죠.
종교가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당신은 아마 내가 몽상가라 말하겠죠
하지만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에요.
언젠가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해서
세상도 하나가 되길 바래요.

재산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당신이 그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탐욕스러울 필요도 굶주릴 필요도 없이
모든 사람들이 형제애로 뭉쳐서
세상을 공유하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당신은 아마 내가 몽상가라 말하겠죠.
하지만 나 혼자 만의 생각은 아니에요.
언젠가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해서
세상이 하나로 살아가길 바래요.


** 존 레논(John Lennon)
1940년 10월9일 영국의 항구 도시 리버풀에서  선창가 잡역부의 아들로 태어 난 존  레논은
고교 시절 비틀즈 의 전신이었던 그룹 Quarryman을 조직한 장본인이었으며 비틀즈를 창단
했던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비틀즈 멤버 중 가장 나이가   많았고 가끔 자기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비틀즈에서 활약하면서도 자신의 개인밴드인 'PlasticOno Band'를 조직해 싱글
들을 발표했다. 비틀즈가 해체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되어 있지  만 존 레논이 결
정적인 역할을 한 것 만은 분명하다. 그가 비틀즈를 떠난 첫번째 이유는 YokoOno와의 만남
이었고, 두번째는 자신이 추구하려는 음악이 더 이상  비틀즈에서 받아 들여지지 않았기 때
문  이었다. 1970년 첫번째 솔로 앨범인 "John Lennon  /Plastic Ono Band"는 그의 솔로앨
범 중 최고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명 반으로  꼽을 수  있는 "Imagine"은 1975년 11
월에  발매되었는데, 여기에는 폴 매카트니를 공격하는 내용이 들어있어 한때 폴과의  사이
가 극도로 나빴다. 존 레논은 요꼬오노와  숱한 화제를 뿌리며 계속 독자적인 활동을  했다.
1980년, 오랜동안의  침묵을  깨는 "Double  Fantasy"를  발표했다. 여기에  수록  된 싱글
'Starting over'가 인기상승할 무렵인 1980 년 12월8일 10시50분, 존 레논은 그의 자택인 뉴
욕의 맨해턴 다코다 아파트 앞길에서 평소 그에게 사인을 요구해 왔던 사진사 마이크 채프
먼에게 5발의 총탄을 맞고 40세의 나이로 타계하고 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팝 역사상
유례없이 성대한 추모 기도회가 곳곳에서 열리는가 하면 'Time'과 'Newsweek'지의 커버로
등장하는 등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또한 마지막 앨범 "Double Fantasy"에 수록된 'Starting
over'가 팝 차트를 석권해 존 레논의 명성은 죽은  뒤에 더욱 높아졌다. 존 레논이 죽은 후
요꼬오노는 남편을  추모하는 앨범   "Season of Glass"를   발표하였는데, 그중 'Goodbye
Sadness'는 미망인으로서의 애틋한 감정을  담고 있다. 죽은  후 더욱 유명해진 존레논, 팝
이 존재하는 이상 그의 노래는 계 속 불려질 것이다.

** 영어 한마디

John : Happy birthday to you. Susan.
       (수잔, 생일축하해요.)
Susan : Thank you.
       (고마워요.)
John : This is a little something for you.
       (이건 제 조그만 선물이예요.)
Susan : Oh, but you don,t have to do that.
       (이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John : No, really, it is the least that I can.
       (별 것 아니예요, 성의라고 생각해주세요.)



계간 영화읽기
웃음과 따스함이 살아 있는 영화

          배   인   주(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나레이터)

문화원에 참여한지  벌써 몇 달이 흘렀네요. 여기서의  시간들은 제 인생의 소중한 기억으
로 남을 것입니다. 그 동안 도움을 별로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도 들고 앞으로 문화원에
서 더 많은 분들과 좋은 영화를 함께 하고 싶은 뜻에서 세 편의 영화를 소개하려 합니다.

