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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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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과 함께 누리는 문화  

시각과 문화    제8호(2005년 봄호)

권두언  
청암재단의 장애인 인권유린과 운영비리를  바라보며/장삼식
문화칼럼  
벚꽃 그늘 속으로 그녀의 첼로 소리가 들려올 때/이성호
가슴으로 읽는 시  
마 당/이수화
넓은 창  
시각장애인을 위한 이해 3/이경재
우리문화의  숨결을 찾아서  
구리거울(銅鏡)에 담은 선조들의 마음/황정숙
계간 영화읽기
인간의 왕국에서 새끼를 기르는 이야기 '말아톤'/배종영
클래식 산책  
죠지 윈스턴의 몬타나-A Love Story/곽진숙
Pops English  
Moris Albert의 Feeling/김창연
회원 활동기  
여성시각장애인들과 함께 한 연극 관람/이진숙  
예향 통영을 다녀와서/조남현
성주의 유적을 답사하고/이석규
신비의 왕국 아라가야를 찾아서/김은실
광고  
문화원 소식

                                 계간·시각과문화  
발행·2005년4월1일  발행인·김현준  기획·편집·장삼식   발행처·사단법인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권두언                                                                   2  

청암재단의 장애인 인권유린과 운영비리를 바라보며
        장  삼  식(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기획실장)

최근 우리지역에서  드러난 장애인시설에서의 인권유린과 운영비리문제는 시민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함께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의 현실과  미래를  되돌아보게 하였다.
청암재단은 정신지체   장애인 생활시설인 경산 와촌의 청구재활원을  운영하면서 장애인들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을 제공하고, 재활원 내외부의 장갑공장과 개사육장에서 장애인들에게 일을  시키고도 임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등 갖가지 인권유린을 자행해  왔다.  또한 청암재단은 이사장의 친인척을 직원으로 허위등록하여 막대한 국가 지원금을 횡령하기도 하였다.
청암재단의 장애인에 대한 인권유린과 운영비리가 시민들에게 알려지자 청암재단은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들이 사퇴하고 새로운 인물로 이사진을  구성함으로써 위기를모면하고자 하였고,  관할관청인 동구청은 재단의 비리를 경찰에 고발하였으며, 경찰은 원장을 구속함으로써  사태를 수습하고자 하였다.
한편, 우리복지시민연합, 대구장애인연맹 등 1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와 청암노동조합은 경찰이  보다 철저하게 재단의 비리와 장애인 인권유린에 대하여수사해 줄  것을  촉구하고, 관할관청인 대구시와 동구청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납득할 만한 민주적 인사들로 새롭게 이사진을 구성하여 청암재단의  정상화를 도모하고, 다시는 이러한 비리와 인권유린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감독과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현재 동구청 마당에서 천막농성을 계속 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시와 동구청은 관선이사를 파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미온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시설의 비리와 인권유린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뿌리깊은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청암재단비리와 같은 문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장애인시설을 장애인들의 안락한 생활터전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관할관청의 철저한 관리감독과 함께  시민들이 시설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 대단히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장애인시설이 시민사회와 상호소통할 수 있도록 개방성이 강화되고, 장애인 당사자들의 자발적 의사에 의해 시설입소와 독립생활이 이루어지도록 선택권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오늘날 점증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독립생활에 대한 욕구를 반영하여 개인이나 그룹홈 형태의 독립생활을 통해  장애인이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살아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지원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 스스로의  선택권과 의사결정권에 기초한 독립생활을  통해서 장애인들은 시민사회의 정당한  일원으로서 질높은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문화칼럼                                                                 3  

벚꽃 그늘 속으로 그녀의 첼로 소리가 들려올 때
                    - 오프라 하노이 내한공연
              이  성  호(문화신문 [안] 편집장)

자클린 뒤 프레 이후 클래식계는 로스트로포비치, 다비드 게링가스,  미샤 마이스키, 요요마 등으로 대변되는 남성  첼리스트의 전성시대를  맞게 되었다.  자클린을 대신할만 한 세계적  여류 첼리스트의 부재로 인한 공백은 대중에게 점점 더 첼로는 남자악기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이러한 시기에 등장한 이가 바로 오프라 하노이.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등장은 뛰어난  연주자의 발견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비발디 협주곡집이 나왔을 때, 오프라 하노이의 앨범 자켓  사진은 자주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왼팔로 첼로를  안은 채 비스듬히 누워있는 포즈의 것이었다. 그땐 정작 앨범의 내용물 보다 자켓으로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는데,  그녀의 손이 첼로위에 놓인 모양이 도발적이라느니, 첼로를 양다리 사이에 놓아두고  손으로 애무하고 있다느니  하는 구설수가 오간 것. 여기에  대한 그녀의 항변은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대다수의 남성 연주자들보다 훨씬 더 고된 투쟁을 했어야 했다.
이건 물론 한  10년 전  쯤의 일이고, 그 이후 많은 이들이  첼로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기는 했겠지만, 그 과정에서의 그녀의 고충은 백번 이해하고도 남는 바가  있다.
문필활동을 하며  에세이집을 발표하기도 하고 클래식  연주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섹시함을 강조하는 의상과 헤어스타일로 '연주하는 패션모델'이란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니, 이로 인해 음악성을 의심  받기도 했을 것이다.
사실 첼로라는 악기가 가지는  특수성(다리 사이에 악기를  끼고 연주해야 한다는 점)은오랜 세월동안 여성으로 하여금 첼로와 쉽게 조화하지 못하게 했다. 자클린 뒤 프레(1946~87)라는 천재  첼리스트의 뒤를 이어 오프라 하노이가 그 금기의 벽을 넘어선 것에는 당연하게도 외형적 아름다움보다는 그녀의 음악적  성과가 큰 몫을 했을 테다.
뛰어난 기교와 풍부한 서정성에 더해 그녀의 음악에는 아고긱(agogics 속도법)의 적절한 사용으로 독특한 색채가 감도는데, 이로 인해 그녀는  글렌 굴드  이후 가장 탁월한 캐나다 연주자로 평가 받고 있다.첼로라는 악기가 갖는 중성적, 또는  남성적 특징에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표현력으로 철옹성 같은 금녀의 벽을 허문 연주자 오프라  하노이. 그녀가  10여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독주무대를 갖는다고 한다.
아직도 그 때 한국 관중들의 뜨거운 호응과 사랑을 잊을  수 없다는 그녀.  세월의 흐름과 함께 한층  성숙된 오프라 하노이의 음악과 철학을 기대해 본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영국 왕립음악원의 교수로 재직 중인 피아니스트  마이클 뒤섹이 함께 하는데, 이들의 대구공연은 4월  14일(목) 학생문화센터 대공연장에서  있을 예정이다.

가슴으로 읽는 시                                                        4  

                                    마 당
                             이  수  화(시인)

                   아버지 어머니 일터로 떠나고
                   오빠 동생들 학교로 가고 나면
                         후미진 방에 앉아
                 라디오를 켜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혼자서는 걸어 들어갈 수 없는
                        좁은 창 너머의 세상

                    바람같은 사연들에 울고 웃다
                  구석에 차려진 식은 밥상을 당겨
                  한손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나면
                     아지랑이 그늘에 내려앉은
                      두 눈꺼풀을 밀어올리며
                  아이들의 목소리 골목을 뒹구는데

                     손님들이 찾아온 거실에서
                     소리없이 뒷걸음 칠 때에도
                    식구들이 함께 바다로 떠나고
                      홀로 남겨진 깊은 밤에도
                    솟아나지 않았던 눈물방울이
                        해일처럼 울컥 울컥
                        마른 몸을 적십니다.

                    새들이 날아오르는 하늘에선
                    붉디 붉은 노을이 쓰러지는데
                    굳게 빗장이 드리운 대문 곁
                     진희네 좁은 마당 구석에는
                        강아지 한 마리 그저
                        웅크리고 있습니다.