1. 굿바이 레닌 (감독 : 볼프강 베커, 주연 : 다니엘 브르헬, 카트린 사스)
굿바이 레닌은 병든 엄마를 돌보는  아들의 고군분투가 훈기 있는 웃음을  낳고, 그 웃음이
휩쓸고 간 자리에 콧등 찡한 여운을 남기는 독일의  휴먼 코미디영화이다. 다니엘은 동독의
신세대 청년이고, 초등학교 교사인 그의 엄마 크리스티아네는 열성 공산당원이다. 아들은 베
를린 장벽 철폐  시위에 참가하고, 이를 목격한  엄마는 심장마비로 쓰러진다. 이후 8개월만
에 기적같이 깨어난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절대적인 안정이다.  하지만 엄마가 철석같이 믿
은 베를린 장벽은 무너진 상태다. 이를  알 경우 엄마가 쇼크를 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들은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다니엘은 엄마의  방을 예전처럼 꾸미고,
쓰레기통을 뒤져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 엄마가 먹고 싶다는 동독 식품의 포장을 주워와 서
방 내용물을 채워 넣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생일잔치에는 돈을  주고 데려온 엄마의 제
자에게 동독 시절의 노래를 부르게 하고, 몇 개월 전에 방영된 동독 TV 프로그램 비디오를
구하여 틀어 주기도 하지만 그것으로는 사태가 수습되지 않자 동독의 사회주의가 구현된 가
짜 뉴스를 제작하여 보여주기까지 한다. 가족과 동료, 연인,  이웃의 도움을 받는 아들의 이
같은 눈물겨운 작전은 감상주의보다  유머를 택하면서 웃음을 짓게 한다. 엄마를 위해 갈수
록 다종다양해지는 아들의 거짓말 해프닝은  격변기와 이데올로기를 다루면서 빠지기  쉬운
경직성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대형 식품점과 코카콜라, 버거킹 매장, 음란업소  개장, 그리고
레닌 동상이 철거되는 것을 통하여 동독사회의 변화를 묘사하면서 이데올로기는 시대의  부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동독인 들의 곤궁한 삶과 그들이 품는 향수를 담아 통일방
식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아들의  거짓말을 눈치 채고 숨을 거두는  엄마를 통해 세대와
이데올로기의 통합도 암시한다.
독일에서 역대 흥행 2순위를 이룬  이 영화는"공동경비구역(JSA)"열풍이 불었던 한국사회
에도 충분한 호소력을 지녔다. 사회성은 묻어둔 채 사랑  이야기로만 치닫는 한국영화가 풀
어야 할 숙제도 내놓고 있다.

2.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감독 : 김기덕, 주연 : 오영수, 김종호)
이 영화에서는  천진한 동자승이 소년기, 청년기, 중년기를 거쳐 장년기에 이르는 파란많은
인생사가 신비로운 호수 위 암자의 아름다운 사계(四季) 위에 그려진다. 만물이 생성하는 봄
은 업을 보여 준다. 숲에서 잡은 개구리와 뱀, 물고기에게  돌을 매달아 괴롭히는 짓궂은 장
난에 빠져 천진한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승은 잠든 아이의 등에 돌
을 묶어둔다. 잠에서 깬 아이가 울먹이며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자, 노승은 잘못을  되돌려놓
지 못하면 평생의 업이 될 것이라고  일러준다. 여름은 욕망을 나타낸다. 아이가 자라  17세
소년이 되었을  때, 산사에 동갑내기 소녀가 요양하러 들어온다. 소년의 마음에 소녀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차 오르고, 노승도 그들의 사랑을  감지한다. 소녀가 떠난 후 더욱 깊어 가
는 사랑의 집착을 떨치지 못한 소년은 산사를 떠나고... 가을은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절을
떠난 후 십 여년 만에 배신한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 되어 산사로 도피해 들어온 남자. 단풍
만큼이나 붉게 타오르는 분노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불상 앞에서 자살을 시도하자  그를
모질게 매질하는 노승. 남자는 노승이 바닥에 써준 반야심경을 새기며 마음을 다스리고... 남
자를 떠나보낸 고요한 산사에서 노승은  다비식을 치른다. 겨울은 비움을 보여준다.  중년의
나이로 폐허가 된 산사로  돌아온 남자. 노승의 사리를 수습해 얼음 불상을 만들고, 겨울 산
사에서 심신을 수련하며 내면의 평화를 구하는 나날을 보낸다. 절을 찾아온 이름 모를 여인
은 어린아이만을 남겨둔 채 떠나고... 그리고 다시 봄이 되었다. 노인이 된 남자는 어느새 자
라난 동자승과 함께 산사의 평화로운 봄날을 보내고 있다. 동자승은 그 봄의 아이처럼 개구
리와 뱀의 입 속에 돌맹이를 집어넣는 장난을 치며 해맑은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3.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감독 : 이재용,주연 : 배용준, 전도연, 이미숙)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프랑스소설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옮긴 것으로 세련된  화면
과 음악에 사실적이면서도 날카롭고 현실적인  대사들이 인상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
내용은 요부와 바람둥이의 정절녀 무너뜨리기이다. 겉으로는 세도가의 정부인으로 살아가며
남자들을 유혹하는 이중 생활을 영위하는 조씨 부인(이미숙). 한편, 과거에 급제했으나 관직
을 마다한 채, 뭇  여인에  탐닉하고 시/서/화를 즐기는 이단아 조원(배용준).  말 못 할 첫
사랑의 상대이자 사촌 지간인 둘은 은밀한 사랑  게임의 동업자다. 어느 날 조씨 부인은 남
편의 소실  자리인 어린 소옥을 범해줄 것을 조원에게 제시하지만 조원의 목표는 9년 간 수
절하여 열녀문까지 하사 받은 숙부인 정씨(전도연)로  정해진 상황! 조씨 부인은 조원이 성
공하면 자신을 허락하겠다는 미끼를 던지고 조원은 내기를 수락한다.  갈고 닦은 실력과 술
수를 총동원하여 숙부인 유혹 작업에 나선 조원. 하지만, 나라에서 금한 천주학을 접하고 서
민을 돕는 등 강한 신념으로 살아가는 숙부인의 저항은  예상외로 완강하고, 그럴수록 조원
의 전의는 더욱 불타 오른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배경의 색과 인물들의 심리를 조화시키는
특출 난 재능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배우들의 세심한 표정을 하나하나 잡아내며 감정 변
화를 이끌어 가는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사극은 따분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유쾌한 웃음을 이끌어내는 재치 있는 대사들이다.  쏟아지는 영화들 속에서 명작
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운 좋고 행복한 경험입니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마음의 여유와 따스함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읽는 책
  더 나은 삶을 위한 싸움
    -- 홍세화의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한겨레출판사)을 읽고

          신  남  희(새벗도서관 관장)

이 책을 쓴 홍세화는 다소 특이한 삶의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경기고, 서울대의 엘리
트 코스를 마친 후 한 기업의 프랑스 상사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중, 박정희 정권 말기인
79년 남민전 사건이라는 조직사건에 연루되어 원하지 않게 망명생활을 하게된다. 잘 나가는
해외 상사원으로 근무하다가 갑자기 이주노동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생계를
위해 택시 운전사로 근무하게 되고, 그 경험을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을 통해 국
내에 소개하게 된다. 그후 "쎄느강은 좌우를 가르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와 지금 소개하
려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에  이어, "빨간 신호등"까지 네 권의  에세이집을 내게 된다.
지금은 한겨레신문사에 근무하고 있는 그는 프랑스의 역사와 정치경제 등에 대한 풍부한 이
해를 바탕으로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독특한 글쓰기를 해왔다. 그의 에세이들은,  러시아인
이면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한국으로 귀화한 박노자와 함께 서구유럽의 사회체제를 우리나라
에 소개하면서, 지금 현재의 우리 사회체제-제도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대안제시를 하는
의미있는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홍세화만큼 진솔하고 객관적으로 그 사회와 우리 사회를 비교 분석한
글은 이전에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홍세화는  먼저 우리가 흔히 쓰는 '대한민국은 민
주공화국이다'라는 말에 대해 딴죽을 걸기 시작한다.  공화국이라는 단어는 사실 우리 사회
에서 남발되다시피 하고 있는데,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대통령의 당은 '민주공화당'이
었다! 프랑스에서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시민혁명의 과정에서
프랑스인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싸워서 쟁취한 것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은채 '공화국'이 되어버린 우리나라는 공화국의 기본부터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 그
의 생각이다. 실제 사회당과 공산당이 버젓하게 정권을 잡기도  하는 프랑스에서 좌우란 엄
연한 이념의 차이를 지닌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거의 극우, 보수의 틀을 벗어
나지 못하며, 그나마 진보정당이라고 하는 민주노동당은 국회의석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있다.
리영희씨는 일찍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주장했거니와 우리 사회는 좌의 날개는 아
예 없다시피하고 우의 날개만 지나치게 비대한, 기형적인 사회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데는 해방과 함께 남한에서 극심한 빨갱이  사냥을 통한 좌익의 대대적인 청산이  있었기
때문이며, 해방이후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한결같이 극우 이념을 갖고 있었고, 좌익이라면 자
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빨갱이 공포증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가장 보수적인 정
당이 내거는 공약이 '공교육과 의료의 완전무상'일만큼 교육과  의료는 가장 기본적인 것으
로 인식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교육과 의료의 무상을 주장했다가는 좌익으로 몰리기 쉽
다. 토지공개념을 주장해도 사회주의자라고  매도되는 마당이니. 만인이  만인의 적인 사회,
장애인이나 소외계층에 무한히 잔인한 사회, 소수의  사회귀족들이 봉건시대보다 더한 특권
을 누리면서(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의 특권적지위), 지도층의 사회적 의무인  노블
리스 오블리제는 나몰라라 하는 사회. 대통령이나 총리 후보의  검증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
지도층의 행태는 우리를 경악케 한다.  (그들은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날 때부터 미국시민권을 갖도록 하기 위해  원정출산을 마다않으며, 대부분이 이중국적자이
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특권의식으로 무장한  자들이다)어리석은 시민들은 분풀이 대상을
몰라 익명의 다수에게 잔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엽기적 범죄가 그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남
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프랑스가 균형잡힌 민주주의 사회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에 대한 착취덕분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오랜동안
싸워온 덕분이다. 지금 우리도 사회적약자를  위한 사회보장 혜택과 공교육 확충,  인간다운
사회를 위한 요구를 그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지 조차 않
는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비참할 것인가.