넓은 창                                                                 5  


               시각장애인을 위한 이해 3
   이  경  재(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이사)

III. 일상생활 및 문화활동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네이버 지식 영역 검색창에서 '시각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입력하게 되면, 약 2,500여 개의  질문항목을 검색할 수 있는데, 시각장애인에 관한 질문중 가장 자주 등장하는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우선 시각장애인의 꿈에 관한 것으로, 꿈에서는 볼 수 있는지? 꿈은 꾸는지? 어떤 꿈을 주로 꾸게 되는지? 색은 어떻게 느끼게 되는 것인지? 등이다.
그 다음으로는 수면, 식사, 스포츠활동,  흡연, 친구하기, 점자,  컴퓨터통신, 색의  구별, 직업, 학교생활, 봉사활동, 장애로 인해받게 되는   혜택, 여가생활등의  일상사에  관한 내용들이다.
시각장애인들의 일상사가 일반인들과 특별히 구별될 수는 없다. 시각장애인들의 일상사도 개인들의 신체조건 및 정신상태, 가정환경, 사회적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시각장애로 인한 특정한 일상사가 있을수는 없다. 시각장애인의  일상사와 문화생활은 도전하려는 욕구에  따라, 직업, 교육 정도, 즐기는 오락, 스포츠 활동,  대인관계등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의 일상 생활 및 문화활동에 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시각장애인에  관한 자료 중 잘못된 내용들이 많이 있음을 밝혀두고 싶다. 특히 점자의 읽기  및 쓰기, 보행, 감각 훈련, 흡연에 관한 내용들이 잘못 설명되어 있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이해를 위해서는 전문 서적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1. 식사: 어떤 시각장애인들은 일반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에는 실수를  두려워하여밥그릇의 왼쪽이나 오른쪽 혹은 앞에  놓여있는 한두 가지의 반찬만을 먹는 경우가 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실명하여 가족들로부터 수저 사용에 대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었거나 기숙사  또는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경우, 단순한 상차림에 익숙해져 여러 가지 반찬이 놓여 있는 밥상에서도 습관적으로 한두 가지 음식만을  먹게 된다. 일부의 시각장애인이 실수를 두려워하여 차려져있는 반찬을 골고루 먹지  않고 가까이 있는 것만을 먹게 되는 것은  특정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 때문에 골고루 먹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우 비장애인들은 차려져있는 음식의 이름을 시각  장애인을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알려 주고, 평소 자주 대할 수 없는 음식이라면 약간의 설명을 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생선이나 한 입에 먹을 수 없는 음식은 먹기 좋도록  자르거나 가시를 발라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경우에도 특정의 음식을 먹을 것인지 아닌지를 시각장애인에게 물어 보고 도와주는것이 필요하다. 또한  국물이 있는  음식은 별도의 그릇에 들어서  먹게 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 도 음식을 먹는 시각장애인의 의향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 음주: 시각장애인 중에는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고 술버릇도  가지각색이다. 비장애인들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다. 함께 술을 마실 때에는 시각장애인이 술을  따르는 때가 있는데, 잔이 넘치는  경우가 있을수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잔을 넘기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술잔 가까이 귀를  대거나 술을 따르면서 잔을 손가락으로 튕겨 소리를 듣거나 혹은  잔의 무게를 재는  등의 특이한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시각장애인에게 술잔을 받을 때에는 잔이 다 찼을 경우 즉시 '그만'이라고 하면  된다. 그리고 비장애인들은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우고 시각장애인의 잔에도 술을 따르는 일을  할 경우가 있는데, 이 때에 자신의  잔에는 충분히 술을  채우지 않고  시각장애인에게만 권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정직하게 주량을 말하고 자신의 잔에는 충분히  술을 채우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술을 마실 때는 누구나 같은 양으로 마시기를 원하는데 상대가 제대로 마시지 않은  것을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주량이나  주종, 장소,  분위기  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의  음주에  관해서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중도실명자 중에는 실명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알콜중독에까지 이른 사람들을 자주  볼수 있다. 그러므로  알콜중독치료는 장애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3. 흡연: 시각장애 때문에 담배의 맛을 덜 느끼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시각장애인들 중 상당 수는 흡연을 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금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흡연자들은 금연에 대한 교육기회가 적고, 금연광고의 시청이 어려우며, 주변사람들의 눈총을 덜 인식하기 때문에  비장애인들에 비하여 금연에 대한 노력에  소극적인 측면이 있다. 담뱃불을 붙이는  데에 다소 어려움이 따를 것 같으나 성냥이나 라이터의 사용에 어려움은 없다. 다만 담뱃재를 잘 못 처리하여  다른 사람의 옷을  상하게 하거나 주의를 지저분하게 하는 경우는  많이 있다. 그리고 가끔 화장실  쓰레기통 등에 불이 나는 사고를 목격한  경험도 있다. 재떨이는 조금 깊은 것이 좋고 물기가 재떨이에 조금이라도 있으면 담뱃불을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을 것 같다. 금연을 위한 투자도 시각장애인들에게까지  미칠 수  있도록 정부 및 관련 단체에서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4. 오락: 시각장애인들은 장기나 바둑, 윷놀이뿐만 아니라 화투나  카드, 경마  등과 같은 도박성 오락에도 관심을 갖고  즐기고 있다. 화투나 윷놀이 등은 여성 시각장애인들도 자주 즐기고 있다. 놀이기구와 방법은 비장애인들이 즐기는 형태와  동일하다. 화투에는 점자를 표시하고 윷은 일반적인  윷과 손에 쥐고 하는 것이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손으로 쥐고 하는 윷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이것은 상대가 뽑은 것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형식이며, 말판은 그리지 않고 머리로만 쓴다. 윷가락은  젓가락 모양으로 만들어져 손으로 잘  부빌 수 있도록  되어 있고, 10개가 한모를 이루고  있다. 윷가락의 끝에는 0~9까지의 숫자를 의미하는 기호가 새겨져 있다. 10개 중 5개를 뽑아서 3개로 짓고 나머지 2개의 수를 더하여 0에서 9까지를 만드는 방식의 놀이이다.  이것으로 아주 긴시간 동안 거액의 도박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장기와 바둑은 알을 구별할 수 있게 홈을  파거나 질감을 달리하고 판은 음각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스타크래프트나 고스톱, 윷놀이와 같은 게임을 즐기는
시각장애인도 있다.
5. 여행:  시각장애인들도 국내외   여행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풍경을 감상하는 경우와 문화재 등을 관람할 경우에는  비장애인들이 느끼는 것보다는 다소 부족한  측면이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름의  방식으로 느낌을 간직하고 표현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여행에 대한 본능은 시각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 동일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여행을 하고 싶어한다. 시각장애인의  여행에는 함께하는 비장애인들의  적극적인 설명이  큰 도움이 된다. 시각장애인들이  여행에서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맛기행, 기관견학, 농사체험, 국토순례, 레프팅  등과 같은 테마여행을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6. 영화감상: 영화나 TV 연속극 등은 시각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같은 수준으로 소화해 낼 수 있다. 시각장애인  중에는 영화감상이나 연속극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대사가 많고 음향효과가 풍부한 영화나 연속극일수록 감상에  도움이 된다. 여행과  마찬가지로 비장애인들과 함께 즐겨야  더 효과적으로 만끽할  수 있다.
영화중에는 시각장애인을  소재로 한  것도많이 있다. 비장애인들은 시각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를 감상한다면  시각장애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대사가 적은영화를 감상할 경우에는 비장애인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자막을 읽거나 화면과 배우들의 동작 등을 해설해 주어야 한다. 시각장애인들이 영화나 연속극 등을 잘 감상하기 위해서는 대본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7. 음악:  시각장애인중에는 대중   가수도 몇 있고, 피아노나 국악 등의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미국에서 기악을 전공한 음악박사도 있다.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피아노나  성악을 전공한  사람도 많이 있지만, 무대 활동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는 것  같다. 연주는 점자 악보를 외워서 연습하고 곡을 반복적으로 들어서 익히는 경우도 많다. 훈련에 의하여 음감이 예민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잘 알려진 곡은  악보 없이도 연주를  하는 사람이 많다. 교회의 성가대나 학교의 합주단 등에서도 악보 없이 지휘자의  지휘만으로 연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점자악보는 다양한 부호들 때문에 제작이  용이하지 않다. 그리고 여러 성부를 동시에  읽을 수 없는 것도 시각장애인들이 음악 학습을  하는데 어려움이 된다.  그러나 연주는  다른 분야에 비하여 시각장애인들에게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전자음악에 관심을 갖는 시각  장애인이 늘어나고 있으며, 우리가 사용하는 가요 반
주기에는 시각장애인들이 제작하여  내장한곡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전자  음악의 연주는 시각 장애인의 직업으로서도 개척 가능한 분야이지만, 장비가격이 노무 비싸고 많은 훈련을 필요로 한다는 점 때문에 극소수만이 진입할 수 있을 것 같다.
8. 스포츠:  시각장애인의 스포츠   활동에 관한 최초의 문헌은  1847년 오스트리아의 클라인(krain)이 쓴 맹인체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에는 1994년  현재 장애인 체육협회에 2815개의 각종 스포츠 클럽이 소속되어 있으며 회원은 총 2245340명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애인체육은 재활체육과 생활체육, 엘리트체육  그리고 학교체육으로 발전하고 있다.  스포츠활동이 시각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운동 감각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생활체육을 통해  사교활동을 강화할 수  있고, 엘리트체육을  통해서 소수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며 프로인으로서 자신을 발전시키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  스포츠가 활성화되고 있는 종목은   축구, 볼링, 탁구, 골볼, 수영, 유도, 배구 등이라 할 수  있는데, 학교나 복지기관  등에서 행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마라톤, 실내조정,  스키 등도 시도되고 있다. 필자가 방문했던 미국의 켄터키 맹학교에는 볼링장,  수영장, 400m트랙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스포츠활동  시설과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스포츠활동이 단순히 여가 활용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재활의 과정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더욱 강조되고 있다. 각  종목들은 시각장애인의 환경에  맞도록 규칙이나  경기운영 방식이 비장애인들의 방식을 변형하여 시행되고 있다. 축구공, 배구공, 탁구공  등에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방울을 넣거나 다른 장치를 부착한다. 야구에서는 타석 뒤에서 신호를 보내어  투수가 위치를 알  수 있게 하고 각 베이스에는 베이스를  안내하는 신호를 하도록 규칙이 정해져  있다.  육상은 트랙에 끈을  매어놓고 그 끈을  잡고 질주하도록 되어 있다.
9. 미술:  프랑스에서는 미술관이   특별한 날을 지정하여 시각장애인들에게 작품을 만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 중에는 조각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조각품을  만져서작품의 묘미를  감상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
중도실명자들은 작품을 더욱 정상적으로 느낄 수 있고, 어릴 때부터  전맹이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주 작품을 접하고  공부한다면 비장애인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감동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떤 시각장애인이 연인이 키스하는 것을 소재로 한 대리석 조각상을 손으로 만져서 감상하고는 "촉감은 차가운데 작품은 뜨겁다"고 감상 소감을 말했다는 소식이 인터넷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필자가 참석했던  미국 시각장애인연합회(NFB) 제 63차 총회에서도 아프리카 맹수들의 박제 전시회가 마련되었었는데 관계자들이 세세하게 중요한 부분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두  곳의 맹인학교에도 다양한 종류의  동물 박제와 조각품들을 전시해 놓고 만질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실명한 사람들에게는 만져서 사물에  대한 이미지를 정확히 가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각장애인   학교에서도 미술사를 비롯하여 조각 등 미술 시간에 할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일반 학교와 같은 시수로 미술 시간이  교육 과정에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에서는 미술에 관한 교과서가 제공되지 않고 있으며 담당 교사에 의하여 미술 시간이 운영되고 있다.
10. 연극: 시각장애인들도  학예회나 종교 행사 등에서 연극  발표회 등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시각장애인이 주축이 된 극단도 창단되어 활동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대본을 외워서 연습하고 특히 음향효과에 관심이 많다. 영화나 스포츠관람에 비하여 연극 관람은 손쉽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시각장애인들이 연극관람에 소홀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연극이 아직 대중화되지 못했고 관람료가 다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연극은  시각장애인이 연기를 하거나 관람을 하는 데에 부담되지 않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11. 낚시와 등산: 부산, 마산,  포항, 강릉 등지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바다 낚시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낚시대의 종류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부산 송도에서는 선장이 노를 저어 주는 무동력선을 이용하여  해변에서 1km쯤 배를 타고 들어가 배에 앉아서 줄낚시를 하는 시각장애인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1회  낚시에  2~3시간  배를빌려 10~20마리 정도를 낚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시각장애인 낚시대회를 1년에 한 두 차례 개최하는데, 약 70명 정도의 시각장애인이 참가한다고 한다.  낚시는 손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하는 것이므로 시각장애인이라고 하여 불리할 게 없는  놀이라 할 수 있다. 등산도 시각장애인들이 즐기고 싶어하는 활동이다.  등산은 독립적으로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혼자서는 산을 오르기가 어렵고 가족이나 자원 봉사자가  동행하여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등산을 잘 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들에  비해 신체적으로 더  건강해야 한다.  같은 높이의 산을 오른다 하더라도 시각장애인들은  지형이나 주위의 환경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훨씬 더 많아진다. 등산시간도   비장애인들에 비하여 훨씬 더 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험한 산을 오를 경우에는 오르는 일보다  내려오는 일이 더 어렵다.