  함께 나누는 짧은 이야기

     남김의 미학

          김   칠   봉(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이사, 교보생명 메니저)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인데 유럽  어느 나라에 있는 한 정액유료도로에는  요금정산소에서  
계산을 하려고 하면 요금을 받는 분이 나와서 앞에 차에서 계산을 했다고 요금을받지 않는
다고 합니다. 그러면 운전자는 너무 감사해 하다가 다음에 오게 되는 차운전자를 위한 요금
을 또다시 계산을 하고 간다고 합니다.  앞서 가신 분의 따뜻한 배려에 보답하는 마음을 다
음에 오는 사람에게 남기는 것이지요. 그 당연한 결과로 그 도로에서의 운전은 너무나 기분
좋고 상쾌하여서 사고도 거의 없는 드라이브 최적의 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바로
이런 남김의 가치를 생각하며 나무를 심는 것이며, 사람을 비롯한 모든 종족이 갖는 종족보
존의 본능 또한 바로 이와 상통하는 것이 아니겠나 생각해 봅니다. 결국 봉사하고 헌신하고,
앞장서서 어려운 일을 한다는 것은  인류 본연의 자세이고 순리라 하겠습니다. 김현준 원장
님을 통하여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에  미력이나마 참여하게 되었는데,  감히 한 말씀하자면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국내 최초의  문화단체로서, 초기재정 및 봉사
인력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설립취지에  맞는 의욕적인 행사를 기획,  진행함으로써 향후 이
땅의 시각장애인에게 문화활동을 통해 보람있는 삶의 방법을 제시하는 선도적 역할을 할 것
으로 기대가 됩니다. 몇 년 전에 [오체불만족]이라는 저서를 출판한 일본의 장애우 오토다케
씨가 소개된적이 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하는 것은 팔다리 없이 태어난 그의
기형적인 몸이 아니라 수영. 농구. 축구 등을 자유자재로 즐기며 스스로 자신의  신체구조를
장애가 아니라 '초개성적'이라고 표현하는 해맑은 표정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듯 많은 장애
인 스스로의 노력으로, 또 주위의 많은 사람들과 기업과 국가가 그래도 이전보다는 더 많은
관심을 가짐으로서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서 진일보한 인식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
을 졸업하고 20년간 근무하고 있는 "교보생명"에서도  회사의 존재 이유인  핵심목적을 "모
든 사람이 삶의 역경을 극복하여 보람있는 인생을  계속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  정하
고  전사적인 [교보다솜이] 사회봉사단을 설립하여 소외된 이웃을 위한 브랜드 약속을 실천
할 수 있는 다양한 봉사의 장을 마련하고 있으며 기업의 이윤활동도 가족사랑의 소중한 가
치를 전달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생명보험사에서 판매하고있는  대표적인 상품인
"종신보험"은 가족경제의 책임자인 가장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거나 장해상태가 되면 남겨
진 가족을 위한 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가장의 소중한 가족사랑의 가치를 경제적으로나마
남겨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김현준 원장님과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과 나에 대하여 조용한 생각을 하던 중 평생을 함께
하리라 다짐하면서 제가 근무하고 있는 성서 BRANCH에 "교보다솜이 사계절 신호등" 봉사
팀을 발족하고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을 주요봉사처로 선정하여 회사의 지원과 BRANCH 경
비에서 일정 금액을 지원하고 봉사활동에 참여키로 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최근 이만큼  
잘한 일을 또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사람은 태어날 때 주위사람들의 축하의 박수를 받으며
태어나지만 정작 본인은  울면서 태어난다. 그렇다면 주위사람의 많은  슬퍼함 속에서 죽음
을 맞을  때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죽기를 원하는 가를  항상 생각하면서 살아라."고 한 노
스님의 말씀이 새삼 생각납니다.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파이팅!



문화원에 바란다

더불어 누리는 나눔의 장

          김   봉 민(대구 안마수련원 강사)

문화 생활이란, 절대로 일부 선택받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시각 장애인이기 때문에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없다는 부정적 사고 방식을 이제는 과감히 버
려야한다. 우리 곁에는 대구 시각 장애인 문화원이라는 더없이 훌륭한 문화 공간이 있기 때
문이다. 잠시 바쁜 일상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문화 생활을 즐긴다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도 있고, 세상사는 즐거움 또한 그만큼 커질 수 있을 것이다. 문화란 결코 우리에게  거짓말
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할 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문화적 가치를 우리 마음속에 안겨주기 때문이다. 모든  시각 장애인들이 다함께 어
울리며 즐기고 참여하는 문화 공간으로, 그리고 정안인들과 함께 더불어 누릴 수 있는 나눔
의 장으로서의 그 막중한 소임을 문화원이 훌륭히 해낼 수 있도록 문화원에 대한 아낌없는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필자는 여기서 개인적으로 문화원
에 바라는 것 몇 가지만 간단히 적어 보고자 한다.
첫째, 가칭 '소리로 여는 문화' 라는 녹음 잡지의 제작 및 보급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현재 문화원에서 발간하고 있는 계간지 [시각과 문화]는 점자와 묵자본 형태로 제작되고 있
는데, 이런 경우 점자 해독이 전혀 되지 않는 시각 장애인이라면 그 내용을 읽기 위해서 어
쩔 수없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앞으로 가능하다면 계간지를 점자
와 묵자본 외에 녹음 테이프로도 제작하여 보급하였으면 한다. 그리고, 당장에는 어렵겠지만
추후에라도 재정적 여건이 좋아진다면 이런 계간지와는 별도로 새로운 형태의 녹음 잡지 발
간도 신중히 고려해 주었으면 한다.
둘째, 몇몇 프로그램을 신설 운영해 주었으면 한다. 앞으로 신설했으면 하는  프로그램으로
는 국악 산책, 독서 교실, 유명 문화인과의 만남  등이다. 매주 월요일에 클래식산책이란 프
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데 부족하기 쉬운 서양음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
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작 우리 국악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 못내 아
쉬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국악 산책이란 새로운 프로그램이 신설된다면 동서양  음악
을 함께 배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독서교실에서는 보다 폭넓은 독서 함양을
위해 특정 도서 한 권을 선정하여 그 도서의 전반적인 줄거리를 소개하고 회원들간에 그 도
서에 대한 감상을 토론 형태로 진행한다면 책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
으로 본다. 또한 유명 문화인과의 만남에서는 여러 문화  방면에서 활동하고 잇는 유명인사
를 초청하여 그분만의 독창적이고 진솔한 문화담을 전해 듣는다면 더 많은 문화를 알 게 되
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여겨진다.
셋째, 상하반기 각각 한차례씩 문화원에서 주관하는 문화 캠프를 열었으면 한다. 이런 문화
캠프를 통하여 회원 상호간에 친목을 도모하고, 문화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모든 프로그램에
대한 종합적 재평가 과정으로 삼아 보다 발전 지향적인 문화원으로 거듭날 수 있는 소중한
만남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넓은마을이나 아이프리등과 같은 시각 장애인 관련  통신망에 문화원 동호회를 개설
하여 운영하였으면 한다. 문화원을 보다 많은 시각 장애인들과 일반인들에게 홍보함에 있어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방법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런 통신 매체를
이용한다면 보다 수월한 방법으로 회원 확보의  용이와 문화원의 모든 활동을 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문화원의 입지 역시  확고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리고, 문화원과 관련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  운영함으로써 문화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
고, 더 많은 문화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중한 문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무슨 일이든지 다 마찬가지겠지만 문화 역시 한 술에 배부를 수 없다. 현재 문화원에서 실
시하고 있는 모든 프로그램들이 자기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고  하여 외면한다든지, 딱히 내
가 참여하여 즐길만한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문화원의 출입 자체를 꺼린다면 그것은 어려
운 여건속에 개원한 문화원의 발전을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길이  되며, 나아가 다시금 문화
맹으로서의 어쩔 수없는 설움을 안고 살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쪼록 문화원에 대해 좀더 많
은 관심을 갖고 모든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능동적인 시각 장애인이 많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아울러 전국 유일의 시각 장애인을 위한  문화 메카로서의 막중한 소임
을 짊어지고 있는 대구 시각 장애인 문화원의 무궁한 발전을 간절히 바란다.



  회원 활동기

낙안읍성과 선암사를 보고나니

          김  진  호(시각장애인)