우리문화의 숨결을 찾아서                                                10  

          구리거울(銅鏡)에 담은 선조들의 마음
            황  정  숙(대구대 박물관 학예사)

봄을 시샘하듯 때늦은 눈발이 날리더니 어느새 캠퍼스에 봄기운이  가득하다. 물오른 가지는 탱탱하기 그지없고 한낮 햇살은  어느새 따사롭기까지 하다. 그 햇살을 가르며 캠퍼스를 오고가는 학생들의  걸음걸이에는활기가 넘친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계절!
그래서 더 기분 좋은 3월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월이나  혹은  음력설을 기점으로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송구영신(送舊迎新)의 행사를 마치고 한해의 시작을 맞겠지만, 학교내에 몸담고 있어서인지 늘 한해의 시작은 이렇듯 봄기운과 함께 밀려오는 새학기, 3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하다. 때가 때니 만큼, 도심으로 나가  봐도 여기저기 신입생을 겨냥한  마케팅이 한창인데, 고가의 컴퓨터부터 구두, 가방, 공책,  필기구 등, 게다가  요즘은 고등학생만  되어도 필수품이라는 핸드폰까지, 신입생을 잡기위한 다양한 특별행사가 눈길을 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신입생이라 하면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게다가 사회 초년생까지 그 연령대도 분야도  다양하다보니 이맘때의  시장은 말그대로 '특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러한 보편적 인식을  가지는 '특수'시장 외에도 요즘은 2월이면 발렌타인데이,  3월에는 화이트데이, 4월엔 블랙데이 등등  뭐라 뭐라 이름붙인, 온갖 '특수'시장  조성을 겨냥한 날들이 많아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그때그때마다  오고가는 선물이 또한 갖가지여서 발렌타인데이에는 초콜릿이 특수를 누리고, 화이트데이에는 사탕이, 블랙데이에는  자장면이, 로즈데이에는 장미가, 말그대로 특수 겨냥 제품으로 등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제품 종류마다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준다는 것인데 '진한 초콜릿처럼', '달콤한 사탕처럼' 등등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어찌 어찌 설명이 좋아 제법  그럴싸하기는 하지만, 역시 상술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새학기를 시작해 새공책과 새필기구를 선물 받고 설레는 아이보다 이젠 유행하는  캐릭터나 유명한 메이커의 운동화와 가방이  더 인정받는 시절인거 같다. 그러고 보니 사설이 길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특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데,  어느새 옆길로  빠져 열을 올리고 있는 것 같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박물관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유물의 하나인  구리거울, 동경(銅鏡)이다. 구리거울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유리거울이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 선조들이 용모를 비추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구리거울이 대개 청동녹을 입어 검거나 짙푸른 색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녹슬기 전까지는 반질반질 닦여진 놋그릇처럼 광이 났으며  특히 비춰지는 면에는 아말감처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울 본연의 구실을 할  수 있었다.
다만 더 유용한 유리거울의 등장으로  인해 그자리를 내어 주면서, 점차 생활사의 뒤편으로 밀려나고 잊혀 졌을 뿐이다. 박물관에소장된 유물 중에는 이렇게 생활사의  뒤편으로 밀려나면서 언제부턴가 그 용도나 본연의 의미조차 희미해지고 왜곡되어지는 것이 적지 않다. 더 좋고, 더 편하고, 더 예쁜것에 의해. 말하자면 더 발전적인  다른 것의 대체는 기존의 것을 밀고 들어오게 되어 있고, 따라서 기존의 것은 서서히 기억 뒤편으로 사라져 언제부턴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길면 길수록, 용도나 형태의 변화가 크면 클수록 나중에는 '이것이 무엇에 쓰던 물건인고 ?'라고 고개 지을 정도로 큰 변화를 겪게 되는 물건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구석기시대의 돌도끼, 청동기시대의 반달모양돌칼 등도 너무나 긴  세월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현대에 와서야  그 용도를 역 추적해내는 것과 같다.  바로 출토된 유물을 재해석해 내는 것인데, 이러한 해석의 기준에는 그 유물이 출토된  지역의 자연환경, 생활형태 등 다양한 각도의 접근
법이 요구된다. 하지만,  '상식'이라고 할수 있는 보편성에 의지했을 때, 밥그릇은 오목하고, 창이나 칼 등의 무기는  뾰족한 것이기에 생활기물이라는 것도 그 형태나 색상, 재질 등의 변화, 즉 발전성은  가지되 어느 정도의 기본성을 유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구리거울, 바로 동경은 그러한 보편성에 있어 그 기본성이라는 것을 뛰어넘는 특별한 개념을  유지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평범한 생활용품. 즉 단순한  화장구에 지나지 않지만, 역사를 거슬러 어떤 시점에서는 구리거울은 단순한 생활기물로서가 아닌 또는 어떤  특수한 목적으로 제작되고 또 사용되었던 시기가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구리거울의 사용법을 쉽게 이해하도록 전시해 둔 경우도 많으나 아직까지도 많은 경우 동경을 전시해 둔  것을 보면 얼굴을 비추는 면인 앞면[경면(鏡面)]이 아니라,  통상 그 뒷면[배면(背面)]을 보여주는 곳이 많다.
그럼 굳이 뒷면을 전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이라 할 것  까진 없겠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 그  '뒷면에 숨겨진 수많은 상징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동경 뒷면의 다양한 문양에 그 당시 사람들의 사상과 종교, 사회와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에 문양을 통해 그 시대, 역사를  읽어보라는 의도라 하겠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  동경(동경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지만, 어원(語源)을  살펴보면 중국 고대 갑골문자에 '鏡(거울, 비출  )'은'鑑(거울, 볼, 거울에 비추어 볼 ) · 監(볼,  살필 )'이라는 자로, 이는 사람이 대야에 물을 담아 용모를  비추어보는 모습의  상형자이다. 즉 거울이 없던 시기  선사인들은 그냥 물에 용모를 비추어 보았으나, 다음에는 금속그릇에 믈을 담아  얼굴을 비추어보다가, 차츰 물 없이 금속용기만으로도 얼굴이  비추어짐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것이 구리거울로 발전되었다는 것이다)은 구리로  만들어진 거울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던  것일까? 동경 뒷면에 새겨진 문양은 왜 중요한가? 시간을 거슬러  선사시대의 다뉴경(多
鏡)[꼭지가 두 개 이상 달린 청동기시대의 거울]에서부터 그 의미를 찾아보면 동경은 특수한 목적, 즉 제의적  성격과 연결되어 있었다. 청동기시대, 청동기의 희소성으로 인해 동제 유물이 특수집단의 전유물(專有物)로서 무기나 제의적 용구를  만드는데 사용되었을 때, 동경은 제사장의 특수 용구로서 무사(巫師)의 신기역량(神奇力量)을 표현하는 상징적 물품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삼국, 통일신라 그리고 고려시대로 시대가 흐르며 동경은 화장구로, 생활도구로 정착해 나가는 현상이 나타나지만 여전히 제의적인 상징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즉 죽은 자와 함께 부장됨으로서 죽은 자를 보호하며 더불어 내세의 안식처인 무덤을 밝게 비추는 피사적(避邪的) 역할을 담당했던 무령왕릉 출토 동경이나, 석가탑 출토 동경처럼 탑의 사리구로 봉안됨으로서 동경에 어떤 경외심(畏敬心)이
불교와 습합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 이 외에도 거울을 깨어 반반씩 품음으로서 혼약(婚約)의 징표로 삼았다던가 하는 이야기 등은 동경에 여전히 단순한 생활기물 이상의 의미가 남아있었음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동경의 상징성을 반영하여 동경 뒷면에 베풀어진 문양도 그 시대 사람들의 다양한 염원과 기원이 반영하게 되는데, 쌍룡(雙龍), 쌍어(雙魚), 쌍란서화(雙鸞瑞花), 쌍봉(雙鳳), 서화당초(瑞花唐草) 등 상스러운 동식물이나 길상문을 새김으로서 부귀영화, 다산, 풍요, 자손번영 등의 기복을 담아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흔히 사용되는 '귀감(龜鑑)'이라는 말은 일찍이 [삼국유사(三國遺事)] 손순매아(孫順埋兒)에 '하늘의 뜻을 바로 알고 행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되었으나 요즘은 '본보기', '모범'이라는 말로 통용되고 있고, 또한 이규보(李奎報)는 "경(鏡)이란 얼굴을 비치는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군자(君子)가 이를보고 청정(淸淨)을 취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도 잘 갈고 닦아야 밝게 비취는 구리거울의 성질에서 비롯된 말일 것이나, 동경이 갖고 있었던 특별한 의미 부여의 습관이 함께 작용하진 않았을까 사료된다. 한때, 어느 집에 개업을 한다거나  이사를 갈라치면 거울이나 시계가  단연 1등급 선물 물품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특히 커다란 전
신형 거울에는 '축'  누구누구 하여 붓글씨로 적은 글귀를  상하 어느 쪽에  기록하는 것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요즘도 시계나 거울을 선물하는 곳이 없지 않지만, 예전만 못한 듯하다.  선물로 취급할  만한 더 다양한 물품의 등장이 거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당연한 현상이리라. 하지만, 어떤 땐 그래도 그 깊이깊이 이어졌던 거울이 가진 상징성이 이젠 완전히  사라져버려 그저 단순한 생활물품의 의미밖엔 남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에 미친다. 선사시대의 제의적 의미에서, 고려시대 이후 개인적 기복의 염원을 반영했던 매체로, 때론 매일 용모를 다듬듯  늘몸과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자 했던 선비들의  마음의 창을 대변했던 구리거울, 역사의 뒤편으로 훌쩍 그  의미가 사라져가는 또  하나의 유물은 아닐까 한다.
선물이란 마음이라 했다.  올 봄, 선조들이 거울에 가졌던 의미를 생각하며 몸을  다듬듯 마음을 다듬고자  했던 그 의미를  전하며,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작은 손거울하나쯤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계간 영화읽기                                                            13  