구월의 문화탐방은 낙안읍성과 선암사였다. 토요일  비가 곧 내릴 듯한  날씨 속에 적당한
수의 탐방객을 싣고 우리들의 버스는 구마고속도로를 달려 서남쪽을  향했다. 살기 바쁜 일
상을 어렵사리 떨치고 궂은 날씨의 아침에 모인 시각장애인동료들, 많치 않은 수라 아는 면
면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데,  간간이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려 주니 분위기는 더욱 오붓
하고 정겹다. 문화유적은 사전지식을 갖추고 봐야만  그 진가를 아는법. 두툼한 점자자료가  
여느 시각장애인 행사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이채로운 광경인데,  나레이터가 예쁜 음성으
로 자료를 낭독도 해주니 더 편하고 이해하기도  좋다. 나레이터는  자료보다 훨씬 더 많은  
조사, 연구를 한 듯 한데 애써 티내지 않고 하나라도  더 많은 사전지식을 심어줄려는 노력
이 고맙고 돋보였다. 낙안읍성은 370년전 임경업장군이 평지에 쌓은 자연석으로 만든  석성
이다. 성안에는 동헌, 민가, 길이며  나무들이 거의 원형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국내 유일한
성곽마을이라고 자료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더구나  성안의 초가집 마을에는 현재도  
사람이 살고 잇다니. 우리나라에 아직 이런 곳이 남아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생겼고 그곳
을 오늘 내가 직접 확인하고 역사의 현장을 돌아본다고 생각하니 어딘지 모르게 기쁨이 솟
아났다.
드디어 차에서 내려 성안으로 들어갔다. 두껍고 탄탄한 나무로 된 성문, 크고 작은  자연석
을 기막히게 짜맞추어 쌓은 성벽은 돌에  대한 조상들의 안목과 솜씨가 어떤 수준이었는지
짐작케 한다. 동헌과 개관을 둘러보고 마당을 걸으며 사또와 이방, 나졸의 움직임도  생각하
면서 형구의 묻어있는 권력의 서슬도 느껴본다. 전시관에는 선인들의 생활상과 문화가 분야
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고 초가집  동네에는 나즈막한 돌 담장과 작은  초가삼간 집들, 울퉁
불퉁한 골목길 등 모든 것이 우리  옛 마을의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그
동네 골목길을 걸으면서 어렸을 때  산골에 있던 외가집 동네에서 느껴지던  그 냄새와 바
람, 아늑하고 포근했던 동네 풍경들...  가슴밑바닥에 묻혀있던 어렸을때의 추억을  다시 떠
올릴 수 있었다.
성내에는 동서간도로와 남북간도로가 있었는데 그 교차지점 한편에 어른 4~5명이 팔을  벌
려야 안을 수 잇는 수령700년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있었는데 앞쪽에는 작은 제단
도 마련되어 있었으며, 지금도 은행이 많이 열려서 익은 열매가 땅에 떨어져있었다.  풍수지
리상 낙안읍성은 큰 배와 같은데 중앙의 저 은행나무가 돛대역할을 하고, 외곽에 흩어져 있
는 수령 4-500년된 나무들이 노의 역할을 하도록 심어져  있다는 설명이었다. 풍수지리설이
낙안읍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조상들은  풍수지리설을 하
나의 설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풀어 밝히는 과학으로 철저히 신봉해왔으며, 그런  생각들,
관습 덕분에 저 조선중기의 은행나무 할머니는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잘 보호되고 대우를
받아왔음에 틀림이 없으리라.
굵어지는 가랑비 속에  선암사로 향했다. 조계산 남쪽골에 자리한 선암사는 건너편 서쪽골
에 자리한 송광사와는 대조적으로 태고종의  본산이라고 하나 우리나라 근대불교사의  아픈
단면을 보이기라도 한 듯 종단간 소유권 분쟁으로 몇 십년째 주인도 없이 보수는 물론 사찰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애써 한가지  좋은 점을 찾는다면 현대
적 단청과 보수를 하지 않은 관계로 옛  건축의 미를 원형대로 많이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가람의 배치도 특이한 점이 있는데 삼무라해서 일주문이 없고 사천왕상이 없고 대웅전의 전
문이 없는 것이 다른 곳과 달랐다. 가람내에는 상사화라는 유별난 식물이 많이 자생하고 있
는데 스님과 보살의 애틋한 사랑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사찰의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하
는데 선암사의 그곳 또한 깊이 만큼이나 오래된 곳이라 해서 다들 일부러 가보기도 했다.
돌아오는 버스안, 시각장애인의  여건에 맞춘 프로그램들이   다채롭다. 그 중에서 퀴즈와
[낙안읍성]이라는 글자에 맞춰 사행시 짓기는 오늘의 문화탐방의 내용을 복습도  하고, 재미
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날 입상작품인 필자의  사행시를 끝으로 하면서 대구시각장
애인문화원의 문화탐방이 앞으로 더욱 발전해서 관광가이드 수준보다는 더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접근으로 우리문화와 문화재의 진가를  재인식시키고 우리의 긍지를 높이는  모임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낙토를 꿈꾸는 삼남지방의
안분지족 하니 낙안평야일세
읍내로 들어서니 700년 노거수가 옛일을 이야기하고
성대를 염원하던 임경업 장군의 혼이 아직 살아있구나.


불심이 남긴 문화유산을 찾아서
          김   현   숙(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간사)