     인간의 왕국에서 새끼를 기르는 이야기 '말아톤'
                           배  종  영

'도저히 흥행이 될 것  같지 않았던 이야기'인 영화 '말아톤'이 한달만에 400만  관객을 훌쩍  넘어 500만을  바라보고 있다한다. 대박이다. 천만  관객으로 한국영화의 새지평을 열었다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공식 제작비가 148억이라는데 (대한민국의 시골할머니 할아버지까지도   다 보셨다는 이 영화를 본인은  불온하게도 아직  보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말아톤'은 순제작비 28억으로 500만을 넘본다니  계산기를 두들겨 보자면 '말아톤' 제작사 쪽이 훨씬 수지맞는 장사를 한 셈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흥행사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2>,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낳았던 <그때 그 사람들>,아카데미 화제작 <에비에이터> 등 막강한 적수들이 버티고 서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도대체 제목조차 어눌한, 마라톤이 아니라 '말아톤'인 이 영화에 어떤 미덕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였을까?  출연배우의 면면을 보자면  초원 역의  조승우는 나름대로의 인지도야 있다지만 워낙이 TV 드라마나 CF를 통해 아침저녁으로 잠재적인 관객들과 얼굴을  맞대는 또래의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어쩌다 마주친  그대'이고, 어머니 역의 김미숙은  22년만의 영화 나들이라니 더 말할 것도  없겠다. 감독조차 이름도 낯선 신인(정윤철)인데, 잘 나가는 트랜드 영화도 아니고 관객의  눈과 귀를 자극할만한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 '전체관람가'의 이 유순한  영화가 어떻게 이런 수직상승을 하게 된  것일까?
그 속내가 내내 궁금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고의 청탁을  '말아톤'이라는 영화로 못박아 받기  전에는 왠지  발길이 쉽게 영화관으로 향해지지가 않았다. 스스로 그 심사를 들여다보니 다소 복잡다난해서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가  않다. 우선은 마라톤이라니. 학교 다닐 때부터 달리기는 젬병이라 100M  뛰기조차 공포였던  내게 42.195KM라는 마라톤 거리는 공포 그  자체이다.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나  먼 거리를 그것도 한숨에 뛴단 말인가. 게다가 다섯 살배기의 지능을 가진 자폐아, 아니 자폐 청년의 완주기라니  이건 인간  승리를 가장한 인간 고문 영화는 아닐까  하는 다소 말이 안 되는 거부감. 게다가 엄마하고 아들의 얘기라니 너무 전형적인 수법이다.
장애를 이겨낸 모자의 눈물겨운 감동실화.어찌 보면 너무 뻔한 소재가 아닌가. '실화'와 '장애'라는 소재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좋지만 소재주의에 기댄  영화치고 영화로서는 별 볼 일 없는 경우가 흔치 않던가.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런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눈물과 반성을 자아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도 제발 이렇게 착하게 강하게 살아라'하는 훈계를  은연중에  주기 때문에 별로 착하지도 강하지도 못한 자신이 뭔가 많이 잘못하고 있다는 부담감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류의 감동실
화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장애인에 관한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기보다는 '누구나 노력하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식의 신화를 조장함으로써 오히려 본질을  흐리지는 않나 하는 걱정까지  덤으로 하면서,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한 편견만  키워 가고 있었다. 결국은 원고를 쓰기 위하여 극장문을 들어서기는 하였지만 혼자서는 겁이 나서(?)  오랜만에  효도한다는 핑계로 기어이 집에 계시는 어머니를 불러내서 함께 보게 되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주인공 '초원'의  어린 시절이다. 자장면과  초코파이는 좋아하지만 밥 먹기는  싫어하는 초원이.  남들 잘 먹는 한 끼 밥 먹기도  초원이와 엄마,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에게는 전쟁이다. 말을 할 줄 알면서도 입을 닫고  사는 초원이에게 엄마는 함께  비를 맞아가며  말하기를 가르친다. 등산을 힘들어하는 초원이를 엄마는 초코파이를  미끼(?)로  산 정상까지 이끈다.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정상에서 엄마는 '시원하지"를 연발하지만 초원이의 심정은 알 길이 없다. 아직까지 초원이를 이끄는  것은 초코파이이다.   초원이가 좋아하는 또 하나는  '얼룩말'이다.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는 얼룩말이 나오는 '동물의 왕국'을 초원이는  질리지도 않고 되풀이해서 보며  대사까지 외운다.   집중력과 인내심이 부족한 초원이에게 인내심을 길러주기 위해, 그리고 '뭔가 좋아하는 것 하나쯤 갖게 해 주려고' 엄마는 초원이가 좋아하는 얼룩말처럼   '달리기'를 시작한다.
매일매일 훈련일지를 쓸 정도의 엄마의 노력에 힘입어 초원이는 10KM 단축  마라톤대회에서 3위로 입상을 하게 되고 이에 자신감을 얻은 어머니는 써브 쓰리(아마추어 마라토너가 3시간 안에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에 도전할 결심을 하게  된다. 마침 초원이의 학교에 전직 유명 마라토너가 음주운전으로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오게 되고 엄마는 그에게 코치가 되어줄 것을 애원하다시피 해서  떠맡긴다. 시간만 때우고 연습은 딴전인 코치와의 만남은  초원이에게 엄마의 세계와는 또 다른  경험이다. 코치는 초원이와 술도 같이 먹고 노래방, 찜질방도 가고, 심지어 초원이는  코치가 하는 욕도 같이 따라 한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초원을 성가시게만 생각했던 코치는 초원과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그는 아이같이 순수하고 솔직한 초원에게 조금씩 끌리게 되고, 초원도 코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코치는  매번 속도조절에 실패해 지쳐 쓰러지기는 하지만 지구력이  남다른 초원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간다. 한편 불성실하게만 보이는 코치가 도통 미덥지 않은  엄마는 어느날 코치와 말다툼을 벌이게된다 "자식 사랑과 집착을 혼동하지 말라"는  코치의 말에 엄마는 아연하다. 코치의  말대로 이제껏 '좋다', '싫다'는 의사 표현도 할  줄 모르는 아이를 자신의 욕심 때문에 혹사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초원이가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믿는 것은 혹시 나만의  착각은 아닐까.
수영장에서 엄마가 물에 빠졌는데도  그저 우두커니 보고만 있었던 초원이에게 엄마는 처음으로 '멍청이'라고 한다. 그  날 초원이의 그림일기장엔 '수영장엘 갔다, 엄마도 수영을 했다'라고  적혀 있다. 어느  날 엄마가 잠시 약국에  다녀온 사이 초원은 얼룩말무늬 스커트를 입은 여자를 좇아 지하철까지 갔다가 치한으로 오해받고  맞게 된다.
"우리 아이는 장애가 있어요." 무수히 들어본 엄마의 말을  사람들 앞에서  반복하는 초원이를 보며 엄마의 마음은 무너진다. " 그 때 엄마가 동물원에서 내  손을 놓았잖아." 어린 시절 동물원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는 초원이 앞에서 엄마는 할 말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그녀 자신도 그동안 무리를 했던 탓인지 건강을 잃고  쓰러져 입원하게  된다.
엄마는 마라톤도, 써브 쓰리도  모두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는데...남이 보기에는 무한한 모성애,  자신과 다른 가족들의 생활을 뒤로하면서까지 초원이에게 쏟아 부었던 노력이 실은 자신에게로 향한 어긋난 집착은 아니었는지 갈등하