  '오 하나님!! 오늘도 무심하게도 비를 뿌리시네요.'  대구대박물관과  연계해서 떠나는 이
번 역사문화기행은 우리 회원들에게는  앞으로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석탑을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래서 '제발  조금 흐리더라도 비는  오지마라' 밤새도록
잠을 설쳐가면서 빌었는데... 제4회 역사문화기행에 이어 오늘도 비가 내린다. 다음 역사문화
기행을 떠날 때는 비가 안  오길 빌면서 첫 행선지인 영천의  신흥사 삼층석탑으로 향했다.
영천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대구대박물관 황정숙선생님께서  오늘의 일정과 우리나라의 석
탑의 유래와 탑의 특징에 대해 전문적인 설명을  해주셨다. 탑의  유래는 불교의 교주인 석
가모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제자들이 유해를 당시의 사회의 풍속에 따라 화장을 하였
는데 이때 인도의 여덟 나라는 그의 사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쟁탈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때
도로나라는 제자의 의견에 따라 불타의 사리를  똑같이 여덟 나라에 나누어주어 각기  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리신앙은 싹트기 시작하였으며  불탑의 기원 역시 이때부터라고
한다.
선생님의 설명이 다 끝나 갈 즈음 영천시에서 금호강을  바라볼 수 있는 고개 아래쪽평지,
동네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삼층석탑에 도착했다. 삼층석탑의 창건 당시 사찰의 규모는 알
수 없다고 하였으나 근년에 신흥사라는 절이 생겨 이  탑을  보존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석탑의 보호대 안으로 들어가서 설명을 들으며 설명에 따라서 차례대로 손으로 석탑을 만져
보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느껴지는 석탑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조각된 선 하나하나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정교했으며  또한 석탑에는 이끼가  끼어 있어 그간의 세월을 짐작하게 하였
다. 삼층석탑은 신라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층  기단을 마련하여 3층 탑신을 올렸고, 기단부는 지대석과 중석을 한 돌로 조성하였고, 각
면에서는 탱주와 우주를 모각하였다. 기단부에는 우주사이의  문비 부분에는 조각이 되어있
었으나 조각그림이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부처의 다양한 손짓이 들어간  모양인  것 같았다.
삼층석탑을 보면서 좀 아쉬웠던 점은 탑의  기단부에 유실이 된자리에 탑의 모양을  그대로
살리지 않은 채 그냥 시멘트로 메꿔 놓은 것이었다. 전문가들의 지시에 따라 복원을 했다면
석탑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소중한 문화재가 보존되고 있지 않은 것이 안타까
웠다.
탑의 곳곳을 다 느껴 본 후  우리는 부인사로 향했다. 부인사로 가는  길에 비가 많이와서
비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일정을 조금 변경해 점심을 먼저   먹기로 했다. 순두부전문 식당
에 가서 돌솥밥과 직접 만든 순두부찌게를 먹었다. 팔공산에서  먹은 순두부찌게의 맛은 그
야말로 예전의 촌에서 먹던 구수하고 입에 차악  달라붙는 바로  그 맛이었다. 금강산도 식
후경이라고 맛있는 음식은 기행의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식사를 마친 후 부인사 입구 순환도로   아래쪽 논 가운데 있는 신무동 마애불좌상앞으로
향했다. 마애불좌상은 거대한 화강암 동남측면에 조각되어 있었다. 이것은 고려 전기의 작품
으로 고려 전기 마애불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유형문화재 제 18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황정숙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마애불좌상의 표정, 몸짓,
옷매무새 하나 하나를 더 만져보기 위해 차가운 바위를 더듬었다.  빗물과 이끼가 겹쳐져서
느껴지는 마애불좌상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격을 안겨주었다. 마애불좌상은 좌대를 포함
한 높이가 1m가량 되며, 정삼각형의  모습이 안정감을 주었으며, 수인은  시무외인을  하고
있으며, 그 근엄한 표정에 광배까지 큰 마모없이 잘 살아 있는 선이 특히 아름다웠다.  아직
까진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표정과 모양이 후세에도 잘 전해졌으면  하고 바랬다. 그러
기 위해서는 빨리 논 가운데 있는 마애불좌상의 보전 대책이 세워져야할 것 같다.
  마지막 행선지였던 부인사의 유래는 선덕여왕 11년에 백제의 의자왕에게 공격을 받아  신
라는 40여 개의 성을 점령당하고 요충지였던 대야성(현  합천)마저 함락당하고, 여왕이 팔공
산에 와서 기도를 했는데 이때 도인이  나타나 '이곳에 절을 지어 국난을  물리치고 통일의
대업을 이루도록하여라' 하여 이에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고 한해 뒤에 부인사를 창건하
게 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부인사의 사명의 유래가  세 가지나되는데 동국이상국집과 고려
사절요 등 고려시대의 문헌에는符仁寺로  표기 되어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夫人寺로,
1788년에 편찬한 명부전 이건기(移建紀)에는夫仁寺로 표기되었으며, 선덕여왕 13년에 夫人寺
가 창건되어 대왕의 모후인 마야부인의 명복을 비는 원당이라해서 사찰이름을 夫人寺라  했
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표지판에부인사 명칭이 통일이 되지 않았으나 이제는 夫人寺로 통일
해서 곳곳의 표지판에 夫人寺로표기하고 있었다. 부인사 절 입구의  공터에 자리 잡고 있는
은통당부도는 선임의 호가'은통당'이라고  새겨졌다고 한다. 은통당부도는 전통적인 팔각원
당형의 형식을 하고있었으며, 기단부위에 팔각의 중대석과 상대석, 그 위를 떠 받힌  몸돌과
지붕돌, 마지막으로 상륜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이가  2.9m 에 이르렀다. 전체적인 모양이
나문양들이 수수하고 은근한  정을 풍겼다.  절 입구에 들어서서 돌계단을 올라가면 정면에
서 왼쪽으로 자리한 서삼층석탑 동·서탑의 경우 외견상 2중 기단의 전형적인 신라탑의 형
태를 하고 있으나 아래에 새로운 지대석이 매몰되어 있어 부인사 석탑처럼 3중 기단의 특이
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삼층석탑의 오른쪽에는 석등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지대석과 하대
석이 통돌로 된 특이한 모습일 뿐 아니라 빼어난 솜씨의 조각이남아 있었다. 몸체를 이루는
팔각화사석은 원래의 것이 아니고 떨어진 두 부분을 붙여놓은 것이라 다른  부분과 꼭 들어
맞지는 않았다. 이처럼 석등의 구조에는 팔각모양이 많은 데 이것은 하늘을 표현한  것이고,
둥근 하늘에 가장 가까운 것이 팔각이기 때문에 그 구조가 많다고 했다.
  석등을 본 후에는 삼광루 아래의 계단을 통해서 올라서니  대웅전이 위치하고 있었고, 대
웅전에서 왼쪽으로 가면 명부전 앞의  일명암지석등이라고도 불리는 석등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현재의 부인사에서 동쪽으로 200m 떨어진  이름 없는 절터에서 발견되었다. 고려전
기의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정면에서 보면 화창이 두 개
이나 옆면에서는 하나의 화창만 보여  마치 두 개의 화사석을 합쳐놓은  것 같은 형태였다.
지붕과 간주석은 앞면과 뒷면만이 넓고 모서리와 옆면은 좁은 부등변 팔각기둥이다. 상륜은
부등변 팔각기둥이었다. 일명암지석등 앞의 현음각범종도 만져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부인사가 공사중이고, 거기에 비까지 와서 쌓아놓은 흙들이 흘러내리고 빗물이 많이 고여있
어 현음각의 범종은 멀리서 바라보면서 오늘의 기행을 마쳤다.
  이렇게 내 손으로 체험하는 문화유산을 언제   다시 접해볼 수 있을까? 하는 벅찬감격을
뒤로 하고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번 역사문화기행은 빗물과  함께 더해진 석탑 석등
의 기운이 내 손안에 아직도 느껴지고, 아쉬움보다는 가슴 깊은 곳 따뜻함과 문화유산의 전
율이 내 몸 속에 남아있는 것 같다.


  니콜 키드만 주연의 디 아더즈(The Others)를 보고

          강   구   용(시각장애인)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에서는 매주 금요일 저녁에 나레이터의 화면해설을 곁들인 영화가 상
영되고 있다.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잘  없는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처음 문화원에서 영화를  보면서 시각장애인 옆에서 열
심히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상황을 설명해 주는 나레이터를 보며  시각장애인들
도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나 그 감동을 느끼는 것에서 더 이상 기쁜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
각을 했다.
그러면, 제가 본 영화 중에 한편을 소개 할까합니다. 디 아더스 (the Others)는 2002년 1월
에 개봉한 니콜 키드만 주연의 공포 스릴러물로서 물랭루즈 이후 니콜 키드만의 색다른 모
습을 보여 주는 영화입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톰 크루즈와의  이혼 후 남편의 그늘을 벗
어나 심도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2차 대전이 막 끝난 1945년 영국의 외딴 저택,  전
쟁에서 남편을 잃은 독실한 기독교도인 그레이스(니콜 키드만)와  빛에 노출되면 안되는 병
을 가진 두 아이(오누이)가 살고 있습니다. 그 큰 저택을 덮은 검은 커텐, 어둡고 암울한 분
위기가 숨이 막히게 조용한 그곳에 가정부가  들어오면서 어디선가 또 다른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밤마다 들려오는 소리, 그녀는  큰 열쇠꾸러미를 들고 다니며 모든 문을  닫아
걸었으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아이들 방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소리들 어디선가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로 들어 온 가정부와 그의 식구들은  무언가 아는 듯 한 행동을
합니다. 그레이스는 발작에 가까운 히스테리를 보이고 어두운 저택과 최소한의 빛을 발하고
있는 흔들리는 촛불은 묘한 공포를 줍니다. 어느날 모든 커텐이 다 열리고, 아니 커텐이  사
라져 버리고 빛에 노출되어 아이들은 비명을 지릅니다. 그들  앞에서 가정부는 이상한 말을
합니다. 그레이스와 그의 아이들은 모두 죽은 영혼이며, 그들은 오래 전에 죽었다는  것입니
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그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현실을 인식하는 아이들은 죽은  아버지를
만나고, 딸은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레이스는 다가오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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