는 엄마의 모습은 이 영화가  자칫하면 빠지기 쉬운 '인간승리'의 신화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가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영화는 '어미와 새끼간의 그 모진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되묻는다.  나만은 아들을 알고 있다는 엄마의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너무 힘들어서 어느 순간엔 초원이를 버리고 싶기까지 했던  엄마는 어미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과 의지로 십수년  동안 아들을 이끌어왔지만 이제  와서 정작  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니  원하는 것이 있기나 한지조차  헛갈린다.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남들이 말하듯이 '그런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것, 울타리 안에 얌전히  보호하는 일밖에  없는 듯하다. 그런데 덩치만 컸지  어미 눈에는 늘 약해만 보였던 이 새끼가  어미도 모르게 자라 있었나 보다. 엄마 대신 가스불도 잠그고 쓰레기도 잘 갖다 버리던 초원이는 춘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혼자서 전에 함께 연습하던 마라톤 동호회를 찾아가 참가단 버스를 탄다. 코치가  사 준 운동화도 함께 들고 나간 초원이의 그림일기 '내일 할 일'에는 '말아톤'이라고  또박또박 적혀있다. 놀란 엄마는 초원이  동생과 코치까지 데리고 춘천으로 달려가  초원이를 말리지만 이제 정말로 달리기가 좋은 초원이는 마라톤을 끝내야 집에 가겠다 한다.
차마 놓지 못했던 손을 놓으며  엄마는 초원이를 보낸다. 중간 중간에 주저앉을만한 고비는 있었지만 이제 초원이는 엄마가 원해서가 아니고, 좋아하는 초코파이나 자장면을 얻어먹기 위해서도 아니고 제가 좋아서 뛴다. 사바나 풀줄기를  줄무늬로 새긴 얼룩말과 나란히 달리는 초원.  42.195KM의 긴 달리기에서 초원이의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 주는 것은 바람이고  강물이고 갈대숲이고 벌떡벌떡 뛰는 자신의  심장소리이고 엄마와의 지난 삶이고 코치와의 우정이다. 마침내 어렵게 완주를  끝낸 초원이 얼굴에 떠  오른  미소는 어머니가   '스마일~'하면서 연습 시켰던 효과보다 더 뛰어난 미소다. 절대로 울지 말아야지 했던 다짐 탓인지 용케도 눈물을 감춘  나와는 달리 함께 보신 엄마는 그게 아니셨나 보다. 감정이입도 초원의 엄마  쪽에 훨씬  많이  되셨나 보다. '저 새끼를 저만큼  키우려면 에미가 얼마나 모진  맘고생을 했을꼬."를 연발하시며 눈물을 훔치신다.
정윤철 감독은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인간의 왕국에서 새끼를 기르는어미의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우연히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을 찍은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두살 먹은 새끼를  두고 떠나는 어미 치타를 보면서 울었다고 한다."내가 왜 울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치타는 두 살만 돼도 어미처럼  덩치가 크지만 사냥할 줄은 모른다. 어느날  새끼가 처음으로 영양을 사냥해서 고기를 뜯고 있으니까 멀찌감치 있던  어미가 돌아서서  떠났다. 얼마나 쿨한 애정인가. 사람은 자식에게 많은걸 요구하고, 자식도  부모에게 기대려고 한다. 이러면서 우리는  자연과 멀어지는구나 싶었다."
인간의 왕국에서 새끼를 키우는  대부분의 어머니들처럼 우리 모녀의 관계도  그다지 쿨한 것만은 아니었다. 세상이  정한 룰에 조응하지 못하고 불화하는 딸자식  때문에 무던히도 속을 끓이셨던 엄마가 그나마 이만큼 '소통'하게 된 것은 엄마가 많은 부분을 포기하셨기 때문이란 걸 나는 안다. 초원의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아니 훨씬 더많은 부분을 포기했을 것이다. "소원이 뭡니까"라는 기자의 말에  "초원이보다 하루늦게 죽는거요"라고  대답했던 엄마가   늘 붙잡고 있던 초원이의 손을 놓아주는 순간은 초원이의 진정한 마음이 스스로의 힘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요, 엄마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가진  미덕은 남다른  자신만의 확신으로 일관하는 이들이 얽히고 설킨 타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떻게  호흡하며 보다 나은 관계로 발전하는지를  잔잔하면서도 밀도있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소재는 실화지만 의지의 승리나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성공했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엄마와 아들, 가족과 가족, 그리고 소통의 방식이 서로 다른 모든 등장인물들이 오해와 편견을 걷고 어떻게 진심어린 소통으로 나아가는가를 영화는 보여준다. 작심하고 어거지로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자폐증은 장애이기 때문에 초원이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고 해서 장애가 완치되는 것도  아니고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지의 승리'가  아니라  초원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의 행복감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든 그렇지 않던 다 같은  것이다. 이 영화의 유일한 환타지 장면이라 할  레이스 후반부의 초원이가 얼룩말과 함께 뛰는  장면, 지하철 역사와 수퍼마켓을 통과하는 장면은 달릴 때 초원이가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평생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 보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다 가는  사람들이 허다한 걸  생각하면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한 '소년'의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왜 하필 마라톤일까?' 생각했다. 물론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인 배형진군이 달리기를 좋아했기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마라톤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고싶은 바의 핵심이란 생각이 든다. 흔히들 마라톤을  '자신만의  고독한 경주'라고 하지만 어쩌다 TV에서  마라톤경기 중계를 보면 한꺼번에 수천,  수만명이 함께 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이는 있지만 마라톤은 체조나 장대높이뛰기처럼 혼자 하는 경주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주면서 기나긴 거리를 뛰어야 하는 것이 마라톤이다. 혼자서 42.195KM를 뛰어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삶이란 어쩌면 마라톤 경주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고독한  경주여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주어야만 계속 달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선생과 학생, 장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서로의 페이스 메이커이다. 함께 호흡을 고르고 보폭을 맞추어야만 서로  끝까지 뛸 수 있다. 선두에 선 주자들도 무시로 뒤를 돌아보면서 뛰는 것이 마라톤이다. 일등을 못 하던  꼴찌를 하던 심지어  완주를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 줄 수 있다는 일은 즐겁다. 마라톤은 결코 고독한 경기가 아니다.
끝으로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인  배형진군은 2001년 춘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57분을 기록, 기적과 같은 써브 쓰리를  달성해 낸 데 이어, 이듬해 8월에는 수영, 사이클, 마라톤 합계 226.195km라는, 선수들조차  완주하기 힘든 철인 3종 경기에서 15시간 완주를 이룩해냈다 한다. 마라톤 써브 쓰리와 철인 3종을 해 낸 이후에도 형진군의 자폐상태는 기대만큼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형진군이 스스로  좋아하는 달리기를 하며 자신의 존재감과 기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배형진군은 현재 경기도의 한 악기 부품 조립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언제든  42.195km를 완주하기 위해, 하루에 줄넘기 3,000개씩을 반복연습하고 있다고 한다.

클래식 산책                                                              18  

             죠지 윈스턴의 몬타나-A Love Story
                        곽  진  숙(주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심지어 곤충들도 모두 음악을 좋아한다. 비닐하우스에서 기르는 채소나  식물도 음악을 들려주면 꽃이 더 아름답게 피고 과일도 더 많이 열린다고 한다. 아침 일을 끝내고 커피를 마시며  듣는 음악도,  연주회장에서 듣는 곡들도,  일요일 예배당의  성가대가 부르는 찬양의 노래도  우리의 깊숙한 영혼을 흔들어 변화시킨다. 음악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음악은 항상  풍요롭고 힘있게, 혹은 다정하게 우리들에게 햇살을 쏟아준다. 그 소리들의  변화가 녹색은 더욱  더 녹색으로, 친구는 더  다정하게, 아이들은 더 명랑하게 만들어 준다. 놀랍고  비밀스러운 이 음표의 선율에 항상 감사한다.
죠지 윈스턴의 가장 최근에 발표된 앨범 몬타나-A Love Story를  감상했다. 1999년에 발표된 plains도 몬타나의 자연을 아름답게 표현했었는데, 이 앨범속의 몇  몇 곡들은 너무나 좋은 것이었다. 흔희들  죠지 윈스턴의  곡들을  뉴에이지 음악이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뉴에이지 음악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인간에게  건강함을 주고  행복함을 주는 음악뿐만 아니라  어둡고 우울한 느낌의 단조곡들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다양한  시도들은 생명의 예술로서 풍부한 아름다움과  진한 감동을 준다. 이러한  음악들이 영원한  클래식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여러 음악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고 그런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야 새롭고도 자유로운 표현이 이루어질 것이며, 음악의 가능성이 한층 넓어질  것이다.  죠지 윈스턴의 음악과 같은 뉴에이지를 음악의 가능성에  대한 확장으로 이해하고 더 풍요롭고 흥미있게 누릴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예술 개념의 강요된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방식의  새로운 시도들은 음악을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할 것이다.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는  것이지만 개인의 선택에 따른 다양한  미적 경험은 즐겁고도 자연스러운 것이며, 대단히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죠지 윈스턴은 1949년 몬타나주에서  태어났으며, 몬타나,  미시시피, 플로리다등지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만의 색채로 솔로  피아노 곡들을 작곡하고 편곡했는데,  그의 음악은  현대의 클래식 소품처럼 느껴지고 있다.
'몬타나-A Love Story'는  피아노 터치에 있어 깔끔하고 차분하며, 상쾌하고 투명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이번 앨범의  두번째곡인 'Billy In The Low  Land'를 듣고 있으면 조지 거쉰의 'Clap Your Hands(손뼉을 치세요)'가   연상된다. 세  번째 곡인 'Valse Frontenac'는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거닐고 있을때처럼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며 더없이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한다.

봄눈을 녹이는 따스한  햇살처럼 죠지 윈
스턴의 음악  속에서  펼쳐지는 몬타나의
아름다운 시골 대초원과  퀴백의 전통 가
락들은 한없는 평안함을 준다.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기뻐하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며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오만한 사람을 돌아보게 하며
증오에 찬사람을 달래려 할 때
음악보다 효과적인 것이  과연 어디 있을까
(마틴 루터의 <음악에 대한 찬사>)

다섯 번째 곡인 'Montana Glide'는 무척이나 낭만적이다.  고향 몬타나의  정감이 음악에  가득  서려  있다.  여덟번째  곡 'Joy, Hope and Peace'는 조지 윈스턴의 앨범 중에서   가장 널리  사랑을 받았던 <December>의 'Thanks giving'의 정서가 첼로의 선율처럼 차분한 저음으로 다가온다.
죠지 윈스턴의 이번 앨범은 자연의 속삭임을 관조하는 더욱  성숙된 느낌의 곡들로 채워져 있다. 바흐의 음악을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죠지 윈스턴의 몬타나를 들으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음악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함께 들으면서 서로의  가슴을  나누고 조화로운 삶을 위하여, 행복한 삶을 위하여 그저 그렇게 다가가는 것이다.

음악을 들을 때는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
상처 받는 일도 없고 적도 없다
그 때 우리는 시간을 뛰어 넘고
먼 과거와 현재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헨리 데이비드의 소로)


Pops English                                                             20  

                     Moris Albert의 Feeling
          김  창  연(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운영위원)

Feelings, nothing more than feelings
Trying to forget my
feelings of love

Teardrops, rolling down on my face
Trying to forget my
feelings of love

* Feelings, for all my life I'll feel it
I wish I've never met you girl
You'll never come again

** Feelings, wo wo wo feelings
wo wo wo feelings again my arms

Feelings, feelings like I've never lost you
And feelings like I'll never have you
again my heart

Feelings, feelings like I've never lost you
And feelings like I'll never have you
again my life

사랑의 감정, 그것은 단지 사랑의 감정일 뿐.
나의 사랑을 잊으려해도 자꾸만 흐르는 눈물
사랑의 감정 잊으려해도  그 감정을 어쩔수
없네.
돌아올 수 없는 그대. 내 차라리  당신을 만
나지 않았더라면
사랑의 감정 오! 사랑의 감정
돌아와 줘요, 당신을 잃어버렸다고 느낄 수
없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기도 하네.
오! 사랑의 감정

** Morris Albert
1951년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에서  태어
난 모리스 앨버트는 다섯 살이 되면서 어머
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I
Wish You Love'란 곡을  귀로만 듣고 훌륭
하게 연주할 만큼 음악적 자질이  뛰어났다.
1969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콜롬비아 대학에
서 공부하다가 70년대 초반에  다시 고향으
로 돌아와서 취입한  몇개의 싱글이 성공을
거두었다. 그  중의 대표곡이  'Feeling'인데
1975년 영어로  출반되어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곡으로
현재까지도 많은  가수들에  의해 번안되어
불리워지고 있다.

** 영어유머
A candidate for governor in a southern
state of the United States was asked
what he planned to do it elected.
"That's not   worrying me  at  all,"  he
replied.
"What I am concerned about is  what I
will do if I'm not elected."

미국 남부지방에서 주지사로  출마한 사람
을 보고 당선되면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묻
자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내 걱정은 당선하지  못했을
경우 어떻게 할건가 하는 점입니다"라고  그
후보는 대답했다.

*   candidate : 후보
*   be concerned about : ~을 걱정하다


회원활동기                                                               21

          여성시각장애인들과 함께 한 연극 관람
            이  진  숙(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간사)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고  자꾸만 창밖을 내다보게 되는걸 보니  이제 서서히 봄이 오나 봅니다. 작년 가을에 시각장애인문화원에 첫발을 들여놓았는데  벌써 많은 시간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빠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오후입니다.
지난 3월 17일에는  「여성시각장애인과 함께 하는 문화나들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첫 번째 나들이로 연극을 관람하게  되었는데 평소 자주 접하지 못했던  연극을 본다는 설레임 때문인지 도우미들보다  먼저  많은 여성 시각장애인분들이 문화원으로 오셨습니다. 처음 뵙는 얼굴도 많았지만, 차 한잔씩 마시며 회원들이 서로서로  인사를 하고 안부도 묻는 등으로 공연 보기 전까지 많은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는 사이  공연의 시간이  다가와  시각장애인 한명과 도우미를 일대일로 동행하게 하여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아담한 소극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어서어서 연극이 시작되기만을 부푼  가슴으로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진행 감독이 나와서 안내 멘트를 하고 설명이 끝난 후 본격적인 연극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날 공연은 극단 마카의 [해가지면 달이뜨고]라는 연극으로 가슴속에 한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인물들이 한집에 모여  살아가면서 서로의 상처를 감싸주고 보듬어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족간의 사랑과  이웃간의  정을 느끼게 해주는 연극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극중  인물인  성준이와 만칠이가 흥겨운 사건을 계기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에서 우리  회원님들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고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공연을 다 관람한 후에  재미있었다고 제 손을  잡아주시며 흐뭇하게 웃으시던 모습에 저도  많이 뿌듯함을 느꼈던 저녁이었습니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회원분들이 공연 중간중간에 핸드폰을 사용하시는 모습과 질서를 지키지  않으셨던 모습 그리고 도우미들이 너무  크게 설명을 해주어서 주위의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주는 모습 등입니다.  하지만 한차례  두차례씩 문화공연을 접하게 될수록  공연 질서 에티켓도 한걸음씩 발전되리라 생각합니다.
언제라도 열려있는 문화원으로 찾아오셔서 여름이면 시원한 음료수 한잔,  겨울에는 따뜻한 차  한잔을 하며  문화에 대한 욕구를 마음껏 이야기하고 가슴속에 담아갈 수 있는 여유롭고 알찬 장소로 문화원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공연을 많이 준비하여 문화원의 취지에 맞는  문화를 누릴수 있는 회원님들이 많아지기를 바래봅니다.


                          예향 통영을 다녀와서
               조  남  현(대구점자도서관 간사)

삶의 자리를 잠시 비워두고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특별히 한해의 끝자락에 떠나는 여행은  더욱 의미가 깊다.  처음 역사문화  기행지가  통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충무시와  통영군이 합쳐진 도시,  충무김밥, 한려수도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통영으로 가는 동안 통영에는 작곡가  윤이상, [토지]의 저자 박경리, 청마 유치환 등의 많은 예술인들이 태어난 곳이어서  통영을 '예향'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었다. 그저 경관이 수려한 항구도시려니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려던  생각이 '예향'에 대한 기대로 바뀌게 되었다. 통영에 도착하여 처음 방문한 곳은 <청마 유치환 기념관>이었다. 청마기념관은 그 이름에 비해서는 너무 초라한 곳이었다. 기념관은 작은 공간에 청마선생이 남긴 시집들과 설명이  담긴 몇 개의 판넬들  뿐, 역사 속에  살고 있는 청마선생을 만나러 먼 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기념관 해설사의 진지한 설명 덕분에  역사속의 청마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청마선생은 지금의 통영 중앙우체국에 매일  찾아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통영에서는 중앙우체국을 '청마우체국'으로 이름을  바꾸려고  하는데, 일부의 사람들이 청마선생이 친일성이 있었다며 반대한다고 한다. 해설사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청마선생의  친일성 논란의  부당성을 말해 주었다. 조금은 무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기념관을 나섰다. 점심은 통영의 대표음식인 충무김밥으로 먹었다.  본고장에서 먹게 되니 무척 새로웠다. 오후  시간에는 통영의 이곳 저곳을  다니며 [토지]의박경리, 작곡가 윤이상 등의 예술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예향 통영'을 돌아보았다.  통영의 수려한 경관, 금빛 찬란한 바다, 활기차고 평화로운 항구 모습, 시원한 풍광  저절로 예술가들이 많이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예술가들이 통영에서 태어났지만 통영에 살지 못하고 심지어  죽어서도 묻힐 수 없었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통영이  '예향'으로 불리워도 되는가 싶었다. [토지]의 박경리 선생은 통영을 떠나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원주에서  살고 있으며, 작곡가 윤이상선생은 타국에 묻혀 돌아오지 못했다. 청마 유치환선생은 다시 잠들어 있던 역사에서 억지로 불려 나와 친일논란에 휩싸여 편히 통영에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예향'이  이래도되나 싶었다. 그래도 통영의 어디에 가더라도 예술인의 도시임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남망산 조각공원에 올라서도 온통  주변이 예술가들의 숨결이 서려 있음이 느껴졌다.윤이상 국제음악제가 열리는  회관, 청마선생의 시비,  조각가들의  조각품들. 통영에 더많은 예술인들이  태어나 세상을  밝히도록,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돌아와 편히쉴 수 있는 진정한 예향이 되기를 바란다.


                         성주의 유적을 답사하고
   이  석  규(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교육국장, 시각장애인)

  오늘 답사한 곳은 경상 북도 성주에 있는 회연 서원, 세종대왕 왕자  태실, 선석사, 한개 마을이었다. 버스로 1시간  30분 가량 달려 회연  서원에 도착하니 성주군의 문화유산 해설사  홍연옥 여사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는데, 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다소 난처해하는 듯했다.
회연 서원은 성리학자인 한강(寒江)  정구(鄭逑) 선생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회연 초당'을 그의 제자들이 서원으로 개축한 것으로, 숙종 때 사액을 받기까지 했으나 흥선 대원군 집정시에 폐원되었다가 1984 년 이  곳 유지들이 복원했다고  한다. 한강 선생의 인격과 학문,  사당에 배향된 인물들과 그들의 사적, 생도들의  휴식처였던 견도루(見道樓) 등 서원의  부속 건물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잠시 견도루에 올라  조선시대  서원의 생도가 된 기분에 젖어 보기도 했다. 다음으로 한강 선생의  신도비(神道碑)도 살펴보았다.
비석의 표면과 이면  및 우측면에는 빈틈없이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나 한 자도 읽어 보지는 못했다. 비문의 제명(題名)이라 도 읽어 볼까  해서 딸아이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러 보았으나  어디서 놀고 있는지 대답이 없다.  내가 비록 심학규  같은 모범적인 아버지는  못되지만 나름대로는 정성을 들여  길렀으므로  약간의 효심은 기대했었는데, 이러한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으려는가! 심청은 그 나이에 소녀  가장으로서 아버지의 생계까지 책임지고 있지 않았던가. 생모 정씨의 남편 섬기는  정성이 곽씨 부인의  심 봉사  섬기는 정성의 1,0000분의 일이라도 되었다면 그 언행을 보고 배운바 있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으리라 싶었다. 편액 하나, 비문  한 자 해독하지 못한 채 허기를 면키 위하여 식당으로 향했다. 머리의 허기는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만  배의  허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해져 당장  오후의 답사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는가.
점심을 마친 후 가장  와 보고 싶었던 태봉으로 향했다. 이 곳에는 세종 대왕의 왕자태실 18기와 단종의 태실이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이 곳 서진산을 태봉으로 선정한 것은 이 산이 여자가 누워 있는 형국이고,  태실이 있는 이  곳은 여체의 복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하니 우리 조상들의 자연  친화 사상의 극치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태실의  크기, 재료, 부장품, 금표 구역 등이  신분에 따라 엄격히 규정되어  있었다고  하니 조선은 군주 전제 국가가  아니라 법치 국가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태실에 사용된 석재(石材)는 여기서  나는 것을 쓰지 않고  멀리서 채취하여 다듬어서 운반해 왔다고 한다. 안태사(安胎使)에는  영의정이  임명되었고,  안태  행열은 5000 명이나  되어 참으로  장관이었다고 한다. 여느 유적의 석물과 마찬가지로  이 태봉의 석물도 생남에 영검(靈驗)이  있다는 속설 때문에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아내와 함께 오지 못한 것이 적이 아쉬웠다. 해설사는 세조 태실 앞의 송덕비에 기록되어 있는, 예조판서 홍윤성이 지은  송덕문(頌德文)을 실록에서 복사해다가 유창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낭독해  주었는데, 마치 북조선 중앙  방송국의 여자 아나운서가 김일성 수령의  찬사를 낭독하는 것과 흡사하여 평양  방송국에서 초빙 교섭이 없었느냐고  물었더니, 많이  보챘지만 문화 유산 해설을 천직이라고 생각한다며 단호히 거절했노라고 했다. 설명을 다  들은 우리는 철책으로 두른 경내를 함께 세 바퀴를 돌며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세종 대왕 같은 호학 군주가 영원한 왕조도 없고 자기 계획을 완전히 달성한 재왕도 없음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자식들의 출생 흔적까지 영원히 보존하려고 이렇게까지 애를 썼을까? 불심이 깊어 내불당까지 두었던  그가 범소유상개시허망(凡所有相皆匙虛妄)을 깨닫지 못해서 일부토(一 土)도 되지 못하고 사라질 것에 이렇게까지 집착했을까?
겨울이면 동사자가 속출했을 것이고 춘궁기나 한발이 심할  때는 초근목피로 겨우 연명하는 백성이 부지기수였을 텐데 자식이 태어날 때마다 위민 군주, 애민 군주라고 칭송받는 그가  무엇 때문에 자녀들의 태반을 안치하는 데  그렇게 많은 인원과 재물을 투입했을까? 아내는  극심한 산고로 명재경각(命在頃刻)인데, 아니면, 천신만고 끝에 겨우해산한  아내가 먹을 것이 없어서 기진맥진해 있는  것을 보고 괴로워하면서도 형벌이  두려워  억지로 나온 안태 군사는 없었을까? 이런 유치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갈길이 급하니 빨리 내려가자고 재촉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태봉의 수호사찰인 선석사로 들어갔다. 의상 대사가 걸립했다는 이 절 마당에는 '선석(禪石)'이 1m 가량  지표면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전체를  파 보면   선승(禪僧)과 닮았을지 모르겠지만 돌에  '선'자를 붙인 것이 얼른 납득이 되지 않았다.  대웅전에 들어갔다가 발이 너무  시려서 오래 서있지 못하고 금방  나와 버렸다. 미리  알고 양말을 여러 켤레  덧신고 온  것도 아닐 텐데 일행 중 몇  사람은 내가 나온 후에도 한참 동안 열심히 설명을 들으며 유물을 살펴보고 있었다. 절에 개소리가  나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생각되어 물어 볼까말까 망설이다가 끝내 그 까닭을 물어 보지 못하고 절을  나와서 마지막 답사지인 한개 마을로 향했다.
한개 마을은 순 우리말로 된 동명(洞名)이어서 정겹게 느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포리(大浦里)'라는 한자  동명이 없었다면 의미와 일치하는  한글 표기도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 같았다. 마을 이름에서 짐작했듯이 일제  때까지만  해도 여기에는 큰 내가 흐르고  있었다고 하니 창상지변(滄桑之變)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아마도 '한개'에 어울리는  마을의 전경(全景)을 기억하고 있는 이는  극소수의 고로(古老)들 뿐이리라. 이 마을에는  '한주 종택', '교리댁', '북비고택', '월곡댁' 등 대가들의 고가가  즐비하여 보통의 시골 마을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었다.  해설사는 한 집 한  집 돌면서 현지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각 집안의 영화와 인심까지 아주 세세하고도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집집마다 무시무시한  도사견들이 우리를 맞이하였는데, 이유인즉 마을에  젊은이는 없고 노인들만 있어서  넓은 집을 제대로 살필 수가  없기  때문에 도난방지용으로 개를 기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수많은  하인들, 음식  장만하는 아낙네들, 길흉사 참석자들, 시인묵객의 소리가 뒤섞여 연중  조용할 날이 없었을 저택들에 케르베로스를 연상케 하는 이국의 맹견들이   모골(毛骨)이 송연( 然)한 포효(咆哮)로 나그네를 위협하다니!
젊은이들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모두 향리를 버리고 도회로, 도회로 나가고  남은 이는 오로지 여년이  길지 않은 무기력한 노옹들만 인기척도 내지  않고 집을 지키고 있다니! 날이 저물면 얼마나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울까.
보아야 할 것도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한이 없었지만 겨울의 짧은 해가 이를 허락지 않았다.  회자정리(會者定離)를 절감(切感)하면서도 거자필반(去者必返)을   확신하며 여사는  가정으로, 우리는  대구로향했다.


        신비의 왕국 아라가야를 찾아서
    김  은  실(우석대학교 아동복지학부 1학년)

휴일이면 항상 늦잠을  자던 습관을 뒤로 하고 오늘은 조금 일찍 일어났다.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에서 진행하는  유적지 답사에 함께 가기로  학근오빠와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일찍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원래 꾸물대고 좀 늦게 준비를 하는 습관이 있어 약속시간  보다 좀  늦게 나가게 되었다. 추운데 밖에서 기다리게 한것  같아 학근오빠한테 조금  미안한 맘이 없잖아 들었다. 그리고 9시 버스를 타고  지혜와 계란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앞에 언니의 설명도  들어가며 조금 자기도 하던 끝에, 어느새 도착지인 함안에 내릴 수 있었다.
먼저 방문한  곳은  무기연당 이라고하여 주재성의 생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이었다.
주재성은 조선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함께 난을 진압한 인물이다. 관군들은 돌아가는 길에 그의 덕을 칭송하여 마을 입구에  '창의사적비'를 세우고 서당 앞 넓은 마당에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고 산의 모양을 본떠 놓았다. 이후 주재성은 연못의  이름을 '국담'이라  하고 호를 삼았으며, 연못가의 서당에서 학문에 전념하며 유유자적하였다. 연못의  서북쪽에는 오래된 정침 한  채가 남아 있으나,  많은 부분을 고쳐서 그 가치를 잃고 말았다. 연못가에는 후대에 풍욕루와 하환정을 지었고, 최근에 충효사(忠孝祠)를 지었다. 그리고 연못 주위에는  담장을 쌓고 일각문을 내어 영귀문이라 하였다. 정원문화 연구에 좋은 자료이기도 한 이곳은 1984년 12월24일 중요민속자료 제208호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땅이 고르지 않아 다니는데  불편이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신기하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어 좋았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점심을 먹기 위해 다들 식당으로 향했다. 다른  식당과 달리반찬 종류도 많고 맛도 있었다.  다들추어탕을 먹는데 지혜랑 나는 그걸 못 먹어서 다른걸로 바꿔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나올 수가 있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고분군,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분지로  북과 서는 낙동강
남강으로 남과 동은 600m가 넘는 산으로 둘러 쌓여 있다고 했다. 아라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100여기의 대형고분들은 높은 곳에 열을 지어 위치하고, 그  아래로 1,000여기나 되는  중소형의 고분들이 분포 하고 있다. 이 고분군은 일제시대에 처음 조사되었는데,  당시 제34호분은 봉토의 지름이 39.3m, 높이가 9.7m나 되는 최대 규모의 왕릉이었다. 최근에는  고분군 북쪽 끝자락에  있는 마갑총에서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것과 같은 말갑옷이 출토되었고, 다섯 사람의 순장  인골이 확인된 제8호분의 조사로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산리석불, 한절 즉 대사라 전해지고 있는 이 사지는 함안면 대산리 1139번지내 위치한다. 모두  4구(軀)의 불상이 남아 있어서 하나의  석불군을 이루고 있는데, 이가운데 가장 완전한 상(像)은 2구의 보살입상인데, 형식이나 양식이 흡사하여 입불상의 좌우협시로 조성되었음이 분명 하다. 두 보살상은 타원형의 부드러운얼굴이나 아담한 체구, 그리고 8각과 원형의 2단 대좌 등에서  통일 신라 초기양식의 전통을 계승한 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원통형의 높은 관(冠)이나 작달막한 체구, 기하학적인 의문, 한복식 옷 등의  표현은 고려의 지방양식 석보살상임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입불상은 머리가 없지만  양감이 풍부하고 세련미가  있는 조각으로 상당한 수준의 작품이며, 파괴가 극심한  머리없는 좌불상은  온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의  석질과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의 불상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1962년 1월 21일 보물  제71호로 지정되었다.
바쁘고 알찬 기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시각은 7시 쯤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뜻있는 하루를 보낸 것 같아 기뻤다. 처음에 오빠가 가자 그랬을 땐, 그냥 아무 생각없이 어떤 곳인가 하는 호기심에 그냥 한번 가보자 생각 끝에 내린 결정 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오빠  따라 갔다 온 것이 잘 한 것 이란 생각이 든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기회이기도 하고, 자주 만날 수 없는 사람들 이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난것  같아 좋았고 학근오빠랑 사진도 찍고  재밌게 놀다  온 것 같아 좋았다. 순경 언니도 같이 갔었음 좋았을텐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사람들과 얘기도 많이  해보고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이 부족했던 점이 좀 아쉽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다시가 보고싶다.


문화원소식                                                               27  

1월 17일 오후 6시 30분 2005년도  제1차 정기이사회가   문화원 정보지원센터에서 개최되었습니다.
황기진, 유종환  이사등 여러  이사님들이 참석하여 신임 운영이사  선임, 2대  원장 선임, 2004년도 사업  및 재정결산, 그리고 2005년도 사업 및  예산안 등 2005년도 정기총회에 상정할 안건을 심의,  의결하였습니다.
같은 날 오후 7시 30분 많은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문화원 강당에서 2005년도
정기총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이날 총회에서는 감사보고, 2004년도 사업 및 결산안 보고, 2005년도 사업 및 예산안 심의, 의결이 이루어졌으며 이사회에서 선임된 2대 김현준 원장에 대한 보고 및 운영위원회에서 재정한 두건의 내규에 관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1월 15일  제18차  역사문화기행을 경북  성주의 회연서원,  세종대왕 왕자태실, 선석사, 한개마을 등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2월 19일 제19차  역사문화기행을 경남  함안의 무기연당,  아라가야고분, 대산리  석불 등  가야유적지를 중심으로 다녀왔습니다.
가야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깊고 넓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2월 24일  11시에 중구청  강당에서 개최된 중구자원봉사단체협의회   정기총회에 참석하였습니다.

3월 17일 오후 7시에 2005년 여성부 공동협력사업으로 진행하는 대구여성시각장애인   문화나들이 1차 행사로 극단  마카의 [해가지면 달이뜨고]를 관람하였습니다. 대구지역의 여성시각장애인 30명과  도우미 30명이  짝을 이루어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관람한 절절한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3월 19일 제20차 역사문화기행을 충북 단양의  적성과 온달산성으로 다녀왔습니다.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사랑이야기가 막 움트기 시작하는 새싹들 사이로  싱그럽게 다가왔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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